요지경 세상, 그래도 살아야지
며칠동안 잠이 잘오지 않았다. 불면증이라기 보다는 어쩌다 한번(2~3일씩) 스쳐(세상의 근심 걱정 다 짊어지고?)가는 고질병이다. 그래서 잠은 철저히 습관이란 생각을 하며 산다.
나는 잠에 예민한 탓이라 생소한 환경에 잘 적응치 못하는 수면계의 약자이다. 숙박여행때면 그넘의 술이란게 자장가를 불러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군대생활 한여름 무더위속 고된 훈련중 10분간 휴식시간엔 거의 대부분이 앉아서 졸았다. 그런데 나만 혼자 멀뚱히 뜬눈으로 충성스레 보초를 섰던 것이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등반중엔 시차변경과 산장의 혼잡한 여건 때문에 이틀씩이나 잠을 못자 힘들었다. 결국엔 대장이 고소증 온다며 만류하던 수면제까지 몰래 먹었던적이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나이들어 백수 내지는 장노의 지위에 올랐으니 크게 걱정꺼리는 되질 않으니 다행이랄까.
며칠전 신문에서 가슴아픈 기사를 읽었다. 홀로 여섯살 딸을 키우던 서른 다섯 여인이 사채업자들의 불법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던 뉴스, 사전에 경찰에 도움을 요구했지만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단다.
그녀는 생활고에 시달려 사채업자들에게 90만원을 빌렸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자가 1000만원 넘게 불어났다. 업자들은 딸이 다니는 유치원 주소까지 뿌려가며 협박했다.
예전에는 훨씬 높았지만 그래도 현행 이자제한법은 연이율을 20%로 정하고 있다. 그걸 넘는 이자는 금하고 있고, 채무자·주변인 협박 같은 불법 빚 독촉은 채권추심법으로 처벌한다.
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략 그렇듯 알고보면 법은 약자편이 아니다. 경찰 안팎에선 취약 여성이 빚 독촉에 시달리는 건 흔한 일이라고 방치한 것 같단다. 그게 흔한 일이면 치안은 엉망이란 말이 된다.
세상 떠난 그녀가 여섯 살 딸에게 남긴 유서,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고 썼단다.
우리네 인생에서 자랑해대는 행복이란 한순간이고, 그 삶의 추억은 긴아픔과 그리움으로 남는다. 나는 한동안 그걸 모르고, 대강대강의 삶을 살아왔다.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했다. 여행을 즐기고 가끔의 농사일도 나섰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때론 방황하고 갑갑한 세상을 탓하며, 소설 '인간시장' 장총찬처럼 하늘을 원망했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했고, 나 자신의 모자람을 감추었다. 진정한 능력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별 용트림을 다했다고? 그래도 가만 앉아 벌금 무는 것보다, 패 감추고 마루바닥 때리며 피박쓰는 것도 때론 재미가 있을 것이다.
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따지고보면 어디까지나 탐욕이다. 성경에서는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그랬다.
언젠가부터 생각이 깊어졌다. 어디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소릴 들었나보다. 바닷가 아낙이 생선을 말리듯, 지난 과거를 하나하나 되돌려 아쉬움을 없애갔다. 어쩌면 이별연습을 하는 것이리라는...
그럼에도 그 과정이 순수해야 자서전에서 해피엔딩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서전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추억이고 아쉬움이다. 유명인들은 흔이 보란듯 자서전을 내놓는다.
그러나 대부분이 역사의 평가에서 그저 그런 점수를 받는다. 유명이란 단어엔 다른 사람이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올바름만 있었을까? 독선, 일탈, 거짓, 위선, 청탁과 탈.불법...그걸 이겨내고서만이 가치가 남는다.
나의 추억과 후회는 부끄러움을 따로 감추고자 함이 아니다. 더 큰 그것들을 남기지 않으려는 결심이다.
나는 그걸 '추억'이라 쓰고, '그리움'이라고 읽는다. '후회'라 쓰고 '아쉬움'으로 남긴다. 추억도 난잡하면 아사리판이 되고, 아쉬움도 많아지면 우울한 레코드판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픔을 참고서라도 과거를 헤집는다. 이쯤해서 다들 자신마음의 자서전 정도는 쓰보라고 권장하고 싶어진다. 나의 그 마음의 자서전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부모님 사랑과 신의 은총으로 태생한 운명이란 실체
전후 궁핍과 과거 보릿고개 시절 부족했던 먹을거리
가난한 삶속에서 많은 형제 키워주신 부모님의 사랑
산에서 소먹이고 강가에서 고기잡던 소시절의 추억
낙방고배에 칠전팔기 결의 다지며 떠났던 무전여행
고향떠나 낯선 초소에서 달빛아래 외로움타던 초병
한여름 무더위속 기진맥진 이 악물었던 황산벌 훈련
60대 장애 아들과 살아가던 칠갑산 자락의 할머니
민주화와 체루까스속 가까이 보았던 시위대 뒷자태
자라는 아이와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
초보산꾼들과 고락을 같이했던 설악의 그 공룡능선
장대빗속 지리산 종주계획을 변형했던 여름의 산행
식빵 배낭넣고 하염없이 홀로 걷던 지난날 트래킹 길
백두산 종주 중 너덜바위 굴러 가슴 섬뜩했던 순간
고소증을 이겨내며 기진맥진 올랐던 산 킬리만자로
키나발루, 황산, 대만 옥산, 옥룡설산과 국내 산과 들
오랜 세월동안 오르고 휘달렸던 산야에 대한 그리움
상급들과 대항해 원칙 지켜내려던 고난의 직장생활
새벽까지 시간 잡히고 마셔댔던 젊은 날 친교음주
강과 바다에 뛰어든 여인들을 구출한 후의 망연자실
인생 마디마디 등장하여 아쉬움을 아는 송도바닷가
추억을 삼켜버린채 새로 바뀌어 살아가는 고향무정
어머니도 길잃은 산촌을 물어가던 날의 낮선 외가찾기
우산쓰고 빈대떡 거지탕집 함께 문두들기던 금란지교
포장마차와 실비집 아낙이 들려주는 아픈 그들의 삶
발걸음 따라 찾아든 막걸리 주막집 벽에 쓰인 낙서
텃밭 가꾸다 친구들과 마시는 텁텁한 한잔의 막걸리
과거를 묻지 않아도 궁금증 없는 동문과의 술자리판
지리산 산정보며 전원의 친구집에서 나누었던 술잔
가계와 종교 오욕칠정 한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세월
벌청소 끝낸 불량학생처럼 졸인 마음에 다가선 노후
멸망의 시대를 앞당기는 표정숨긴 정치꾼들의 위상
혼돈과 변혁 시대의 아픔이 서로간 틈을 벌려논 현상
미신과 종교를 추월하는 이념이 지배하는 험난세상
오류난 선택에서 가슴 접으며 살아가는 삶의 의무감
세상에서 외면 당한 이웃과 함께가는 현실적인 아픔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들과 남아있는 기억실타래
4대 대가족 옛생각 나게하던 부모님 먼길 떠나시고
천리길 떠어져사는 자식 손주와의 뜸한 소식나누기
형제들과 버스타고 부모님 산소 찾아가는 그 설레임
비오는날 우산쓰고 떨어진 낙엽 밟는 쓸쓸함의 기분
연골 빠져나가 뒤척거리며 마음만 앞서가는 등산길
알 수 없는 영혼이란 동아줄 잡고 바둥대는 노년 삶
떠나며 이별의 슬픔보다 함께 했음이 행복했던 인연
둘러싼 환경은 거칠어 가고 방어막 약해지는 현실인식
이제는 수용하며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정리된 마음으로...
화내고 스트레스 주지 말랬는데 아침부터 화가났다. 운전면허증땜에 경찰서 간다고 나섰더니 웬차가 나의 주자장소를 점령했고...
전화받고 달려온 여자(이런경우 거의 여자의 새차...우리 친구들은 안그런데)는 "빼주면 될텐데 왜 큰소릴 치느냐" 고 맞대든다. 허참! 똥낀넘이 성낸다더니, 우리집이 어디 간이공용주차장쯤 되는줄로 아나?
요즘 인간들이란 이런식이다. 잘못했으면 먼저 '죄송합니다' 한마디 앞세우면 누가 잡아 먹나? 내것은 나의 것, 네것은 우리들의 것. 뭐 그런식인가?
마음 가다듬고 20미터쯤, 웬 시커멓고 덩치큰 외국인 녀석이 자기 얼굴닮은 색깔의 비닐봉지를 길가에다 던진다. 또 골이 났다.
"아니 쓰레기를 검은 봉지에다 담아 버리면 수거를 해가나? 안싣고가지..."
녀석 양심은 있는지 부끄러운듯 머릴 극적거리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야! 고마 됐다. 그런데 세상이 어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