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은 물러설 퇴
김혜순
나는 묘지 담벼락에 붙은 집에 묵기로 했다
내가 창문에서 몸을 날리면 묘지에서 떨어지게 되는 집이었다
묘지는 그곳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이기도 했지만
한가한 산책로이기도 했다
묘지를 제 집 정원인 양 산책하고 가꾸는 이웃들
나는 한 발은 묘지에 한 발은 내 방에 이렇게 올려놓고
산책 겸 휴식, 산책 겸 식사, 산책 겸 잠을 잤다
잠을 자고 있으면 묘지가 거인으로 일어서서 내 이름을 불렀다
산책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어선 묘지의 커다란 몸엔 당연히 식물들과 새들이 매달려 있었고
묘비들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어느 날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물조리개로 물까지 주면서 나를 불렀다
그러면 나는 다시 비를 맞으며 산책 겸 꿈을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비문을 읽기도 했는데
어느 날 거인은 산책 겸 잠을 자는 나에게 분명히 말했다
산책을 하면서 비문에 새겨진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석부를 부르듯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산책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엔 내 방에 들어와서도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유리컵 위에 올려놓고 기르는 감자에게
잘자라~~ 내 감자~ 내 귀여운 감자~~
하루에 한 번씩 자장가를 불러주면 나의 감자가
독이 오른 싹들을 더 잘 내뿜게 되는 것처럼
그들의 죽음을 더 잘 자라게 하는 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그만 그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 묘지 밖에서조차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산책만 하면서
매일 안식에 든 사람들의 출석만 부르고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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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숨을 은 물러설 퇴… 좋은 시로 소개한 건 아닙니다. 내년이면 김혜순은 대학에서 정년을 하게 됩니다. 은퇴를 한다 생각하고 시인은 이런 시를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술회한 산문을 시의 진보로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시인은 시를 졸업한 모양입니다. (강인한)
첫댓글 이 분의 시는 편차가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