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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 (258)
곽선희목사 설교 예화⑪
▶너무나 집이 낡아버려서~
미국의 제 2대 대통령을 지냈던 존 애덤스는, 나이 많이 들어서는 종종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공원을 산책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를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존 애덤스는 대답을 합니다.
“예, 안녕합니다. 건강합니다. 그런데 집이 다 낡아서 지붕은 파손되고, 벽은 떨어지고 바람에 흔들려서 받침대까지 세웠습니다. 너무나 집이 낡아버려서 곧 이사를 갈까 합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존 애덤스는 대통령을 지낸 분이요 가정형편도 넉넉한 분인데 집이 낡아서 이사를 가야 한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니, 각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집이 낡아서 이사를 가야 하시다니요?”
존 애덤스는 “허, 이 사람 모르시는구먼. 날 좀 보구려”하면서 대머리가 다 된 자기 머리를 가리킵니다.
“이것 보라고. 지붕이 다 낡았지 않았소?” 또 자기 늑골을 보이면서 말을 합니다.
“이것도 보라고. 이렇게 바람벽도 다 낡아서 이제 바람이란 바람은 다 새게 되었어요. 아예 바람에 흔들려 쓰러질 지경이라 이렇게 지팡이에 겨우 의지하고 있지 않소? 받침대로 지탱하는 낡은 집이니 곧 이사가야지 뭐.”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요!
독일의 염세주의 철하자 쇼펜하우어가 공원 의자에 혼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공원은 텅 비었습니다. 공원을 청소하는 공원지기가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신사양반.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서 왔기에 해가 지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거요?”
이 퉁명스러운 질문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로 그것이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요.”
▶지도자급의 고래 한 마리가~
최근, 뉴질랜드의 북쪽에 위치한 그레이트 베리어 섬 해안에서 무려 140여 마리의 고래가 급히 헤엄쳐 뭍으로 올라오더니 다시는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단 자살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 희한한 사건을 놓고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그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고래가 떼를 지어 다니는 데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고래는 그 지도자가 인도하는 대로 헤엄쳐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급의 고래 한 마리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네 가지 요소
신시내티 대학의 총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U.S.C 대학의 경영학교수로 있는 베니스는 지도자가 지녀할 리더십의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럴듯합니다.
첫째,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가이딩 비전(guiding vision)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책임은 이 비전을 사실로 승화시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지도자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보신 사람들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비행기 안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세계지도와 비행기가 나타나 실제 비행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까지 왔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몇 마일 왔고 앞으로 몇 마일 남았습니다. 몇 시간을 왔으며 앞으로 몇 시간 지나면 도착할 것입니다 ---. 이런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이렇듯 지도자는,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이대로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둘째, 패션(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정열과 열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스피레이션 옵티미즘(inspiration optimism), 즉 낙천적 영감이 필요합니다. 낙천주의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 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잘못됐습니다’ 라는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망한다고 해도 그만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 틀렸다고 해도 그만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로 향한 열의와 정열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셋째, 인테그러티(integrity) --- 성실성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기본적으로 알고, 그리고 솔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시인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엄청난 실수를 할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하는 솔직한 마음이 우리에게 신임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성숙된 인격, 그것이 바로 성실성입니다.
넷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미 경험 지를 향하여 백성을 인도하는 용기,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나도 초조하거든!
전쟁준비를 해놓고 돌격의 때를 기다리는 장군이 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입니다. 잠을 이룰 수 없이 초조해서, 그는 막사를 나와 군영을 돌아봅니다. 밖에 젊은 보초병이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초조하고 두렵습니다, 장군님” 장군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와 좋은 짝이 되겠네. 나도 초조하거든. 나도 불안해. 자네, 나하고 산책이나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세.”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말하는 병사를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도 초조하거든’ --- 이 한마디의 말이 병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아랫사람과 고난을 함께 하는 사람,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잠시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의로운 고생을 선택하는 바른 결단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문은 깨우쳐줍니다.
▶다만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합니다!
처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로, 11년 동안이나 영국 수상직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후보자들이 선거에 나서서 유세할 때,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내가 수상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 뭘 해주겠다’ 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칠 경은 언제나 한결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합니다. 여러분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합니다.” --- 그는 이렇게 해서 백성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야!
옛날 한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임금님께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유혹을 피하고 많은 시험을 이겨서 나라를 위한 깨끗한 충신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임금님은 그 젊은이의 그 뜻이 기특하여 지혜를 베풀었다. 재상으로 하여금 컵에다가 물을 가득히 채워서, 이 컵을 들고 제한된 시간 안에 시내를 한 바퀴 돌되,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명했다.
그리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재상 뒤로 따르게 했다. 젊은 재상은 질문 한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드디어 임금님이 명하신 대로 제시간에 물컵을 들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임금님은 크게 칭찬하시며 그의 수고를 고마워했다. 그리고 묻는다 “자네가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나 ?” “못 보았습니다.” “그럼 술집을 보았나 ?” “못 보았습니다” “그러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얼마나 나왔던가 ?” “임금님, 못 보았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이때 임금님은 “바로 그것이야.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노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시시한 일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이야”라고 말하며, 왜 그런 일을 시켰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저는 교회에 올 때마다~
워싱턴에 있는 어느 백인 교회학교에 흑인 아이 하나가 다니고 있었다. 사실 흑인이 백인교회에 다니려면 따가운 눈총이나 여러 가지 서러움을 당하게 되지만 이 철없는 어린아이는 늘 좋은 마음으로 교회에 다녔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그에게 “너는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니?” 하고 물었단다. 그 아이는 “저는 교회에 올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옵니다” 라고 정말 예쁜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가 있다. 마귀가 찾아와서, 너는 이렇게 죄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실패했다, 너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죄인이다 ! 하고 몰아붙인다. 이에 루터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 --- 이래서 이긴 것이다.
▶사랑과 약속!
영국 비토리아 왕조 때의 최대의 시인으로 추앙 받는 알프레드 테니슨 경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서 열렬히 연애를 하던 끝에 결혼을 약속했다. 약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수업 중이고 가난한 데다 유명해지기도 전이어서, 섣불리 결혼을 했다가는 도대체 생활을 꾸려 갈 수가 없는 것이다. ‘1년 뒤에 보자’ ‘좀 더 기다려보자’ ‘조금 더, 조금 더 ---’ 하다가 무려 17년이나 흘려보내고야 맺어지게 되었단다.
요새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무엇이 그토록 오랜 세월도 기다릴 수 있게 했는가? 다름 아닌 ‘사랑과 약속’이다.
▶비서가 목사한테 설교를 하고 있다.
위어스비라는 목사님에게 여비서가 있었다. 사고를 당해서 그 여자의 남편은 장님이 된 채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그 여자 자신도 많은 시험을 겪고 고생을 하더란다. 딱하고 답답한 나머지 목사님이 비서를 위로한다. “나는 당신과 당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비서가 묻는다.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 목사님이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어 당신의 고난을 면케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랬더니 여비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목사님” 하고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저는 이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다 받으려고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서 받아내야 되겠어요. 그러니 목사님, 제가 그 축복을 받아냄으로써 오늘 당하는 이 고난이 헛된 고난으로 끝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 비서가 목사한테 설교를 하고 있다. 옳은 이야기이다.
▶이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인간미를 이야기하자면 미국 뉴욕의 시장 중 남달리 유명한 시장으로 알려진 라과디아씨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기소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다.
그는 어찌하여 빵을 훔쳤느냐고 노인에게 묻자 울먹이면서 대답하기를 “죄송합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지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라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구했다. 재판장은 “당신의 죄는 10불 벌금형에 해당합니다. 벌금 10불을 내시오.” 판결을 하고서는 자기 지갑을 열어 10불을 내놓으면서 “이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이처럼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죄로 이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나 같은 죄인으로 벌금 내실 분이 있으시면 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모자를 벗어 돌렸다. 그 자리에서 47불을 모금해서 노인에게 주었고, 그 노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재판정을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나이 많으신 어른께는
미국의 어느 극장에서 음악회가 열렸는데, 막이 열려야 할 순간에 큰 모자를 쓴 할머니가 객석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매니저가 발견했다. 매니저는 그가 모자를 벗어 주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가 시간이 촉박하여 마이크를 들고 지혜롭게 말했다. “당 극장에는 나이 많으신 어른께는 모자 쓰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할머니는 모자를 벗었다고 한다. “할머니 모자 좀 벗어 주세요”라는 말과 매니저가 한 말을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 기왕이면 듣기 좋은 말로 재치 있게 하면 그 말의 효과는 극대화되는 것이다.
▶성 글라라 수녀!
유명한 성 글라라 수녀는 젊었을 때 상당히 사치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녀가 된 다음에 그 생활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일부로 쇠사슬로 된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험한 옷을 입으며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고행을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며 그의 고행을 높이 말하는데, 때로는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글라라 수녀는 이 비난을 참고 참다가 한번은 맞대고 욕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또 마음이 아파 회개하면서 잘못을 찌른 혀를 바늘로 찔러 며칠 동안 말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다섯 개도 안 팔릴 거다!
예측이 빗나간 것 가운데 대표적인 우스꽝스러운 얘기가 있답니다. 1943년, 그때 컴퓨터가 처음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로버트 왓슨이라고 하는 IBM 회장께서 컴퓨터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거는 만들어봤댔자 온 세계에 다섯 개도 안 팔릴 거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천만 대가 팔리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런가 하면, 1970년에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기를, 이대로 가면 2010년에 가면 석유 매장량이 완전히 바닥이 난다. 석유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서 쓰고, 넉넉히 쓰고 남는답니다. 그것도 봐야 알겠지만.
▶당신이 살아온 그대로 다시 살게 됩니다
독일의 의사 안다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독일 어느 마을의 전설 이야기가 있다. 그 마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목욕할 수 있는 큰 컵이 하나 있는데, 컵을 한 바퀴 돌리면 그 컵 속에 들어앉은 사람이 젊어진다고 한다. 돌리는 횟수만큼 사람이 점점 젊어지는 신비스런 컵이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오셔서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컵을 여러 번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컵을 돌리는 사람은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소원대로 젊어지기는 하겠습니다만, 다만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그대로 다시 살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서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할머니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그러면 젊어지는 것을 취소하겠다고 하며 되돌아갔다고 한다.
▶로마서 8장 18절
일찍이 미국의 인디에나 폴리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흉악한 절도범 하나가 지명수배 되어 쫓기다가 어디엔지 숨어 있습니다. 지하실에 숨어 있는 것을 형사가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문을 확 여는 순간에 양쪽이 다 총을 겨누었습니다. 이제 어느 쪽이든 일단 먼저 쏘면 저쪽도 쏘게 되어 있어요.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듯 긴박한 시간인데, 한첨 벼르고 있다보니 컴컴하던 실내가 윤곽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니 거기에 성경책이 놓여 있어요. 이걸 보고 형사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총을 버리고 성경책을 펴 들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을 읽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형사는 “자네는 이제 한동안 감옥생활을 하겠지만 장차 받을 자유와 영광에 비교할 수가 없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범인이 총을 버리고 무릎을 꿇더랍니다.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
우리 아침마다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을 한번씩 읽어보거나 외워봅시다!
‘하나님이시여,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옵소서! 그리고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칠 수 있는 것을 식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노벨상 제도!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1833년에 스웨덴에서 노벨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인즉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동명 이인을 잘못 알고 “노벨이 죽었다” 하니까 그 노벨인 줄 알고 당장 ‘노벨 사망하다’ 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이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 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 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은?
옛날에 어느 돈 많은 할아버지가 노비를 많이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 해 섣달 그믐날 그 노비들을 다 해방시켜주겠다고 노비들 앞에서 공언했습니다. 노비들은 굉장히 기뻐하며 손꼽아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노비로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창 기쁨에 들떠 있는 노비들에게 주인은 짚단 하나씩을 나누어주면서 그것으로 밤새 새끼를 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노비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려먹고도 이제 고작 하루 남았는데 그게 아까워서 끝까지 부려먹겠다고? 원 세상에, 이리도 고약한 할아버지가 또 있을까?’
그들은 되는 대로 짚을 한 움큼씩 잡고 굵직굵직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내던져놓고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한쪽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기왕 하는 것 끝까지 잘해주고 나가자.’ 그들은 밤새도록 곱고 가늘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광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노비들한테 말했습니다. “여기에 쌓여 있는 엽전을 어제 각자 꼬아놓은 새끼줄에 끼워라. 끼울 수 있는 만큼 끼워서 가지고 가거라” 자, 노비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새끼를 아무렇게나 굵게 꼰 사람들은 끄트머리에 겨우 몇 개, 그것도 간신히 매달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루까지 충성한다고 곱고 가늘게 꼰 사람들은 거기에 엽전을 끼고, 또 끼고 해서 바리바리 실어 가지고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요한 웨슬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웬 여자가 다가오더니 웨슬리에게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 내일 밤 12시에 목사님이 죽게 되어 있다면 남은 시간에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웨슬리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대답합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원래의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 참으로 뜻깊은 대답입니다.
▶나를 가리켜 구두쇠라고 하니
한 농부가 친구를 보고 하소연했습니다. “나에게는 땅도 많고 재산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죽은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을 자선사업에 쓰도록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유서를 써놓았다. 그러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구두쇠라고 하니 속악하구나!”
그러자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돼지가 암소를 보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남들 보기에 많이 먹고 살도 쪘지만, 죽으면 내 살과 가죽을 고스란히 주인한테 바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남들은 왜 나를 보고 ‘돼지야, 돼지야’ 하며 손가락질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암소가 핀잔을 줍니다. “너는 실컷 먹고 살이나 잔뜩 쪄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죽고 나서야 고작 쓸모 없는 고깃덩이나 주인한테 바치지만, 나는 어떠냐? 나는 열심히 밭을 갈아주고 짐도 져주고, 심지어는 우유도 바치지 않느냐? 나는 살아 있을 때에도 이렇게 도움을 드린단 말이다. 그러고도 죽은 다음에는 주인에게 고기까지 바치지 않느냐?”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종말에 대하여 재미있는 비유를 이야기했는데 들어 보라. 관객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어느 극장 뒤쪽에서 불이 났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연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극장 주인은 불난 사실을 갑자기 알릴 경우에 벌어질 큰 혼잡을 예상하고 조용한 설득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배우들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배우 한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가서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모두 차분하게 이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기 배우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 위에 서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이러저러해서 불이 났는데 모두 차례를 지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 그랬더니 관객들은 이것이 연극인 줄 알고 모두들 박수를 친다. 아주 재미있어 한다. 당황한 연극 배우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곧 불길이 번져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관객들은 더 열심히 박수만 친다.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는다. 자, 어찌 되었겠는가 ?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극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서로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어느 마을에 나뭇짐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믿음이 어지나 좋던지 혼자 살면서도 늘 신앙 생활에 힘쓰며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 놓고 성전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뒤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다. 날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아서 늘 기도를 하십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얼굴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는 자기의 온 정성과 마음과 기술을 다해서 환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골치 아프고 손을 떼고 싶거나 돕고 싶지 않은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잔소리 많은 환자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압니다. 이런 환자는 ‘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영 대하기 싫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미안한 말씀입니다 마는 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어린아이를 가르쳐 만사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또는 공식에 의해서 모든 것을 따지는 그런 체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하면, 이것 먹으면 낫느냐, 이렇게 하면 꼭 낫느냐, 왜 그러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A+B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살고 죽고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따지니까 의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답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환자구나 할 밖에요.
세 번째 환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환자입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 같은 약은 투여하고 나서 적어도 사흘이 지나서야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약을 한 봉지 먹고는 왜 안 낫느냐, 아침에 치료받고는 저녁에 왜 안 낫느냐,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보따리 싸 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만나면 아주 골치 아프고 ‘빨리 다른 데로 가라’하고 싶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도 본래 위장이 좋지 않아서 가끔 발작을 했습니다. 그래, 십 년 동안이나 한 의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위가 나빠질 때마다 그 의사에게 가서 회복하고, 또 회복하고..... 그러다가 그 방면에 더 훌륭한 의사가 있다고 듣고는 새로운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거기서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가 후회했습니다. ‘전에 치료받던 그 의사에게서, 그 병원에서 치료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왜 이런 것입니까? 우리의 교육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순종할 줄을 모르고, 영 믿음이 없고,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하고---- 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입니다. 의사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골치 아파합니다.
▶단 한 가지 안 해보신 것!
월링턴이라는 영국의 해군제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해군제독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병사하나가 상습적으로 탈영을 하는 것입니다. 군대에 있어서 탈영은 사형 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병사는 붙잡아서 감옥에 넣어두면 또 탈영하고, 붙잡아두면 또 탈영하고.... 사고뭉치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놓아두다가는 영구 해군의 기강이 무너지겠기에 마침내 군법대로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윌링턴 제독은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고 싶었다. 제대로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채찍을 들기도 하고, 처벌을 하기도 하고, 강제로 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기도 하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그런고로 너는 사형이다.” 그 때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는 저 병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하셨는데, 단 한 가지 안 해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제독은 곰곰이 생각하고는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를 무죄석방,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병사가 그때부터 좋은 청년이 되었더랍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어떤 청년이 성경을 보는데, 전체적으로 보는 법이 없고 또 한 절씩만 봅니다. 성경을 보기는 봐야겠기에 꼭 한 구절씩만 보는데 아무 데나 점치듯이 딱 펼쳐 봅니다. ‘예수께서 가시니라’--그래, 나도 가야지, ‘예수께서 주무시니라’--나도 주무셔야지,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딱 펼쳐놓고 보았더니 마태복음 27장 5절이 나왔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영 찜찜한 기분이 들은 청년은 아무래도 한 절을 더 봐야겠다 싶어 또다시 성경을 펴보았더니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더 곤란해진 청년은 다시 한번 성경을 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3장 27절이 나왔습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겨왔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복음을 위하여 순교한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을 순교사라고 합니다. 이 순교사의 금자탑이라 할 만큼 두드러진 인물은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캅입니다. 그는 2세기 초 중엽 서머나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던 감독인데, 그의 장엄한 순교는 모든 사람 중에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86세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였기에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폴리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형 집행인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감독이여, 나는 당신이 이렇게 나이 많은 노인의 몸으로 비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원치 않소. 그러니 거짓으로라도 제발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을 놓아 줄 테니 다른 지방에 가서 예수를 믿든지 전도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그때에 폴리캅은 대답했습니다.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겨왔습니다. 그분은 내게 아무런 잘못도 없고 거짓말을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분,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한마디의 거짓말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와 교회를 위하여 두 시간 동안 큰 소리로 기도한 뒤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거룩하고 담대한 죽음입니까? 당시 온 교회가 그의 순교를 애도했음은 물론, 지금도 유럽에서는 해마다 폴리캅의 순교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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