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헌제의 권위가 얼마나 엉망이었냐면, 조조가 한헌제를 이각과 곽사로부터 구출한 후 원소 등 뻔히 황제가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면서도 구원병을 파병하지 않은 제후들에게 경고는 커녕 오히려 벼슬과 상을 줬다는 사실만 봐도 대충 견적이 나온다.
이후로도 서량의 마등, 한중의 장노, 익주의 유장 등 뻔히 한나라 조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역적들이나 그 역적들의 직계 자손까지 조조의 판단에 따라 멀쩡히 사면받거나 심지어는 영지를 하사받기도 했으니 사실 한헌제나 한나라 충신들은 그러한 정치 현실이 매우 참담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최규하 대통령 삘이랄까. 어쩌면 그보다 더했을지도 모른다.
이후 갈수록 권력이 강성해진 조조는 결국 구석 수여-> 위왕 등극의 테크를 타는데 이것들 모두가 황제의 권위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들이다. 결과 조조는 죽어 왕망, 동탁, 사마의와 함께 한나라의 4대 간신으로 욕을 엄청나게 먹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한나라 헌제의 권위에 마지막으로 먹칠한 사람이 유비라는 사실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220년, 한헌제 유협이 조비에게 선양하는 형식으로 한나라가 멸망했다. 이때 유비는 자신이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니 한나라의 적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황제가 됐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비는 굉장한 무례를 저지른다. 헌제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믿어 나라에 국상을 선포한 것이다 (혹은 유비가 이 소문을 퍼뜨렸을 가능성도 완전히 제외할 수 없다!).
당시 아무리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어도 삼국이 많은 첩자를 풀어 정보를 수집하던 때였다. 한헌제는 산양공으로 봉해졌으니 하다못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바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비나 제갈량처럼 경험과 지혜 충만한 인물들이 헛소문을 믿는 실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백보 양보해 유비와 제갈량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어도 그 휘하 신하들이 지적할 수 있는데 그러한 기록조차 찾을 수 없다. 그냥 어물쩡 넘긴 것이다.
구한 말, 임오군란 이후 명성왕후 민씨(민비)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대원군이 민비가 죽었음을 선포하고 국상을 치루도록 했다. 당시 이것 때문에 말이 많았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황제를 귀신 취급한 유비와 그 휘하 신하들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첫댓글 사실상 헌제가 선양하는것 자체에서 권위라는걸 따지는것이 무의미하지 않을지...
황제가 선양을 했다고 해서 그 권위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직 황제라면 전직 황제에 따른 예우가 있죠. 헌제는 산양공이 됐다고 하는데 거짓 죽음을 선포하는건 공에게도 굉장한 결례입니다.
더불어 단지 황제가 선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권위를 전면 부정하면, 이는 거꾸로 조비의 선양이 정당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나아가 자신들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한헌제가 선양을 했어도 유비는 그것을 부정하고 여전히 황제 대접을 해야 위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