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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사찰
담마카야(Wat Phra Dhammakaya) 방문기
글| 김형근
담마카야 사찰 경내 모습
동남아시아의 ‘태국’하면 불교가 연상되는 국가이다. 내 경우는 불교잡지를 만들면서 1990년도에 미국에서 태국 불교사찰을 처음 방문한 적이 있고 가끔씩 태국 불교인들을 만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지역의 태국 사찰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연꽃축제 때문에 워싱턴 DC 지역의 태국불교인들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고, 최근에는 보스톤 근교에 서래사 보다도 더 큰 대규모 태국사찰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사찰은 작년에 서거한 태국국왕이 보스톤 근교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사찰인데 태국 밖에 있는 사찰로는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메릴랜드에 있는 Wat Tai Washington D.C.에서 2016년과 2017년에 거행한 행사에 참석하였다. 현재 미국에는 태국 사찰이 대략 100여개가 있다고 한다. 미주한국불교계와 비슷한 숫자이다. 미주에서 활동하는 스님 숫자는 한국 불교계 보다 훨씬 많지만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는 한국 불교계 보다 적은 숫자로 생각한다. 한국불교계는 일미스님, 버스웰 교수, 박진영 교수, 박포리 교수, 주현교수 등 한국인, 미국인 합해서 10여명이 된다. 사찰 숫자는 비슷하지만 태국 불교계는 동부지역에서는 보스톤 근교의 Raynham에 위치한 Wat Navamintararachutis과 메릴랜드의 왓타이 워싱턴(Wat Tai Washington D.C.)가 활동을 강화하면서 태국 불교의 저력을 보이고 있다. 서부지역도 활발할 것으로 생각한다. 태국은 W.F.B(세계불교도우회)의 본부가 있는 곳이고 불교계 개혁운동으로 유명한 ‘붓다다사’스님과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불교개혁운동가 ‘술락 시바라사’가 활동한 나라이기도 하여서 항상 내 마음 속에 있었다. 미국에서 위빠사나 수행이 널리 퍼지고 있고 태국불교계가 활동을 강화함에 따라 태국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 30년 가까이 불교잡지를 발행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태국을 비롯한 남방불교국가인 미얀마, 스리랑카,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가보지 못했다.
나의 태국 방문은 2017년 11월 14일 오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저녁 10시 무렵에 도착하여, 17일 저녁 10시 40분 비행기로 출발하여 다음 날인 18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20년 전인 1997년 4월에 부탄을 가는 길에 태국 공항을 경유하여 인도 캘커타를 거쳐 간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을 부탄 유엔대사관의 주선으로 부탄 종교부의 초청으로 부탄을 갔다. 그때 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저녁에 방콕 공항에 도착한 우리부부는 공항에서 시내로 가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운 후 부탄으로 떠난 기억이 있다. 그때 본 방콕 공항은 24시간 세계 여러 나라의 비행기들이 이륙과 착륙을 하는 아주 분주한 모습이었다.
혼자서 하는 이 태국 여행을 하기 전에 나는 한국에서 태국 여행 경험이 많은 일광여행사를 비롯하여 이치란 법사님 등을 통해 여행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최근에 태국을 다녀온 대흥사 보선 큰스님의 소개로 부산 태종사 시원스님을 통하여 태국 담마카야(Wat Phra Dhammakaya) 사찰의 나롱 스님을 소개받았다. 인도를 비롯하여 북한 사찰순례, 비단길 순례, 티벳트 등 많은 여행을 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나롱스님과 전화 통화를 한 후에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14일 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체크인 하면서 나의 티켓을 검색대에 대자마자 빨간색 불이 들어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코노미 표이지만 일반석이 만석이라고 비즈니스 좌석으로 가라고 한다. 내가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관계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을 각각 뉴욕에서 인천공항을 거의 100번 가까이 탑승하였기 때문에 일반석이 만석이면 가끔 비즈니스 석으로 이용하도록 항공사에서 특별 배려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매년 1-2 번 있다. 6시가 넘어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5시간 30분 정도 비행하여 방콕 쑤완나품 공항(Suvarnabhumi Air port)에 도착하였다. 11월 이지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남국의 열기를 바로 느낄 수 있었지만 강렬하지는 않았다. 공항 안내 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버스로 호텔을 가려고 했지만 안내가 친절하지 못하고 성의가 없었다. 인천공항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인천공항은 이런 서비스와 버스 연결이 아주 잘되어 있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결국 공항에서 hotel.com으로 예약한 호텔까지는 택시를 이용하여 갔다. 11시 30분 정도에 도착한 호텔은 $50 정도 가격이었는데 방은 한국의 5만원 짜리 모텔 정도의 시설보다는 조금 못했다. 방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하지만 아침은 무료로 뷔페식으로 잘 나왔다.
아침에 6시 넘어서 호텔 전화로 나롱스님께 전화를 하였는데 받지 않았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거리에 차가 넘쳐났는데 대부분의 차는 일본산 토요타, 혼다. 닛산 등이었다. LG와 삼성 광고도 보였다. 호텔 밖에도 설치되어 있고 시내 곳곳에 불단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불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종의 토속신앙인 것이었다. 7 Eleven 가게가 많이 보였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롱 스님과 통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택시로 담마카야로 갔다. 약 1시간쯤 가서 사찰 입구로 도달하니 사진에서 본 이 사찰의 상징인 UFO 모형을 연상케 하는 대법신탑(大法身塔 , 백만불탑百萬佛塔)이 보였다. 사찰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경비를 하면서 안내를 해 주었다. 택시로 사찰 안에 들어가서 International Reception Center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리셉션 센터 저쪽 끝 쪽에 어느 노 스님의 큰 사진이 보였다. 많이 본 사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방문한 뉴욕 롱아일랜드 태국 사찰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 사찰과는 분위기가 달리 사찰에 현대식 건물들이 여기 저기 많았고 매우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분위기였다.
건물들이 벽이 없고 천정만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International Reception Center도 지붕만 있는 넓은 공간과 건물이 함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통풍이 잘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안 옷을 입은 여러 여성들이 건물 주변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시골동네에 살던 여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변 청소를 마친 후 담당자가 나왔다. 그 담당자에게 나롱 스님에 대해 물어보는 도중에 막 걸어온 키가 작은 보살이 “ 당신이 미스터 김”이냐고 묻는다. 갑자기 나룽스님이 아파서 현재 병원에 입원을 하였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어로 말을 하다고 갑자기 “내 이름이 ‘영주’입니다”라고 한국말로 소개를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먼 곳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Siriporn Aranyik가 원래 이름인 영주 보살 외에도 Venus 라는 안내인과 남자 사진기자 3명이 나를 안내한다고 한다. Venus는 전직 교사로 미국에서 2년 정도 산 적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잘 구사하였다. Siripon씨는 나롱스님의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롱스님께서 “당신이 여기에서 3일간 머무르도록 하였으며 당신의 여행을 도와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담마카야 사찰 연혁과 수행법 설명을 듣는 필자
헌화하는 비너스 자원봉사자
필자를 도왔던 사찰 자원봉사자들
담마카야 사찰 본부 건물 옥상에서 안내 스님과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
영주 보살 안내로 나는 여기에서 제공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사찰을 소개하는 장소로 들어갔다.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혼자인 것이다. 보통 때는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먼저 영상으로 이 사찰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20 분 후에 아주 젊은 비구스님이 들어왔다. 시카고에서 유학은 하고 돌아왔다는 스님은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아주 거룩한 모습이었다.
이 스님으로부터 이 사찰 소개와 이 사찰의 'Dhammakaya' 명상법 설명을 들었다.참고로 담마카야'Dhammakaya'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범어 담마카야(Dharmakaya)는 법신(法身)으로 번역한다. 인환스님은 그의 저서 ‘증도가’에서 “법신은 3신 즉, 부처님의 법신, 보신, 화신 가운데 하나이다. 법은 법성(法性), 신(身)은 적취(積聚) 즉, 진여법성을 몸으로 삼는다는 뜻. 형상이 없으면서도 널리 우주법계 시방세계에 가득하여 없는 데가 없으며, 따라서 생하고 멸함이 없으니, 이것은 부처님이나 중생이 본래부터 평등하게 갖추어 가지고 있는 진여의 이체(眞如理體)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담마카야 사찰은 법신사상을 사상적 기반으로 한 사찰로 생각되었다.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난 후 나는 이들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 갔다. 첫 번째로 간곳은 부처님을 모셔놓고 신도들이 연꽃을 부처님 전에 놓은 곳이었다. 꽃봉우리가 터지기 직전의 연꽃을 부처님 전에 헌화를 하였다. 이러한 연꽃을 누구나 헌화할 수 있도록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 본 후 Chand Refectory 건물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다. 담마카야 사찰은 사찰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백만 탑을 비롯하여, 큰명상 강당, 큰명상홀, 담마카야 사찰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Phra Mongkolthpmuni 스님 이름을 딴 기념관, Phra Mongkolthpmuni 으로부터 법인가를 받은 비구니 Chand Khonnokyoong의 이름을 딴 Chand 식당(Chand Refectory), 그리고 이 담마카야 사찰의 본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15층 건물인 Chand Centennial 빌딩, Chand Khonnokyoong 기념관, Uposatha라고 하는 맨 처음 법당으로 사용한 건물 등을 비롯하여 스님 전용 병원, 스님 전용 숙소, 자원봉사자 전용 숙소, 방문자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건물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았는데 티베트 대리석이라고 하였다.
건물들은 벽이 없이 기둥을 중심으로 한 경우가 많았고, 그리고 될수록 창문을 만들지 않았다. 이것은 공기가 잘 순환되어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스님이 먼저 들어가고 나와야 한다. 다음에 손님, 남자 신도, 여자 신도 순으로 한다고 한다. 건물 이름으로 보아서 정신적인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Phra Mongkolthpmuni 큰스님으로부터 법인가를 받고 실직적인 사찰건립을 시작한 비구니 ChandKhonnokyoong 스님을 이 사찰에서는 매우 중시하는 것 같았다.
사찰보다는 대규모 단지 내지 종합대학 같은 느낌을 주는 초대형 사찰이지만 50년 전에는 논이었다고 한다. 1970년 단지 논에 불과한 이 지역을 스님들이 한 발자국 걸으면서 나무를 심으면서 환경을 개선시켰다고 한다. 단지 가치 없는 농토에 엄청난 노력을 한 후에 이 사찰은 단지 사찰을 뛰어넘어 불교도시를 변화되었다. 북방불교 국가인 중국이나 한국 등의 사찰 부근에 있는 사하촌 하고 비슷한 개념이지만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되었다.
필자가 직접 가본 큰 사찰은 중국 시안(西安)에서 120km 떨어진 파먼쓰(法門寺)다 7-8년 전에 비단길 순례길에 방문했다. 부처님 뼈 사리를 모신 사찰로 유명한 파먼쓰는 사찰 입구에서 법당까지 길이 1230m 폭 108m 도로를 만들었다. 이 안에 148m 탑을 조성하였다. 걸어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안에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전용 차량이 있다. 중국 정부에서 2004년부터 6년간 공사를 한 사찰이다. 중국 국가 차원에서 재건축을 하는 관계로 들어가면서 그 규모에 압도당한 기억이 있다. 이 담마카야 사찰을 보면서 파문쓰가 생각이 났다. 이 담마카야는 1,440,000평의 대지이고 백만 금동불상을 조성한다고 한다. 행사를 하면 수 십만명이 모이는 사찰이니까 양적으로는 세계 최대 사찰이다. 오후에는 이 대 사찰의 주 건물인 15층 짜리 Chand Centennial 빌딩을 방문하였다.
이 건물은 네모 반듯한 10층 건물 위에 지구본 모양의 5층을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이 건물 1층에는 재정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담마카야 사찰과 담마카야 재단 본부가 이 건물에 있다. 그리고 연구조사실, 명상실, 강당, 학교와 교육시설, 회의실 등이 있다. 이 건물은 2009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10층 까지는 대부분 마쳤지만 11층 부터는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안내를 해 준 스님은 이 건물 관리 담당하는 스님은 40대로 보였는데 일본 유학을 하였다고 한다. 약간 마르고 균형잡힌 체격에 차분한 모습이었다.
팔리어 공부를 하는 스님들
학교는 팔리어 학교라고 하는데 많은 젊은 스님들이 팔리어 독경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5월에 티베트 성지순례 때도 수 백명의 티베트 스님들을 사찰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 보다 훨씬 숫자가 많았다. 이 학교에서는 팔리어 외에도 영어와 중국어 교육을 한다고 한다. 팔리어 교육을 하는 교실을 허락을 받고 들어가 보았는데 30-40명 10대와 20대의 스님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교수는 여성들이 많았다. 약 2 시간 가까이 걸려서 자세하게 안내를 받았다. 나의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들도 처음으로 자세하게 이 건물을 보았다고 한다.
백만불탑 탑돌이
백만불탑
저녁에는 백만불탑 탑돌이를 하였다. 어둠이 내렸지만 탑은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탑 뒤쪽에는 팔리어 독경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신도들이 삼삼오오 함께 혹은 혼자 연꽃을 들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고, 가끔씩 혼자서 탑돌이를 하는 스님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찰 안내문은 대부분이 태국어로 그리고 일부는 영어로 되어 있었는데 이 탑에는 大法身塔 百萬佛塔-대법신탑, 백만불탑- 이라는 한자가 보였다. 탑돌이 도중에 헌화를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천천히 탑을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 넘게 걸렸다. 탑돌이를 마치고 팔리어 챈팅을 하는 곳으로 갔다. 팔리어로 독경을 하는 경전은 ‘초전법륜경’이라고 한다.
초천법륜경 독송하는 모습
초전 법륜경은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시고 최초로 설법하신 진리의 가르침을 다섯 제자에게 알려주는 내용이다. 그 내용의 핵심은 팔정도와 사성제이다. 독경을 하는 곳에서는 ‘백만불탑’이 훤히 보인다. 50미터 정도 거리가 될 것 같다. 한 스님이 마이크를 이용하여 독경을 하면 뒤에 앉은 사람들은 이 스님을 따라서 한다. 한번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7분인데 24시간 쉬지않고 한다. 독경하는 곳에 독경 숫자가 영상에 공개되는 데 지금까지 2억번 이상을 하고 있다. 직장을 마치고 온 사람들은 이곳에 와 독경을 하고 간다. 스님들과 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경을 항상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과 생활이 유리되지 않고 일체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불교와 생활이 일체가 되는 현장을 보고 있는것이다. 아주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 담마카야는 매주 일요일 법회를 하는데 평균적으로 1만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신도세대는 대략적으로 40만 세대라고한다.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방문자들이 오고 있으며, 큰 행사를 할 때는 30만명, 40만명, 50만명 규모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초대규모 행사를 한다. 원체 규모가 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 유명언론에도 보도가 된다.
새벽 예불과 아침 탁발
새벽 예불 모습
아침 탁발 장면
16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닭 우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소리였다. Siriporn Aranyik 가 나를 데리고 스님들의 새벽예불 하는 곳으로 갔다. 약 260명의 스님들이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있었다. 대부분 아주 젊은 스님들인데 이 스님들은 올해 출가한 스님들이라고 한다. 17일 새벽에는 스님들의 탁발하는 모습을 보러 갔다. 나도스님들께 공양을 하고 싶어 7 인 분 분량의 음식과 물을 샀다. 처음 보는 탁발 모습에 나는 매우 기뻤다. 어떤 사람들은 삼삼오오 쭉 줄을 맞추어 무릅을 끓고 스님들이 오면 탁발 기구에 준비해 온 음식을 넣어 주었다. 서양 사람도 보였고, 자녀와 함께 온 사람도 보였다. 라면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다. 탁발나온 스님들도 혼자 다니는 스님도 있고 삼삼오오 여러 스님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스님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나는 스님들이 오면 준비해 간 여러 종류의 음식을 함에 넣어 드렸다. 음식을 받은 스님들은 공양한 사람들을 위해 축원을 해 주었다.
담마카야 사찰의 제도
사찰은 시작한 지가 50년이 채 안되었다. 하지만 단일 사찰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태국 전 지역은 물론이고 한국, 미국, 일본 등 해외에도 분원이 많다. 태국에 105개, 해외에 101개의 분원이 있다. 한국에는 의정부에 분원이 있다. 한국의 조계종 보다는 작지만 다른 종단 보다는 큰 것 같다. 미국에는 뉴져지, 조오지아, 보스톤, 산호세 등에 20개 정도의 분원이 있다. 남한의 5배 정도 크기인 태국에는 전체는 약 28,000개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이런 규모를 유지하려면 운영 조직이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충분한 고급 인력이 있어야 한다.
나의 안내를 맡은 Siriporn Aranyik은 25살부터 15년간 이곳에 살면서 이 사찰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또 VENUS보살은 17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찰에 살면서 이렇게 장기간 자원봉사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현재 여성이 800명, 남성은 200명 이라고 한다. 이들은 8계를 지키는 생활을 하는데 담마카야 재단에서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을 받는다고 한다.
8계는 5계에 정오 이후 음식을 취하지 않고, 춤과 음악과 연극 관람과 몸에 대한 치장을 삼가고, 높고 큰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세 가지 계율을 더한 것이다. 여성 안내자들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매우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매우 궁금했다. 한국에서 듣기로는 이 사찰에 2천명의 스님이 상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10년 넘게 일하는 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학력도 좋고, 경력도 좋은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궁금한 것은 스님처럼 살아가면서 자원봉사를 장기간 하면서 왜 출가를 하지 않는지 그것 또한 궁금한 사항이다.
내가 이 사찰을 짧은 기간 돌아보고 강력하게 느낀 것은 첫째는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절을 방문할 때만 부처님을 생각하는 식으로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유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도시에 살면서 언제든지 사찰에 가서 스님들과 또는 신자들과 함께 독경도 하고 상담도 하고 불교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포교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두 번째는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한 안내였다. 이들은 나의 태국 여행을 매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담마카야를 방문하는 스님들이나 공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들은 최대한으로 방문자들을 도와준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아주 인상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