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절 네 곳을 생각하라
1 아난은 또 여쭈었다.
"부처님이 세상에 생존하여 계시면 천하에 현덕을 가진 사람이나 독행을 가진 노인들이 부처님을 찾아뵙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그네들 때문에 법문을 듣고 복을 얻게 되는 일이 많은데, 이제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그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아난아, 근심할 것 없다. 내가 탄생한 가비라국의 룸비니 동산을 생각하는 것이 좋고, 또 내가 성도한 니련선하의 보리나무 밑을 생각하는 것이 좋으며, 또 내가 처음으로 설법한 바라나의 사슴의 동산을 생각하는 것이 좋고, 다시 내가 열반에 든 이 구시나가라의 성밖에 있는 사라 수의 동산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너희들은 다 복을 얻으리라. 내가 말한 이 네 곳은 너희들의 의지할 곳이 되는 까닭이다.
아난아, 만일 신심이 있어서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고 한 줄기의 꽃이라도 허공에 흩으면, 그것으로도 능히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거기에 이르게 될 것이요, 또 여래의 이름을 듣는 자는 열반의 진리를 깨달아 거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모든 복전 가운데 제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귀취가 없는 자에게는 귀취가 되고, 모든 집이 없는 자에게는 집이 되고,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에게 등불이 되고, 눈이 먼 자에게는 눈이 되는 것이다."
2 아난은 또 묻기 어려운 말씀을 드렸다.
"천나라고 하는 육군 비구의 괴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성품이 경망하고도 거칠어, 누구에게든지 욕을 하고 달려들기를 좋아하며, 많은 비구들과 허구헌 날을 매일같이 싸움으로 일을 삼고 있으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너희들은 그 사람과 상대하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그리하면 저도 반드시 회개하고 바른 길로 들어설 때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많은 여자들이 찾아와서 비구들과 만나려고 할 때에는, 저희들은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좋겠습니까?"
"만나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만나지 아니할 수가 없이 될 긴박한 때에는 어찌합니까?"
"설사 만나 주더라도 서로 얘기를 주고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에 도를 듣겠다고 청하면 어찌 합니까?"
"물론 그녀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늙은이는 어머니로 생각하고, 자기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이는 누이로 생각하고, 조금 연소한 자는 손아래 누이동생으로 생각하고, 아주 어린 자는 딸자식으로 생각하여, 너희들의 몸과 말과 뜻에 깊이 주의하는 것이 좋으리라."
"부처님께서 생존하시던 때에 공양을 올리는 것과, 돌아가신 뒤에 공양을 올리는 것과 그 공덕의 차이가 있습니까?"
"조금도 차이가 없다. 그것은 여래의 법신은 영구히 존재하는 까닭이다. 아난아, 여래를 보는 것은 곧 성법을 보는 것이요, 성법을 보는 것은 곧 성중을 보는 것이요, 성중을 보는 것은 곧 열반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보는 상주하여 변함이 없어서, 언제나 중생이 돌아갈 곳이 되는 것을 알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모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너는 이 일을 위하여 정신을 쓸 것은 없다. 오직 도를 지키는 것이 좋다. 나를 위하여 시봉한 여가에는 너의 선근을 위하여 너의 온몸을 바치는 것이 좋다. 또 내게서 들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설해 주는 것이 좋다. 장례식 같은 것은 천신이나 바라문이나, 왕이나, 청신사들 가운데서 어진 이들이 와서 내버린 몸을 잘 장사지내 줄 것이다."
"저네들은 어떤 방법으로 장례를 모실 것입니까?"
"모든 나라에서 제 나라의 왕을 장례하는 법에 의하여 지내리라."
"그 법은 어떤 것입니까?"
"내 시체를 거둔 다음에, 탕을 끓여서 깨끗이 씻고, 솜으로 싸서 금관에 넣어서 향유를 뿌리고 좋은 향으로 싸서 관을 봉한 다음, 좋은 장소로 운반하여 불에 태우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울 것이다. 그래서 지나다니는 사람은 이에 절하고 꽃을 올리고 향으로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닦을 것이다. 이것이 모든 왕을 장례하는 법식이다."
3 이 말씀을 들은 아난은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가만히 뒤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숨어서, 문설주에 몸을 의지하고 홀로 탄식하였다. 나는 아직 무학위를 얻지 못한 학지에 있는 자로서 깊은 도를 얻지 못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를 버리시고 열반에 드시겠구나. 나는 어느 때나 되면 해탈의 길을 밟을 것인가? 이 뒤에 내가, 아침에는 물을 긷고 저녁에는 자리를 깔아 드리며, 걸식을 나갔다가 돌아오실 때마다 그 얼굴을 씻게 하고, 그 손과 발을 씻게 하여 드릴 이는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한숨을 쉬고 있다가, 미친 듯이 뛰쳐나와서 손을 들어 나뭇가지에 기대고 가슴을 치며 울고 있었다.
4 부처님은 곁에 있는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아난은 어디 갔느냐?"
"저 나무 밑에 가서 울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한 비구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에게 가서 내가 찾는다고 말을 전하라."
비구는 아난에게 전했다. 아난은 돌아와서 부처님께 절하고 옆에 서 있었다. 부처님은 아난을 보시고 측은하게 생각하시어
"아난아, 나는 이미 너를 위해 말하지 않았느냐? 일체의 모든 행은 다 무상한 것이라, 만나는 자는 반드시 갈리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고 가르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너는 이제 와서 왜 근심하고 울고만 있느냐? 아난아, 너는 옛날부터 내게 시봉해 왔고 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입의 혀처럼 힘써 주었다. 너의 신ㆍ어ㆍ의는 항상 깨끗하여 티가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생각을 비우고 힘써 정진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하면 너의 얻어지는 복은 한량이 없을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아난이 저렇게 슬퍼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은, 저는 얼마 안 가서 해탈을 얻을 징조다.
비구들아, 옛날부터 모든 여래에게는 다 아난과 같은 시자가 있었다, 또 이후의 모든 여래에게도 시자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아, 아난은 신심이 견고하고 마음이 정직하며 몸이 건강하여 항상 정진을 부지런히 하여 게으른 일이 없었다. 그의 지혜는 깊고 묘하여 내가 설한 법을 남김없이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았다.
또 비구들아, 아난은 나의 기거동작과 모든 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누가 와서 나를 만나려고 할 때에는 아난이 먼저 나를 위하여, 그 때가 좋은가 어떤가를 헤아려 만나게 하였다. 또 내가 어느 때에는 비구를 만날 것인가, 어느 때에는 비구니를 만나고, 어느 때에는 우바새와 우바이를 만나며, 어느 때에는 바라문ㆍ제왕ㆍ장자ㆍ거사와, 또는 모든 이학인을 만날 것인가를 다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편리하게 와서 나를 만나고 또 내게서 법문을 듣고 많은 공덕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다 아난이 때의 적당함을 헤아려서 저들을 내게 안내하여 준 까닭이다.
비구들아, 성왕이 거동하여 지방을 갔을 때에, 이 왕의 모습을 보는 자는 바라문이나 다른 왕자나 바이샤나 또는 수드라나, 모두 기뻐하여 왕의 말을 듣든지 왕의 모양을 보면, 다 같이 환희하며, 또 갈리게 될 때에는 애석히 여겨 견디지 못해 한다. 마치 주린 사람이 배가 불러도 그것을 모르고 덤비는 것과 같이 한다. 사람들이 아난을 대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아난은 온화한 덕을 넘쳐 흐르게 가지고 있다. 비구가 오면 그는 그 건강을 물어 주고, 비구니가 오면 부드러운 말씨로 그들을 경계하되 '누이와 동생들이여, 성계를 잘 받들어 지키시게' 하고, 다시 청신사나 청신녀가 올 때에는 '삼보에 귀의하시고 성계를 지키며 집에 계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성자에게 공양을 올리시오.' 하고 격려하여 준다. 그래서 아난의 이런 말을 잘 듣는 자들은 모무 환희하고 즐겨한다. 만일 그들이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찌하여서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까?' 하고, 말을 붙여서 묻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아난의 덕을 사모하고 친절과 의리를 생각하는 자가 많았다. 비구들아, 아난은 이렇게 특별한 덕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은 여러 비구들에게 이렇게 아난을 찬양하여 말씀하신 뒤에,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난아, 내가 열반에 들더라도 해탈을 얻을 기회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내가 성도한 뒤로 너에게 말한 일체의 가르침과 계율은 다 너의 스승이니, 너는 이것을 지키고 믿어야 한다.
나는 세상의 아버지요 세상의 벗이다. 그래서 아버지로서 또는 벗으로서 하지 아니하면 안 될 일을 다 하여 마쳤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돌아간 뒤에라도 이것을 생각하고 이것을 실행하여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고, 마하가섭과 같이 세상을 인도하고 크게 불사를 닦아 주어야 한다. 아난아, 부질없이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하지 말라. 너는 반드시 해탈을 얻어 나의 정법을 널리 유포하고 인천人天을 지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