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강은희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살아났으면 좋겠다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강은희 시집 {그늘의 꿈을 깨우다}(근간)에서
말은 우리 인간들의 생명이고, 우리는 말로서 숨을 쉬고 말로서 밥을 먹는다. 말로서 세상을 읽고, 말로서 소통을 하며, 말로서 아름다운 시와 문화유산을 남기고 죽는다. “환한 세상에서도 환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 슬픈 얼굴에서도 슬픈 눈빛을 읽지 못하는/ 깨어진 글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말들을 찾아내어 말의 생명을 되살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훔쳐 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들이/ 봄날 민들레꽃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슬퍼도 아름다운/ 살아서 더 눈부신” “이 땅의 말들이 어둡지 않은 글자로/ 온전하게 살아”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강은희 시인의 생명이고, 숨소리이며, 그녀는 이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말로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을 산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말은 영원하고, 그녀는 ‘말의 꿈’을 꾸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