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눅13:22-30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면서 각 성과 촌을 일일이 들르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어느 사람이 나서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 안되겠지요?" 하면서 물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의 생각에는 천국에는 이방인은 하나도 없고 오직 유대인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해도 자신만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계속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분명한 사실 몇 가지를 누구나 손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1)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 (24).
2) 천국 문은 한번 닫히고 나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25).
3)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26).
4)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의 슬픔과 고통이 몹시 크다는 것(28).
5) 전 세계도처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29).
6) 이곳에서는 꼴지 되었던 자가. 천국에서는 첫째가 되기도 하고. 지금은 첫째 된 자가 그곳에서는 꼴지 될 자도 있을 것이라는 것(30).
7)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24)
이 땅위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사람 중에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는 사람들조차도 지옥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기 위함이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다는 것이 아닙니까?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 할 자가 많다는 말씀은 천국 들어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본문은 이미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충격적인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실망하거나 구원받는 것을 포기하는 등의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도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이만큼 어려우니 구원 얻기를 힘써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있는 힘을 다 해서라도 꼭 들어가야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되는 곳이 아니라 반듯이 들어가야만 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문을 좁은 문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이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마7:13-14절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좁은 문이라고 하셨을까요? 거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요3:1-8).
예수님께서 밤에 찾아온 유대관원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길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밝히 말씀하셨듯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 천국 문이 좁은 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온 지가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거듭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마음 중심에 영접하고 지나간 날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의미합니다(행2:38). 1)그것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롬6:11).
2)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요(엡4:22-24). 3)전에는 어두움이었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에 자녀가 되었다는 말씀이요(엡5;8).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고후5:17).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니까 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예수님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모르겠는데요" "몇 살 때 세상을 떠나셨던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지적으로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게을렀던 내가 부지런해졌고. 아내에게 못된 짓을 하던 내가 진실한 남편이 되었고. 과거에는 악행과 거짓말만 일삼았지만 이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변화된 것은 분명히 예수님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거듭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듭난 것은 성령의 역사가 분명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그렇게 개혁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거듭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마7;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마7:21-23)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여" 하고 부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목사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세를 행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불법을 행한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황 레로5세는 겉으로는 너무나도 경건하고 인자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때로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맨발로 거리를 걸어갈 때면 군중은 그의 경건한 모습을 보려고 모두 다 문밖에 나가서 구경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경건한 모양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많은 신교도들을 학살하도록 책동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는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기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 멋대로 행하는 자가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는 그가 무엇을 얼마나 행했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서 살았느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간혹 열심은 있지만 그 열심히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열심이어서 부작용을 남길 때도 없지 않습니다.아무리 충성스럽게 일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충성이라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여쭈운 다운에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지체하지 말고 청산해야만 합니다. 구원의 문은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셋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 가야하는 고난의 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눅9;23).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라는 점을 주님은 솔직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눅9:23절에 보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고 하신 것이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지은 "영문밖의 길" 3절 가사를 보면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에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 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 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가시 밭 길이요. 눈물의 길이요. 피 흘림의 길이라는 것이 이 노래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길이기 때문에 또한 고통의 길입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도 고백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 이로다"(고전 9:27). 고 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나를 내세워서는 갈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내 세워야 갈 수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은 철저하게 부인되어야 하는 길이니 그 길은 좁고. 그 문도 좁다는 말씀입니다.
넷째.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마24:13). 구원의 문. 천국의 문은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고 말씀하셨고.
또 마24장13절에서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아무리 신앙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신앙은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사울왕 이나 가룟 유다같은 사람들은 처음 시작은 좋았지만 그 마지막이 좋지 않았습니다.
천국열차는 종착역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야지 도중하차하면 천국역 문은 결국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주위에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세상 길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견뎌서 저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환난과 고통이 와도 끝까지 견디셔서 천국 문에 꼭 들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