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Upanishad)
☬ 우파니샤드란 무엇인가
우파니샤드란 산스크리트어인 다음의 세 마디가 합쳐진 말이다.
▾ 우파(upa)➟가까이(near).
▾ 니(ni)➟아래에(down).
▾ 샤드(shad)➟앉다(to sit).
즉 “심오한 가르침을 전수받기위해 제자가 스승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발아래에 겸허하게 앉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집대성시킨 문헌’을 우파니샤드라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고대 인도인들은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구 면에서 단연 선구자였다. 그들의 삶은 이 근원에 대한 탐구,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이 진리탐구에 관한 예지는 ‘베다(Veda)’라는 문헌으로 구체화 되었는데, 이 베다에는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① 리그베다(Rig-Veda): 근원자 브라흐만 신에 대한 찬가 집.
② 야유르베다(Yajur-Veda): 근원자 브라흐만 신에 대한 제례의식 집.
③ 사마베다(Sama-Veda): 찬가의 멜로디에 관한 규정집.
④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점성술과 마술 등에 관한 기록 집.
이처럼 그들은 초기엔 주로 제례의식이나 찬가, 점성술 등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통해서 근원자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그러나 후대(B.C. 800년경)로 내려가면서 제례의식보다는 지적(知的)인 추구 열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네 가지 베다의 초기 부분을 ‘제사부(祭事部: Karmakanda)’, 후기 부분을 ‘지식부(知識部: Jnanakanda)’라 칭한다. 이 둘 가운데 제사부는 그냥 ‘베다(리그베다· 야유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라 부르고, 후기 부분인 지식부는 따로 독립시켜 ‘우파니샤드’라 부른다. 그러므로 우파니샤드는 네 가지 베다의 후기부분(지식부)이면서 동시에 그 내용상에 있어서는 네 가지 베다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문헌이다. 아니 우파니샤드는 네 가지 베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파니샤드를 ‘베단따(Vedanta: 네 가지 베다의 정수)’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이 우파니샤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스승의 입에서 제자의 입으로 구전(口傳)되어오다가, 점차로 문자로 기록되면서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08종류에 불과하다. 이 108 우파니샤드 가운데 중요한 것은 대략 다음의 13종인데, 이것을 보통 기본적인 우파니샤드들(principal upanishads)이라고 한다.
① 까타 우파니샤드(Katha Upanishad).
② 이샤 우파니샤드(Isa Upanishad).
③ 께나 우파니샤드(Kena Upanishad).
④ 문다까 우파니샤드(Mundaka Upanishad).
⑤ 스베따스바따라 우파니샤드(Svetasvatara Upanishad).
⑥ 쁘라스나 우파니샤드(Prasna Upanishad).
⑦ 만두꺄 우파니샤드(Mandukya Upanishad).
⑧ 아이따레아 우파니샤드(Aitareya Upanishad).
⑨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Brihad-aranyaka Upanishad).
⑩ 따이티리아 우파니샤드(Tarttiriya Upanishad).
⑪ 챤도갸 우파니샤드(Chandogya Upanishad).
⑫ 까우시따끼 우파니샤드(Kausitaki Upanishad).
⑬ 마이뜨리 우파니샤드(Maitri Upanishad).
우파니샤드에서의 근원자(神)에 대한 탐구는 처음에는 자연, 인생에 대한 탐구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곧이어 아트만(Ataman· 自我), 또는 브라흐만(Brahman· 絶對神)이라는 추상 개념을 근원자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아트만과 브라흐만을 깨달음으로써 해탈(解脫: moksha· 영적인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종교적인 제례의식 등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거듭 강조하고 있다.
☬ 우파니샤드의 기본 개념들
모든 우파니샤드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기본 개념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① 이 현상계의 본질인 브라흐만(Brahman· 梵).
② 개별적인 존재의 본성인 아트만(Ataman· 我).
③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분리시키는 굴절현상으로서의 마야(maya· 물질적 幻影).
④ 마야로 인한 삶과 죽음의 연쇄반응으로서의 삼사라(samsara· 生死輪廻).
⑤ 개별적 존재인 아트만이 마야의 미망(迷妄)과 삼사라의 구속에서 벗어나, 다시 브라흐만에게로 돌아가는 과정인 모크샤(moksha· 解脫).
1. 브라흐만(Brahman· 梵), 이 현상의 본질
브라흐만이란 말은 그리스어 ‘플레그마(phlegma)’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된 말로서 ‘광채(flame)’, ‘불(fire)’, ‘열기(heat)’의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또 ‘확장하다(to expend)’라는 뜻도 들어 있다. 고대인도 명상가들은 이 브라흐만이란 단어를 ‘신성하고 영력(靈力)에 가득 찬 베다의 언어’로 이해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 단어는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① 베다의 언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
②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신성한 원리, 즉 이 현상 배후에 있는 불변의 본질.
③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 신.
이 브라흐만 속에는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초감각적인 부분(Nir-guna, 無性)과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되는 내재적인 부분(Sa-guna, 有性)이 있다. 전자를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na Brahman)’, 즉 초월(超越)적인 브라흐만(Para Brahman)이라 부르고, 후자를 ‘사구나 브라흐만(Saguna Brahman)’, 즉 내재(內在)적인 브라흐만(Apara Brahman)이라 부른다. 이 사구나 브라흐만은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그 자신의 창조의지(maya)에 의해서 구체적인 인격체(창조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브라흐만(Brahman)
1.Nirguna Brahman➟Para Brahman(無性)
2.Saguna Brahman➟Apara Brahman(有性)
“젊은이여, 브라흐만은 침묵이다. 침묵을 통해서만 브라흐만을 가르칠 수 있다. 이외의 방법은 없다.”
-《브라마 수트라(Ⅲ-2-17)》-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니르구나 브라만’을 설명하기 위해 야즈냐 발꺄는 다음과 같은 부정(否定)의 언어 공식을 만들었다.
네띠(Neti = Not this = 아니다)
네띠(Neti = Not this = 아니다)
이 네띠를 통해서 끊임없이 부정을 거듭해 가다보면 결국은 부정 그 자체마저 사라져 버리게 되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브라흐만(니르구나 브라흐만)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니르구나 브라흐만)는 결코 볼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들을 수 없다. 그는 ‘듣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는 ‘아는 자’이기 때문이다.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Ⅲ-7-23)》-
이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외부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채 그 자신의 창조의지(마야maya)를 역동화 시켜 창조주(사구나 브라흐만), 영혼(아트만), 그리고 이 우주 현상(자연현상)으로 나타난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의 이 창조 의지에 의해서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태어나 생존을 유지하다가 마침내는 다시 그 속으로 되돌아간다.
이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는 생명의 순환 법칙이며, 동시에 사구나 브라흐만의 호흡작용이며 굽이침 현상이다. 이렇게 이 우주를 창조한 사구나 브라흐만은 그 자신의 본질(니르구나 브라흐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시 그 피조물들 속으로 그 자신이 무수히 분화되어 들어간다. 마치 수면을 뚫고 햇살이 들어가듯. 이 사구나 브라흐만은 각 종교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다른 명칭으로 숭배되고 있다.
▾ 힌두교➟쉬바(Shiva)· 비슈누(Vishnu)· 라마(Rama)· 크리슈나(Krishna)· 이스 와라(Isvara)· 마헤스와라(Mahesvara). ▾ 유태교➟여호와(Jehovah). ▾ 기독교➟하나님(God). ▾ 회교➟알라(Allah).
그러나 각기 다른 이 명칭들은 모두 사구나 브라흐만의 여러 가지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
사구나 브라흐만은 때로는 ‘태양 속의 사람(챤도가 우파니샤드 Ⅳ-11-1)’으로 묘사되고 있다. 왜냐면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구나 브라흐만의 창조 에너지(마야maya)는 태양이기 때문이다. 만일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이 태양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더 이상 그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 공간에는 수백억 개도 넘는 태양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백억 개도 넘는 태양계 하나하나마다 그 태양계의 통제자인 창조주(사구나 브라흐만)가 존재하고 있다. 즉 하나의 태양계는 하나의 사구나 브라흐만의 창조 에너지가 미치는 세력 범위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 할 수 없는 절대 유일의 본질이지만, 이 본질에서 수많은 사구나 브라흐만 들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한 태양계의 창조주로서의 사구나 브라흐만은 이 우주 공간 속에 있는 그 태양계의 숫자만큼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생명의 바다(니르구나 브라흐만)에는 수많은 창조주(사구나 브라흐만)들이 물거품처럼 일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면서 우주 심장(cosmic heart)의 이 확장과 수축 작용(생명의 순환 작용인 창조· 유지· 파괴)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은, 이 우주 전체는 브라흐만(니르구나 브라흐만)속에서 옷감 짜듯 짜여 진다(만들어진다). 그리고 또한 저 바다에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브라흐만 속에서 사라진다. 그들은 이렇게 브라흐만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는 저 바다에 이는 물거품처럼 브라흐만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태어난다).
-《큐리까 우파니샤드(17~18)》-
이처럼 모든 것들은 태어났다가는 사라져 가지만, 브라흐만(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이 삶과 죽음의 주시자로서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여기 니르구나 브라흐만과 사구나 브라흐만에 관한 「라마 크리슈나」의 말이 있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바다와 같고 사구나 브라흐만은 그 바닷물이 얼어 얼음으로 형상화 된 것 같다. 몹시 추운 바람이 불면 바닷물은 언다. 그러나 여기 태양이 비치면 그 얼음(형상)은 다시 바닷물(무형)로 녹아 버린다. 이처럼 신을 느끼고자 하는 신봉자의 열렬한 헌신으로 하여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그 자신의 창조 에너지(마야)를 통해서 형상을 가진 인격신(사구나 브라흐만)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명상가의 예지에 의해서 태양열에 얼음이 녹듯 인격신으로 나타난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그 자신의 본질인 불멸의 실제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절대 유일의 본질인 이 브라흐만이 어떻게 이 현상계에 차별상을 전개 하는가? 그와 개체(아트만)는 또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개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언급이 다음 항목인 아트만(Atm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