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展 내가 수도권에 살고 있는 기쁨 중에 하나는 Korea를 찾아온 세계문화를 다른 고장 사람들보다 먼저 편리하게 만날 수 있는 기쁨이다. 그런 문화를 탐내는 분들과 어울리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한 일이다. 오늘 나의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의 참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자문위원 김홍백 선생의 초대에 의한 행복한 나들이었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중심부 세느강 강가에 있는 옛날의 기차역을 개조한 국립 미술관으로, 이곳에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인상주의(印象主義) 걸작 조각, 건축, 공예, 가구, 사진 등 총 80,000 여점에 달한다. 인상주의(印象主義)란 회화(繪畵)나 조각(彫刻)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순간적 시각적 인상을 중시하고 여러 가지 기교로써 그 시각적인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의를 말한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오르세 미술관展을 통하여 korea에 19세기말 프랑스의 예술적 흐름과 시대적 변화를 조망하기 위해서 그 중 엄선한 170여 점을 2014년 5월 3일부터 ~ 8월 31일까지 서울 이촌동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orsay2014.co.kr 이번 전시에서는 모네,르누아르, 드가 등 저명한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세잔, 반 고호, 고갱, 르동, 루소등 대표적인 작가들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미술에 대하여 모네(Monet)와 마넷(Manet)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문외한인데다가 미술관 내에서는 그림은 물론 설명까지도 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거기서 구한 책자의 사진을 스캔하여 복사하고, 그 한국어 설명을 줌심으로 하여 내 나름대로 정성을 보내어 그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클로드 모네의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 쓴 여인' 오르세 미술관展이 열리는 현장에서 제일 먼저 내가 본 사진은 이 전시장의 대표작품인 클로드 모네의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 쓴 여인' 이었다.이를 최정상급의 현대적인 기술로 제작한 캔퍼스 프리미엄 골드 명화 액자 시리즈를 보니 그 금액이 385,000원이라니 그 원화(原畵) 가치는 천문학적인 가격일 것이니 나는 파리에 가지 않고도 서울에서 명화 중에 명화로 안복(眼福)을 누리게 되는 것 같다. 모네는 1886년 여름에 같은 소재로 서로 대칭 되는 2 점의 그림을 그리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을 쓴 여인'과 '왼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을 쓴 여인' 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바람 부는 하늘을 배경으로 이 여인이 서 있는 곳은 그의 집 근처인 지베르니에 있는 오르티 섬이다. 모델이 된 이 여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 알리스가 데리고 들어온 6남매 중 세 의붓 딸 중에 하나인 수잔 오셰데로다. 모네는 이 그림을 아래서 올려다 보는 위치에서 그렸다. 이 그림의 주인공 수잔은 30살의 나이로 요절하여 모네를 슬픔에 잠기게 한 사랑하는 의붓딸이기도 하였다. 내집에 있는 미술전집의 모네 작품을 보니 우산을 좋아하는지 우산을 들고 있는 남자, 여자 그림이 많았다. 그 우산을 현지 매점에 전시하여 팔고 있는 것 같다. 모네(Claude Monet, Claude Oscar Monet)는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모델이며 아내였던 카미유가 죽자 부호의 아내로 6자매를 둔 알리스(Alice Hoschedé)와 결혼하였다. 그의 작품의 특질로는 위 양산을 쓴 여인 같이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 '건초더미', '루앙대정당', '수련' 등이 있다. 모네를 가리켜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고 폴 세잔(Paul Cézanne)이 말할 정도로 모네는 빛의 변화에 민감하였다고 한다. 그래 그런가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거의 시력을 잃고 고생하다가 86세를 일기로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쳤다. 위 그림은 모네의 자화상이다. *. 폴 세잔(Paul Cezanne)의 '생트 빅투아르 산'' '생트 빅투아르산 Mont Sainte-Victoire' 에 대하여 내가 현장에서 구입한 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생트 빅투아르 산은 풍경 전체를 굽어 보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그 능선은 하늘과 분리된다. 원근법은 단순화 되어 있으며, 입체감은 차차 폐기 되어 풍경의 요소와 기술적 요소가 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색상의 표현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은 피카소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나의 유일한 스승인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라고 피카소가 말할 정도였다.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가 권유하는 대학 법학과를 중퇴하고 학창의 벗 에밀 졸라(Émile Zola)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쉬스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다. 그러다가 학창 30년 지우인 에밀 졸라와 절교하고 말았다. 졸라의 '작품'의 주인공이 ‘실패한 천재 화가’로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세잔이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되면서 세잔의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초기의'목맨 사람의 집', '생트 빅투아르산 Mont Sainte-Victoire'(1902~1904) 등이 있다. *. 빈센트 반 고호 위 초상화 '빈센트 반고호'는 벨기에 출신 화가며 시인인 외젠 보호의 작품이다. 그가 반 고흐의 초상화를 그리며 말했다는 이런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원대한 꿈을 꾸는 한 친구 화가의 초상화를 그려 볼까 해. 이 친구는 꾀꼬리가 노래하듯 그림을 그리는데 그 친구 기질이 그래. 머리는 금발이고, 그림에다 내가 이 친구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빈센트 반 고호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약한 화가다. 초기에는 밀레 화풍을 좇다가 파리에 나와 인상파를 안 후 이에 정진하여 인상파의 거두로서 근대에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타는듯한 정열적인 화풍의 작가로 태양과 해바라기 등을 즐겨 그렸다. 후기에 아를르에서 고갱과의 공동생활 중 정신 병의 발작으로 자기의 왼쪽 귀를 스스로 자르는 사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퇴원의 생활을 되풀이하다가 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7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생전에는 그의 작품이 알려지지 않아서 가난 속에 고생하며 동생에게 크게 신세를 지며 살았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어느 작가의 작품보다 가장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대표작에 '감자를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아를르의 침실', '의사 가셰의 초상' 등이 있다. *.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 위 그림은 여행을 좋아하는 프랑스 화가 로버트 들로네(Robert Delaunay)의 어머니가 주문한 그림이다. 루소는 파리의 식물원을 몹시 좋아해서 이 식물원 온실의 인공 정글을 보고 그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숲 속에 뱀을 부리는 여인으로 승화한 작품이란다. 그림 속에는 산세베리아와 오동나무의 꽃과 줄기가 서로 엮여 있다. 굽이치고 있는 갈대와 덩굴의 모습에 구렁이의 또아리와 앵무새가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림의 왼편에 보이는 물가 숲에 나타나는 무질서와 대조되어 지평선 상의 안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물, 공기, 땅, 불꽃과 같은 형태의 산세베리아가 한가운데로 모이는 지점에 여인이 서 있다. 식물을 풍성하게 묘사함으로써 일단 관객의 시선을 끌고, 그 시선을 검은 여인과 창백한 달이라는 신비로운 지점으로 유인하면서 루소는 충격과 환영의 경험으로 관ㅔ객을 이끌고 있다. 이는 모두가 화가 자신이 창조해 낸 이미지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불가사의 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그리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창문을 열어야 했다.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다."라고. 대표작으로 '전쟁', '꿈','잠자는 집시 여자'와 '뱀을 다루는 여자'가 있다. *. 조반니 볼디니의 '샤를 막스 부인' '샤를 막스 부인'을 그린 볼디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초상화가로 성공한 화가다. 19세기에서 20세기 걸쳐 파리에서 60년간 살면서 최고 상류층과 교류하며 사교계의 여성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 부와 명성을 얻은 초상화 작가다. 위 그림이 그의 대표작 '샤를 막스 부인'다. 위 초상화는 작가 샤를 막스 부인인 '잔 막스' 여사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드레스 자락을 모아 쥔 오른 손은 역동적인 모습의 그림이다. *. 폴 세뤼지에의 정물 '화가의 아틀리에' 폴 세뤼지에 는 인상주의에 반항하여 개인의 사고가 조형을 확실하게 한다는 P.고갱의 영향을 받아 상징과 통합을 중시하는 현대회화에 이어지는 새로운 사고로 전환하는 한 분야를 개척한 화가다. 저서로 '회화 첫걸음 A.B.C. de la peinture'가 있다. 위 작품은 건축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이 정물화는 과일 그릇에 담긴 사과나 비스드미 놓인 과도 등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폴 시나크의 저녁무렵의 아비농(아비뇽교황청) 폴 시냑 (Paul Signac)는 프랑스 화가로 큰 점을 이용한 모자이크 풍의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모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여 화가를 지망하여 세운 꿈을 풍경화가로서 이루었다. 폴 시냐크는 바다나 강과 인접한 건축물을 주로 그렸는데 '아침나절의 아비뇽' 과 '저녁 무폅의 아비뇽' 이 그 예다. 저물어 가는 노을은 성벽을 붉게 물들이고, 노란색에서 주황색에 이르기까지 팔레트에서 가장 따뜻한 색조로 색을 분산시켜 환성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 에드가 드가의 '왼쪽 다리로 서서 제4번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발레리나 세번째 습작' 각
에드가르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 Gas)는 세잔처럼 파리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에 이어 가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젊어서는 법률을 공부하다가 진로를 미술로 바꾸어 성공한 화가다. 그는 위 청동 조각처럼 순간적인 인물 동작을 잡아 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으로 걸작을 만들어 낸 화가다. 프랑스의 역사가인 다니엘 알레비는 다음과 같이 그를 평했다. "당시의 오페라 극장은 공연장으로서뿐만 아니라, 파리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역할을 했다. 에드가 드가는 평생 오페라를 드나들엇는데 이곳은 그에게 뜻밖의 사건들이 펼쳐지는 축제의 장과도 같았다." 에드가르 드가는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그는 인간혐오증이 있어 평생을 독신으로 고독 속에 살다가 83세 나이로 파리에서 생애를 마쳤다. 오르세미술관전에 전시 된 작품은 이런 그림도 많았지만 꽃병, 뱀모양의 보석함, 르네 랄리크의 장식용 '양귀비" 등도 조각도 많았다. 파리 만국전람회 밤의 에펠탑 전시물 중에는 파리의 에펠탑(Eiffel塔)의 그림과 사진과 그 설명이 많았는데 이는1889년 만국박람회 개최 기념으로 프랑스의 기사 에펠(Eiffel , Alexsandre Gustave)이 파리에서 제일 높은 312m의 철골탑(鐵骨塔)을 세운 시기가 인상파의 활동 시기여서 그런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