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국력의 집합체입니다. 외교 실패로 나라가 없어지거나 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역사상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관리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외교장관입니다. 그 어느 나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왜 내무장관보다 외무장관의 비중이 높을까요. 그것은 비록 내치는 실패하더라도 외치를 잘하면 적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는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각국은 외교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외교는 다시 말해 국력이요 국격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옵니다.
요즘 한반도를 중심으로 숨가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북한은 치열한 우방 획득에 나서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며칠전 공산주의 국가가운데 한곳인 쿠바와 수교를 맺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쿠바는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이자 한국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국가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북한의 경우는 한국과 전혀 다릅니다. 북한과 쿠바는 그야말로 형제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북한 지도부의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일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이 연일 한국을 없애버리겠다고 떠들다가 그야말로 뒷통수를 한방 제대로 얻어맞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쿠바에 대고 이러쿵 저러쿵 하겠습니까. 쿠바를 포함해 북한과 대사를 파견하면서 수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분함을 삭혀야지요.
하지만 북한이 지고 가만히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 가진 것은 없어도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특히 김정은의 친동생이자 북한의 대변인격이자 대외창구를 전담하는 북한 노동당 부부장인 김여정입장에서는 그 충격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 클 것입니다.그래서 왼쪽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일본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북한과 일본은 그동안 여러차례 극비리에 실무자 접촉을 통해 북한 김정은과 일본의 기시다간의 정상회담을 조율해 왔습니다.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김정은보다 일본 총리 기시다가 더 이뤄내고 싶은 결과물입니다. 일본 총리 기시다는 국내에서 이런 저런 스캔들에 휩싸여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한 상황입니다. 역대급 지지율 최악의 상황입니다. 아베 사후 일본 정국을 장악하려던 기시다의 구상이 산산조각난 것은 물론 이제 총리에서 사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기시다는 꺼내 들었습니다. 일본의 총리들이 벼랑끝에 몰리면 꺼내들었던 전가의 보도인 외교카드입니다. 기시다도 이 외교술에 목을 맵니다. 미국과 한국과의 견고한 동맹 구축은 물론 이제 그동안 원수처럼 지냈던 북한과 정상회담을 통한 동북아 해빙무드 조성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일본 입장에서는 풀어야 할 선결과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 문제입니다. 이가운데 북한의 핵미사일 부분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미일에 공통된 과제입니다. 일본이 혼자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북한과 일본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일본 총리 기시다가 북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경우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시다도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총리 기시다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북한이 순순히 정상회담에 응할 지는 의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다시 북미정상회담도 가능하고 북한이 노리는 결과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무리해서 북일 정상회담을 열 이유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과 쿠바 수교로 북한 외교가 추락한 시점에서 외교적 만회를 일본에 찾으려는 북한의 의도를 일본이 모를 리 없습니다. 서로 양쪽 카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북일 정상회담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교에서 서로의 패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오히려 협상이 어려워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미국과 한국의 반응도 시원찮습니다. 지금 미국의 바이든 대선 후보의 행보와 판단은 오로지 11월 대선에 맞춰져 있습니다. 대선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하려는 의지가 단호해 보입니다. 원론적으로 일본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분위기는 아주 신중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과 일본이 그야말로 극적인 화해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 바이든 후보 입장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인 활용카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 투표권자인 미국 유권자들에게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관심밖입니다. 하던 말던 별로 영향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도 비슷합니다. 일본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분위기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들에게도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이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일본이 내민 정상회담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뭔가 북일 정상회담 전략으로 한국 쿠바 수교로 인한 외교적 패착을 만회하고 더 나아가 한미일 공조시스템에 흠집을 내려 한다는 의도를 빨리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역대급 친분관계를 보일때 역으로 북한 김정은이 일본 총리 기시다와 정상회담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푸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 한국 외교에 한방을 먹이려고 한다는 것을 한국 외교 당국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 김정은 보다 일본 총리 기시다의 입장이 더 다급합니다. 김정은 입장에서야 하던 말던 북한에서의 위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 총리 기시다 입장에서는 뭔가 역대 최저수준인 지지율의 만회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인데 그 대상이 바로 북한 김정은인 것입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별 성과없는 결과를 도출했을 때 아니 함만 못하다는 평가가 내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럴경우 일본 총리 기시다는 경기 연장전 말 추가시간에 극장골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살골을 넣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외교전에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2024년 2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