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금 어수순 합니다... 새로 총리 선출도 해야 하고.. 딥스들이 말잘듣는 총리를 인선할려니 조용하지 못한듯 합니다.
답답한 영국을 대신하여 온 영국 국왕의 여동생 앤 공주 한국에 온 이유는 ?
이때는 올림픽으로 왔는데...
이번 방문은 정치적문제로 .. [ 이재명 대통령을 예방해 비공개 환담을 가질 예정이다.]
영국의 미래에서 영국왕실이 직접나섰다...
부산을 찾는것은 겉치례 빌드업이고 실은 영국의 먹거리로 지원받으로 온것으로 보인다.\
빌드업.. 과거에 영국이 한국을 도와주었지 않는냐.. 하는 ... 그러니 이제 영국을 도와달라는....
영국하면 현재 머리에 떠오르는것... 프리미어축구. 금융. 옥스포드 사전 ... 경제적 가치로 크게 내세울게 없습니다..
유럽나라중에 정보가 늦은것인지.. 고집이 센것인지.. 늦게 한국을 방문한 영국
영국여왕 재임중에 8번이나 영국은행금고 를 방문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2012년 영란은행(Bank of England) 방문 당시 경제학자들과 중앙은행 직원들에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측하지 못한 이유를 날카롭게 질문했습니다. [1, 2]
여왕의 이 질문은 전 세계 경제학계와 금융계에 큰 울림을 주었으며, 질문의 배경과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왕의 첫 질문: "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나?" (2008년)
사건의 발단: 2008년 11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여왕은 런던정경대(LSE) 건물을 개관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1, 2]
여왕의 질문: 당시 경제학자들로부터 위기의 원인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여왕은 "그토록 큰 위기였다면, 왜 아무도 미리 알아채지(예측하지) 못했는가?"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1, 2]
경제학자들의 사과 편지: 이 질문에 당황한 영국 경제학계의 최고 석학들은 이듬해인 2009년 여왕에게 공동 명의로 3장짜리 공식 사과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수많은 영리한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력의 부재(failure of collective imagination)' 때문이었다"고 시인하며, 금융 시장이 안전하다는 자만심과 안일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 2]
2. 영란은행 금고 방문과 '팩트 폭격' (2012년)
영란은행 방문: 질문에 표시된 사진은 2012년 12월 13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 필립 공과 함께 런던의 영란은행 지하 금괴 금고를 방문했을 때의 실제 모습입니다. (당시 여왕의 영란은행 방문은 평생 통틀어 8번째였습니다). [1, 2, 3]
직원들의 답변: 금고를 둘러보던 중 수지트 카파디아(Sujit Kapadia) 영란은행 이코노미스트가 4년 전 여왕이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위기가 오기 전 수년간 경제가 너무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시장은 효율적이며 규제는 필요 없다는 자만심(complacency)이 금융가에 팽배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시스템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 간과했다고 덧붙였습니다. [1, 2]
여왕의 날카로운 일침: 설명을 들은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시 금융감독청(FSA)을 겨냥해 "거기는 이빨이 없었나(제대로 된 규제 권한이나 강제력이 없었나)?"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사람들이 다소 해이해졌던(lax) 것 같다"며 금융당국의 안일함을 직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2012년도에도 위기가 왔었다.... 국가가위험할때 파운드 지폐가 아니라. 바로 금이다.
미국이 달러가 위험할때 금으로 갈아탄 이유이기도 합니다...
증시.채권에 박아둔 도 모두 빼내어 금으로 이동해야 할것입니다.....
2022년도에 북을 세상의무대에 올린사람이 여왕이다... 북에 대사로 있던 영국대사를 남으로 이동시킨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예상과 달리 아무런 합의 없이 '노딜(No Deal)'로 결렬되었기 때문입니다.
외교관들이 목격한 현장: 당시 평양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하며 현지 상황을 직접 지켜보았던 콜린 크룩스 대사는 인터뷰에서 "북한 국민들뿐만 아니라 저희 대사관에서 같이 일하던 북한 직원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1]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체제를 구축하여 배터리 핵심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었습니다. [1, 2]
당시 미국이 한국의 배터리 공급망 협력을 강력히 요청한 구체적인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원 무기화에 대한 중국 견제 및 탈(脫)중국 공급망 구축
저 당시만해도 중국자원을 미국이 더이상 수입을 중지하겠다 대신 공급망 다변화 를 말하면서 윤석렬에게 담대한구상이 나오게된계기
지금은 북미화해가 시작되면 다극화 세상에서 중국도 북에 투자하게끔 만들어졌다고 볼수있다..
미국에의해 윤석렬로 하여금 북에 지원하게끔 만든상태인데.... 아베 가 그것을 가로막아버렸다.. 내란까지 일어나게 한것..
아베 암살(2022년 7월)과 '담대한 구상' 발표(2022년 8월)의 시차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할 경우 대규모 경제 지원과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를 제공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독일이 1달먼저 재가동하였고. 이어서 인도가 대사관 재가동하기시작하였다..
인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철수했던 평양 주재 대사관을 4년 만에 전격 재개, 앞으로 세상이 다극화 세상에서 주요국가로 나서기위해 큰 배팅을 한것이다.. 사실.. 다극화 이전 같으면 인도가 급하게 북에 대사관을 오픈하는것은 그렇게 큰 영향이 없는것이었다.
인도가 빠르게 북과 손잡은것은 중국을 당황스럽게 한 측면이 있다..
인도는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와 전통적인 우방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푸틴이 북한을 자국 진영으로 깊숙이 끌어당기자, 인도 역시 동북아 및 유라시아 정세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북한과의 외교 채널을 선제적으로 복원하는 '독자적인 배팅'
: 이후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고조시키고 서방의 고립 작전이 심화되는 와중에도, 인도는 과감하게 평양 대사관의 문을 다시 열고 외교관을 파견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타이밍을 노려 외교적 교두보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매우 공격적인 행보로 해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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