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절친의 모친상을 보면서 죽음이라는 실체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속담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식과 청명은 하루차이가 나는것이니 어느날이나 차이가 없다는것이다. 또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생명은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길거나 짧게 할수도 없다는 것이니 이로써 人命은 在天이라 하였다. 그래서 아침에 웃으며 나간 식구가 저녁에 죽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게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일찍 유명을 달리할 경우 모든이들이 그의 박복함을 애석해 한다. 인생의 꿈을 꽃피우지 못하고 봉우리로 마감한 경우에 그 인생을 애석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인생관으로 보면 반드시 세상적인 평가와 일치하지 않음을 알아야한다. 예를들면 쌍둥이로 아이가 태어났는데 하나는 5살이 못되어 병들어 죽어 그의 천사들에 이끌려 그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되었다. 그의 육신의 삶은 애석한 삶이었으나 이후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된것이다. 반면에 남은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긴 수명으로 부귀를 누리며 살았다. 그가 죽었을때 상주들에게는 호상이라는 위로가 전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천수를 누리며 살면서 재물을 모았고 세상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칭송을 받았지만 그때문에 그는 자기를 지으신 창조자를 모르고 살았다. 게다가 예수그리스도를 몹씨 싫어하였고 예수쟁이들이 근처에 오면 모욕을 주고 비난하였다. 모지리라고... 그는 비록 천수를 누리며 살았지만 아뿔사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것이다. 그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죄를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죄인은 천국에 갈수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죄가 없다면 왜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겠는가. 그는 지옥에서 뜨거운 불맛을 보며 영생불사하니 극락왕생은 어디가고 곡소리만 나오는가. 그가 그의 형제보다 오래 산것이 무엇이 나은게 있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므로 유명을 달리할때 반드시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되어 있다. 그가 무슨 거룩한 종교를 믿었던지 안믿었던지 상관없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면 가야만 하는곳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속이니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산다고 하는것이 무슨 복이 되겠는가.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 일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