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과 빛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세상을 떠나며 생긴 빚더미는 우리 가족을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할 형편이었지만 내가 계속 공부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 일찍 시집이라도 보내라고 잔 소리하면 엄마는 화를 냈다. "그런 소리 말아요. 쟤는 꿈이 있는 애예요." 어느 밤, 스탠드 불빛에 비친 잠든 엄마의 지친 얼굴을 본 순간 더 이상 꿈 을 꾸는 것이 부끄러웠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쓴 채 취업 사이트를 뒤져 여 기저기 보낸 이력서에 한 제빵 회사가 응답했다. 내겐 관련 자격증이 없었 으나 배우면 된다고 해서 무작정 입사했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의 자취 생 활이 시작되었다. 엉덩이가 까매질 만큼 앉아 있는 생활을 하다가 종일 서서 일하려니 버티 기 힘들었다. 손목과 허리가 아팠다. 최저 시급에 막막했지만 불행을 조금 이라도 덜고 싶어 그만둘 수 없었다. 그즈음 애인과도 헤어졌다. 가끔 남몰 래 울었다. 직원들은 모두 나보다 어렸는데 한겨울에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대신 노래를 부르거나 웃었다. 버티다 보면 무뎌진다고 얘기해 주는 그들이 때로 나보다 더 언니 같았다. 우리는 점점 친해져 자매 처럼 지냈다. 퇴근하고 자취방에 따라온 동생들과 수다를 떨며 놀다가 다 음 날 같이 출근하는 재미도 생겼다. 회사에는 도시락을 싸 갔다. 퇴근 후에 요리는커녕 누워만 있는 내게 간간 이 집에서 보내 주는 반찬 외에는 변변한 음식이 없었다. 누레진 밥과 조미 김을 달랑 가져가면 다들 깔깔 웃으며 반찬을 나눠 주었다.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만큼 다른 동료가 힘들다는 걸 알기에 아파도 출근했다. 케이크 시트와 생 크림의 격전지 속, 나는 오븐에서 갓 나온 철판에 다리를 데고 말았다. 응 급실에 가기 미안해 미적거리니 다들 펄쩍 뛰면서 말했다.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가요!" 마치 전쟁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 무렵 양말들이 해졌는지 복사뼈 부근에 전부 구멍이 났다. 어차피 작업 화를 신으면 가려져서 그냥 신고 다녔다. 유난히 피곤한 어느 날, 작업복으 로 갈아입으려고 사물함을 열었는데 양말 한 켤레가 매달려 있었다. 토끼 가 그려진 연보라색 양말이었다. 소소한 선물 덕에 종일 기분이 좋았다. 동생들에게는 모두 꿈이 있었다. 공방 주인, 빵집 사장, 심리 상담가………. 나도 슬쩍 꿈을 고백했다. 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잘 어울려요. 언니는 할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들은 그 말에 코가 시큰했다. 몇 년이 흐르자 이직하거나 대학에 편입하는 이가 생겼다. 만성 손목 염증 에 시달린 나도 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 주었다. 내 오른쪽 종아리에는 아직도 화상 자국이 남아 있다. 힘들었던 그때가 쓸 쓸하게만 기억되지 않는 건 곁에 있어 준 동료들 덕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 서도 다정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시절 작은 빛이 되어 준 그들에 게 고맙다. 인생에서 찬란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세월을 이기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을 유지하는' 것이다. _ 송정림
최송이 | 전북 전주시
그 겨울의 시/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 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 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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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님 !
고은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되세요^^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안녕하세요
비주 님 !
고우신 걸음과,
공유해주심
감사드립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꿀밤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