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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인도 네팔 기행 : 7일차 : 1월 11일 월요일 (바라나시)
윤상현 추천 0 조회 82 10.08.28 21: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7일차 : 1월 11일 월요일 (바라나시)

 

늦잠을 잤다. 어제 밤 술기운이 아직도 남아 골이 멍하고 속도 허하다. 자정이 넘도록 옥상에 앉아서 어둡고 고요한 갠지즈를 내려다보다가 조금은 감상에 빠져 과음이 되었나보다. 이미 해가 솟은지라 새벽 강에 배 띄우고 일출을 맞이하려던 계획이 수포가 되었다. 그저 강가를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오랜만에 만난 안개 없는 아침이다.

지난 밤 휘황한 불 빛 아래 술렁이던 그 많은 탐방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메인 가트로 내려가는 계단 길엔 아침 한 끼를 구걸해야하는 걸인 들이 줄지어 앉았고 강변에는 갠지즈에 몸을 담군 힌두인들로 인해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어둔 강물 위로 순례객을 나르던 작은 목선들이 정렬한 사이로 여인네들은 주홍빛 사리를 걸친 채 무리지어 강물에 들었고 남정네들은 상의를 벗은 채 개인 단위로 몸을 씻는다. 하지만 아무리 만복(萬福)을 부르는 성수(聖水)라 해도 어찌나 오염이 심한지 이방인의 눈엔 심란할 따름이다.

먼발치 ‘버닝 가트’에 아직까지 연기가 피어나는 여러 곳은 밤새 화장(火葬)이 이루어진 자리다. 사람이 죽으면 하루 안에 화장하여 뼈 가루를 ‘갠지즈’에 뿌려야 최고의 복을 받아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힌두교의 믿음 때문에 이 강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어제 저녁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칠성판 위의 주검들, 간단한 꽃 장식을 품고서 장작더미에 올라 하루 밤 새에 수 십 구의 화장이 이루어지기에 아침의 이 강가엔 비릿한 냄새가 자욱하다. 이른 바 ‘바라나시의 향(香)’이란 육신(肉身)의 향인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따져보니 5일 만에야 제대로 씻어본다. 모처럼 좋은 날씨로 더불어 기분이 날듯하다. 카메라의 메모리 걱정을 하니 아우가 여분의 ‘4 기가’짜리를 내어준다. 룸메이트인 경호 아빠는 이제야 네팔 입국용 증명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오전 일정은 힌두대학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아침식사를 위해 ‘바바 레스토랑’을 가려하는데 룸메이트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곧 올 걸로 여겨 기다리다 결국 밥 때를 놓치고 말았다. 비장해 둔 누룽지로 아침을 때우다. 기다림의 무료함을 때우려 옥상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원숭이는 지붕 위를 떼 지어 넘나들며 짓궂게 장난질이고 강물 위의 나룻배 안엔 유람객이 빼곡한데 수 십 마리 흰 빛의 물새들이 그 뒤를 따라 배회한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청소를 위하여 방을 비워야 하는데 돌아와야 할 사람은 소식이 없다. 이 친구는 배낭도 전혀 꾸려놓지 않은 채 나갔다. 대충이나마 내가 대신 정리해줘야지 어쩔 수 없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체크아웃하고서 시내로 나갔고 나만 어정쩡하게 오전을 허송했으니 어이없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 대신 꾸린 짐까지 모두 들고서 홀로 체크아웃하니 벌써 11시다. 우선 로비 곁의 넓은 방에 두 개의 배낭을 맡겨두고 꼭 필요한 것만 따로 작은 가방에 챙겨 길을 나선다. '자전거릭샤'를 잡아타고 시내 중심부에 자리잡은 ‘IP 몰'로 향한다. 이곳은 '바라나시'에서 가장 현대적 시설을 한 백화점이다. 좁은 길의 구(舊)시가(市街)를 빠져나와 몇 굽이 번잡한 곳을 돌아드니 제법 넓은 도로 저편에 번듯한 오층의 빌딩이 섰다. 역시나 이 백화점에도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간판은 ‘맥도날드'다. 입장하는 정문에서는 몸수색 까지 하며 통제하고 건물 안쪽에는 아예 총 든 경비원이 섰다. 테러의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을 알겠다. 지난 2006년 이 곳 힌두 사원에서 테러가 일어나 15명 사망에 60여명이 다쳤고 시내 전역에서 총 6건의 폭발물이 발견된 적이 있었으니 이처럼 경비가 삼엄한 것이 당연하리라. 이미 귀국한 뒤의 일이지만 지난 2월 13일 ‘뿌네’의 빵집에서도 폭탄이 터져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5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냥 구경이나 와 본 것이지 쑈핑은 별 관심 없다. 우선은 요기가 급하다. 3층 식당가가 그런대로 깔끔하다. 원색으로 인쇄한 메뉴 표에서 가장 비싼 가격의 ‘탈리’를 주문해보았다. 보통 식당에 비해 무려 10배나 비싼데도 엊그제 ‘사트나 역’ 앞의 그것에 비하여 크게 낫다할 수 없다. 식판 위의 상차림이 조금 깔끔할 따름이다. 이미 ‘커리’ 향에 물리고 배탈까지 난 아우는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치킨으로 대신한다. 창밖 거리의 군상(群像)은 여전히 분주하다.

잠깐 시가지구경을 나섰다가 인근의 회교사원을 둘러본 뒤에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한다. 좁은 보행로와 심한 매연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안전을 위해서도 ‘릭샤’에 오르는 것이 상책이다. 대충 흥정한다 해도 요금이 엄청 저렴한데다가 인파에 부딪힘과 쇠똥도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편안히 시가지의 모습을 관망하기 좋다.

시내의 반대 편, 자전거 릭샤로 7km를 달려 도착한 ‘베나레스 힌두대학(BHU)’. 이 곳은 1917년 인도의 민족주의자인 ‘빤디트 말라비야’가 바라나시의 ‘마하라자(위대한 왕)’로부터 기증받은 땅에 세운 대학이다. 힌두 문화와 관련된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인도 철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네모 난 상자를 켜켜이 쌓은 듯한 대학 정문을 들어서니 너무도 넓은 규모가 과연 이게 대학 캠퍼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구내 안내지도를 살펴보니 수십만 평의 부지에 부채꼴로 길을 내고서 방사선의 구역을 따라 널찍하게 각 단과대학을 배치했다. 강변의 ‘가트’나 시내의 번잡함과는 달리 숲이 울창하고 한가한 도로가 목가적(牧歌的)이어서 잠깐 사이에 딴 세상에 온 듯하다. 농과 대학의 넓은 실습장엔 목초가 파릇한데 야생의 공작새 한 쌍은 한가히 풀숲 속을 거닌다.

이제 구경도 좀 진력이 난다. 나른한 느낌이 올 땐 그냥 쉬는 것이 상책이다. 노랑 회벽에 붉는 창틀을 한 공과대학 그늘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니 그리 한가할 수가 없다. 어느덧 해가 뉘엿한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싱그러운 그늘에 젊은 릭샤꾼도 여유롭다.

릭샤를 되돌려 메인 가트 거리에 당도하니 또 다시 방향이 헷갈린다. 숙소를 찾아가야하는데 첫 번째 골목을 잘못 들어가 두 차례나 맴돌이를 일으켰다. 내가 길 눈이 이리도 어두웠던가? 어이없다. 다시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다. 마침 접근해온 삐끼의 안내를 받아 기념품을 장만하러 나섰다. 모든 인도 남자의 패션 아이템인 ‘풀 싸이즈 ?’과 후드 달린 ‘붉은 셔츠’를 샀다. 모두 야크 털로 짠 것인데 입고 두르고 보니 가벼우면서도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추운 기운을 물리치니 작은 일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바바 카페’를 찾았다. 아우는 탈난 속을 달래느라 야채죽을 주문하고 난 비빔밥이다. 딸려 나온 계란 국물이 입맛을 돋운다. 각자 흩어졌던 일행 몇몇이 식사 차 들어오더니 나의 새 옷차림을 보며 마치 현지인처럼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칭찬이다. 더불어 한편에 개어두었던 ?까지 자랑하고 나니 흐뭇하다.

날이 어두웠다. 어제의 ‘뿌자’를 다시 한 번 감상하기위하여 강가를 찾는다. 역시나 휘황한 조명 아래 인파가 넘쳐난다. 손풍금 ‘하르모니엄’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역시나 젊고 잘생긴 사제들의 제례 무용이 우아한 격식으로 이어진다. 기부금 상자를 든 남자가 다가와 미간(眉間)에 ‘빈디’ 점을 찍어주며 헌금을 부탁한다. 이 점은 행운의 상징이며 지혜의 눈이다.

어제에 비하여 훨씬 이른 시간에 ‘뿌자’ 의식이 끝났다. 어젠 일요일이어서 큰 행사요 평일은 작은 행사다. 집전한 사제들에게 장사진을 치고서 일일이 축복을 받은 뒤 운집했던 인파는 순식간에 흩어진다. 갑자기 비어버린 강변이 휑한 모습으로 남았다. 행사장의 뒷정리를 하던 사람 좋아 뵈는 장년의 남자가 말을 붙여온다. 우리의 생김생김에 단번에 한국인임을 알아차린다.

강물 건너 저 편, 너른 백사장이 캄캄하다. 잠깐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에 대해 생각해본다. 꽃 파는 아낙네가 다 늦게 다가와 소원 비는 꽃 양초를 사라고 성화다. 그의 웃는 표정이 선하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다. 숙소에 들러 맡긴 짐을 찾고서 ‘바라나시 정?’역으로 향한다. 오늘 밤은 ‘고락프르’행 열차에 몸을 실어야한다. 과연 정시에 기차가 당도할까? 어림없는 일이다.

‘릭샤’에서 내리니 역 광장과 대합실 안이 장구지책(長久之策)을 세운 여행객으로 가득하다. 거의 대부분이 이부자리를 깔고 덮고 누웠다. 기다림의 여가(餘暇)에 인도 최신 유행의 가요를 함께 배워본다. 무슨 연속극 주제가라는데 쉬운 가사가 반복되어 쉽게 익혀진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구경꺼리가 된다. 바라다보는 그들의 표정이 순박하고 우호적이다. 어떤 청년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거의가 차림새는 꾀죄죄하지만 마음을 맑게 가지려는 보통 시민들이며 성지 순례자들이다. 인도에 온 뒤로 이제까지 싸우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음을 새삼 느낀다. 마구 돌아다니는 소나 개들도 사람을 닮았는지 표정이 부드럽다. 오직 원숭이들만이 인간을 무시하는 듯 영악한 낯빛이 오만하다. 살아있는 신으로 대접받기에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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