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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宇造船工業(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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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시책에 따라 1973년 5월 초대형 조선소인 옥포조선소 건설계획이 확정되어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73년 10월 대한조선공사를 사업 주체로 하여 총 소요자금 약 1,030억 원을 투입, 총 부지 100만 평에 신조선용 100만DWT급 도크 1기, 15만DWT급 선대 1기, 50만DWT급 수리도크 1기를 중심으로 하는 옥포조선소 건설 공사가 착공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조선시장 불황으로 옥포조선소 건설 공사가 중단되자 정부와 대한조선공사는 사업성 재검토에 나섰으며 대우가 인수하도록 하였다. 옥포조선소 건설 현장을 인수한 대우는 법인체 설립을 서둘러 1978년 9월 26일 자본금 70억 원으로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초기에는 조선소 건설과 영업,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는 어려운 여건 가운데 1979년 9월 26일 노르웨이로부터 22,500톤 급 화학제품운반선 4척을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으며 1982년 5월 첫 번째 건조선박인 화학제품운반선 BOW PIONEER호를 선주 측인 SKIBS A/S STORLI사에 인도하였다. 당시 화학제품운반선은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었으며 이를 통해 선박건조 경험을 쌓아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4월에는 100만 톤 급 제1도크 완공, 9월에는 900톤 급 goliath crane 설치를 완료함으로서 옥포조선소 건설을 끝내고 10월 17에 종합준공식을 가졌다. 1982년에는 최초의 수주선박이자 인도선박인 BOW PIONEER가 최우수 선박으로 선정되었으며 1984년에는 부양식 도크인 옥포 로얄도크를 네덜란드에서 들여와 수리 전용으로 활용하게 됨에 따라 제2도크를 신조선 전용도크로 전환해 생산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5년 내실 경영으로 도약의 발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회사는 MAST운동을 출범시켜 비능률, 비경제, 비합리 요소를 추방해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기함으로써 회사의 생존과 경쟁력을 확보할 것을 추진했다. 1991년에는 흑자를 달성했으며 5월에는 최초로 선박을 인도한 이래 만 9년 만에 1천만톤 인도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국민차 생산을 개시했다. 조선부문의 주요 생산 품목으로는 주력선종인 VLCC를 비롯한 원유운반선, 정유운반선, 살물선, 자동차운반선, LNG선등 다양한 선종을 건조하고 있는데 이중 VLCC 경우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조선부문은 1백만 톤 급 제1도크와 9백 톤 급 goliath crane, 35만 톤 급 제2도크와 450톤 급 gentry crane 등의 대형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 220만GT의 상선건조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1983년 아랍에미리트의 선주에 바지선을 건조인도하면서 시작된 특수선 사업은 고속초계함, 구축함, 잠수함, 심해탐사선 등의 특수목적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1993년 4월에는 국산 1호인 잠수함 이천함을 건조해 해군에 인도했고 국산2호 최무선함, 국산3호 박위함 , 국산4호 이종무함, 국산 5호 정운함을 해군에 건조 인도했다. 1996년 2월에는 러시아 극동해양연구소와 공동으로 수중 6천m까지 탐사할 수 있는 심해잠수정 “옥포6000을 개발했다. 동 사는 현재 45만DWT급 ULCC(극대형 원유운반선)도 70년대 이후 세계 최초로 건조 중에 있으며 LNG운반선, LPG운반선, FPSO 등 고기술 선박도 높은 품질로 건조, 해마다 수 척이 세계 최우수선박에 선정되고 있다. 동 사는 국내 유일의 전투잠수함 건조기술과 설비를 갖춘 조선소이며, 5천5백톤급 대형 구축함 등 각종 수상함도 건조하고 있으며 특히 잠수함은 국제합동해상훈련에서 뛰어난 작전 능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국내에선 유일하게 전투함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동 사는 대우그룹의 부도로 인한 어려움을 떨쳐버리고 대우중공업(주)에서 2000년 11월 독립기업으로 재창업하여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2002년에는 사명을 대우조선해양(주)으로 바꾸어 조선해양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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