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의 산
정선 말미산(700m)
한치 뒷산 말등바위, 말미산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아즈미 맘만 같다면 고것만 뜯어 먹어도 봄 살어나지' 정선 아라리 노랫말이다. 여기서 한치 뒷산은 말등바우산(820m)과 말미산(700m)을 가리킨다. 한치는 또 지장천 가 유평리에서 말등바우산 허리의 한치마을로 가는 길이 급경사 된비알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 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치에는 고려엉겅퀴, 모시대, 곤드레, 딱주기가 많이 자라 아라리 가사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치마을로 가는 옛길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왕래가 종종 있었으나 동막골에서 화암약수까지 가는 길이 뚫리면서 인적이 끊겨 현재는 덩굴식물만 우거진 정글로 변했다.
"날씨는 비가 올려나 어수장마가 질려나" 산행을 하려는데 정선 아라리 가사처럼 날씨가 궂다. 그레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위로로 삼으며 유평리 59번 국도변 유림식당과 농가 사이, 벌통이 놓인 한치 들머리로 걸음을 옮긴다.
벌통을 지나자 오른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옛길이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급경사를 만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돌아오른다. 오른쪽으로 작은 계곡이 있지만 주구장창 왼쪽으로 이어진다.
옛길을 찾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덩굴과 나뭇가지를 헤집고, 헤치며 길을 만들어 간다. 그래도 옛길을 따라 가야한다는 생각에 길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무 아래로 넓은 길이 보이지만 그건 진정한 한치길이 아니다.
들머리를 출발한지 한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다. 숲 사이로 저만치에서 뭔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나도 공격과 방어 태세를 갖추고 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움직이는 기미가 없다. 동물임은 분명하다.
'너도 혼자, 나도 혼자다. 어디 일대 일로 맞서보자' 작은 칼을 손에 꽉 움켜쥐고 빤히 보고 있는 동물을 향해 서서히 접근을 시도한다. 제법 간이 큰 놈인가 보다. 나의 움직임에도 꼼짝하지 않는다.
더 접근해 자세히 보니 운명한지 얼마 안되는 너구리다. 영정사진 하나 찍어주고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낸다. 십년감수했다.
너구리 길을 따라 가시덤불을 헤치며 잠시 올라서니 성황당이 있고 수령 700년, 수고 20m, 흉고 둘레 4.4m 되는 보호수 느릅나무가 있다. 그 옆에 수령 650년, 수고 20m, 둘레 4.3m의 느릅나무가 또 있다. 유평2리 한치마을이다. 같이 산행한 길기순씨(대덕산, 금대봉 자연생태경관보호지역 감시대)가 마중 나와 있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느릅나무를 본부로 삼고 먼저 말등바위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포장길을 따라 사슴농장 입구까지 가니 말등바우산 쪽으로 농로가 있다. 오른쪽 농로를 따라 5분쯤 오르니 갈림길이다. 어느 쪽 길로 올라도 길은 다시 만난다.
사방에 산을 개간해 밭을 읽뤘다. 말등바우산만 나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뒤를 돌아보니 강원도의 산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건너편 북으로 고두산이 솟았고 선운산, 백이산, 팔봉산 등이 첩첩중첩을 이룬다. 동쪽으로는 지억산, 민둥산 지맥들이 말등바우산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쑥밭재 옆이 말등바우산 정수리다. 멋쟁이 소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다시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려 한치마을로 내려간다. 밭으로 들면 길이 있고 숲으로 가면 길이 없다.
삼척김씨 묘 여러 기가 자리잡은 곳에는 잔디보다 둥글레가 많다. 한치마을의 양택이나 음택 모든 것이 말미산 방향을 향하고 있다.
돌리네 지형의 말등바우산을 한바퀴 돌아 한치마을 느릅나무 아래 도착. 이번에는 말미산을 오를 차례다. 마을을 지나 북쪽 능선을 따라 말엉덩이처럼 생긴 말미산을 코앞에 두고 오르는 데 밭 한가운데 말 한 필이 보인다. 말 모양의 석회석이다. 길기순씨가 말등에 올라 말을 몰아본다. 실제로 달리진 못해도 기분만은 관우의 적토마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듯하다.
농로를 따라 숲으로 드니 갈기조팝나무, 찔레나무, 엉겅퀴 등이 꽃을 피우고 뻐꾸기도 멋들어지게 울어댄다. 약 7분 거리의 능선을 넘어 Y자 모양을 한 소나무가 보이며 오른쪽 길로 올라가니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은 모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사람의 족적이 없는 말미산 오름길이다.
말미산 정수리 숲으로 드니 햇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캄캄함 숲이다. 다시 숲 밖으로 나와 정수리를 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돈 후 벌통을 지나 원점회귀하니 한치마을의 700년 된 느릅나무 아래다.
중식 후 도로를 따라 삼내약수에 다녀온 후 한치 옛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한번 지나 왔던 길이라 그런지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 콧노래로 아라리를 흥얼거리며 잿마을, 소마평에 도착하니 유림식당의 풍차가 여유롭게 돌고 있다.
*산행길잡이
유림식당-(1시간30분)-한치느릅나무-(20분)-말등바우산-(20분)-한치느릅나무-(20분)-말미산-(10분)-한치느릅나무-(40분)-삼내약수-(45분)-한치느릅나무-(40분)-유림식당
자미원에서 정선을 잇는 59번 국도를 따라 2km쯤에 가면 유림식당 간판과 풍차가 보이며 이곳에 한치 등산로가 있다. 이름난 곳이 아니라 숲은 원시림 그대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좋아져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숲을 헤치고 가야해 산행시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한치마을은 산 위 분지에 형성된 자연부락이다. 말등바위산과 말미산은 눈으로도 훤히 보이며 뒷동산을 오르듯 다녀올 수 있다. 승용차로 한치마을까지 갈 수 있으나 대신 한치 옛길을 걷는 낭만은 놓치게 된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고한, 사북행 버스를 이용해 별어곡에서 하차한다. 1일 23회 운행하며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별어곡에서 다시 정선행 버스를 이용해 유평리 한치에서 하차한다. 별어곡에서 들머리까지 걷는 것도 좋다. 거리는 약 2km 정도다.
*잘 데와 먹을 데
한치뒷산펜션(033-591-4999), 한치멧돼지(591-2631, 010-6429-2631), 유림식당(591-8436). 고병계곡 입구에 있는 황토찜질방민박(591-0002), 리버사이드모텔(592-3326), 엘카지노호텔(592-8222), 민둥산펜션(591-1110), 민둥산보리밥(592-3562).
*볼거리
아라리촌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재현해놓은 곳으로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 전통가옥 등이 있으며 물레방아, 연자방아, 성황당, 농기구공방, 방앗간 등과 주막, 토속 매점도 있다.
삼내약수 산화철분, 탄산수 등을 함유하고 있어 사이다 맛이 나며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세 곳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합수하는 지점이라 삼내라고 한다. 옛날 피부병 환자가 초상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자다가 깨 물을 찾았다. 바로 옆에 샘물이 있어 마시고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아있었다. 이후 삼내약수의 효험이 소문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글쓴이:김부래 태백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