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중화민국 정부수립 및 신해혁명 기념일인 10월10일을 ‘쌍십절’이라 부르며 국경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10월10일이 ‘임산부의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달력을 살펴봐도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게다가 법으로 처음 지정된 것은 2005년 12월 모자보건법 개정시 제3조의 2 신설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고취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이 규정은 통상 임신기간이 10개월이고 10월은 풍요와 수확의 달을 의미하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출산을 하지 않고 중도에 낙태를 할 경우 원칙상 그 여성은 낙태죄로 처벌될 수 있고(형법 제269조), 이를 도와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도 함께 처벌되는데(형법 제270조), 이와 같은 처벌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962년부터 지속적인 국가의 가족계획사업으로 출산제한이 강조되기 시작되자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산모나 배우자에게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의사는 산모와 배우자(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고(동법 제14조), 이 법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자와 수술을 행한 자에 대하여는 형법상 낙태죄 적용을 배제시킴으로써(동법 제28조) 제한적으로 낙태를 합법화시켰다.
‘낙태’란 태아를 자연적 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낙태 중에서도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를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수술을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 한다(모자보건법 제2조 제8호).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와 관련하여, 당초 모자보건법 제15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후 28주 이내에만 허용된다고 규정하였으나, 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태아의 모체 밖에서의 생존가능성 판단은 의학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위 제15조 규정은 1999년 법 개정시 삭제되었다.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1972년 연방대법원 판결(Roe v. Wade 사건) 이후 낙태가 여성의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호되고 있다. 임신한 미혼녀 Roe는 텍사스 주 주민이었는데, 당시 주법은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 이외의 낙태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Roe는 낙태를 받고자 병원을 찾아갔으나 처벌을 두려워 한 의사들이 이를 회피하였고, 결국 주 법무부장관인 Wade를 상대로 위 처벌규정의 위헌 확인을 구함과 동시에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헌법상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권(Right of Privacy) 속에는 여성의 낙태권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주 정부로서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합법적 이익을 가지므로 여성의 낙태권과 조화시키는 관점에서, 임신 첫 3개월간(first trimester)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가능성이 적어 여성의 낙태권이 우선하므로 정부는 이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그리고 태아의 생명보호 필요성과 산모의 낙태권이 상호 충돌되는 임신 후 4개월부터 6개월까지인 두 번째 3개월간(second trimester)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는 경우 등 일정한 경우 외에 낙태를 제한(regulate)만 할 수 있을 뿐 이를 금지(prohibit)시킬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임신 7개월부터 9개월까지인 세 번째 3개월간(third trimester)은 태아의 모체 밖에서의 독자생존가능성(viability)이 커지므로 이 기간에는 여성의 낙태권보다 주 정부의 태아보호 이익이 우선하여, 주 정부는 낙태를 금지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위 주법규정은 지나치게 산모의 낙태권을 제한하여 위헌이라 판시하였다.
낙태의 방법으로는 산모의 상태나 의사의 재량 등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매년 미국 내에서 시행되는 낙태 중 거의 90%가 임신 후 첫 3개월간(first trimester)에 이루어지는데, 가장 흔히 이용되는 수술방법은 태아의 조직을 끄집어내는 ‘진공흡입술(vacuum aspiration)’이고, 그 대체방안은 ‘RU-486’이라 불리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을 투약하는 약물적 방법이다. 그리고 나머지 10% 낙태의 대부분은 임신 후 4개월부터 6개월 사이인 두 번째 3개월간(second trimester)에 이루어지는데, 이 기간에는 자궁 경부를 확장시킨 후 수술도구를 집어넣어 태아를 조각낸 후 일일이 꺼내는 ‘확장추출술(Dilation and Evacuation, ‘D&E’)’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통상적인 확장추출술과 달리 ‘무손상 확장추출술(Intact D&E)’은 태아의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고 우선 포셉으로 태아의 다리를 잡고 모체 밖으로 신체 일부를 꺼낸 후, 태아의 머리 속에 튜브를 삽입하여 뇌를 빨아내 두개골을 와해시킴으로써 배출을 쉽게 만드는 방법인데, 이를 ‘부분분만 낙태(Partial-Birth Abortion)’라 부른다. 이러한 부분분만 낙태는 1992년 전미낙태연합(National Abortion Federation)의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의학박사 헤스켈(Haskell)이 발표한 논문에 소개된 비교적 최근의 수술법이다.
그런데 위 논문 발표 이후 미국 30여개 주에서는 부분분만 낙태를 처벌하는 주법을 제정하기 시작했고, 연방의회도 이러한 경향에 따라 1996년경 연방법 차원에서 ‘부분분만 낙태 금지법(Partial-Birth Abortion Ban Act)’을 마련하였으나, 개혁세력인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veto)을 행사하는 바람에 발효될 수 없었다. 당시 거부사유는 부분분만 낙태를 금지하는 것에는 찬성하나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유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수세력인 공화당 출신의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연방의회는 2003년경 위 법안을 재상정했고, 대통령이 2003년 11월5일 서명함으로써 그 다음 날부터 효력이 발생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531조 (a)항은 “부분분만 낙태를 한 의사는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조 (b)항은 “‘부분분만 낙태’라 함은, 머리가 먼저 나오는 출산(head-first presentation)일 때에는 머리가 모체 밖으로 나온 뒤에, 다리가 먼저 나오는 도산(breech presentation)일 때에는 몸통 중 배꼽 이상 부위가 나온 뒤 태아를 죽이는 경우를 말한다”는 개념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e)항은 “부분분만 낙태에 동의한 산모는 의사와 공범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법 발효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낙태 찬반론자들 사이에서 그 위헌성 여부에 대한 논쟁과 소송이 이어졌는데, 2007년 4월 18일 미 연방대법원은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림으로써 수년간 계속된 법적 공방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리로이 카할트(LeRoy Carhart) 등 4명의 의사는 2004년 미 연방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네브라스카 주 연방법원에 위 연방법의 위헌을 전제로 시행금지를 구하는 영구적 가처분(permanent injunction)을 신청했는데, 연방법원은 단 2주간 심리를 거쳐 가처분을 인용하였고, 이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항소하였으나 제8항소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다시 법무부장관이 상고허가신청을 제기하여 상고심이 개최되었다. 또한,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Federation of America, Inc.) 등은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마찬가지로 위 연방법의 위헌을 전제로 시행금지를 구하는 영구적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연방법원은 단 3주간 심리를 거쳐 가처분인용결정을 하였고, 이에 법무부장관이 항소하였으나 제9항소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법무부장관이 상고허가신청을 제기하여 상고심이 개최되었고, 상고심은 카할트 사건과 가족계획연맹 사건을 병합심리하였다.
카할트 사건이나 가족계획연맹사건에서 하급심인 연방법원과 항소법원이 위헌 판단을 한 근거는, 부분분만 낙태의 금지 자체는 적절한 입법이라 하더라도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를 단지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로만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산모의 ‘건강’을 위해 부분분만 낙태를 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은 함은 결과적으로 여성의 헌법상 낙태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판단의 전제가 된 것은, 태아를 조각내어 하나씩 꺼내기 위해 수차례 수술기구를 질 속에 삽입해야 하는 확장추출술은 산모의 자궁경부열상(cervical laceration)이나 자궁천공(uterine perforation)이 발생할 위험이 큰 반면, 그러한 과정이 필요 없는 부분분만 낙태는 산모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적다는 의학적 자료였다.
그러나 상고심에서 5 대 4로 팽팽하게 의견이 대립된 이번 판결의 다수의견을 대표한 주심 케네디(Anthony Kennedy) 대법관은 “부분분만 낙태가 산모의 건강을 위해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으나, 과연 확장추출술보다 안전한 방법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부분분만 낙태에 대한 예외적 허용조항으로서 산모의 건강을 위한 경우를 별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학적 근거가 확실성에 이르러야 하는데, 제1심과 원심이 기초로 한 의학자료는 일부 의견에 불과하다. 단지 의학적 불확실(medical uncertainty)상태에서 연방의회가 그와 같은 예외규정을 신설하지 않은 것을 위헌적 부작위라 보기 어렵다. 확장추출술은 부분분만 낙태의 합리적 대체수단이 될 수 있고, 산모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부분분만 낙태만을 선택할 강제적 필요성이 크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전제 하에, “부분분만 낙태의 예외적 허용사유로 산모의 ‘생명’ 구제를 위해 필요한 경우만을 규정하였을 뿐 산모의 ‘건강’에 적합한 경우를 규정하지 않은 이 사건 연방법이 산모의 낙태권에 ‘부당한 부담(undue burden)’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합헌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제1심과 원심을 모두 파기하였다. 이번 판결은 낙태의 허용여부 및 그 제한시기에 대한 과거 선례와 달리, 낙태의 구체적인 수술방법에 대해 최초로 판단한 판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한편,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수술건수는 150만~200만 건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인구비례로 볼 때 미국의 6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태아 성감별을 통한 낙태가 빈번히 이루어져왔고, 성 윤리의식의 변화에 따라 미혼여성들의 임신이 급증하면서 그에 따른 낙태의 필요성도 커지게 된 점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낙태에 관한 위 형법 및 모자보건법 규정의 합헌 여부에 대한 당사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탓인지 그에 대해 판단한 사례가 아직 없다. 그러나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되고 점차 태아의 독자생존가능성이 커지면서부터 정부에 의한 개입이 허용되는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임신기간을 불문하고 낙태를 형법상 처벌하면서 다만 모자보건법에서 태아의 독자생존가능성이 없는 시기에 일정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점을 살펴볼 때, 향후 산모나 의사에 의해 형법 및 모자보건법 규정에 대한 위헌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 때 우리 헌법재판소는 과연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할 것인지, 나아가 그러한 기본권을 인정할 수 있다면 태아의 독자생존가능성이 없는 임신 초기의 낙태마저도 원칙상 금지하는 현행법이 미국의 경우와 정반대의 입법인 점을 고려하여 위헌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하여 낙태권과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견지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한국 &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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