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류산巨流山 1997. 6 . 6
일요일에는 비가온다고 하기에 현충일에는 놀러가는 것을 삼가라는 것을 어기고 산에 가기로 했다. 더구나 巨流山城도 있다는데 ….
9시가 가까워서야 출발했다. 집사람과 래성이랑 셋이다. 고성읍에서 안정 가는 길로 접어들어 벽방산 등산로 근처에서 길을 물었더니 학교 가는 길로 가는 것이 복잡하지 않고 쉬울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방산초등학교 앞을 지나 마을에서 물었더니 다시 큰 길로 나가서 고갯마루 근처에 가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고 일러준다. 어디를 출발점으로 할 것인지 사전에 조사해서 정하고 왔어야 햇는데 준비 부족 탓이다. 다시 큰길로 나와 고갯마루를 지나니 안내판이 있었다. 월치고개였다.
입구 근처에 커다란 건물을 신축중에 있었다. 러브호텔인가? 관광농원인가? 산행을 시작한 것은 10시경이었다. 날씨가 오후부터 개일 것이라 했다. 아직은 구름이 많이 끼인데다가 안개마져 있어 시계가 좋지 않았다. 길은 괜찮았다. 미끄럽지도 않았고 돌도 많지 않았다. 산책하듯 기분좋게 걸을수 있었다.
아내는 산행에 좋은 날씨란다. 햇볕이 없으니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고 좋은 날씨란다. 난 내심으로 비가 올지 몰라 한편으로 걱정인데….
평범한 산길만 계속된다. 불평했더니 첫 철사다리가 나타났다. 오르고 나니 큰 바위가 있고 바위 주위엔 바위손이 곳곳에 가득했다. 날씨가 좋다면 전망이 좋을 것 같았다. 잠시 쉬었다. 바다도 들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쑥 올라 잘 자라고 있는 솔순이 흔들린다. 솔바람소리다. 멀리서 지나가는 소리로 올라온다. 두 개의 사다리를 다시 올랐다. 사다리를 오르고 나면 전망이 좋은 위치가 나타난다. 오른쪽 어디쯤에선가 목탁소리가 들린다. 가까이서는 휘파람새 소리도 들린다. 천지가 구름과 안개속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휘파람새 소리는 신비를 더한다.
다시 몇 개의 사다리를 오르니 구름다리를 만난다. 어쩌면 속세의 잡다한 것을 벗어버려야만 건널수 있는 다리인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구름다리 길이는 10m정도였고 아래는 5m정도 높이가 될정도인 작은 다리였다. 그러나 이 다리를 건너온 느낌은 산행의 재미에 속한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까지 몇 개의 철 사다리를 하나씩 오르면서 주변의 경관을 내다 볼 수 있는 것은 이 산 특유의 산행 재미일 것 같았지만 오늘은 누릴 수가 없었다.
휴게소는 숲속에 있는 원두막이다. 등산코스가 안내되어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다가 이상하게도 다시 한참 내려갔다. 내려가서 올려다 보니 산이 더른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따로 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오름길을 오른다. 거류산성 못 미쳐서 거류초등학교와 동광초등학교 스카웃 학생들 10여명과 선생님을 만나 시간을 물었더니 11시 50분이란다. 오늘은 시계를 가지고 오지 않아 짐작만으로 시각을 혜아릴 뿐이었다. 10여분 쯤 걸은 후 거류산성 안내판이 있는 산성을 만났다.
‘신라의 침략을 방비하기위한 소가야 때 쌓은 성. 고성평야 동쪽에 위치. 거류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성내로 하여 축조된 성. 성벽은 주로 자연 암반의 절벽을 이용. 그 사이 일부를 돌로 쌓았음. 왜구 방비에도 사용된 것으로 짐작 됨.’
소가야의 중심지인 고성읍성을 생각하면 거류산은 진산이다. 600m정도가 양호하게 남아있었다. 성둘레 1.4km정도 양호한 성 상태는 높이 3m 폭 4m정도였다. 여기서 가파른 산길을 조금 더오르면 고성의 명산 ‘거류산. 1996년 고성군수. 570.5m.’ 표석이 있었다.
염소 세 마리가 정상 부근에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 점심은 내려가서 먹기로 했다. 내려오려니 구름이 조금 걷혔다. 멀리 고성평야가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다시 산성에 닿으니 거류, 동광초등학교 스카웃 학생 7-80명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10여명이 먼저 자리를 잡아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있었다. 藏義寺 쪽으로 길을 잡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안개가 걷혀 아래가 환히 내려다 뵈는 바위가 있어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의사에 닿으니 14시 05분이었다. 입구에 雲海堂이란 간판이 있고 보광전 천불전이 있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물었더니 천 여년전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나 불타버리고 중건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단다. 가장 오래된 것은 느티나무 밑에 아무렇게나 다듬어 만든 돌부처 하나인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시멘트 길을 나와 큰 도로를 만나서 승용차를 세원 둔 곳에 도착하니 3시30분이었다. 거류면을 거쳐서 동해면을 일주하고 돌아오니 여섯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닿았다. 이번 일주일도 쉽게 지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