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스물여덟 살이 된 신은하제국군 원수이자 자유행성동맹 주재 은하제국 고등판무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는 겨울 장미원의 테라스에 앉아 화창한 겨울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늘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함없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늘 즐거웠다.
고등판무관으로서의 임무는 거의 하는 일이 없으니 귀찮을 것도 없었다. 웬만한 사무는 거의 휘하에 있는 사무관들이 처리했기 때문이다. 동맹 정부의 업무에도 관여하지 않는 그이니만큼, 판무관으로서의 업무수행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있는 의례적인 파티 참석이 고작이었다.
휘하의 군사력이 없으니 제국군 원수로서의 할 일도 있을 까닭이 없다. 그의 직접 지휘 하에 있는 24개 연대 - 안네로제와의 결혼 이후 장갑척탄병 2개 연대가 증원되었다 - 의 지상군은 말 그대로 하이네센에서 그를 경호할 병력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의 우주함대가 명목상 키르히아이스의 통제를 받긴 하지만, 만일 그가 일상적인 임무 이외에 자기 마음대로 그 함대를 운용하려고 하면 즉각 페잔으로 보고가 들어갈 것이었다. 아마 그 즉시 오벨슈타인에게서 따끈따끈한 급전이 날아올 것이다.
그런 것들을 빼고 나면 그가 할 일 중에서 이제 남는 것은 그뤼네발트 대공비의 남편으로서의 의무뿐이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는 그 의무를 지난 4년간 매우 즐겁게 수행해 오고 있었다. 14년 동안 꿈꾸던 삶이 이제야 도래했는데, 어찌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지난 4년간 두 부부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들은 라인하르트가 준 결혼선물인 이 겨울장미원에서의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14년 전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의 그 즐거운 생활의 추억을 연상시켰다. 다만, 라인하르트가 없고 키르히아이스와 안네로제가 같은 침실을 쓴다는 두 가지 차이는 있었지만.
두 부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공무라야 파티 참석뿐이고, 영지 관리야 대리인들이 알아서 처리하고 꼬박꼬박 세공을 두 사람의 계좌에 입금했으니 말이다. 이 점에서도 두 사람 모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성실해서 횡령 따위는 하지 않는 대리인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둘은 말 그대로의 무위도식, 얀웬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할 그런 삶을 즐기면 되었다. 정치적인 실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자식은 아직 아들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아직 젊었으므로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크, 큰일났습니다! 원수 각하!”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는 것을 느끼고 테라스에서 막 들어온 키르히아이스에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얼굴이 새빨개진 베르겐그륀 대장이었다. 마침 안네로제가 교외로 외출을 나간 참이라 시끄럽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평소 침착한 성격인 베르겐그륀이 그렇게 허둥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놀랐다.
“화, 황제께서…!”
“황제께서 무슨? 폐하께서는 구제국령을 순시중이시지 않습니까. 왜, 행로를 바꿔 하이네센에 들르시기라도 하신답니까?”
베르겐그륀은 대답하지 못하고 진땀을 흘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키르히아이스의 눈동자에 의혹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폐, 폐하께서, 암살당하셨습니다!”
다음 순간 키르히아이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라인하르트는 순행의 첫 목적지를 마린돌프 백작령으로 정했다. 오랜만에 자기도 장인인 마린돌프 백작이 보고 싶기도 했고, 그에게 외손자인 알렉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황비 힐데가르트도 함께 길을 나섰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친정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그녀가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제 갓 8개월 된 막내딸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마침 딸 클라리벨 - 라인하르트의 어머니 이름이다 - 은 가벼운 감기에 걸려서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탓에 놓고 가야만 했다. 마린돌프 백작령이 페잔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니, 그녀는 마린돌프 백작의 얼굴만 보고 곧바로 돌아올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참극이 생기고 말았다. 마린돌프 백작령에 도착, 막 우주항에 내리려던 브륜힐트의 운항제어장치가 갑자기 제어불능상태에 빠져 폭주했던 것이다. 조타장치와 감속장치가 가동을 중단하자 브륜힐트는 운항속도 그대로 행성의 대기권 속으로 추락했고, 황제 일가는 환영하러 나온 마린돌프 백작 이하 주민들이 지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허공의 재가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딸과 사위, 외손자를 잃은 마린돌프 백작은 그 자리에서 뇌일혈을 일으켜 즉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은 키르히아이스는 현기증을 느껴 비틀거렸다. 하지만 곧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혹이 떠올랐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질문했다.
“베르겐그륀 대장, 그건 사고가 아닙니까? 암살이라고 보기에는….”
“분명한 암살입니다.”
베르겐그륀은 비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브륜힐트가 제어를 상실하기 직전, 마린돌프 우주항의 오퍼레이터가 브륜힐트로부터의 통신파를 수신했습니다. 발신자는…베스타란트 출신의 하사관이었답니다.”
“베스타란트!”
키르히아이스는 벼락에 맞은 듯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베스타란트, 그 이름을 어떻게 잊겠는가?
“…어, 어떻게? 벌써 7년이나 지났어요. 그런데…아직도 생존자가….”
“원수 각하, 7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베스타란트 출신의 생존자는 아직 많습니다.”
베르겐그륀의 표정은 침통했다.
“립슈타트 전역(戰域) 당시 베스타란트 주민 200만 중에서 대략 4만 명이 귀족연합군의 브라운슈바이크 군에 징집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4분의 3은 전사했고, 나머지는 투항하여 제국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 후 평화가 오면서 거의 전부 제대조치 되기는 했습니다만…아무래도 신원조회를 속이고 잔류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았던가.”
키르히아이스는 안락의자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과 라인하르트가 한 순간 잘못 생각한 것 때문에, 그토록 많은 원한이 쌓였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파왔기 때문이다. 다 아문 옛 상처가 갑자기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푹 수그린 그의 귓가에 베르겐그륀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하사관은, 관제탑에서 듣고 있는 오퍼레이터에게 이렇게 절규했다고 합니다. 내 부모와 처자식은 브라운슈바이크와 로엔그람의 꿍꿍이 때문에 산 채로 불타 죽었다, 그러니 네놈들에게도 산채로 불에 타죽는 고통을 느끼게 해 줄 테다…라고 말입니다.”
“…7년의 세월은 원한을 잊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로군….”
비틀거리며 일어난 키르히아이스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베르겐그륀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에는 얼굴빛이 창백해진 안네로제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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