烽山, 경복34산우회 6월 나들이산행(2-2)
(43) 德山亭을 떠난다.
봉산의 정자들은 모임지붕도 있지만 덕산정처럼 맞배지붕 정자도 여러 군데 있다.
(44) 鞍部, 서북병원갈림길
서울市西北病院은 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폐결핵 및 노인∙치매 환자 전문병원이다.
(45) 또 계단 길
(46) 어떤 꽃이 피려나...?
(47) 山岳氣象 觀測所
산악지역의 기온, 바람, 강수량 등을 측정하여 實時間으로 산악날씨를
제공하며 기후변화 등으로 山岳災害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국민의 안전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산악의 날씨는 평지보다 바람은 3배 강하고, 강수량은 2배가 많다고 한다.
높이 10m의 타워에 센서가 설치되어 氣溫, 濕度, 風向∙風速, 降水量,
地面溫度 등을 측정∙수집하여 電送하고 있다.
(48) 꽃 필 준비를 하고 있다.
(49) 소박한 모습의 꽃
(50) 또 데크계단
(51) 高恩亭, 너와지붕이다.
恩平區에 있다고 정자 이름에 ‘恩’이 많이 들어있나 보다.
(52) 구산사거리 갈림길
*龜山洞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모양이 거북 형상을 하고 있고,
산에 거북 받침[龜趺]의 仁祖別墅遺基碑가 있어 ‘구산동’이라고 하며 지금도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산에 거북 모양이 남아 있다고 한다.
(53) 봉산 정상
烽山은 조선시대 평안도 義州에서 평안도∙황해도 해안을 거쳐 高陽 高峰山烽燧에서 신호를
받아 毋岳山 西烽燧臺로 이어주는 제4烽燧路였다.
이곳은 3∙1운동 당시 이웃주민들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은평구에서는 주민들의 쉼터로 2011년 ‘봉산 해맞이공원’을 만들고 烽燧臺와 八角亭을
설치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조성하였다.
(54) 봉산 봉수대
봉산봉수대는 고려 때부터 조선중기까지 국가 基幹通信網으로 烽燧가 있던 곳으로 世宗 때는
西山烽火, 16세기에는 烽峴烽燧라고 했으며, 義州에서 서해안을 따라 전달되는 제4봉수의
直烽 노선으로 高陽의 高峰山烽燧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남쪽 漢陽의 毋岳山(鞍山)
西烽燧로 전달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高陽 江梅洞 醢浦烽燧로 移設되었다. (*醢: 간장 해)
은평구에서는 2011년 ‘봉산해맞이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봉산 봉수대를 복원하였다.
*통신수단의 변천(봉산 정상의 안내판에 있는 내용)
-烽燧制度(三國時代~1895년):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 정보 전달
-擺撥제도(조선시대~1885년): 漢陽에서 지방으로 중요한 편지 전달(*擺: 열 파 *撥: 다스릴 발)
-電信∙電話體系(1885년~현재)
-無線通信서비스(1984년~현재)
(55) 봉산정(烽山亭)
(56) 하이브리드 公園燈
風力(300W)과 太陽光(180W) 발전기로 생산한 電力으로 공원을 밝히고
餘裕電力을 大容量 蓄電池에 저장하여 行事나 非常用 전력으로 이용한다.
(57) 봉산 정상의 展望臺
(58) 봉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北漢山
恩平지역 市街地너머 북한산의 白雲臺지역, 義湘峰稜線-文殊峰-普賢峰과 碑峰 일대가 보인다.
(59) 남동쪽으로 보이는 仁王山-南山-鞍山-白蓮山
사진 왼쪽 끝에 北岳山은 소나무에 가렸으며 仁王山-南山(남산타워)-鞍山이 보이고 視界가
좋은 날씨이면 오른쪽 끝에 淸溪山도 보일 텐데, 안산 앞에 푸른 산은 白蓮山(225m)이다.
(60) 서쪽 高陽市에서는 무슨 團地를 조성하나? 했더니 公共住宅地區이며 오른쪽 산은 망월산이다.
무슨 工業團地를 조성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도와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高陽市 德陽區
香洞洞에 조성한 ‘香洞 公共住宅地區’이다.
*香洞洞은 조선시대 漢城府 高陽郡 下道面 지역으로 1910년 里洞 合倂에 따라 香洞上里와
香洞下里를 합하여 香洞이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神道面 香洞里가 되고,
1992년 高陽郡이 市로 승격되면서 香洞洞으로 개칭되었고, 1996년 區制 실시로
德陽區 관할이 되었으며, 香洞洞은 法定洞으로 行政洞인 花田洞에서 관할하고 있다.
(61) 서쪽으로 보이는 望月山
망월산 너머에는 開花山-傍花大橋-桂陽山-幸州山城이 희미하게 보인다.
(62) 烽燧臺에서, 2명이 ‘行方不明’이다.
(63) 봉수대에서 다시 한 번 찰칵!
(64) 봉산정에서
(65) 지금 막 피어나고 있는 밤나무 꽃
(66) 벌개미취
(67) 벌개미취
(68) 繁殖을 위한 준비
(69) 亭子와 체육시설을 지난다.
봉산은 높지 않고 능선도 부드러워서인지 亭子와 체육시설이 여러 군데 있다.
(70) 지칭개
(71) 西五陵路 벌고개로 내려가는 길
(72) 벌고개를 향하여….
(73) 龜龍茅亭을 지난다. (*茅: 띠 모)
(74) 길옆의 고압송전철탑
(75) 내려가면서 뒤돌아 본 계단
(76) 벌고개 공터, 오늘 산행의 終點이다.
벌고개에서 서오릉로를 건너 계속 가면 앵봉산을 지나 구파발역에 이른다.
(77) 對戰車障碍物인 落石 철거작업
도로를 확장하고 대전차장애물을 철거하면 敵 戰車가 서울로 빨리 진격할 수 있는 機動路를
제공해 주는 격이다.
*道路의 交通疏通도 중요하지만 國家防衛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調和되는 接點을
찾았으면 좋겠다.
(78) <落石 철거작업> 안내 플래카드
(79) 西五陵路 벌고개, 서울 恩平區-경기 高陽市 경계
벌고개를 넘어가면 高陽市 龍頭洞 西五陵路 오른쪽에 高陽 西五陵(사적 제198호)이 있다.
*高陽 西五陵은 九里 東九陵(사적 제193호) 다음으로 규모가 큰 朝鮮王室의 王陵群으로,
5基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敬陵: 世祖의 世子(諡號 懿敬) 璋(追尊王 德宗)과 妃 昭惠王后 韓氏의 陵
-昌陵: 德宗의 동생인 제8代王 睿宗과 繼妃 安順王后 韓氏의 능
-翼陵: 肅宗王妃 仁敬王后 金氏의 능
-明陵: 제19代王 肅宗과 繼妃 仁顯王后 閔氏와 제2계비 仁元王后 金氏의 능
-弘陵: 英祖 元妃 貞聖王后 徐氏의 능
境內에는 5능 외에 明宗의 첫째 아들 順懷世子의 順昌園이 있으며, 肅宗의 後宮 張禧嬪의
大嬪墓도 있는데 원래 廣州 眞海村(현 廣州市 五浦邑)에 있었으나,
1969년 西五陵 경내로 移葬하였다.
(80) 戰鬪警察隊 막사
(81) 西五陵路 벌고개, 버스정류소에서
*세조의 장남 懿敬世子가 夭折하자 西五陵으로 葬地를 정하고 地官이 지금의 敬陵 자리를
잡고 明堂이나 땅 속에 벌[蜂]집이 있으니 자기가 떠나고 한 참 뒤에 땅을 파게 하고
漢陽으로 떠났는데 먹구름이 몰려 오자 일찍 땅을 팠더니 벌들이 몰려나와 이 고개를
올라가고 있는 지관을 攻擊하여 卽死하였다.
이후 벌의 집자리를 王陵으로 잡은 地官이 ‘벌에게 罰을 받은 고개’라고 ‘벌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82) 지하철 6호선 鷹岩驛, 신사오거리
*서울에는 신사동이 은평구와 강남구 두 군데에 있다.
-恩平區 신사동은 옛날 이 마을에 새 절[新寺]이 있었으므로 ‘新寺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江南區 신사동은 이 지역에 있던 漢江邊 새말[新村]과 사평리(沙坪里)의 앞 글자를 따서
‘新沙洞’이라고 이름 붙였다. 새말은 漢南大橋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사평(沙坪), 즉 ‘모래 벌’은 한강변에 모래가 펼쳐져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83) 新寺오거리에 있는 <Cafe 데일리 하우스>
(84) 데일리 하우스에서
(85) 데일리 하우스에서
(86) 데일리 하우스에서
(87) ‘特食提供’
(88) 歸家하는 길가에 피어있는 좀씀바귀꽃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