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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나 사골 국물에 닭·굴·대구·전복·매생이… 이번 설날엔 이색 떡국 어때요?
설을 대표하는 음식, 떡국은 한민족에게 음식 이상의 의미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 했고, 그래서 어릴 때는 떡국을 더 먹겠다고 떼쓰기도 했다. 떡국은 소고기나 사골 국물에 끓이는 것으로 흔히 알지만, 굴·닭·대구·전복·매생이 등 지역마다 사용하는 재료가 다양하고 다르다. 흔치 않은 떡국을 맛보러 광주광역시와 경남 통영·거제로 '떡국여행'을 다녀왔다. ▲ 전라도 닭장떡국. 간장에 조린 닭고기로 끓인다. "꿩 대신 닭이라잖아요. 꿩이 귀하니까 닭으로 떡국을 끓인 거죠." 광주 한식당 '은강' 주인 이동명(65)씨가 닭장떡국에 대해 설명했다. 새해는 정유년 닭의 해. 닭고기로 끓인 떡국이 있다고 해서 광주로 왔다. 닭장떡국이라, 이름부터 생소하다. 하지만 전라도에선 꽤 흔한 떡국이라 한다. 이동명씨 설명엔 역사적 근거가 있다. '떡국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는 원래 꿩고기가 으뜸이었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풍속에서 배워온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놀이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 그리고 꿩고기를 소로 넣은 만두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특별하게 매사냥을 하지 않으면 꿩고기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닭고기로 떡국 국물을 내기도 했다.'(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이씨의 아내이자 식당 주방을 맡은 김덕자(63)씨는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대로 끓여 낸다"고 했다. 그가 닭장떡국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 닭고기를 간장에 넣고 장조림 하듯 졸인다. 간장에 물을 섞어 너무 짜지 않도록 하는 게 포인트. 바특하게 조려지면 차갑게 식힌다. ▲ 광주 ‘은강’ 김덕자씨가 담근 간장. 닭장떡국 맛의 핵심이다. 닭고기와 껍질에 다량 함유된 콜라겐이 빠져나와 묵처럼 굳는다. 이걸 냉장고 등 차가운 곳에 두었다가 필요한 만큼씩 덜어서 물을 붓고 떡국떡을 넣어 끓인 뒤 달걀지단·파·김가루 같은 고명을 올리면 끝이다. 만드는 법이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맛은 간단치 않다. 국물이 걸쭉하진 않지만 맛은 깊이가 있고 복합적이다. 닭 누린내 따위 잡내가 없고, 먹고 나면 입안이 깔끔하다. 김씨는 “장맛이 중요하다”며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을 써야 이 맛이 난다”고 했다. “닭장에 미역국을 끓여도 맛나요.” 닭장떡국 8000원. 은강은 본래 한정식집이다. 1인당 1만5000~4만5000원(3인분 이상 주문 시), 닭백숙 5만5000원, 닭개장 8000원. 광주 동구 제봉로 140번길12-5, (062)227-5986 ▲ 거제 외포항에서 맛볼 수 있는 대구떡국. 국물이 사골처럼 뽀얗지만 걸쭉하지 않고 가볍다. 대구에서 먹는 떡국이 아니라 생선 대구로 끓이는 떡국이다. 경남 거제, 마산, 진해 등 대구가 많이 잡히는 지역에서 먹는 겨울 별미다. 거제 외포항에 지금 가면 걸대에 널어 바람에 말리는 거대한 대구들이 장관이다. 외포항 주변 식당들은 겨울이면 대구떡국을 대부분 낸다. 분명 생선으로 끓인 국물이건만 사골국처럼 뽀얗다. 이리(수컷의 정소) 때문이다. 이리는 꼬불꼬불 내장처럼 생긴 흰 덩어리다. 대구떡국에는 대구의 살과 함께 이리(수컷의 정소)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이리에서 우유 같은 국물이 흘러나와 떡국을 크림처럼 하얗게 물들인다. 빛깔만 크림이 아니라 맛도 크림처럼 고소하다. 이리 때문에 대구는 생선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컷이 암컷보다 더 비싸다. 눈처럼 흰 대구 살은 씹을 틈도 없이 포슬포슬 부드럽게 녹는다. 쫄깃한 떡국떡과 훌륭한 대비를 이룬다. 외포항은 주말마다 대구떡국과 대구탕을 먹으려는 인파로 북적댄다. 대구가 인기를 끌자 외포항 식당에서는 대구를 회와 찜으로도 내놓고 있다. 아쉽게도 회와 찜을 맛보면 대구는 탕을 위해 최적화된 생선이란 느낌이 든다. 회로 먹기에는 살이 퍽퍽하다. 광어나 도다리 같은 차진 단맛이 없다. 일부 식당에선 대구를 며칠 숙성시킨 다음 회로 내기도 한다. 숙성 과정을 통해서 감칠맛이 증가한다. 대신 한국인이 선호하는 차지고 쫄깃한 식감은 사라진다. 대구찜은 회보다는 낫지만, 다른 생선으로 요리한 찜보다 훨씬 낫다고 하기는 힘들다. 외포항에는 식당이 열 곳 정도 있다. 식당마다 대구탕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상향평준화돼 솜씨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대구떡국 1만원, 대구탕 1만5000원, 대구회 8만·10만·12만원짜리가 있다. ▲ 통영 ‘멍게가’에서 미리 주문하면 끓여주는 물메기떡국. 맑고 시원한 국물과 쫄깃한 떡국 떡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굴떡국은 우리나라 굴 생산 중심인 통영에서 먹는다. 통영뿐 아니라 남해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선 두루 먹는다. 굴을 국물의 기본으로 잡되 매생이를 넣어 시원한 바다 맛을 더욱 불어넣기도 하고, 소고기와 함께 끓여 감칠맛을 더하기도 한다. 통영 ‘팔도식당’ 굴떡국은 진하고 풍부한 떡국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말이 굴떡국이지 들어가는 재료가 굴 말고도 엄청 많다. 냄비에 굴과 소고기, 바지락을 듬뿍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고소한 향이 나면 멸치·다시마·무를 우린 육수를 붓는다. 팔팔 끓으면 떡을 넣는다. 떡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파·달걀을 넣고 휘휘 젓는다. 그릇에 담고 김가루와 참깨를 뿌려 낸다. ▲ 굴떡국. 통영 등 남해안 지역에서 즐겨 먹는다. 먹기 전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국물이 사골처럼 걸쭉하다. 굴·바지락·멸치·다시마 등 해산물에 소고기, 무가 더해지자 감칠맛이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증폭한다. 이 진국 한 그릇이 고작 6000원이라니, 황송하기까지 하다. 도시 사람들은 이맘때면 도다리쑥국이 먹고 싶어서 통영으로 온다. 팔도식당을 40년 동안 운영해온 최태선(69)씨는 “쑥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며 “1월 26일쯤부터 도다리쑥국(1만5000원)을 내려고 한다”고 했다. 담백한 도다리살과 향긋한 해쑥의 환상적 조합을 맛볼 날이 머잖았다. 통영 무전동 987-6, (055)642-6477 ▲ 통영 물메기떡국. 맑고 시원하다. 통영 ‘멍게가’에서는 겨울철 미리 주문하면 물메기떡국(1만원)을 끓여준다. 이 집 물메기떡국은 팔도식당 굴떡국과 맛의 대척점에 있다. 굴떡국이 풍성하고 진한 맛이라면, 물메기떡국은 물메기 단 하나만으로 맑고 담백하게 끓여낸다. ▲ 통영 ‘팔도식당’에서 굴떡국에 넣는 풍성한 식재료들. 흐물흐물한 물메기를 큼직하게 토막 쳐 무 몇 조각과 함께 맹물에 끓이면 끝. 멸치를 삭혀서 끓여낸 다음 체에 국물만 받은 어(魚)간장 약간으로 간 한다. 고명도 경남 사투리로 ‘몰’이라고 부르는 모자반(해조류의 일종)과 가늘게 썬 달걀지단이 전부다. 향토음식연구가 겸 사진가 이상희씨는 “김가루나 참깨 등 향이 진한 재료를 올리면 물메기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가릴 수 있다”고 했다. 물메기떡국을 담은 국사발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국물이 투명하다. 그 안에 떡국떡만큼이나 뽀얀 물메기살이 담겨 있다. 보기엔 밍밍할 것 같지만, 국물은 맑으면서도 진한 모순적인 맛이다. 청정한 통영 바다가 몸 안으로 퍼지며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멍게가는 멍게 비빔밥(1만원)·된장찌개(1만원)·무침(1만5000원)·회(시가) 등을 내는 통영 유일의 멍게음식전문점이다. 멍게요리세트(2만3000원), 비빔밥세트(1만3000원)도 있다. 통영 항남동 239-42, (055)644-7774 ▲ 개성식 조랭이떡국 / 조선일보 DB 충청도에는 ‘날떡국’이 있다. ‘생떡국’이라고도 한다. 떡국떡 대신 쌀가루 반죽을 수제비처럼 그대로 육수에 넣어 끓인다. 쌀을 잘게 빻아 따뜻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한다. 둥글게 굴려 길게 만든 다음 어슷하게 썬다. 진한 멸치 육수에 끓인다. 일부 지역에선 여기에 미역을 넣기도 한다. 다슬기를 넣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이북 지역에서 설에 먹는 만둣국과 이남의 떡국이 만난 떡만둣국을 먹는다. 초당 두부가 유명한 강릉에서는 두부를 만두소로만 활용하지 않는다. 떡만둣국을 끓일 때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맛과 영양을 더한다. 개성 조랭이떡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조롱박처럼 가운데가 잘록한 조랭이떡으로 떡국을 끓인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작은 눈사람처럼 생겼다’고 설명해야 더 이해가 빠를 듯하다. 누에고치를 닮았다는 이들도 있다. 긴 떡을 대나무 칼로 잘라 다시 가운데를 칼로 살살 문질러 조롱박 모양으로 만든 떡이다. 아이들 설 저고리 끝에 액운을 막기 위해 걸고 다니는 조롱박에서 왔다는 설(說), 누에고치처럼 실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며 만들었다는 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사람들이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에게 한을 품고 그의 목을 비틀며 떡을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타원형이 칼질 쉽고 더 푸짐해보여 떡국떡을 동그랗게 자르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직각보다 사선으로 칼질하기가 더 쉬운 데다, 어슷썰기로 하면 떡국떡이 훨씬 커져 푸짐한 느낌이 들기 때문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 동일한 가래떡을 동그랗게 썰어보니 떡국떡 지름이 2.5㎝인 반면, 사선으로 타원형으로 썰면 긴 쪽의 지름이 5~6㎝로 2배 이상으로 커졌다. ▲ 옛날식으로 동그랗게 썬 떡국 떡(왼쪽)과 요즘식으로 길쭉하게 썬 떡국 떡 / 조선일보 DB 동그란 떡국떡은 파는 곳이 거의 없다. 동그란 떡국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고 싶다면 직접 썰어야 한다. 가래떡을 다용도실이나 난방하지 않는 방 등 서늘한 곳에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 두면 잘 썰린다. 가래떡 표면뿐 아니라 속까지 단단하게 굳히는 게 포인트. 맛있는 떡국을 끓이려면 좋은 떡을 구하는 게 핵심이다. 서울 망원동 '경기떡집' 최대한씨는 좋은 떡을 고르는 비결로 "빛깔을 보라"고 했다. "좋은 쌀로 지은 밥과 같은 빛깔이 나는 떡이 맛있지요. 묵은쌀로 만든 떡은 거무스름한 작은 점들이 박혀 있어요." 설을 지내면 먹고 남은 가래떡이 생기게 마련. 요즘처럼 추울 때는 상온에서 이틀~사흘쯤 둬도 괜찮다. 냉동할 경우 가래떡은 하나씩 랩으로 포장해 지퍼백에 담아 냉동한다. 해동할 때는 끓는 물에 가래떡은 3분, 떡국떡은 1분 데친다. 촉촉하면서 말랑말랑 갓 사온 떡처럼 맛있다. 떡이 굳는 걸 막으려고 참기름을 바르기도 하나, 별 효과가 없을뿐더러 참기름이 산화해 좋지 않다. ● 글=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mail : gourmet@chosun.com ☞ 김 기자의 블로그 ☞ 김 기자의 다른글 더 읽기 ● 사진=김종연 조선일보 기자 ● 스크랩출처 / 온라인 조선일보 /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5/201701250235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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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늘, 아름다운 날 원문보기 글쓴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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