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Seoul World DJ Festival
GO TO THE NEVERLAND 류재현!
류재현 총감독(이하 류감독)을 생각하면 작은 체구와 살짝 쳐진 눈 꼬리에 걸려있는 인자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조용히 앞에 서서 열정적인 강의로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끝나면 다시 조용히 상상공장으로 돌아와 즐겁고 유쾌한 일들을 꿈꾸고 계획한다. Hi Seoul Festival 실행위원으로, Seoul World DJ Festival 총감독자로 있었다. 그밖에도 물론 이와 같은 국내에 축제의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문화 기획가'라는 이름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어울린다. 인터뷰를 통해 보따리처럼 꽁꽁 묶어두었던 그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 상상공장의 공장장, 류재현 총감독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를 5자로 표현하기
다. 중. 인. 격. 자. 내 안의 여러가지 능력과 여러가지 색깔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여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또 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감독님은 10점 만점에 몇 점?
당신은 내가 일을 할 때 내가 가진 것의 몇 퍼센트나 발휘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내가 가진 것의 20, 30% 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내 잠재력은 무한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런데 그 정도 밖에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점수로 매기자면 2점이나 3점을 주고 싶다.
-어렸을 때 주로 무얼 하고 놀았나?
어렸을 때 성북동에 살았는데 그 당시 성북동은 자연과 가까운 곳이었다. 냇가에서 가재도 잡고 뒷산에 올라가 쑥도 캐고, 그리고 주로 운동하고 놀았다.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혈액형은?
A형
-요즘 듣는 mp3 player의 list는?
주로 오디오를 통해 듣는데 일렉트로닉도 듣고 재즈도 듣고 클래식도 듣고,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이라면 다 듣는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떻게 해소하는가?
잠을 잔다. 그리고 일어나서 만화책을 본다.
-1200원 잔고였던 시절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 잔고는 얼마나 되나?
그때보다 100배?1000배?
-100배면 12만원, 1000배면 120만원인데?
그럼 1000배보다 더 많다. 그때보다 1000배 이상 발전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웃음)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웃는 얼굴을 볼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대를 들어가려 4수를 했다고 했다. 왜 디자인공부가 하고 싶어졌나?
그냥, 그냥 하고 싶었다. 아무 이유 없이 디자인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디자인을 공부하면 재밌을 거 같았고 그리고 그 당시, 물론 지금도 그 분야는 미래성을 가지고 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성적은 어땠나?
들쭉날쭉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점수를 잘 받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점수가 안 좋았다. 졸업하던 학기에는 F가 2개나 있었다. 아마 2.96이라는 점수를 받고 졸업했던 것 같다. 일반 대학교와 같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잘한 편이었다.
나는 이따금 생각했다.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지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알퐁스 도테_ <별> 中)
-8년간 첫사랑과 연애했다고 들었는데, 첫사랑치곤 찐하다. 어땠나?
8년 사귀면서 손도 안 잡아봤다. 어떤 이는 그래서 여자가 떠나간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했지만 사람마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나. 군대에 있어서도 계속 그 여자만 생각했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때 그녀와 난 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스 도테의 별 같은 사랑을 한 것 같다.
-헤어진 후에 만나거나 연락해본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우리 둘을 아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내가 그녀를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내가 그녀를 한참 좋아할 때 그녀는 키도 나보다 크고 마르고 정말 예뻤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해서 살도 찌고 평범한 아줌마가 됐다고 하더라. 그녀는 주변사람들에게 재현오빠의 첫사랑을 깨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만나지 않았으면 하더라. 아 얼마나 예쁜가. 그런데 나는 헤어짐도 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꼭 옆에 두고 가까이 봐야 사랑인가? 이별도 사랑이라고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 그런가? 난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꼭 내 옆에 두고 싶다
꼭 나이가 먹는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개인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어려서 깨달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죽는 날 까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애인이 있나?
있다! 그것도 하나만 있는 당신들과 달리 난 아주 많이 있다.
*류감독을 인터뷰 중인 취재팀(왼쪽부터: 박지애, 박진아,류감독, 박은지, 이재훈)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 너머 꿈’이 있으면 위대해진다.
-미대에서 기획자의 길을 걸었던 이유,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졸업하기 한 해 전, 휴학을 하고 '세종문화' 라는 광고사관학교에서 AD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대접받고 일하는 광고 대행사 PD를 보면서 내가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때광고 PD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998년, '조디 이야기'라는 모임을 만들고 파티를 기획했던 것이 기획자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미대에서 문화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흔한 행로는 아닌데, 그때 감독님을 만류하던 주변인들이나 혹은 비뚤어진 시선은 없었나?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를 않으니까 상관없다.
-문화기획자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인가, 최종 목표인가?
최종목표는 아니다. 지금은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갈 수도 있고 밭을 매는 농부가 될 수도 있다. 최종의 무엇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때 그 순간에 즐거운 일을 할 뿐이다.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에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나?
난 매너리즘도 하나의 에너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다른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기획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지금 당신이 문화기획자를 꿈꾸고 있다면 특정한 분야의 마니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강의를 하면서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자주 하던데,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꿈을 당장 이루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꼭 지금 당장 꿈을 이루려고 하는가. 그렇게 하려는 생각들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직하고 있다면 나중에 가서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설령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할지라도 꿈을 갖고 죽는다면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난 가끔 '지금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생애에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라 라 라 라 라 (이상은_ <비밀의 화원> 中)
-'101techno'사이트가 상상공장의 전신이라고 하던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화집단을 꾸려오면서 고집해 오는 것, 철학 혹은 신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
-어떠한 사람들이 상상공장에 발걸음 해주길 바라는가.
나와 상상공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내가 일일이 골라내지 않아도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오고,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제 발로 나가준다. 난 그런 부분이 또 고맙다.
-상상공장의 어린친구들과 나이 차이는 어떻게 극복하나?
나는 나이를 정해두는 것이 너무 싫다. 나이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똑같은 나이라고 모두 같진 않다. 나이가 같아도 나보다 성숙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난 내 나이를 잊고 사니까,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지. 그래서 나이없는 날도 있지 않은가? (웃음)
-축제를 기획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경우는 언제였는가.
2001년 당시는 여러 가지로 암흑기였다. CLUB DAY를 함께 해왔던 클럽 업주들에게 내쳐지기도 하고, 정말 가진 돈이 없었다. 하루는 친구랑 홍대에서 누가 공짜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많이 찾나, 이런 것까지 할 정도였다. 게다가 2년 뒤, 'WINTER RAVE FESTIVAL' 이라는 축제를 스키장에서 기획했었는데 크게 실패했다. 생각해 봐라. 스키를 밤새 타고 아침 일찍 또 스키를 타러 나가기도 힘든 이들이 축제에 오겠는가. 그리고 스키를 타러 오는 대부분은 여유 돈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 스키장 밖 기타 지역에서 축제를 즐기러 스키장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점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가장 크게 실패한 축제로 기억된다.
-현재 21cRPM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
상상공장에서 함께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알아줬으면 좋겠고, 그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상상공장의 계획
돈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나와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상상공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적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다. 머릿속에 여러가지 계획되어 있는 것들은 많다.
-그럼 돈을 벌 구체적인 계획은 있는가?
지금도 축제기획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그런 일 하면서 돈 벌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감독님의 인터뷰를 보면 Seoul World DJ Festival(이하 SWDF)를 '기획의 결정체'라고 표현하던데 왜 그렇게 생각 하는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음악 듣고 춤추고, SWDF의 어떤 DJ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매년 SWDF가 열리는 시기에 사람들이 조건반사처럼 SWDF에 오고 싶어 하도록 만들고 싶다. 그런 사람들과 밤새 음악을 듣고 춤추는 것,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SWDF에 참여한 뮤지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션은 누구인가.
이상은 씨와 내귀에도청장치의 이혁 씨를 좋아한다. 두 뮤지션 모두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다. 특히 이상은 씨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SWDF에 참가하려고 한국까지 온다. 일본에서 축제기획자들이 매해 같은 축제에 꾸준히 함께하는 뮤지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을 듣고 이상은 씨가 대답했단다. 한국에는 SWDF에 매년 참여하는 이상은이 있다고.
-이상은 씨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
평소에 이상은 씨 보면서 정말 친해지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클럽에서 춤추다 처음 만났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인사 나눌 수 있었다.
-어떠한 기준에서 SWDF에 참가할 뮤지션들을 초대하는가?
딱히 기준은 없다. 친구들이 알아서 찾아오기도 하고, 내가 부탁하기도 한다. 나오지 않으려야 안 나올 수 없는 친구들도 있고.
-SWDF에 참가하는 뮤지션들의 선곡과정에도 참여하나?
그렇진 않은데,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노래는 잘 안 불러준다. 특히 난 이상은씨의 비밀의 화원을 좋아하는데 불러주지 않더라.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 류감독
마지막으로 70대가 되면 어떨지 상상해보라는 주문에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더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대답한 류감독. 늦은 시각에 진행했던 인터뷰였지만 류감독은 시종일관 해맑은 웃음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바라본 그는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팬처럼 자신의 꿈을 찾아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가 꿈을 향한 모험을 계속하여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 4. 1
취재 / 박은지 (21c RPM 6기 취재팀, swdfedit@hanmail.net)
사진 / 이재준(21cRPM 6기 취재팀)
에디터 / (21cRPM 취재팀)
http://cafe.daum.net/ideamasters |
첫댓글 앗 위 그림에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 무엇인가요? 끝이 안보여서 궁금해요 !
그러게요
너무 와닿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