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 단말마 :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석탄기 : 고생대 중엽으로 이 시기 후반에 파충류·곤충류가 출현하였다.
1연은 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한 것이다. 산의 어깨 부분에서 허리 부분까지 길게 뻗어 내리는 폭포가 있다. 시인은 이 산을 의인화 하여 ‘나’라고 표현했으며, 폭포는 자신의 등판을 길게 내리친 ‘칼자욱’(칼자국)으로 형상화했다. 따라서 폭포는 산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의 흔적이다. 산이라는 존재, 혹은 ‘나’라는 존재,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가 가지는 비극성을 형상화한 연이다.
2연은 폭포의 빠른 속도감과 그 때 내는 엄청난 소리를 형상화한 구절이다. 그 속도감을 ‘질주하는 전율’로, 그 소리를 ‘단말마’로 형상화해 내었다. 폭포가 존재하는 양상은 빠른 속도감과 엄청난 소리인데 이를 통해 시인은 존재의 치열성과 전율성을 보고 있다.
3연은 다시 상승을 꿈꾸며 결국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폭포의 떨어짐을 형상화하고 있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면서도 늘 새로운 상승을 꿈꾸는 인간 존재의 모순적 비극성을 ‘장수잠자리의 추락’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4연은 폭포가 아래로 떨어져서 이루는 무수한 물보라의 모습을 형상화한 구절이다. 그것을 시인인 ‘맹목의 물보라’라고 했다. 그냥 ‘물보라’라고 하지 않고 ‘맹목의 물보라’라고 한 까닭은, 추락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어떤 목적도 없이 추락만 해야 하는 삶이 폭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삶의 처절함을 폭포에서 발견해 낸다.
5연은 수미쌍관으로 1연의 내용을 반복 변조해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폭포의 멀리서의 모습, 떨어지는 속도, 소리, 떨어질 때의 무수한 물보라의 모습을 ‘칼자욱, 질주하는 전율, 단말마, 맹목의 눈보라’ 등 인간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삶과 관련이 있는 용어들과 관련시킴으로써 인간의 실존적 삶의 처절성과 비극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질주하는 전율 속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맹목의 물보라로 부서져 버리는 폭포의 모습은 죽음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이다. 때로 장수잠자리처럼 비상을 위해 벼랑(산)은 벼랑 위에 다시 벼랑을 치솟게 하지만, 그 상승은 더 치열한 추락을 위한 상승이다.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을 폭포의 속성으로 제시한 것이 이 시의 주제이다. 즉 폭포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의 비극성과 처절성을 보고 있다.
주제: 인간 존재의 비극성, 삶의 치열성 혹은 처절함.
‘폭포’를 비유한 보조 관념: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국, 이억 년 묵은 이 칼자욱(폭포의 전체적 모습), 한 마리 장수 잠자리의 추락(떨어지는 폭포),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물보라를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
김수영의 폭포와 차이점: 김수영은 폭포를 통해 사회적 자아의 정의로운 모습을 보는 데 반해 이형기는 폭포를 통해 실존적 개인적 자아의 비극적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