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닥과 델리를 홀로 걷다.
2006년 8월 22일.
라마유르를 막상 떠나려 하니 동자승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오랜 시간을 거슬러 내 행자생활을 보듯이…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가고, 굽이굽이 돌았던 길을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고, 계곡을 지나고 다시 언덕 오르길 반복하며, 작은 마을도 지나고 푸른 벌판이 제법 어우러진 큰 마을도 지나길 또 한참한 후에,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 개울가의 식당에 이르렀다. 잠시 땀을 식힌 후 컵라면 진수성찬으로 여유롭게 늦은 점심을 하였다. 저 아래 흐르는 잿빛 강물을 보다가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계곡의 차고 맑은 물을 대하면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순간 이동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얼음장 물에 발을 담그니 여행 중에 일어나려던 미망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과일 몇 개를 사다가 만난 여학생들의 천진한 미소는 내가 라닥에 서 있음을 일깨워준다.
또 다시 굽이굽이 돌고 돌아 오후 나절에 다다른 곳은 가장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곳, 바로 알치(Alchi) 곰파다. 알치 곰파는 레에서 70km 떨어진 고산지대의 오지에 있다. 10세기 말 린첸 장포(Rinchen Zanpo) 대사가 건립했으며, 라닥 지역의 다른 곰파들과 달리 평지에 세워져 있다. 지형상 워낙 오지인 데다 평지에 세워져 이슬람교도들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알치 곰파의 벽화는 라닥 불교 미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티베트 양식과 결합된 카슈미르 양식이 남아 있는 유일한 사원이기 때문이다. 알치의 6개 법당에 남아 있는 카슈미르 양식 벽화들은 정교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아잔타 미술과 견줄 만하다. 보존 상태까지 좋아서 더욱 의미가 있는데, 오래된 프레스코화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로는 엽서 판매의 수익을 위해서 곰파 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알치 곰파 안에 있는 6개 전각 중에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것이 숨첵(Sumtsek)전이다. 독특한 3층 건물인 숨첵전에는 관세음보살상과 1,000여 구의 소형 좌불상 등 아름답고 선명한 벽화와 불상이 있다. 건물 3층으로는 올라갈 수 없으나 3층에 그려진 만다라를 비롯한 아름다운 벽화는 아래층에서 볼 수 있다.
알치의 분위기는 정겨운 시골 마을 분위기다. 강가에 위치한 것도 그렇거니와 마을의 가게나 밭이나 카페 등이 어우러진 것이 다른 곰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는 찻집에 들려 입맛에 맞는 차를 한 잔씩 즐겼다.
알치를 떠나기는 아쉬웠지만 마지막 일정을 위해 레로 돌아왔다. 어제 옛 왕궁을 둘러보면서 전통공연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 공연이 오늘 밤에 있기 때문이다. 500불 정도면 공연팀을 부를 수 있다기에 내가 부담하기로 하고 호텔로 오라고 한 것이다.
저녁공양을 마친 후, 차와 과일을 준비하여 호텔의 모든 이들을 청했다. 그리고는 한바탕 어울림의 장을 펼쳤다. 1시간 이상 진행된 전통 무용과 음악은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뜻밖의 공연을 보게 된 서양 사람들도 흥에 겨워했다. 그렇게 라닥의 마지막 밤은 저물었다. 물론 마지막 밤까지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여전히 있었다.
2006년 8월 23일
여행 중엔 긴 잠을 자지 못하는지라, 새벽에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신다. 오늘은 라닥을 떠나야 하기에 지난 시간들을 거꾸로 돌려보며 혼자 즐긴다.
이윽고 아침이 밝아 꾸린 짐을 로비로 내어 놓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내달리려면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분주하게 보여야 되는데, 호텔이 그저 조용한 것이다. 얼핏 스치는 예감이 있어 인도출신 가이드가 묵는 방을 두들기니 대답이 없다. 벌써 체크아웃 했나싶어 방문을 열었더니 이게 웬일인가. 방에는 어지럽게 술병이 너부러져 있고, 가이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밤이라고 일행 몇 사람과 파티라도 했나보다. 해발 3천 5백이 넘는 라닥을 얕본 것이다. 욕탕에 가서 찬물 수건을 만들어 가이드 얼굴에 덮었더니 겨우 의식을 회복한다.
“빨리 일어나! 공항 가야지!”
가이드는 비로소 상황이 파악되나보다. 허겁지겁 서둔 결과 우리는 겨우 비행기 마지막 탑승객이 될 수 있었다.
델리 공항에서 문제가 터졌다. 우리의 큰 가방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라닥을 오가는 작은 비행기는 화물이 많을 때 늦게 도착하는 화물을 싣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마지막에 탑승하면서 바로 그 경우에 해당되었던 모양이다. 다음날에나 가방이 도착한다니 한국에서 찾아야 한단다. 덕분에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가벼운 몸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끝내기 여정은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델리의 간디 묘역을 둘러보고, 가까이 있는 간디기념박물관에 갔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 이곳저곳을 보다가 기계가 있는 방의 맨 구석에 판화 하나를 보게 되었다. 간디가 지팡이를 짚고 혼자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WALK ALONE이라고 써진 그 판화 사진을 찍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러면서 히말라야를 넘는 달라이라마가 보이고, 먼지 풀풀 날리는 길 위에 홀로 걷는 붇다가 보였다. 겨울밤 국제시장 어두운 거리를 울리는 아버님의 기침이 들리고, 은사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영구암을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길 위를 내가 홀로 걷고 있었다. 전혀 슬프지는 않은데 눈물은 계속 흐르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비가 뿌렸다.

[내 행자생활을 기억나게 한 라마유르의 동자승]

[올랐던 길을 다시 굽이치며 내려간다]

[색이 다른 두 강물이 만나는 인더스의 상류]

[길에서 만난 라닥 여학생들의 천진스런 미소]

[맑고 얼음같은 계곡물을 보며 진수성찬 점심을 한 식당]

[풍경화와 같은 알치의 자연풍광 한 장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게 하는 알치 건물 외관]

[법당의 외실에서 본 내실의 문-2중 구조의 법당]

[첫 눈에 반하게 하는 알치의 벽화, 그 신비스러움]

[알치의 조각상은 매우 장엄하다]

[옛날의 어느 시간에 머무는 느낌이 든다]

[장엄함의 극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벽화]

[저절로 예경하게 하는 그런 힘이 알치의 불화에는 있다]

[라닥의 전통복식을 한 여자 무용수]

[라닥의 전통문화를 공연한 단원들의 모습-전체 단원 공연 중]

[호텔 투숙객들과의 마무리 흥풀이]

[일견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레의 밤풍경]

[인도인들의 순례지가 되어 있는 델리의 마하트마 간디 묘역]

[간디기념박물관의 입구]

[마지막 카메라의 장면이 된 간디기념박물관의 판화]
첫댓글 스승님 목이 메이는데 스승님의 눈물 대목에선 환희심?인지 웃어집니다_()_ 컵라면 진수성찬에 마음뺏긴 저를? 깊이 뉘우치고 있어요_()_
각자의 느낌은 각자의 몫이 되겠지요? 터벅거리고 걷노라면 그 의미 또한 알 게 될 것이고--- ^^
5년이란 세월이 지난 라닥 델리 여행기을 너무나 자세히 글을 올려 주시니, 읽으면서도 제가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듭니다 첫눈에 반해 버린 알치의 벽화.오염 되지 맑은 계곡물 자연의 신비스럼움을 감탄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라닥을 다녀온 이들은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상태로 오래 가는 것에 놀라곤 한답니다. ^^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 는 말을 생각합니다.넓고 크고 깊은 의미에서,
인생을 사랑하고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으셨기에 , 스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그윽한 감동의 향기가 느껴져옵니다. 간디님의 판화 앞에서 느끼신 그 마음을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각자 자기 안으로부터 나오는 향기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
"WALK ALONE", 모든 인연이란 잠시일뿐 어쩌면 철저하게도 인생이란 홀로 걷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깨침도 사랑도 행복도 아니 정반대의 경우도 맛보고 겪으면서 홀로 가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自燈明, 法燈明하라고 가르침을 주셨고요. 감사합니다.( )( )( )
단순 명료하게 홀로 걷다. ^^
인도여행이 인연이 닿지 않아 못내 아쉬웠는데 스님의 여행기로 인도를 다녀온듯 합니다."WALK ALONE"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웬지 마음이 정화되는 듯 합니다.스님 인도 성지순례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눈앞에 온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또 기회는 오겠지만--- ^^
홀로 걷다!!!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
성현들께서 함께하시고, 그 길 위에 스님께서 계십니다.
비록 다르게 살지만 따를 수 있게 가르침으로 인도해 주시는 스님께 합장 공경합니다. 고맙습니다!_( )( )( )_
모든 길은 다 통하고 있답니다. ^^
천년의 세월을 비껴 온 듯한 신비스러운 알치곰파의 불화~
고향바다와 같은 쪽빛 바탕의 벽화가 언제나 선명하게 클로즈업 됩니다!!!
훗날 티벳의 간체에 들렀을 때 10만의 불상과 불화를 모셔놓은 쿰붐스투파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고 혼자 퍼질러 앉아 있는 바람에~가이드와 일행들이 찾느라고 ~
벌칙으로 저녁공양을 내기도 했지만~
천둥과 번개에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던 간디 묘역의 불빛~
누구나 혼자 걷는 길~ 빛을 향하여 ~
오직 걷고 또 걸어 가길 발원합니다~감사합니다!_()()()_
자기 안의 보석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때 ---- ^^
와...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지... 한참 울고 또 울고... 많이 울다가... 갑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눈물은 마음속 맑은 울림이 만들어내는 진주와도 같는 것이지요. 행복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