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4월1일 4월이 시작되었다. 엘리어트가 말하는 잔인한 달은 이별이 많기 때문이다. 일찍 아들과 식사를 하는데 오랜만에 밥을 제대로 먹는다. 오늘부터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통학버스를 불법이라고 금지시켜 시내버스로 학교에 가야한다. 아들에게 승용차를 태워준다고 하니 그냥 가겠다고 해서 보냈지만 비가 오거나 늦을 때는 내가 부지런히 등교를 시킬 것이다. 오전에 운동하는 시간에 김성만한테 제2금융권 솔로몬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고 내일 담당자를 소개시켜 준다는 연락이 왔다. 진행되는 상황을 들어보면 나하고 약속한 차용액을 조만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일 약속시간까지 알려준다. 4시에 경기학원 갔다가 8시에 집에 오니 아무도 없어 김치찌개로 혼자 밥을 먹었다. 2일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가족 4명이 식사를 함께 하고 비가 오는 이유로 아들을 태우고 인창중학교에 다녀왔다. 10시경 지하철로 개봉동에 가서 조사장을 만나 상가 전반에 대하여 논의하고 오후 4시에 어제 약속된 을지로에 있는 솔로몬 저축은행으로 나가니 김성만과 그의 부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노량진 주택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나의 채무와 이자를 청산하겠다는 그의 이야기이고 결론은 4월 말까지 변제를 유예해 달라는 것이다. 서류와 절차를 확인한 마당에 서로 간 보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생각하여 이자를 정산하고 현장에서 다시 서약서를 받았다. 을지로를 출발하여 어머니 병원으로 갔더니 형이 고향의 땅값이 1필=1200평/5500만원 간다며 매매를 할까 생각하고 있다. 교통이나 위치상 거의 버려진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새만금의 영향까지 있어 가격이 많이 올랐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생활비와 조카들 학비 그리고 어머니 병원비까지 형이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집으로 와서 김치삼겹살을 만들어 저녁밥을 먹고 안방에서 쉬는데 11시경 들어온 아들이 무릎을 꿇고 큰 인사를 한다. 늦은 밤 무슨 상황인지 의외의 행동에 놀랐고 불안했다. 3일 채무 변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김성만과의 관계가 많이 나아진 상황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나에게 정당한 이자를 주고 담보까지 설정해 주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아침에 아들이 간부수련회 간다고 준비하는 중에 아내는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이 차가우니 잠바를 가져가라고 하고 나는 날이 푹하니 그냥 가라고 보내면서 의견 충돌이 생겼다. 엄마로서 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적지 않은데 중간에 내가 간섭하여 고집을 너무 부리지 않았나 생각이 되었다. 안방에서 쉬다가 체육관에 나가면서 보니 아침에 옥신각신한 아내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살아가는데 지적인 아름다움도 필요하지만 건강과 함께 외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것도 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내가 산이나 체육관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느끼는 바는 없을까,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긴 시간 책을 읽고 그러다 시간이 나면 피곤하다고 잠을 자는 아내의 습관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오후에 영식이 연락이 와서 서울역에서 만나니 고향 경북 영덕에서 가져왔다며 김치와 젓갈 그리고 오징어 여러 마리를 전해주어 집에 가지고 왔다. 저녁에 병원에 가려다가 신설동 2층 호프집 임차인의 연락이 와서 방문하니 개인 사정으로 운영하기가 힘들어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인인 나의 동의를 얻는 것이지만 내 입장도 가게를 잘 꾸리는 사람이 들어와야 임대료나 권리금 측면에서 유리하다. 집으로 오는 중에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오라는 아내의 전화가 와서 몇 개를 골라 가져가니 바로 냉동실에 집어넣는다. 성의를 무시하여 불쾌했고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소주와 교환해 모두 마셨다. 4일 우면산에 가자는 영식이에게 문자하여 내가 일정이 바쁘니 혼자 다녀오라 하고 8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오전에 EM학원에 가서 서류를 정리하고 12시경 영어선생 면접을 하는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학원운영을 과거에도 했었지만 가장 힘든 일은 책임감이나 성품도 모르고 서류만 가지고 사람을 채용하는 일이다. 면전에서는 당당하고 최고의 선남선녀의 모습이라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이든 식당이든 인력을 채용하는 어느 곳이든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람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경기학원으로 가서 5시에 수업하고 7시에 용산에 있는 자원대구탕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5일 아들은 학교에 가고 딸은 급우들과 체험학습으로 수원(화성)에 가는데 아내도 현장학습이라고 동행을 한다. 영식이하고 서초동에 있는 우면산에 가기로 해서 오늘은 집에서 강남 방배동까지 걸어 보기로 했다. 무악재에서 독립문, 서대문, 서울역, 남영동까지는 공교롭게도 구간마다 각 15분씩 1시간이 걸린다. 약속시간이 늦어 더 걷지 못하고 남영동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동작역에서 내려 택시로 우면산 입구에 도착했다. 정상 소망탑을 지나 점심을 먹고 3시경 내려와 방배동 골목에 있는데 오늘 꼭 만나자는 고향친구 전화가 온다. 근처에 있는 이수역 태평백화점 앞에서 친구 동선이를 만나 살아가는 어려움을 들었다. 집에 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내하고 티격태격 다투었는데 기억도 정신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6일 일요일 10시에 일어났다. 어젯밤 늦게 와서 소란을 피워 마음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식사도 안하고 있다가 11시에 북한산에 오르려고 정릉에 도착하니 화창한 봄날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가파른 깔딱고개를 지나 칼바위 아래 물이 내리는 계곡에 앉아 누룽지탕으로 점심을 조금 먹고 근처 바위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는데 1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비가 올 것처럼 날이 어두워져서 부지런히 하산을 하여 병원에 3시경 들어섰다. 병원에서 모처럼 온 매제를 만났는데 얼굴이 밝고 몸도 건강해 보여 마음이 더욱 든든하고 반가웠다. 6시가 지나 집으로 일찍 들어서니 아들과 딸이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삼겹살을 먹고 있고 인사도 없던 아들은 엄마가 화나니 나보고 술 조금 마시고 일찍 들어오라고 불쑥 이야기한다. 어제 늦게 들어와 소리치고 억지를 부린 상황을 아들도 보고 들은 터라 미안한 마음이었다. 7일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악몽까지 꾸었다. 아침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집에서는 어제 콩나물국에 이어 오늘은 김치찌개를 준비해 두었다. 학교에 빨리 가야하는 아들이 화장실만 들락거려 소리를 지르니 밥 먹던 딸이 놀란다. 내 자신이 문제가 있든지 상대방의 잘못이 크든지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유지하고 컨트롤하는 인내심과 자제력이 떨어진다. 이 삶과 인생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정신의 방황이 끝이 없다. 9시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EM학원에 갔다가 2시경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경기학원으로 출발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하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삼겹살로 저녁을 먹는데 요가를 마친 아내가 딸과 함께 들어온다. 한참 후 11시30분에 들어온 아들에게 수고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침과 저녁으로 아들에 대한 마음이 정반대로 다르니 부자지간의 관계는 애증의 덩어리다. 8일 3시간쯤 자다가 아침을 맞이하니 TV에서는 벌써 벚꽃이 만개하여 오늘부터 여의도 축제가 시작이라고 한다.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파 무침이 너무 맛이 있어 밥을 많이 잘 먹었다.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먹었던 파무침과 식초를 넣은 콩나물무침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맛있는 음식들이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낮 의 기온이 20도를 넘어 햇살이 따가울 정도다. 점심으로 병원근처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고 신설동으로 와서 부가세 영수증을 요구한 1층 임차인을 만나고 영식이 전화가 와서 시내버스로 남영동 영덕횟집 갔다가 식사하고 집으로 오니 밤 10시가 지났다. 9일 수요일 오늘은 8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가는 곳마다 선거 열풍이라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투표에 참석하지 않았다. 날이 흐린 아침에 아들은 인왕초등학교로 선거 도우미로 가고 아내와 딸은 죽전에 산다는 대학친구 모임으로 나간다. 함께 간다는 유미가 차를 가지고 우리 집에 9시30분에 온다고 하더니 정작 11경에 와서 출발한다. 영식이와 도봉산에 가려고 집 앞에서 버스를 타니 그의 형님도 함께 오고 있다. 친형제 간에 산에 다니고 술을 마시고 친구처럼 날마다 잘 어울려 다니니 보기도 좋고 부럽기도 하다. 송추계곡을 12시에 출발하여 걷는데 20년 전 청산학원 선생들과 단체로 와서 음식을 먹던 시간이 생각이 났고 세월이 흘렀는데도 자연의 모습은 변함이 없어 모두가 어제의 일만 같았다. 계곡을 벗어나 도봉산 서쪽으로 위치한 오봉을 향하여 걸어가는 내내 봄의 기운이 아른거리고 울긋불긋 아름다운 풍광이다. 초입에서 2시간을 걸어 오봉을 오르고 다시 2시간을 걸어 동쪽 방학동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날이 어두워 오더니 비가 내리고 방학동시장 근처로 비를 맞으며 들어섰다. 지하철로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보내는데 아내가 전화를 1시간 넘게 들고 통화를 하는 바람에 시끄럽고 정신이 산만하였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많아 오늘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절반도 넘지 않은 45% 투표율, 나를 포함하여 정치에 무관심한 우리의 현실이다. 10일 늦게 일어나니 아들은 학교에 갔고 딸도 등교를 하는 참이다. 요즘 아내와 아들과 딸은 학교에서 과제로 나온 아이디어 상품을 만든다고 부산하다. 아들은 날을 갈아 끼우는 다용도 가위를 만들고 딸은 기존 냄비에 가운데를 막아 동시에 음식을 끓이되 매운맛 짠맛 등을 따로 만들고 또는 한쪽은 국, 다른 쪽은 찜을 할 수 있는 절약형 냄비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다. 내 보기에는 아이디어도 아니고 조잡스런 물건으로 생각되는데 아내는 땜질하는 곳을 찾아가 칸막이를 해 오라고 집에서 사용하는 큰 냄비를 넘겨준다. 검은 봉투에 담아 독립문과 서대문 일대를 다녔지만 헛수고를 했고 김성우를 만나러 약수동쪽으로 가면서 철물가게가 있어 들어가 설명을 하니 주인이 어이가 없어 웃기만 한다. 어린 딸을 위하여 애비가 이렇게 서울시내를 다닌다고 읍소를 하니 심정을 이해라도 했듯이 즉석에서 7000원을 받고 해결하여 주었다. 김사장 사무실에 도착하니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사 주어 먹었는데 미안하여 사무실에 오는 횟수를 줄여 볼까 생각을 했다. 왕십리를 지나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유상현선생과 차용액 3개월 연장서류를 쓰고 상명대 근처에 있는 학원에 동업을 할까 방문하니 규모가 작아 내키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시청하는 뉴스 화면에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11일 학교 가는 아들에게 오늘 금요일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날마다 하는 이야기에 아들이 얼마나 관심으로 들을까만 세월이 흘러 아들도 아버지가 되면 충분히 지금의 내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오후에 경기학원에 들어가 수업을 마친 뒤 EM학원으로 달려가 강의를 하겠다는 선생에 대하여 면접을 실시하였다. 과거에도 학원을 운영하면서 격은 일이지만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처음 보는 사람을 상대하고 채용하는 일이다. 화려한 스펙으로 면전에서 의욕이 넘치는 사람도 그의 성실성이나 책임감을 알 수가 없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대화를 한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오너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사람에 의해서 생기는 갈등과 고통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식이가 독립문 근처에 왔다기에 영천시장 한방보쌈 집으로 들어가니 대신고 체육부장 강선생과 함께 있다. 이 곳은 날마다 지나다니면서도 들어와 보기는 오늘이 처음인데 아담하고 깨끗하여 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전통시장이다. 평소 말이 많고 짠돌이인 강선생이 오늘은 시종일관 조용하더니 마지막에 술값까지 계산하고 아마 신상에 무슨 변화라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집으로 오는 중에 음료수를 사 오라는 아들의 문자가 와서 과일과 음료 2병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12일 오늘은 휴일 토요일이고 화창한 날씨라서 산이나 들에 가족단위 상춘객이 많을 것 같다. 우리도 나들이를 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오늘도 나는 오후에 결혼식장 일정이 있다. 이른 아침에 아들이 축구를 하러 가기에 10시30분까지 와서 11시 논술수업 늦지 않게 가라고 당부했는데 10시4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초등학교로 올라가 데리고 왔다. 들어오면서 라면을 사다가 점심용으로 딸에게 주고 서초동 조길문선생 결혼식장에 지하철로 갔다. 과거 청산학원 선생들이 많이 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선배들만 일부 참석하여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선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방배동으로 이동하여 전주집에서 식사하고 집으로 오니 성욱이 엄마가 와 있다.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는 성욱이에게 일전에 영식이가 준 맛있는 오징어 3마리를 전해 주었다. 내일은 경향신문 하프마라톤 출전이다.
13일 시험도 인생도 준비가 필요하고 당연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경향신문 마라톤 출발선 월드컵경기장에 8시경 도착하였다. 하프마라톤을 두 번째 도전하는 오늘 강변북로의 신록과 한강 건너편 여의도 부근의 화려한 벚꽃이 서울의 모습을 완전 다른 색깔로 물을 들이고 있다. 8시10분에 출발하여 강변북로를 달려 동작대교 근처에서 유턴을 하고 골인지점을 향하여 돌아오는 중 발목 통증이 엄습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 가까스로 달려 작년보다 25분 늦은 시간으로 돌아왔지만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가을이 오면 42.195 풀코스에 도전하여 살아있는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나는 혹독한 싸움을 새롭게 준비해 나갈 것이다. 집으로 오면서 해장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돌아왔다. 저녁에 학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돌아와 컴퓨터를 하는 아들과 8시에 수업을 마치고 온 아내가 공부하는 문제로 언쟁이 시작되어 피곤한 밤을 보냈다.
14일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발목이 아프다. 7시가 지나서까지 안방에 있는데 아들이 수련회 간다며 바른자세로 인사를 한다. 얼마 전에는 절을 크게하여 놀라게 하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들 수련회는 구례 화엄사를 거쳐 청학동으로 2박3일 여정인데 아들은 작년에 화엄사를 다녀와서 낮익은 장소가 될 수 있겠다. 아침에 쉬면서 거실에서 밖을 보니 벚꽃 핀 모습이 장관이라서 10시에 안산에 올랐다. 3월 21일 이후 오늘 왔으니 20여일이 지난 시간, 그 사이 많은 꽃들이 만개하여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봄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했다. 집으로 와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들한테 화엄사라고 전화가 온다. 오전내내 차가 달려 도착했을 것인데 작년에 투정을 부려 극락전 앞에서 아들을 뒷발로 걷어찬 일이 있다. 부처님 앞에서 폭력을 행사케 하여 극락에서 멀어지게 한 불효자 아들이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고 오라고 통화했다. 오후에 토요일날 부천에 가서 술을 마시고 비용으로 110만원을 지불했다고 말하는 영식이에게 낭비를 지적하고 절약과 절제를 언급하였다. 경기학원에 가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포츠 신문을 구입하여 보니 어제 출발선에서 달려 나가는 내 모습이 한가운데 실려 나왔다. 연습도 못해 저조한 기록이었지만 사진만으로는 마라톤 선수같은 날렵한 모습이다. 집으로 저녁에 돌아오니 장모님께서 와 계시고 요가를 마친 아내도 들어온다.
15일 휑한 거실에서 딸이 7시가 넘도록 자고 있는 화요일 아침이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초등학교로 컴퓨터 배우러 가고 나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12시30분 어머니 병원에 도착했다. 식사를 마친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밖으로 나와 1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대화를 하는데 오늘은 모처럼 웃으시고 욕창이 생겼는지 걱정을 하시기에 등을 긁어주면서 문제가 없다고 안심을 시켰다. 날마다 죽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욕창에 겁을 내는 걸 보면 분명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 것이고 그러기에 더 정성껏 모셔야 할 일이다. 2시경 집으로 돌아와 이번 아들의 중간고사 국어를 내가 직접 가르치려고 2학년 자습서를 보면서 오후를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내일 충남 부여로 2박3일 수련회 간다며 준비물을 정신없이 챙기어
저녁에 거실에 나가보니 아예 집을 나가는 모습 같았다. 꼼꼼하여 그렇지만 평소에도 딸의 방에 들어가면 주인을 불문하고 값이 나가고 좋은 물건은 모두 거기에 있어 만물창고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16일 청학동으로 수련회 간 아들이 돌아온다. 청학동은 예절교육을 가르치는 곳이기에 바른 아들로 변신하여 왔으면 좋겠다. 산을 다니고 체육관을 계속 다녀서 그런지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다행스럽게도 몸이 가벼워 좋다. 딸이 학교에 가고 아내도 동사무소에 영어를 배우러 간 뒤에 나는 누룽지탕까지 준비하여 안산에 올랐다. 기온이 20도를 넘어 땀이 나는 산행이지만 그러나 겨울에 내리는 눈보다 더 많은 벚꽃이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정상 바위에 앉아 누룽지탕을 먹는 중에도 여기저기 꽃잎이 날리니 물아일체 자연과 내가 하나로 되어가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집으로 내려오니 3시가 되었고 경기학원에 가서 아들 시험준비 프린트를 만들고 저녁에 사당동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초등학교 친구를 위로하고 식사를 함께 했다.
17일 어제 경기학원 주차장에 차를 두고 움직여서 아침에 지하철로 갔다가 교무실에서 커피를 마신 후 차를 몰고 내부순환도로 타고 개봉동 사무실에 갔다. 11시에 도착하니 여러 사장들이 일찍 나와 모여 있었지만 문제는 이해가 맞지 않고 실질적으로 현금의 흐름이 없으니 옥신각신만 하고 소득도 없이 오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김성우와 약수동 사무실로 왔다가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가겠다는 영식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매월 문병을 와 주는 친구가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병원에서 간병인이 말하기를 어제부터 어머니께서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수 차례 전화를 독려했다고 한다. 궁금한 마음으로 다가가 조용히 묻고 귀를 기울이니 100원짜리 빵을 먹고 싶다고 하시어 나와 영식이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병원을 출발하여 장안동에서 근무하는 정식이를 만나 술을 마시며 오리훈제를 먹고 집으로 왔다.
18일 아들은 학교에 가고 수련회 간 딸은 오늘 돌아온다. 술이 깨지 않아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아내가 안산에 간다기에 함께 따라 나섰다. 10시경 산을 오르니 엊그제까지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거의 사라져 허망하기만 했다. 꽃도 사라지고 날도 덥고 몸도 무겁고 지루한 아침산행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EM학원에 갔다가원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2시경 집으로 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3시가 지나서 엊그제 마라톤 사진을 들고 경가학원에 들어가 의기양양 자랑을 하고 4시에 수업도 시작했다. 7시에 병원에 가서 주무시는 어머니를 흔들어 깨우니 의식이 없고 감각도 없으시다. 의사를 만나보니 기면현상(깊은 수면으로 장시간 접어드는 일)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참담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8시에 집에 돌아왔다.
19일 밤새 마음을 졸이며 보내다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간병인에게 전화를 하니 주사를 맞고 의식이 회복되어 대화도 조금 하신다고 전한다. 아침 식사후 아들과 딸을 학교에 보내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평소처럼 눈을 뜨고 나를 보시는데 감사하기만 했다. 곁에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6개월 내내 간병을 하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집으로 바로 와서 안산을 올라 1시간을 걸으니 땀이 흐르고 마음의 안정이 오는 듯했다. 오늘 영상 25도까지 올랐으니 4월 중순으로는 높은 기온이라 올 여름의 무더위를 예고 하는 듯했다. 산에서 내려와 고속터미널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신설동 건물을 돌아보고 왔다.
20일 아들은 어제부터 집에 온 친구와 함께 잔다. 그러는 바람에 오늘 새벽에 국어 중간고사 준비도 해야 하고 딸 생일이라 케잌도 잘라야 되는데 아무 것도 못하고 무질서한 아침시간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미역국을 끓이고 있지만 생각도 없는 아들 때문에 딸의 생일도 뒤로하고 김치와 물만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왔다. 이른 아침 송추계곡 부근에 도착하여 2시간을 걸어 사패산 정상에 올랐다. 도봉산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는 송추와 의정부 일대기 환하게 보인다. 정상에서 누룽지탕을 먹고 나니 아침의 답답함이 사라져 마음이 다소 진정이 되었다. 11시 지나 내려오면서 보니 맑은 날씨에 계곡마다 등산객들로 붐비고 송추계곡 입구 30년 전통이라는 중화요리 집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한참을 기다려 짬뽕을 사 먹고 1시30분 송추를 출발하여 서울에 들어왔다. 7시경 집에서 미역국으로 저녁을 먹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가족이 따로따로 식사를 하였고 결국 딸의 생일파티도 제대로 못한 2008년 4월이다
21일 4월도 하순으로 들어서면서 신록의 푸르름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나는 4월의 시간을 제일 싫어하는데 거기에는 형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하루하루가 살어름을 건너가는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아들과 딸을 학교에 보내고 체육관 운동을 하고 EM학원에 갔다가 2시경 돌아와 식사를 했다. 오후에 북부지원으로 신설동 3층 밀린 임대료 때문에 명도소송을 접수하러 갔다가 일단 법무사에서 상담을 하고 구비서류를 확인하였다. 남들은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매월 임대료가 들어오고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나의 정신적인 어려움도 많다. 평소에 대화하고 식사도 하는 처지에 임대료나 금전문제로 법원에서 원고와 피고로 마주치는 경우가 1층이나 2층을 포함하여 몇 번 있었는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저녁에 영식이가 방배동으로 나오라고 연락이 와서 택시로 도착하니 그의 고향 선배들과 함께 있다. 나를 자랑하듯이 소개하는 영식이가 싫지는 않았지만 늦은 시간에 외출하는 내 입장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22일 눈을 뜨니 9시가 되었고 베란다에 선 채로 아침식사를 조금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와 경기학원에 3시에 도착하니 평소 소통이 잘 되는 윤제하 선생이 살아가는 자세나 이치를 설명해 주어 고마웠다. 날이 후덥지근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영식이는 오늘도 전화가 와서 미성회관에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요즈음은 나도 그렇고 영식이도 그렇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보니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자주 만나게 되지만 어제처럼 선배들을 무더기로 소개시키는 그런 당황스런 자리는 없었으면 좋겠다. 차를 아파트에 두고 나가기 전에 집에 들어가니 아들이 낙서투성이인 실내화를 거실에 팽개쳐 두고 컴퓨터에 몰입하고 있어 목소리를 높여 훈계를 하고 나왔다.
23일 어제 밤부터 내린 비가 새벽까지 부슬부슬 계속되는 수요일, 처리할 것은 많고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답답하여 어찌할 줄 모르겠다. 아침에 비가 와서 아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려고 BMW에 시동을 켜니 베터리에 문제가 있어 소형차 세피아를 운전하였다. 오전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오후 2시에 긴급 서비스를 신청하여 아침에 문제가 있던 자동차를 시동을 걸어 해결하였다. 오후에 어머니가 계시는 병원에 도착하여 낼부터 휴가라는 간병 아주머니 용돈을 드리고 7시경 집에 들어오니 중간고사 준비한다고 아들은 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을 보면서 가급적 잔소리나 지적을 줄여보자고 스스로 생각을 하지만 무언과 무관심은 사랑에서 멀어지는 수순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24일 연일 반복되는 같은 생활로 올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고 지루하다. 3층 명도소송을 하기 위해 북부지원 앞 법무사에 어제 부족한 서류를 보충하여 제출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적이고 양심적인 부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나 학생과 달리 어른들의 세계는 이기적인 욕망과 술수가 판을 치는 부정측면이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결론적으로 법정에서 우리 건물 3층 세입자와 내가 원고와 피고로 피곤하게 만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남의 건물을 임대하면서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고 현재는 보증금까지 없는 마당에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집으로 오면서 동대문 세무서에 들어가 건물 1,2,3층 부가세 내역을 정리하여 돌아왔다. 임대료와는 별개로 신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소송 중인 3층과도 내일 얼굴을 붉히며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25일 아침에 체육관 가서 운동하고 금년에 계약한 1층을 제외하고 2,3층 부가세를 독려했다. 특히 3층은 법정에서 만나야 하는 난처한 입장이지만 오늘은 부가세도 바로 10만원 입금해 주더니 밀린 임대료도 월요일에 해결하여 준다고 웃음까지 보이며 자세를 낮추는데 달콤한 말로 속이고 다음 날이 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완전 사기꾼의 수법이다. 선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상대를 믿어 주는 사람만 결과적으로 홧병으로 죽게 된다. 집으로 오기 전에 동대문에서 이전하여 내일 신설동에 개장하는 풍물시장에 들어가 보니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크고 깨끗한 모습은 좋지만 주택가 안쪽에 위치해 있어 찾아오는데 문제가 있을 듯하다.
26일 중간고사 직전이라 아들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내가 여유가 있고 마음이 편하면 더 적극적으로 학습관리도 해줄 수 있겠지만 아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49살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아침저녁으로 걱정이고 오늘도 정신을 붙잡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송추로 이동하여 북한산을 오른다. 송추마트에서 빵 하나를 사 먹고 도봉산을 1시간 30분 걸어 오봉 정상에 올랐다. 날이 흐려 산행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고 조용한 바위 밑을 지나 방학동 쪽으로 가다가 중간 지점에서 누룽지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려오는 길에 비를 만나기는 했지만 다행히 지름길을 찾아 도봉시장으로 3시에 내려와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가 바로 달려와 집으로 안내하더니 그의 부인이 얼마 전에 사망했다고 알린다. 종로 3가에서 큰 포장마차를 하면서 자주 보기도 했지만 고향 친구들 모임에서 부부들끼리도 만나 적이 있다. 어떤 상황인지 입만 다물고 있는 친구때문에 인생이 피곤하기만 했다.
27일 어제 충격이 커서 아침까지 피곤하다. 오늘 원주에서 4촌형 딸의 결혼식이 12시라서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식사를 종용하여 조금 먹고 구의동 버스터미널로 갔다. 9시40분에 출발하여 원주에 도착하니 11시20분이 되었고 결혼식 직전에 식장에 들어가니 화곡동 고모와 인천에서 온 일삼형이 와 있다. 친척이라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이런 곳에서라도 만나니 반갑고 지난 일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서울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혼주인 옥철이 형이 홍천에 가자고 사정하여 버스로 노래하며 이동했다. 4월 하순의 강원도의 모습도 아름답고 시원하다. 형님 집에서 대화를 하고 서울로 6시에 나오는데 행락객 차량과 얽혀서 생각보다 늦게 상봉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식장에서부터 마신 술이 깨지도 않았고 피곤하여 병원에도 들리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늦게 집으로 왔다.
28일 큰 형님이 돌아가신 지 오늘 5년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믿기지도 않고 또한 빠른 세월로 인하여 모든 것이 허망하기만 하다. 나는 유독 형과의 추억이 많고 나를 사랑한 흔적이 아직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서울역 대일학원 강의실 맨 뒤에 들어와 강의하는 나를 향하여 손을 흔들던 시간도 있었다. 용미리 납골함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하여 못가고 미안함으로 아침을 시작했다.체육관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아직도 얼굴이 벌건 상태로 개봉동으로 가니 조사장은 내 입장을 생각해서인지 지금이라도 상가 112호를 가져가라고 하는데 전체비용의 70%가 은행 융자라 감당이 안되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예를들어 상가의 가격이 2억이고 내가 받을 돈이 7천이라면 상가를 내 소유로 하고 나머지 1억3천 원금과 이자는 내가 갚아야 하는 부담이 존재한다. -거기에 취,등록세까지)점심을 먹고 오후에 집으로 오니 장모님께서 오셨고 아들은 삶은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29일 새벽에 장모님께서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오신 것 같다. 김성만은 4월 말에 변제를 약속해 놓고 전화가 없으니 오늘 내일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아들이 학교에 가기 전, 내가 집을 나오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가족들이 말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형의 납골함에 가는 것이고 9시경 용미리 묘지에 도착하니 언제나 그러하듯 일렬로 누워 있는 망자들의 흔적이 나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형의 추모관 앞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며 명복을 빌었다. 서울로 나와 병원으로 가서 4일 만에 어머니를 뵙고 집으로 5시경 돌아오니 병원에 다녀오신 장모님께서 앉아 계신다. 가슴 부위에 종기가 있어 서울대 병원에서 진찰을 하니 암 초기라고 하여 나와 아내는 걱정이 되는데 정작 장모님께서는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시다. 저녁에 김성만을 서대문에서 만나니 조만간 현금 처리를 완료하겠다며 나에게 여러 번 고마움을 표현한다.
30일 잠도 오지 않았지만 새벽에 아들을 깨워 한자시험 범위를 미리 해설해 주었다. 내가 아들을 처음 가르친 것이지만 오늘 저녁에는 국어도 지도해 볼 것이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며 집중해서 공부 잘하고 내일 시험준비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장모님은 남대문에 쇼핑 간다고 나서고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장모님께서 나가시면서 신설동 건물을 가보겠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풍물시장까지 구경시켜 드린다고 말씀을 드렸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시험을 일찍 마친 아들이 벌써 와서 낮잠을 잔다. 3시부터 5시까지 국어수업을 하기로 약속해서 나도 쉬면서 기다리다가 3시부터 시험범위 요약을 해 주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설명을 하니 아들이 너무 잘 가르친다고 만족해 하며 좋아한다. 내일부터 2학년 1학기 아들 중간고사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