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영(1)/ 이것은 이 글에서 나의 문제 제기의 바로 그 지점이다.
<문제의 제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영(靈)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은 사람의 존재의 중심이고, 이 중심은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요3:6; 딤후 4:22; 롬 8:16, 고전 6:17).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문제 제기의 바로 그 지점이다.
만일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이 이 지점을 놓친다면 우리는 표적을 놓치고 만다.
예를 들어, 전기가 건물 안으로 설비되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지점은 바로 수위치이다. 라디오의 수신기는 라디오 전파가 들어오는 바로 그 지점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중심 지점은 사람의 영이다.
<혼과 영>
욥기 12장 10절은 모든 생물들의 혼과 사람의 영을 언급한다. 흠정역은 “모든 인류의 호흡”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루악(ruach)이라는 단어는 영은 물론 호흡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다른 생물은 혼은 가지고 있지만 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인간만이 영을 가지고 있다(사람 이외의 모든 생물의 혼을 특별히 각혼이라고 한다. 곧 사람보다는 현저히 열등한 혼을 각혼이라고 말한다).
개나 원숭이는 꽤 영리하다. 왜냐하면 각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나 원숭이에게는 영이 없다. 영이 없으므로 어떤 것을 경배할 수가 없다. 어떤 것을 경배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문화인이든 미개인이든 어떤 것을 경배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경배하는 영이 있기 때문이다. 욥기 12장 10절은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류의 영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생물들에게는 혼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혼뿐만 아니라 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다르다. 이 점에서 우리는 결코 다윈(Darwin)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숭이들과 다르다. 원숭이들에게는 단지 혼이 있을 뿐 영이 없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우리 인간은 세 부분, 곧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영과 혼과 몸과 마음에 대해서는 뒤편에서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영들의 하나님>
민수기 16장 22절과 27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영들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육체란 타락한 인류를 의미한다. 타락한 몸을 육체라고 한다. 아담 이래 우리 모두는 육체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육체이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이 타락한 육체 안에 영이 있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은 육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영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 하고, 하나님을 접촉하려 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2장 6절은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라고 말한다. 곧 주님이 선지자들의 영의 주 하나님임을 말한다.
더욱이 고린도전서 14장 32절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는 성직자의 일방적인 설교만 있지만, 초대교회 모임에서는 성도들 각자가 어떻게 예언하는가? 어떻게 기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곧 예언자들이 자신의 영의 통제 아래 있지 않고, 예언자들의 영이 다른 예언자들의 지시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성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영을 말한다.
하나님 편에는 신성한 영인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우리 편에는 사람의 영이 있다. 이 두 영이 서로 만날 때 신성한 관계가 조성된다. 신성한 영인 하나님과 우리 사람의 영이 서로 만남으로써 그와 같은 신성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님과 교통함에 있어서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만큼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할 길이 없다. 같은 원리로 사람의 영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단이나 기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영을 연구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영>
로마서 1장 9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영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을 말한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나의 영 안에서 섬기는 분이다. “나의 영”을 신약의 용어로만 생각하지 말라. 시편 77편 3절은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나의 영이 눌리도다”라고 말한다.
또한 시편 77편 6절은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나의 마음이 묵상하며 나의 영이 궁구하기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영”은 단지 신약의 용어만이 아니라 구약의 용어이기도 하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할 때 나의 영이 눌렸다”.
“나의 마음이 묵상하며 나의 영이 궁구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을 훈련해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의 영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있는가? 전혀 생소한 말인가? 처음 듣는 말인가?
<영 안에서 분냄>
사도행전 17장 16절은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영으로 번역되어야 함)이 분(격분)하여”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아덴(아테네) 시의 수많은 우상들을 보았을 때 분내었다. 바울은 그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그의 영 안에서 악한 것들에 격분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5장 4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가 같이 모일 때에 내 영도 함께 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희가 같이 모일 때에 내 영도 함께 있어”라는 구절이다.
바울은 심지어 그의 영으로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모였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에 없었지만,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라고 말했다. 바울의 몸은 고린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모임에 바울의 영이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 당신의 영으로 그 교회 모임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가? 바울은 몸으로는 고린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고린도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의 영이 새롭게 됨>
고린도후서 2장 13절에서 바울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영 안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여 그들과 작별하고 거기서 마케도니아로 들어갔노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의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그의 영이 편치 못했다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7장 13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너희의 위로를 통하여 위로를 받았고 참으로 디도의 기쁨으로 인해 넘치도록 더욱 기뻐하였으니 그의 영이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다시 활력을 얻었느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디도가 고린도 사람들에 의해 영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고린도전서 16장 18절에서는 “그들이 내 영과 너희의 영을 시원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어떤 성도들이 나와 너희의 영을 새롭게 하였다고 말한다. 바울의 영과 고린도 성도들의 영이 모두 어떤 영적인 형제들에 의해 새롭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영이 기뻐하였음>
누가복음 1장 46-47절에서 마리아는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는 현재 시제이나,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는 완료시제이다.
먼저는 “나의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했고”, 그 다음에 “나의 혼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한다”. 영이 먼저고 그 다음이 혼이다.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 후에 혼이 주를 찬양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영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혼으로 주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교통해야 하며, 우리의 혼 안에서 주님을 표현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주님을 기뻐하고 그 다음에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을 기뻐하고, 그 후에 우리의 혼으로 주님을 찬양한다. 이 두 기관들, 곧 영과 혼은 두 가지 다른 용도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을 접촉하려면 당신의 영을 사용해야만 한다. 당신이 주님을 표현하려면 당신의 혼을 사용해야 한다. 내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 후에 내 혼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영 안에서 깨끗케 됨>
고린도후서 7장 1절은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말한다.
육(육체)의 더러움은 물질적인 것으로 더렵혀지는 것과 관련되고, 영의 더러움은 우상들과 같이 영적인 세계의 것들로 더럽혀지는 것이다. 바울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너희 자신을 깨끗케 하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육이 있고 또 영이 있다. 이 두 부분은 온갖 종류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깨끗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어떤 더러움으로부터 깨끗케 될 필요가 없으나, 우리의 영은 깨끗케 되어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감사충만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