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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다 된 나이로, 원 세조의 부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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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에서 원 황실과의 처음으로 통혼한 이는 고려 25대 왕 충렬왕이었다. 충렬왕은 원종의 맏아들이자 정순왕후 김씨 소생으로 1236년에 태어났다. 1267년 태자로 책봉된 이후 원나라에 입조하여 연경(지금의 북경)에 머무르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충렬왕과 원공주와의 혼인은 1271년(원종 12) 원종이 원나라에 정식으로 청혼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원종은 추밀원사 김연을 원 세조에게 보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고 그 해 6월 충렬왕은 세조를 알현하고 혼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 충렬왕은 천여 근의 금을 마련하여 원나라로 가서 1년 반쯤 지난 뒤인 1274년(원종 15) 5월에 원 세조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충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어 원의 누구도 충렬왕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원종이 승하하자, 충렬왕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충렬왕에게 시집 온 제국대장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충선왕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기도 한 충선왕 이후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서 일명 뚤루게(禿魯花)인 질자(質子)로 성장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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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의 장인이며, 칭기즈칸의 손자인 원 세조 쿠빌라이. |
매사냥을 좋아한 고려의 왕, 변발을 하고 호복차림으로 귀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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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물품의 징발에 이어, 일본 원정군까지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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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과 충선왕 부자, 서로 왕위를 주고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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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좋더라도 끝까지 지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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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년
최승로 시무 28조 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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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서희 강동 6주 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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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년
천추태후 목종 즉위, 천추태후 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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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년
토그릴 베그 셀주크투르크 건국 |
1018년
강감찬 귀주대첩 |
| 1077년
그레고리오 7세 카노사의 굴욕 |
1063년
왕안석 삼사조례사 설치, 개혁시작 |
1055년
최충 구재학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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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이자겸 이자겸의 난 |
| 1150년
힐데가르트 폰 빙엔 아이빙엔에 대수녀원 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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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년
묘청 서경 천도 운동 |
| 1152년
프리드리히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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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년
김부식 [삼국사기]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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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5년
주희 [근사록] 편찬 |
1170년
정중부 무신정변 |
| 1189년
리처드 1세 제 3차 십자군 전쟁 |
1187년
살라딘 십자군전쟁에서 예루살렘 탈환 |
1196년
최충헌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시작 |
| 1215년
존왕 마그나카르타 승인 |
1206년
칭기즈칸 몽골제국 수립 |
1198년
만적 만적의 난 |
| 1295년
에드워드 1세 모범의회 성립 |
1271년
원세조 쿠빌라이 원제국 수립 |
1274년
충렬왕 여.몽 연합군의 일본정벌 |
| 1299년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발간 |
1299년
오스만 1세 오스만제국 수립 |
1281년
일연 [삼국유사] 편찬 |
| 1304년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집필 시작 |
1325년
이븐 바투타 이슬람 메카 성지순례 |
1371년
신돈 역모죄로 처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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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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