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휴스턴
관람장소: 부산시네마테크
*fat city :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
LA 빈민가의 화창한 어느날, 빌리는 체육관으로 복싱연습을 하러 간다. 거기서 혼자 연습하고 있는 어니를 보게 되고, 스파링을 제안한다. 하지만 쉽게 피로감을 느낀 빌리는 얼마 뛰지 못하고 스파링을 중단한다. 그러면서 어니에게 소질이 있다며, 자신의 코치였던 루벤에게 가보라고 한다.
빌리가 전성기 때, 코치인 루벤은 돈을 아끼려고 빌리만 원정경기에 내보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상대선수는 반칙을 썼고, 그것이 반칙인 것을 알려 줄 코치가 없었기 때문에 빌리는 경기에서 졌다. 곧이어 아내와 불화로 갈라서게 되면서 빌리의 선수생활은 추락하고 결국 복싱을 접게 됐다. 이후 수입이 없어 농장에서 일일 고용자로 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생활을 한다. 담배를 피려고 주머니와 방을 뒤져도 성냥 하나 나오지 않을 때, 농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막노동을 할 때 그는 다시 복싱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추락을 경험한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빌리는 괴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다가 또 얼마 안 있어 다시 복싱을 할까 생각하는 작심삼일을 반복하고 있다.
한편, 루벤의 마음에 든 어니는 얼마 안 있어 아마추어 데뷔를 하는데 첫 경기에서 싱겁게 지고 만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 빌리는 술집에서 말 많은 여자 오마를 만나고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오마는 알콜중독자에 밥을 먹지도 않으며 한시라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 때가 없다. 오마가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느낀 빌리는 루벤의 조언을 듣고 오마의 집에서 나온다. 빌리는 이제 루벤이 마련해 준 집에 살면서 복귀전을 준비한다. 복귀전에서 멕시코인 '쇠주먹'과 경기를 하는데, 너무 많이 맞아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상대의 약점이 복부라는 걸 알고 휘청휘청거리면서도 집중공격을 해 결국 TKO로 이긴다. 이 경기에서 프로데뷔전을 치른 어니도 이겨서 일행은 기분 좋게 돌아간다.
하지만 빌리는 목숨을 내놓고 뛴 경기에서 자신이 얻은 수입이 100달러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리고 곧장 오마의 집에 찾아가지만 오마의 전애인인 얼이 돌아와 있었다. 오마는 신경질을 내며 빌리에게 욕을 하고 얼도 앞으로는 오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빌리는 벙 찐 표정을 짓는다. 조금 뒤, 빌리는 만취한 상태에서 어니를 만나 커피를 마시러 간다. 커피를 따라주는 노인을 보며 빌리는 어니에게 저 노인이 젊었을 때가 상상이나 되냐고, 노인은 아마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괴로울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니는 저 사람이 행복할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자 빌리는 순간 벙 찐 표정으로 커피 따르는 노인과, 카페에 있는 다른 노인들을 보고는 다시 벙찐 표정을 지음으로써 영화는 끝이 난다.
어니에게 스파링을 제안하는 초반 장면을 보고, 나는 빌리가 어니를 챔피언으로 키우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반적인 할리우드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팻 시티는 요새 상영되고 있는 상업영화(우리나라영화 포함)와는 달랐다. 그말인즉슨 관객이 기대하는 대로 전개되고, 관객이 예상하는 시점에 결말을 맺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나서 정리가 잘 안됐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비평가의 설명 덕분에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빌리는 자신에 대한 과잉믿음으로 살아간다. 퇴물복서지만, 조금만 다시 훈련하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전성기 때 자신의 여유로웠던 삶과 선수생활을 자랑한다. 하지만 빌리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프로 재기가 어렵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술집에서 오마에게 자랑할 대는 득의양양한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평상시 모습은 활기가 없고, 축 처져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옛일을 자랑하면서 언제든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약 그런 믿음마저 버렸을 때 닥쳐 올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는 존재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노인의 모습과 자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벙찐 표정을 짓는다.
복귀전을 치르고 100달러밖에 받지 못한 빌리가 루벤의 차에서 뛰쳐나가 차들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도로를 건널 때 루벤은 빌리에게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무척 걱정하며서 말한다. 하지만 빌리는 이에 아랑곳않고 뒤, 좌, 우 살피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걸어간다. 차가 쌩쌩 달리며 언제 자신을 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만 보고 길을 건너는 이 장면에서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위태로운 상활을 투박하게 헤쳐나가는 LA 빈민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결코 빌리와 편한 관계가 아닌데도 빌리가 오마를 찾아갔을 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빌리를 대한 얼과 자신의 약점을 집중공격해 이긴 빌리에게 화가 날 법한데도 경기 후에 포옹을 나누는 '쇠주먹'에게서 연대와 동지의식이 보였다.
이처럼 '팻 시티'는 보통사람들의 위태롭지만 하루하루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