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선은 왜 우리 역법을 고집했나
이야기가 장황하고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 좀 어렵고 지루했지? 서양인들의 하늘과 그 운행을 보는 방식은 중국의 천문역학을 거쳐 이렇게 간난신고 끝에 ‘우리 것’이 되었어. 이제 마무리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우리 역서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을까를 생각해 보자. 청나라의 금령을 어기면서까지 굳이 우리 자신의 역서를 갖기 위해 그 긴 시간 국가적 노력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이 그 까닭을 우리나라가 농경사회라는 데서 찾아왔단다.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었잖니? 계절 변화를 알 수 있는 표지가 바로 절기라는 것도 알고 있지? 그래서 농경사회인 조선에서는 24절기의 정확한 산출이 매우 중요했다는 거야. 절기가 가리키는 대로 파종에서 수확까지 생산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농경만을 위해서라면 그토록 오랫동안 청나라의 금령을 어겨가며 시헌력을 굳이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었을까?
“농업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확한 역서가 있으면 되는 것이지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런 역법을 조선이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없”(전용훈, 「조선 후기 서양 천문학의 갈등과 융화」, 2004년 서울대 박사학위)지 않았을까? 실제로 조선은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인 칠정산 내외편을 제작해서 운용하고 있었거든. 물론 칠정산 내외편은 대통력과 회회력에 기반한 역법인 만큼 갈수록 천상의 행도에 어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 그러나 어긋남이 농사철을 놓칠 만큼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어. 더욱이 평기법과 정기법의 차이는 고작 2~3일에 불과해. 이 정도라면 보완을 통해 농사철에 맞출 수도 있었다는 거야. 정작 새로운 우리 역법을 제작하려 노력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거지.
조선에서 우리가 제작한 우리 역법이 필요했던 것은 “역서가 더 근본적인 이념을 구현하는 상징적인 매개체였기 때문”(앞의 논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우리 조상들도 받아들인 역법과 관련된 핵심 이념이 하나 있어. 앞에서 이미 말해서 너도 기억하겠지만, ‘관상수시(觀象授時)’라는 개념이 그것이야. ‘하늘을 관측하여 백성들에게 시간을 내려주는 것이 제왕의 중요한 의무’라고 하는 생각을 말하는 거지. 새 왕조를 세우면 새 역법을 제작하려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거야. 그런데 조선은 명과 청의 번속국이었잖아? 번속국은 자신의 역법을 가져서는 안 되고 황제국의 역서를 받아서 그대로 사용해야 했지. 그런데도 조선이 굳이 독자적인 역법을 제작하려 노력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관상수시’의 이념을 실천하려 했음을 보여준다는 거야. 비록 표면적으로는 역법을 받아쓰는 번속국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조선 또한 유교적 정치 이념을 지닌 엄연한 국가라는 것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선언하려 했다는 거지.
황사영(1775~1801)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니? 너와 함께 본 영화 자산어보에서 주인공 정약전의 조카사위를 기억하디? 바로 그 분이 황사영이야. 이 분은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프랑스 군대를 동원해 가톨릭을 탄압하는 조선 정부를 전복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려다 거열형을 받잖아? 흥미로운 것은 이분의 백서에 역서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사실이야. 황사영은 백서에서 조선이 역서를 만들 수 없는 번속국인데도 사사로이 독자적인 역서를 만든다고 고변했어. 청 조정은 조선이 시헌력을 자국에서 제작, 배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지. 그렇지만 청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어. 알면서도 묵인한 거지. 청나라는 조선이 일반적인 분봉국과는 달리 특수한 지위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승인한 거야. 조선은 형식적으로는 번속국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독립국임을 대외적으로도 암묵적으로나마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나는 여기에 더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구나. 한반도의 위‧경도에 맞는 역법을 만들고자 한 과학자들의 노고를 말이야. 천상의 행도를 관측해서 정확한 역서를 제작하여 백성들의 생활상 불편을 해소할 의무가 있는 관상감원들의 직업 정신,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독자적인 역법 산출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지. 과학자로서 천상의 올바른 행도를 구해야겠다는 진리 추구에 대한 열정,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 이런 것이 서양의 하늘을 ‘우리 것’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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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린아, 이렇게 ‘우리 것’이 된 시헌력은 1896년 대한제국의 을미개혁으로 폐지되었단다. 고종 황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을 도입해서 세계와 소통하려 했지. 그레고리력이 제정된 것은 1582년이야. 시헌력보다 더 오래된 역법이라니, 좀 아이러니하지? 그레고리력을 도입하면서 양력 1월 1일은 ‘신정’이 되고 시헌력의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 되었단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이후에도 그레고리력 중심의 행정이 계속되었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신정’은 서양에서 들어온 가짜 설날이고 음력 정월 초하루가 진짜 우리 설날이라고 생각했지. 우리 집안에서도 음력 정월 초하루에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지 않니? 1989년 정부에서도 마침내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날’이라는 이름(한때는 ‘민속의날’이라는 정체불명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단다)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지. 이렇게 설날만이라도 ‘우리 설날’을 ‘우리 것’으로 쇠게 되었구나.(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