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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나도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했을 당시엔, 항상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대화할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미국 첫날 도착 당일에 공항에서 입국관리자가 뭘 물어봤을때, 얼굴부터 확 빨개지고, 또 그많은 입국자들 앞에서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게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은 외국인과의 대화였고, 그 결과는 안타까울 만큼 처참했다.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입국관리자는 나를 향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수차례 휘저으며 짜증난 듯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난 주위의 한국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입국을 할수 있었다. 참 쪽 팔리는게 뭔지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거 같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이후론 외국사람들과의 대화가 너무 꺼려지고 또 망설여졌다. 미국에 첫발을 내딛은 한 유학생의 앞날이 그렇게 암울할수가 없었다. 아…이럴줄 알았으면, 유학 오기 전에 영어 공부 좀 더확실히 하고 올껄…하며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4년전 내가 미국을 처음 도착한 날 느꼈던 심정들이다.
지금은 물론 미국생활에 잘 적응했고, 대학도 열심히 다니며, 또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렇게 내가 웃으면서 옛날 추억들을 세계엔에서 얘기할수 있는게 모두 예전에 우연히 만났던 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덕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준 그 정신분열증 환자와의 만남에 대해 글을 한번 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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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는 새학기가 시작 되기 전까지 한달 정도가 남아서 별로 얘기를 나눌 사람들이 주위에 없었다.
집에서 영어공부하며, 또 TV를 시청하며 그렇게 혼자서 영어를 많이 접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평일에는 근처 공중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자주 하곤했다. 집에 맨날 쳐박혀 있는것 보단 밖에 나와서 외국 사람들도 구경하고 싶었고, 또 그들의 생활도 볼겸해서..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당시 내 영어실력으론 친구를 사귀기란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가 웬말인가,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하는것 조차 솔직히 싶지가 않았다.
근데, 내가 도서관을 자주 찾으면서 발견한 한 외국인…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달라보이는 외모하며, 사실대로 말해 좀 띨해 보였던 외모, 그리고 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고있던 두터운 옷, 머리도 깎은지 좀 오래된 듯 보였고, 또 혼자 뭐라고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던 20대 중반 백인 남자.
사실, 내가 미국에 오기전에 한국에서 정말 친한 친구 하나가 나한테 조언을 하나 해줬다.
“OO아, 니가 미국가서 진짜 열심히 할려거든, 한국 사람들하고는 대도록 어울리지 마라. 영어를 배울려거든 영어만 쓰면서 살아라. 내가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하버드에 다니는 한국학생 한명은 길거리에서 미국 거지들하고 점심을 먹으며 얘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사람하고는 상종을 안했다고 들었다. 니도 그런 마음 가짐으로 유학생활을 해라. 그러면 바보가 아닌이상 너도 틀림없이 영어가 늘꺼다. 제발 미국가서 실패하지 말고 성공해서 돌아오길 바란다.”
내가 본 그 미국인은 거지는 아니였고, 약간 정신상태가 모자란것 같아 보였다. 알고 보니 정신 분열증 (영화 ‘뷰티불 마인드’ 에서 주인공이었던 교수가 가지고 있던 병) ..그리고 정신 착란증
뭐 그런걸 떠나서, 도서관만 가면 볼수있었기에, 일단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대충 옆에서 말하는걸 들어보니, 꼭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것 처럼 혼자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그래서 하루는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내가 아는 영어를 좀 써먹어 봐야 겠다 싶어서, 일부러 그사람 옆에 앉았다.
쉬지 않고 계속 혼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그사람..
내가 한마디 했다. “이름이 뭐에요?”
그랬더니 그사람 나를 쳐다보면서 얘기한다. “조쉬” 그러고는 또 혼자 막 얘기를 한다.
헉..이사람 내말을 알아들었다. ㅋㅋ 웬지 모르게 그사람 앞에선 가슴이 떨린다던지,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대화가 가능하다는걸 알고 나니, 실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날 부터,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나서, 이사람과 대화를 하며 실력을 키우자고 혼자 결심을했다.
항상 혼자 있는 이사람한테는 내가 말동무가 되어줄수 있을테니 좋을테고, 또 나에겐 영어를 자연스럽고 편하게 쓰는 연습이 필요했기에 나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are you ~ing 에 관해 공부를 하고 나면, 다음날에 도서관에 가서, 조쉬에게 물어봤다. Are you eating? Are you sleeping? Are you watching?
조쉬는 yes 아니면 No 로 대답을 짧게 했고, 잘 못알아 들었으면 내 쪽을 바라보며 은근히 다시 말해주길 바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전혀 싫은 표정도 만들지 않고 또 내가 싫은 듯 행동하지도 않았다. 만약, 싫은 듯한 행동을 보였다면 아마 내가 거기서 그만두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두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인테넷을 이리저리 하면서 내가 물어보면 대답도 잘해주고 그랬다.
결국 난, 몇일을 그렇게 조쉬를 상대로 영어 학습을 했다. 주로 나의 스피킹 위주의 대화. 내가 영어가 완전 초보였기에 아주 간단한 물음형식의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뻤던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입에서 다른 언어를 얘기하는게 어색하지가 않았다. 거기다 더 좋은건 내가 발음을 좀 이상하게 하면, 조쉬가 고쳐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의자를 ‘체어’ 라고 하면 조쉬는 못알아들은 표정을 짓고, 내가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르키며 ‘체어’라고 하면, 그때서야 조쉬는 “췌어~얼” 라며 마지막 R 에 중요한 발음을 내 앞에서 확실히 보여줬다.
몇일이 더 지나니, 조쉬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자기 옆에 앉으면, 내쪽을 보며 살며시 아는 사람 보는 듯한 눈길을 준다. 그러면 난 자연스럽게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 어제는 뭐했냐? 밥은 뭘 먹었냐? 몇시에 잤느냐? 운동하는거 좋아하냐? TV는 뭘보냐? 등등 내 머리속에 있는 모든 영어의 지식과 단어를 통합해 질문을 시작한다.
그럼 조쉬는 대답을 하던지 아님 나보고 다시 얘기해주길 원하던지 아님 나의 발음을 고쳐준다.
그렇게 난 미국에서 누군가와 처음으로 편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난 조쉬도 나에게 뭔가를 물어봐주길 원했다. 그래야 나의 듣기 실력도 향상이 될거 같아서.. 그래서 하루는 내가 물어봤다. “넌 나한테 뭐 물어볼꺼 없니?” 조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냥 컴퓨터를 한다. 에구구, 뭐어때, 내가 너무 큰걸 바랬나, 라고 생각하며 그냥 없었던 일로 할려고 했다.
근데 갑자기 내쪽을 쓰~윽 쳐다보더니, 조쉬가 내 이름을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가 아마 2주가 넘게 서로를 알아온 시점인걸로 기억한다..
난 조쉬에게 내이름을 말했지만, 발음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도저희 내 이름을 말하질 못한다. 댕규, 댄큐, 대튠, 태쿤, 답큠…이런 젠장…대 여섯번을 말했는데 계속 엉뚱한 발음으로 내이름을 말하는것이 아닌가..엣다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킴’이라고 불러라 그게 내 성이다 라고 했더니, 이 자식이 그때서야 실실 웃으면서 ‘킴’ 이러는게 아닌가…
그의 갑작스런 환한 웃음에 좀 어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첨 보는 그의 미소에 나까지 덩달아 한참을 웃어버렸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가고 시간은 어느덧 학교 개학날이 다가왔다.
난 학교 개학후엔 공중도서관에 들릴 일이 흔하지가 않았다. 새로운 학교생활 적응에 바빠졌고, 또 새로운 친구들 사귀기에도 많이 바빴기 때문이다.
한달간의 조쉬와의 대화는 내가 다른 외국인들을 만났을때 생기는 어색함이나 수줍음 그리고 부담감을 완전히 없애주었다. 아마 그게 도움이 되어서 학기 초반에 시작을 잘 할수있었던거 같다.
물론 학교안에서도 될수있으면 한국사람들과 만나는것은 자제했고, 꼭 한국사람과 대화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난 영어로 하길 원했다. 물론 나보다 유학을 먼저온 한국사람들은 나보고 이상하니 미쳤니 쓸떼없는 짓 하니 했지만, 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국에서 거지와 어울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 사람은 자제해라”
한국에서 나를 위해 조언을 해준 내친구의 말을 나는 그대로 따랐다.
내가 성공적인 미국유학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난 내 미국생활을 되돌려봤을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글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한테 딱 한가지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쉬를 만난이후, 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아주 소중한 인연이 될수도 있는 사람들을 그냥 모르고 스쳐 지나갈수 있는지를 느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아마 난 조쉬같은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쉬를 만나고 또 그로 인해 내가 살아온 24년의 인생에서 놓쳤던 큰 진실을 하나를 깨달았다.
조쉬와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내가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또 잘 웃지 않는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을때 내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도 알게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난 전공을 간호학으로 정했다.
아픈 사람들, 또 병과 장애로 인해 사회로 부터 외면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늘진 얼굴속에서 환한게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게 어쩜 내가 사는 이 갑갑한 세상속에서 얻을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기회가 되면, 영화와 사진에서만 봐왔던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로 가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내손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
난 또 조쉬를 만난이후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나의 친구가 될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든, 더럽든, 키가작든, 불구이든, 못생겼든, 뚱뚱하든…
그게 아무 부질 없다는 것을 조금 늦은 내나이 24살때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만날수 있는 친구의 폭이 정말 다양해졌고 또 넓어졌다.
나이와 인종을 떠나,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 그리고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보고 배웠던 또다른 세상은 내가 유학을 와서 경험하고 얻은 가장 값진것들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4년전 우연히 만난 정신분열증 환자 조쉬에게 내가 배울려고 했던것은 영어였는데 결국 그에게서 인생을 배운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현제 조쉬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한다. 가끔씩 공중 도서관을 들릴 일이 생기면, 예전에 그가 자주 앉았던 자리를 찾아가보곤 했지만, 첫학기 시작 이후론 그를 보지 못했다. 만약 다시 조쉬를 만난다면, 물론 나를 기억할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더 많은 얘기를 나눌수도 있을것 같고, 또 그를 더 잘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잠시 스쳐지나간다.
참 그리고 난 미국에서 불려지는 이름이 두개가 있다.
하나는 나의 진짜 이름이다. 왜냐면, 서류상의 이름은 면허증 이름과 같아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난 친한 친구들에게 그냥 ‘Kim’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물론 친구들이 이름을 안까먹고 또 발음하기 쉬워서 그러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조쉬가 처음으로 나를 부를때 ‘Kim’ 이라고 하고 나서 나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이나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을 내 평생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던게 나의 또다른 이유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 마음으로 넓은 세상을 대하는 멋진 한국 유학생들이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