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산행記(09-9)
-전북 완주군 구이면,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을 다녀와서-
요즘 날씨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햇빛은 봄날처럼 화사하게 비치는데 바람은 한 겨울처럼 차갑게 불고 있다.
강원도산간지방은 눈이 오십여cm나 되게 내려 눈 피해가 발생했으며, 중부지방은 비가내리고 있고,
해안지역은 강풍으로 교통수단들이 통제되고 있다지 않는가.
광주도 날씨는 맑고 쾌청한데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총총걸음으로 바쁘다.
우수 경칩이 지났다고 깜짝 놀라 뛰어나온 개구리들하며, 계절을 믿고 서둘러 핀 꽃과 새싹들은 이제 어쩌란 말인가?
남쪽 갔다 돌아 온 제비들은 이런 날씨를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말하겠지.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나지 않는데,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는 漢나라 절세미인 왕소군의 일화가 생각난다.
이야기인즉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흉노 왕에게 반반한 궁녀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어보았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 연수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 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괘씸하게 여긴 모 연수는 왕소군(王昭君)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
오랑캐 땅으로 떠나는 날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원제는 화가 모 연수를 목을 베는 참형에 처했다고 한다.
요즘 한 신인 여자배우의 자살사건이 우리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연예계의 고질적인 비리폭로라는 측면에서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性상납을 요구한 높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있다는 “장 자연 리스트”가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性과 여자와의 관계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는 요즘 날씨나,
왕소군이나 장 자연 같은 여자의 한(恨)과 슬픔도 이제는 있어서는 안 되겠지.
오늘 산행할 山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 경계에 있는 모악산으로 높이는 794m이고.
노령산맥의 말단부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선각山, 국사봉 등이 있다.
山이름은,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서 모악(母岳)이라고 했다는 설(說)과.
金山寺지에는 "엄 뫼"라는 큰 山을 뜻하는 말이 어머니 山이라는 뜻으로 의역되어 모악 이라고 적혀 있다는 두 가지 說이 있다.
1971년 12월 1일에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고.
모악산 정상에 있는 구조물은 방송사 송신탑(J TV, KBS전주)이며, 김일성 조상의 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斜面)을 제외한 전 사면이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 산행할 코스는 구이면주차장에서출발 -선녀폭포좌측 -전주김씨 시조 묘 -590봉 -헬기장 -정상 -제2헬기장
-모악정 -금산사계곡 -공원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약 5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다.
요즘은 산행도중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코스가 변경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전주김씨 시조 묘라는 입구 안내 푯말을 보고 진입을 했는데 도중에 능선하나를 안쪽으로 당겨서 올라간 탓으로
시조 묘는 구경도 못하고 590봉으로 올라가는 아쉬움도 있었다.
선녀폭포 좌측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오르막길로 시작되었지만 그렇게 힘이 든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활엽수 낙엽이 산행路를 덮고 있어 한적한 마을길을 걷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대체로 날씨는 맑았고 기온도 떨어지지 않아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특히 오늘산행은 10여명의 회원들이 한조가 되어, 오손 도손 얘기를 하면서 하는 산행이라 피로감도 덜 느끼고
활기찬 산행이었다.
신선바위에서 기념촬영도 했고,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여성회원들이 준비해온 봄나물이 입맛을 사로잡는
바람에 즐겁고 행복한 점심시간이 되었다.
드넓은 김제, 만경평야가 내려다보이고, 전주시 완산구 시가지가 가깝게 보인다.
모악산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저수지로 흘러든 뒤 삼천川을 이루어 전주시로 흐르고,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川, 원평川은 동진강으로 흘러들어 김제 벽골제의 水源이 되기도 한다는데.
예로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金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하며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砂金鑛山)이
몇 군데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新都安), 풍기(豊基)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地라 하여
국난이 닥칠 때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 때는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던 곳이며,
자연경관이 빼어났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고 소개되어있다.
정상에는 KBS송신탑이 우뚝 버티고 있어 산정(山頂)의 아름다움을 훼손해버렸고,
산행인 들을 위한 배려라고 철 계단을 만들어 대여섯 평 남짓한 정상바위를 개방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모악산의 봉우리라 말할 수 있을까?
출입금지구역을 우회해서 제2헬기장으로 갔는데, 우리는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했다.
모악정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 山竹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심원암으로 오게 되었으니
결국은 금산사계곡 길도 모악정도 보지 못했다.
하산 길 초반에는 경사도가 심했고, 얼었던 땅이 녹아 흙이 흘러내려 힘이 들었지만,
산죽(山竹) 길로 이어지면서 길은 좋아졌다.
전북대 생물학과 대학생들이 엠티를 와 마침 하산중이라 함께 대화하면서 산행을 했다.
사찰의 규모도 크고, 역사성도 깊은 금산사 경내를 구경했다.
템플 아카데미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고, 초파일 석가탄신 경축행사 준비도하고 있었다.
금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이다.
1635년에 기록된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하며,
1492년에 씌어진 (금산사 5층석탑중창기)에 의하면 과거佛인 가섭佛 때의 절터를 중흥한 것이라 하여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금산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62년에서 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어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로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진표 이후에 후백제 견훤에 의해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고려 초 1079년에 법상종의 대종사(大宗師)인 혜덕(慧德)왕사가 주지로 부임해 간경, 법석(法席)을 주관하는 장소인
광교 원(廣敎院)을 설립하는 등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도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석연대(石蓮臺), 5층 석탑, 노주(露柱) 등이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암자와 건물 40여 채가 불타버렸으나
1601년(선조34년)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 완공했다.
조선 고종 때 미륵전(彌勒殿), 대장전(大藏殿), 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 대적광전, 금강문(金剛門), 미륵전 등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다시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며 현재 복원을 계획하고 있는데.
지금 절에 남아 있는 유물, 유적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서쪽 기슭에 있는 금산사 경내에는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노주(露柱 보물 제22호), 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보물 제24호), 5층 석탑(五層石塔 보물 제25호), 석종(石鍾 보물 제26호),
6각 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보물 제27호),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8호), 대장전(大藏殿 보물 제827호),
석등(石燈 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금산사의 출입구이기도 한 홍예석문(虹霓石門)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봄 벚꽃, 가을 감나무 숲이 운치를 더해주며, 이 일대에서는 10월에 민속축제인 김제 벽골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성철 큰스님-
뚜렷이 깨달음 널리 비치니
고요함과 없어짐이 둘 아니로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마다 묘한 이치로다
보고 듣는 이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여기 모인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로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취임 법어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산외면에 있는 韓牛촌에 들렸는데 사람 좋은 상섭, 동성 두 회원이 자비로 한우생고기를 사서
회원들에게 술안주로 대접하는 흐뭇한 일도 있었다.
오늘 산행버스는 최기사가 개인사정이 있어서 기사와 차량이 모두 바뀌어 왔는데,
새로 온 버스기사가 운전을 서툴게 해 회원들이 불안해하면서,
그동안 회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운전해 준 최기사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9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