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택(荷澤) 화상 육조(六祖)의 법을 이었고 서경(西京)의 하택사(荷澤寺)에 있었다. 선사의 휘(諱)는 신회(神會)요 성은 고씨이며 양양 사람이었다. 화상께서 처음으로 육조의 처소에 이르니 육조가 물었다. "그대는 멀리서 오느라고 매우 수고했는데 본래의 것을 가지고 왔는가? 만일 본래가 있다면 의당 주인을 알아야 할 터이니, 그대는 말해 보라." 선사께서 대답했다. "신회(神會)는 머무름 없음으로써 근본을 삼고, 봄[見]이 곧 주인입니다." 이에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미(沙彌)가 어찌 경솔한 말을 하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어지러이 때리니, 선사는 매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큰 선지식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만났으니, 어찌 목숨을 아끼랴?] 육조께서 그의 말이 뜻깊고, 감정이 지극히 간절했기 때문에 시험하신 것인데 이로 인해 몸소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동도(東都)에서 교화를 펴면서 종지(宗旨)를 다지니, 남쪽의 혜능(惠能), 북쪽의 신수(神秀)의 뜻이 신회(神會)로 인해 드날려졌고, 조계(曹溪)의 한 가지가 비로소 우주(宇宙) 안에 꽃다워졌다. 천보(天寶) 때에, 어사(御史)로 있던 노액(盧液)은 북종(北宗) 보적(普寂)의 문도였는데 [신회가 낙양에서 무리를 모아 교화한다]는 사실을 아뢰니, 현종(玄宗)이 불렀다. 이에 응하여 천안(天顔)을 대하니, 말과 이치가 부합하여 황제의 심정이 정중하여졌다. 유사(有司)가 재량하여 균주(均州)로 옮기게 했는데, 지덕(至德) 이년에 숙종(肅宗)의 어명으로 형주(荊州)에서 개원사(開元寺사로 옮겼다. 이때, 선사의 고향에서 소식이 전해 왔는데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에 선사께서 승당(僧堂)에 들어가서 백추(白鎚; 나무 망치로 나무를 치며 알리는 것. 설법 전후에 함)하고 외쳤다. "우리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니 대중은 모두 마하반야를 염하시오." 대중이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말했다. "스님네여, 수고하셨소. 잘들 돌아가시오." 선사께서 상원 원년 五월 十三일에 입적하시니 시호는 진종(眞宗) 대사요, 탑호(塔號)는 반야(般若)였다.
정거(靖居) 화상
육조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계셨다. 화상의 휘(諱)는 행사(行思)요 속성은 유씨이며 여릉(廬陵) 사람이었다. 조계의 법을 받은 뒤로 다시 여릉(廬陵)으로 돌아가서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어떤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法衣) 대의입니까?" 화상께서 대답했다. "여릉(廬陵)의 쌀값이 어떻던가?" 화상께서 신회(神會)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신회(神會)가 대답했다. "조계산(曺溪山)에서 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에에 신회(神會)가 몸을 솟구쳐서 보이니, 화상께서 말했다. "아직도 기와쪽을 가지고 있구나!" 신회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진금을 가지고 계시면서 사람들께 주시지 않습니까?" "설사 그런 일이 있다한들 그대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조계의 문인으로서 여릉(廬陵)에서 출세했네. 오직 한 맥의 법만으로 삼승의 법을 멀리 뛰어났다.
못 속의 외로운 촛불이요 불 속의 한 조각 얼음인가. 그대 묘하게 깨쳤다면 말씀하신 도리에 상응(相應)하리라.
파조타(破 墮) 화상
안 국사의 법을 이었고 북방에서 계셨다. 어떤 선사가 조왕신만을 잘 섬기어서 조왕신이 나타나는 감응을 자주 얻으니, 그 지방에서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부처님보다 더하였다. 이때 화상(和尙)께서 그곳에 가셔서 조왕신에게 설법을 하시니, 조왕신이 듣고 곧 하늘에 태어나게 되어, 본래의 몸을 나투어 화상께 하직을 고하러 와서 말했다. "화상의 지중하신 설법을 듣잡고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으므로 일부러 하직을 고하러 왔습니다. 곧 하늘 나라로 갑니다." 말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지고 조왕신의 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화상은 본래부터 이름이 없이 살았는데 이로 인해 파조타"조왕단을 파괴하여 무너뜨림"라고 부르게 되었다.
등등(騰騰) 화상
안 국사의 법을 이었다. 선사께서 지은 낙도가(樂道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도를 물으나 도는 닦을 수 없고 법을 물으나 법은 물을 수 없다. 미혹한 사람은 성품의 공함을 모르지만 지혜로운 이는 본래 어김도 순함도 없다.
팔만 사천 법문이 많지만 지극한 이치는 내 마음을 여의지 않고 있다.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을 필요 없고 말 재주와 총명에도 있지 않다.
자기 집의 성곽을 지킬지언정 부질없이 남의 고을 쏘다니지 말라. 언어는 성품의 공함을 여의지 않았고, 광채를 융화함은 먼지와 함께 하지 않는다.
번뇌가 곧 보리수(菩提樹)요 깨끗한 꽃은 진흙에서 난다. 누군가가 문답하기를 요한다면 누가 그와 토론을 하랴?
달이 크고 작음도 알 수 없고 해와 윤달의 있고 없음도 모른다. 새벽에는 죽으로 배를 채우고 낮에는 다시 한 술 먹는다.
오늘도 마음대로 등등하고 내일도 등등하여 마음대로 한다. 마음속에 또렷또렷 모두 알건만 거짓으로 어리석은 속박에 빠졌을 뿐이다.
노안(老安)국사
오조(五組) 홍인(弘忍) 대사의 법을 잇고 숭사에 있었다. 탄연(坦然)이라는 선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자기의 뜻은 묻지 않고 남의 뜻만 물어서 무엇 하려는고?" "어떤 것이 탄연(坦然)의 뜻입니까?" "그대는 비밀한 작용이 필요하니라." "어떤 것이 비밀한 작용입니까?" 이에 선사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탄연이 얼른 깨달았다. 나찬(懶璨) 화상
남악에 계셨으며, 스님에게 다음과 같은 낙도가(樂道歌)가 있다.
오똥이 일없어 바꾸고 고칠 일없나니 일없는데 한 토막의 이야기가 어찌 필요하리요? 참 마음은 산란(散亂)함이 없으니 그 일은 끊을 필요가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이루 셀 수 없다. 오뚝이 일 없이 앉았으니 일찍이 아무도 부른 적 없다.
밖을 향해 공부를 닦으려 하나니 모두가 어리석은 무리로다. 양식이란 한 알 모으지 못하면서 밥을 만나면 먹을 줄만은 안다.
세상의 일 많은 사람들은 서로 뒤쫓아도 전혀 따르지 못한다. 나는 하늘에 나기도 좋아하지 않고 복밭도 사랑하지 않는다.
시장하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잔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약다고 비웃지만 어린 이는 어리석지 않음만은 알 수 있으리.
근본법 체가 본래 그러하니 가려면 가고, 멈추려면 멈춘다. 몸에는 해어진 누더기 한 벌을 입었고 다리에는 엄마가 낳아 준 바지를 걸쳤다.
말이 많고 또 말이 많은 것은 원래 서로가 속이기 때문이니 중생을 건지려 하면 스스로를 제거하는 것만 못하리.
참 부처를 부질없이 구하지 말라. 참 부처는 볼 수가 없느니라. 묘한 성품과 신령한 마음 바탕에 어찌 닦아서 길들임이 있으랴.
마음은 일없는 마음이요 얼굴은 엄마가 낳아 준 얼굴이라. 겁석(劫石)은 가히 옮길 수 있으나 이 소식은 고치지 못하리라.
일없음이란 본래 일 없음이니 어찌 글을 읽을 필요 있으랴. 너와 나의 근본을 깎아 버리고 그 안의 소식에 명합(冥合)하여라.
갖가지로 힘들이는 짓 숲 속에서 조는 것 만 같지 못하니 오똑이 고개를 들어 해가 높거든 밥을 빌어다가 모조리 먹어 준다.
공부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더욱더욱 어두워지나니 집착하면 얻지 못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저절로 통한다.
나에게 한 마디 말이 있어 생각과 반연 잊었으니 교묘한 말로도 얻을 수 없고 다만 마음으로만 전해야 한다. 또 한 마디 말이 있는데 바로 주는 것만 못하다. 가늘기가 털끝 같아서 본래 방위가 없도다. 본래 원만히 이뤄졌으니 기계와 고동을 쓸 필요가 없다.
세상의 일은 끝없는 것 산과 구렁이만 못하니 푸른 잎이 해를 가리고 푸른 시내가 여울져 흐르거든 등 넝쿨 밑에 누워서 돌덩이로 베개를 삼고 뜬 구름으로 휘장을 삼고 초생 달로 갈구리를 삼으라.
천자에게 조회치 않으니, 어찌 왕후를 부러워하며 죽고 삶을 근심치 않거니 무엇을 더 걱정하리요.
물 속의 달이 그림자 없는지라 내 항상 이러할 뿐이요 만 가지 법이 다 그러한지라 본래부터 태어남이 없도다. 오똑이 일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면 풀이 저절로 푸르러진다.
조과(鳥 ) 화상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의 법을 이었고, 항주에 계셨다는 것 이외에는 행장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와 시종을 알 수 없다.
어느 날, 시자(侍者)가 하직을 고하니, 선사께서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려느냐?" 시자가 대답했다. "제방으로 불법을 배우러 갑니다." "그래?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그만치는 있느니라." "어떤 것이 스님의 불법입니까?" 선사께서 한 토막의 베올을 뽑아서 시자(侍者)에게 보이니, 곧 깨달았다.
또 백사인(白舍人)이 친히 심계(心戒)를 받았는데 가끔 한 자리에 앉았어도 전혀 한 마디도 없으매 사인의 세째 아우가 이를 보고 시를 읊었다.
백두 거사가 선사와 마주 앉으니 바로 그것이 능엄 삼매의 때로다. 한 물건도 없지만 백 가지 맛 구족한 줄을 항하사 세계에서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백사인(白舍人)이 물었다. "하루 십이 시간 동안에 어떻게 수행하여야 도와 상응(相應)하리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런 것이야 세살 먹은 아이라도 알겠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알기는 쉬우나 백 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매우 어려우니라." 사인이 이 말씀에 절을 하고 스승으로 섬기고, 찬(讚)을 하였다.
겉모양 여위고 뼈가 드러나도록 오래 수행했건만 한 벌의 베옷만으로 도의 뜻에 맞도다. 일찌기 띠집 짓고, 푸른 나무에 기대더니 천하에는 조과 선사의 이름만이 드높다.
선사께서 백사인(白舍人)에게 물었다. "그대는 백씨 댁 자손이 아닌가?" 사인이 대답했다. "예, 성은 백씨이고 이름은 거이(居易) 입니다." "그대 아버지 성이 무엇인고?" 사인이 대답이 없었다. 사인이 서울로 돌아가서 어느 절에 갔다가 중이 경 읽는 것을 보고 물었다. "나이가 몇이나 되셨습니까?" "八十 五세 외다." "경을 외운지는 몇 해나 됩니까?" "六十년 쯤 됩니다." 이에 사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매우 이상하다. 매우 이상하다. 아무리 그렇지만 출가한 이에게는 의례 본분의 일이 있을 터인데 어떤 것이 화상(和尙)의 본분입니까?" 중이 대답이 없거늘 이로 인해 사인이 시를 읊었다.
빈 문에 길이 있건만 방향을 몰라서 머리가 희고, 이가 누르도록 경만 읽고 있도다. 어느 해에 성문의 술을 마시었기에 아직껏 깨어나지 못하고 있노?
선경산(先徑山) 화상
학림(鶴林)의 법을 이었다. 스님의 휘(諱)는 도흠이며, 대력(大歷) 때에 대종(代宗)이 서울로 청해 모셔다가 극일 선사라 호를 내렸다.
숙종(肅宗) 황제가 스님께 예재하러 왔는데 스님께서 보시(布施)고 일어나니, 황제께서 물었다. “대사께선 짐이 오는 것을 보시(布施)고 어째서 일어나십니까?” 이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단월(檀越)께선 어찌하여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 빈 도를 보십니까?”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뜻입니까?” 선사께서 대답하셨다. “그대의 물음이 온당치 못하니라.” “어찌하여야 온당하겠습니까?” “내가 죽은 뒤에야 그대에게 말하리라.”
강서의 마대사께서 서당으로 하여금 선사께 묻게 하되 「십이시 가운데 무엇으로 경계를 삼는가?」하니, 선사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먼저 돌아가면 편지로써 대사께 올리겠다.” 서당이 말했다. “지금 당장 돌아왔습니다.” 선사께서 말했다. “대사께 말씀 드려라. 조계에게 물어야 되겠다한다고.”
학림(鶴林)화상
우두(牛頭) 지위 선사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소인데 행장을 보지 못해 그 생애의 내용과 시종을 결단할 수가 없다. 다만 시호는 대율 선사요 탑호(塔號)는 보항인 것만 전한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아는 것이 곧 모르는 것이요, 의심하는 것이 곧 의심치 않는 것이니라.” 그러고는 이어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는 것은 의심치 않는 자요 의심치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자이니라.”
어떤 중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선사께서 물었다. “누구냐?” “중입니다.” “중뿐이 아니라 부처가 왔더라도 쓸데없느니라.” “어째서 부처님이 오셔도 쓸모가 없습니까?” “여기에는 공이 멈출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우두(牛頭) 법융(法融)화상
사조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법융(法融)이요, 윤주(潤州)의 연능 사람이며 성은 문씨였다. 사조께서 쌍봉산에 계실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오기 전 무덕 칠년 가을에 여산(廬山) 꼭대기에서 동쪽으로 기주의 쌍봉산을 바라보니 봉우리에 자주빛 구름이 일산 같이 서리었고 그 밑에는 흰 기운이 여섯 가닥이 가로퍼져 있었다.” 이때 사조가 오조(五組)에게 물었다. “그대는 저 상서(尙書)를 알겠는가?” 오조(五組)가 대답했다. “스님 밑에서 곁으로 다시 한 가닥이 퍼질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내 뜻을 잘 알았다. 잘 있으라. 나는 강동으로 가리라.” 그리고는 바로 떠나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捿寺)에 이르니 중이 수 백 명 앉았는데 아무도 도기(道機)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곁을 지나는 중에게 물었다. “대중이 모두 몇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는 도인이 있는가?” 중이 대답했다. “스님은 사람을 너무나 얕보시는군요. 출가한 사람으로서 누가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도인인가?” 중이 대답이 없더니, 이어 말했다. “산 꼭대기에 나융(나融)이라는 이가 있어 몸에는 베옷 한 벌만 걸쳤으며, 중을 보아도 합장도 할 줄 모르니, 그가 이상한 사람입니다. 선사께서 가 보십시오.” 사조께서 암자 앞으로 가서 오락가락하면서 말했다. “선남자(善男子)야, 심심삼매(甚深三昧)에만 들어있지 말라.” 이에 나융(나融)이 눈을 뜨니 사조가 물었다. “그대의 배움은 구함이 있어서인가? 구함이 없어서인가?” 나융(나融)이 대답했다. “나는 법화경에서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게 한다」고 한 말에 의해 도를 닦습니다. “연다 함은 누구를 열며, 깨닫는다 함은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나융(나融)이 대답이 없으니, 사조께서 말씀하셨다. “서천(西天)에서는 二十八 조사가 마음의 인장을 전하셨고, 그리고 달마(達磨)대사는 이 땅에 오셔서 서로 전하여 사조에 이르렀는데 그대는 모르는가?” 나융(나融)이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저는 항상 쌍봉산을 바라보고 정례하면서 한 번 가서 뵙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조를 알고자 하거든 바로 내가 사조니라.” 이에 벌떡 일어나 발에 머리를 문지르며 절하고 말했다. “스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우정 왔노라.”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여기 말고 딴 주거처가 있는가?” 나융(나融)이 손으로 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시 다른 암자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인도해서 암자 앞으로 가니, 범과 이리가 앞 뒤로 둘러 있고, 사슴 떼가 사방에 뛰고 있었다. 사조께서 두 손으로 두려운 시늉을 하면서 「무서워라」했더니 나융이 말했다. “스님에겐 아직 그런 것이 남아 있습니까?” 조사께서 물으셨다.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나융이 이 말씀에 의해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조사께서 이에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해주셨다. “대저 백 천 가지 묘한 법문은 모두가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해 같이 수 많은 묘한 공덕은 모두가 마음자리에 있다. 온갖 지혜가 모두 본래부터 구족하고 신통과 묘한 작용이 모두 그대의 마음에 있다. 번뇌와 업장이 본래부터 비었고 온갖 과보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다. 삼계에서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를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성품이지만 형상은 평등하다. 대도(大道)는 비고 넓어서 생각과 분별이 끊였나니, 이러한 법을 그대가 이제 이미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부처와 다름이 없고, 다시 성불할 법도 없다. 그대는 다만 마음에 맡겨 두라. 관도 짓지 말고, 마음을 모으지도 말고, 탐, 진, 치를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을 품지도 말라. 땅땅하여 걸림이 없고 뜻에 맡겨 자재하니, 선을 지으려 하지도 말고 악을 지으려 하지도 말라. 다니고 섰고, 앉고, 누울 때와 눈에 띄고 만나는 인연이 모두가 부처의 묘한 작용이어서 쾌락 하여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부처라 하느니라.” 나융(나融)이 물었다. “마음에 이미 모두가 구족하다면 어떤 것이 마음이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사조께서 대답하셨다. “마음이 아니면 마음을 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을 물으면 마음이 아닌 것이 아니니라.” “이미 관행을 허락지 않으셨으니, 경계가 일어날 때엔 어떻게 대치하리까?” “경계와 반영에는 좋고 추함이 없지만 좋고 추함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에 구태여 이름 짓지 않으면 망정이 어디서 일어나랴? 망심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면 참 마음이 마음껏 두루 알아서 마음을 따라 자유자재할 것이요, 다시는 처음도 끝도 없으므로 상주법신(常住法身)이 아무런 변역도 없다 이르니라. 내가 나의 스승 승찬(僧璨) 화상에게서 이 돈오법문(頓悟法問)을 받았는데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 받아 지니어서 나의 도를 번성케 하라, 이 산에 살기만 하면 뒷날엔 다섯 사람이 그대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게 되리니, 잘 간직하라. 나는 떠나리라.” 이 말씀에 선사(나융)께서는 옥의 티 같은 번뇌가 몽땅 없어지고 모든 상이 영원히 없어지니 이로부터는 신령스런 귀신이 공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 것으로써 살피건대 여래의 비밀한 뜻이 어찌 닦아 증득함으로써 능히 이를 수 있으며, 조사의 맏 아들과 현묘한 문에 어찌 고요함만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 없어져야 이치에 계합하거늘 현요(玄要)를 돌아보기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생겼고, 고요한 생각은 근원에 돌아갔거늘 선추(禪樞)를 바라보기에 초월(楚越)이 막히는 줄 알겠다.
나융이 다시 여쭈었다. “대저 성인은 어떤 법을 끊으며, 어떤 법을 얻었기에 성인이라 불리웁니까?” 조사께서 대답하셨다. “한 법도 끊지 않고 한 법도 얻지 않나니, 이것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끊지도 않고 한 법도 얻지도 않으면 범부와 무엇이 다릅니까?” “다름이 있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범부는 모두가 끊어야 할 허망한계교가 있다고 여기고 얻어야 할 참마음이 있다고 여기거니와 성인은 본래 끊을 바가 없고, 또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다르니라.” “어째서 범부는 얻을 바가 있다 하고 성인은 얻을 바가 없다 하십니까? 얻음과 얻지 못함이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차이가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범부는 얻을 바가 있으니 허망함이 있고, 성인은 얻을 바가 없으니 허망함이 없다. 허망함이 있으면 다름이 있고, 허망함이 없으면 다름이 없으면 다름이 없느니라.” “다름이 없다면 성인이란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습니까?” “범부나 성인이나 둘이 모두가 거짓 이름이다. 거짓 이름의 중간에 둘이 없는 것이 곧 다름이 없는 것이니라.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성인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 같다면 곧 없는 것이리니,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겠습니까?” “내가 거북의 털이라 한 것은 거북까지 없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대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그렇다면 거북은 무엇에 견주고, 털은 무엇에 견주었습니까?” “거북은 도에 견주고 털은 나에 견주었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 없고 도만 있으며, 범부는 도는 없고 나만 있다. 나에 집착하는 자는 마치 거북의 털이 나 토끼의 뿔과 같으니라.”
다음은 이어 지엄(智嚴)에게 법을 전하시니, 현경원년이었다. 사공인 소무선(蕭無善)이 건초사로 나오시기를 청했는데 조사께서 사양타 못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니라.” 이미 산문 밖을 나서니, 짐승들이 슬피 울며 달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산골의 못, 개울, 우물에는 자갈과 모래가 속아 일시에 메꿔졌고 뜰앞에 오동 네 포기가 오월에 번성하더니 하루 아침에 모두 말랐다. 조사께서 현경 이년 정사 윤 정월 二十 三일에 건초사에서 입적하시니, 춘추(春秋)는 六十 四세요 법랍은 四十 一세였다. 二十 七일에 장례를 지내니, 탑은 금릉 뒷 호수의 계룡산(溪龍山)에 있으니, 곧 기사산이다. 이로부터 우두종의 여섯 가지가 생기니, 제일은 융 선사요, 제이는 지엄(智嚴)이요, 제삼은 혜방이요, 제사는 법지(法志)요, 제오는 지위요, 제육은 혜충(惠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