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
'염소의 저주'라는 저주같지 않는 저주를 받고 있는 전통의 팀 시카고 컵스.
1917년 우승이후 챔피언에 목말라 있는 그 유명한 '블랙삭스 스캔들'사건의 주인공 시카고 화이트삭스.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꿈꾸는 대표적인 팀들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최고의 영예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과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얻는 것 두가지다.
하지만 보스턴과 컵스,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저주받은 팀에서 활약하는 댓가로 '명예의 전당'헌액이나 노려야 할 슬픈 운명에 처한것 같다.
먼저 보스턴 레드삭스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메이저리그 매니아들이 한번씩은 들어봄직한 '밤비노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1901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 내셔널리그에 필적하는 '아메리칸리그'의 탄생 멤버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1903년 전설적인
인물 사이 영의 활약으로 당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월드시리즈에서 5승3패로 누르고 첫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1912년 '조 우드'라는 투수의 34승 5패 방어율 1.91의 엽기적인 활약속에 월드시리즈에 진출. 뉴욕 자이언츠를 4승 1무 3패
(당시는 무승부도 있었다) 치열한 경기끝에 물리치고 두번째 챔피언에 오른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조 우드'는 혼자서 3승을 따냈다.(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아니지만 매우 뛰어났던 선수다)
그리고, 1914년 '조지 허먼 루스'(베이브의 본명)는 팀에 가세한 이후 1915년부터 1918년까지 3번의 챔피언자리에 보스턴을 올리며
최강의 팀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린다.
1915년 특급 좌완으로서 팀의 선발진에 합류한 루스는 18승 8패 방어율 2.44를 올리며 활약했고, 투수 로테이션상 등판하지 않는
날에는 타격에도 나서 팀내 최고 홈런(4개 ^^)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만난 월드시리즈에선 선발등판도 하지 않았고, 타격에 서지도 않았었다.
그래도 팀은 루스를 제외한 단 3명의 투수들만으로 방어율 1.84를 기록 필리스를 4승 1패로 누르고 3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다.
1916년은 드디어 베이브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해였다.
그는 그해 방어율 1위(1.75), 다승 3위(23승)을 기록하며 팀에서 '지주'로 우뚝 섰으며 홈런 역시 팀내 1위(3개 ^^)를 차지한다.
특히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1회에 1실점한 뒤 연장 14회까지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혼신의 역투로 2-1완투승을 따냈다.
타격보다는 투수력에 큰 강점을 보였던 그당시의 보스턴은 역시나 월드시리즈에서 1.47의 팀방어율로 4번째 챔피언에 오른다.
1917년 베이브는 24승 13패 방어율 2.01의 놀라운 활약을 보였지만 팀은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1918년 이때부터 베이브는 타자로의 전향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투수로서 13승 7패 방어율 2.22로 놀라울만한 성적은 아니였지만, 타자로서 3할에 홈런 11개(홈런왕),타점 66점으로 팀내 1위의 성적을 올리고
월드시리즈에서는 저주를 먼저 받았던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1차전 1-0완봉을 포함 2승을 올린다.
상대적으로 컵스에게 열세를 보였던 전력으로 평가 받던 보스턴이었지만, 루스에게는 소용없는 일이었나보다.
또한 당시 타자들중에 홈런 10개 이상 때려내는 타자들이 별로 없던 '투고타저'의 시대였던지라 투수와 병행하면서
11개의 홈런으로 홈런왕까지 차지한 루스의 활약은 많은 이들을 들뜨게 했고, 이후 1931년까지 거의 매년 홈런왕에 올랐던 '베이브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한해이기도 했다.
1919년. 이제는 베이브 자신도 투수보다는 타자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29개의 홈런으로 또다시 홈런왕에 오른다.
29개의 홈런은 당시 메이저리그 신기록이었다.
물론 투수로도 출장해 9승 5패 방어율 2.97을 기록하지만 이제 모든 사람들은 그가 마운드에 오르는것 보다는 타석에 서길 원했던지라
투수로서의 기록엔 관심을 두지 않게 됐었다.
타자로의 성공을 꿈꾸며 역사적인 인물로 남은 그였지만 그가 투수로서도 계속 활약했다면 아마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좌완투수중 한명이 됐을지도 모른다.
1919년 그의 나이 이제 24살 이었다.
1920년.보스턴의 '밤비노 악령'이 시작된 해이다.
당시까지만의 성적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 줬던 투수와 타자로서 다재다능한 25살의 젊디 젊은 베이브는 보스턴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
의 평생 최대의 실수로 인해 단돈 12만 5천달러에 양키스로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돈이 얼마나 궁했으면 베이브 루스도 모자라 지금은 명물인 펜웨이파크까지 담보로 잡혀 30만달러를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양키스에서 그누구도 상상할수 없었던 54개의 홈런을 치는 베이브를 보며 땅을 치며 통곡 했으리라...
더군다나 단 한번도 지구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었던 최대의 라이벌 양키스가 베이브의 활약으로 1921년부터 전성시대를 맞게 됐으니
그 타격은 보스턴 전체를 침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후로 그들은 1946년 지구우승을 하기까지 매년 하위권을 맴돌았고 지미 폭스,레프니 그로브,테드 윌리암스,칼 야스트램스키,웨이드 보그스
,모 본,로저 클레멘스,노마 가르시아파라,페드로 마르티네스 등등 수많은 쟁쟁한 스타들을 데리고도 챔피언의 왕좌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194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 3승 4패로 무릎을 꿇었고,
1967년 역시 카즈에게 3승 4패로 또한번 패한다.
1975년 신시내티 레즈와 맞붙은 월드시리즈 또한 7차전까지 가지만 결국 또한번 3승 4패.
그리고, 1986년 아마 이때부터 '밤비노의 저주'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각인시킨해가 아닌듯 싶다.
뉴욕 메츠와 만난 월드시리즈에서 3승 2패로 앞서있었던 상황에서 맞은 시리즈 6차전.
3-3 동점 상황에서 10회초 보스턴은 2점을 추가해 5-3으로 챔피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10회말 투아웃까지 잡아낸 상황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만 추가하면 덕아웃의 선수들은 모두 마운드로 뛰쳐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드디어 68년만에 지긋지긋했던 저주에서 해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메츠의 '무키 윌슨'의 평범한 1루 땅볼을 당시 1루수였던 '빌 베크너'가 다리 사이로 빠뜨리는 너무나 어이없는 실책을 저질렀고,
이후 메츠는 기적같이 3점을 추가해 경기를 뒤집는다.
(이때 베크너가 알깐공(^^)은 영화배우 찰리 쉰이 9만 4천달러에 구입했다는 소식^^)
그리고, 결국 7차전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메츠의 상승세로 이어졌고, 챔피언 반지는 메츠의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보스턴으로서는 참으로 허망한 월드시리즈였을 것이다.
46,67,75,86시즌 모두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언제나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들.
이후에도 디비전시리즈 3회,챔피언쉽시리즈에 2회 진출했으나 번번히 허무하게 무너진 그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 누가 봐도 '밤비노의 저주'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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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는 생전에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건 내게 있어서 가장 좋은 일중 하나였다."라고 말했으며,
"'밤비노의 저주'란 시류에 편승한 언론이 만들어낸 사기극이다"라는 주장도 한때 있었다.
하지만, 1999년 보스턴 구단은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때 베이브의 유일한 혈육인 딸 '줄리아 루스 스티븐슨'에게
시구를 맡겨 '밤비노의 저주'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언론에 소개된바 있고, 언젠가 스포츠기자에 의해 '밤비노의 저주'라는 책까지 출판되어
이제는 저주가 사실처럼 굳어져 있다.
더군다나 86년의 일도 그렇고, 99년 양키스와의 챔피언쉽시리즈에서 승부의 분수령인 1,4차전에서 2루심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적인
오심은 저주를 더욱더 뒷받침 해주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보스턴의 홈구장이자 명물인 펜웨이파크의 오른쪽 담장에는 4개의 큰 숫자가 걸려있다.
9,4,1,8. 바로 레드삭스를 빛낸 스타들인 테드 윌리암스,조 크로닌,보비 도어,칼 야스트렘스키의 영구결번이다.
이를 나열하면 9418이 된다. 이는 보스턴과 시카고가 벌인 1918년 월드시리즈 전날(9월 4일)과 같다.
물론 흥미로운 기사를 찾기 위해 언론에서 억지로 짜맞췄다고 보지만 보스턴으로선 그냥 흘려들을수 없는 일이다.
1900년대를 저주에 한맺혀 지내온 그들은 새로운 천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21세기에는 '밤비노의 저주'가 사라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
그러나, 2000년인 지난 시즌 그들에게는 'SI의 저주'(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까지 등장한 바 있다.
SI가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표지인물로 내세워 보스턴을 커버스토리로 다뤘기 때문.
AL 사이영상 수상자인 페드로와 타격왕 가르시아파라,클러치히터 칼 에버렛. 불펜 강화 등등 우승후보로 지목한 기사였다.
하지만 품격있는 스포츠 전문잡지인 SI에 연초 커버스토리로 게재된 팀치고 좋은 결과가 없다는 예언이 그래도 들어맞아 보스턴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암울한 새천년 첫 시즌이었다.
통산 관중 1억 1천5백만 이상, 팀을 거쳐간 선수가 1400명 이상, 정규시즌 8000승에 가까운 승리.
2001시즌 100주년을 맞았던 보스턴이 명문구단이라는, 레드삭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숫자들이다.
'실패의 역사'도 엄연한 역사의 일부이며 전통있는 팀으로서 이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하게 올시즌 100주년을 맞았던 보스턴.
올초 그들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는 몸부림을 쳤었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를 영입했고,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도 클리블랜드에서 비싼돈주고 모셔왔다.
특히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이비드 콘까지 영입했었다.
콘의 영입은 보스턴에 쌓인 저주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져 많은 세인의 관심을 받았었다.
보스턴의 라이벌 양키스에서 4번의 우승 경험이 있던 그는 "보스턴이 얼마나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말라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팀 우승을 위해 사력을 다 하겠다."라고 인터뷰를 했으며, 수많은 팬들은 저주에서 벋어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환영했었다.
그러나 38살의 나이많은 콘 역시 저주를 풀기에는 모자랄 수 밖에 없었다.
올시즌 6월 보스턴이 지구 선두의 자리에 있을때 지금은 사임한 지미 윌리암스 감독은 단장과의 불화와 재계약 문제로 인해
주위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팀이 1년간 재계약 의사를 타진했으나 그가 거부한 사건까지 있어 잠시나마 충분한 화제거리로서
지역언론들의 공격을 받을만 했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에 대한 집착이 강한 도시답게 조용히 넘어간 적도 있다.
칼 에버렛의 처리 문제에 따른 단장과의 불화와 페드로의 강판에 대한 공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윌리암스 감독은 "월드시리즈
에서 우승을 차지한 다음에 모든 문제를 따져봐도 늦지 않다"라고 인터뷰를해 그역시 저주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노마와 페드로의 부상을 중점으로 결국 올시즌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그들.
앞으로 그들의 '운명'을 어떻게 될까?
현재 팀 매각이라는 사항까지 떠안고 있는 그들에게 저주를 풀어줄 '영웅'은 나타날까?
필자가 보스턴의 팬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들이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라 마운드에 모여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연 그날이 언제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