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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yLoveChina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 마커(馬可) 목사와 시베이(西北) 성경학원 학생
마커는 1909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은 주를 영접하였으나 그는 오히려 여러 면에서 기독교인을 반대하였다. 카이펑기독교순리회학교(開封基督敎循理會學敎)를 졸업한 후 옌하이(沿海) 지구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거듭남을 경험한 후 1937년 카이펑순리회(開封循理會) 성경학원으로 돌아와 훈련을 받았다. 1941년 산시시베이(陝西西北) 성경학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고, 후에 부원장이 되었다(원장은 따이더셩(戴德生)의 손자인 따이용미엔(戴永冕) 이다).
1942년 11월 25일 비전을 본 후, 중국교회가 줄곧 외국의 지원을 받아 왔다는 생각이 들어, 중국교회 역시 스스로 선교사를 파견하며 산시(陝西), 깐쑤(甘肅), 신장(新疆) 등의 이슬람 지역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선교하자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5개월 후에 카이펑(開封)에서 온 허언쩡(何恩證)을 만났는데,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서 하나님이 일찍부터 동역자를 준비하셨음을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이후 1943년 부활절에 예배를 드렸던 시베이성경학원 정원에는 서북 각 성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신장성 위에 서기를 원했다. 당시 일부 시베이성경학원 학생들은 서북의 일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서북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뜻을 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커 목사와 시베이성경학원의 동역자들, 학생들을 계속적으로 감동시켜 복음을 단지 신장지역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두루 전해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 당시에 받은 비전은 다음과 같다.오순절로부터 복음은 기본적으로 서쪽으로 전하여졌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그 다음은 유럽으로, 후에 아메리카로 전해졌으며 이어 아시아로 전해졌다. 중국으로 들어간 후에는 화난(華南)에서 화베이(華北)로, 화둥(華東)에서 화시(華西)로 전해졌다. 1943년 5월 23일 마커 목사와 동역자들은 중국기독교인세계복음전도단(中國基督徒遍傳福音團)을 설립하였는데, 구호는 복음을 예루살렘으로 회귀시키자(把福音傳回耶路撒冷).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이 중국 신도들의 조직이라 믿었으므로 외국 기독교인들의 기부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1944년 세 명의 자매들과 두 명의 형제들을 깐쑤성의 란저우(蘭州)시와 청(成)현으로 파송하였고, 1945년에 다시 두 명의 형제들을 인촨(銀川)시로 파송하였다. 후에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신장(新疆)으로 가서 교회를 건립하였다.
1946년 시베이성경학원은 <전세계복음전도단>의 취지를 정하였다. 서북지역의 7개 성(신장, 네이멍구(內蒙古), 시짱(西藏), 쓰촨(四川)으로 합병 된 시캉(西康), 칭하이(靑海), 깐쑤, 닝샤(寧夏)에 복음을 전하고, 서북 7개국인(아프가니스탄, 이란, 아랍, 이라크, 시리아, 터어키, 팔레스타인)에 복음을 전하며, 또한 기타 어떠한 필요가 있는 곳에 복음을 전한다.
<전세계복음전도단>은 계속적으로 다수의 선교사들을 신장으로 파송하였다. 1946년 쟈오마이자(趙麥加)와 따이옌중(戴彦中)은 칭하이에 가서 사역하도록 파송되었다. 1947년 두 번째 그룹으로 여섯 명의 여성선교사들이 신장 남부로 파송되었다.
2. 산둥(山東) 웨이시엔(維縣) 락도원(樂道院) 수련원 장꾸췐(張谷泉) 목사
1945년 9월 항일전쟁 이후, 산둥 웨이(濰)현의 예전 신학원이었던 락도원(樂道院)이 반환되었는데, 현지 교회는 회의를 열어 이를 수련원으로 설립할 것을 결정하였고 아울러 장꾸췐 목사를 원장으로 세웠다. 개학 후 학생들은 점차적으로 증가하였다. 1945년 여름 방학에 장꾸췐 목사는 부흥회에서 안디옥 교회의 모범이라는 말씀으로 설교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헌신하도록 독려하였다.
1946년 성령께서 사역자들을 서북과 신장과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파송하도록 마음을 주셨다. 장 목사는 여러 차례 복음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전해야한다.고 설교하였다. 이어서서북영공단(西北靈工團)이 설립되었는데, 먼저 두 명의 여선교사들이 서북을 향해 길을 떠났고 이밖에도 1947년 봄 네 명이 서북으로 떠났다. 그 해 11월 6명의 회원들은 이미 차례로 신장 하미(哈密)에 도착하여 현지의 교회와 함께 사역을 하였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영공단 회원인 여섯 그룹 도합 42명이 신장에 도착하여 사역을 감당했다. 1949년 6월 산둥에 소식이 전해지길, 복음이 이미 톈샨(天山) 남북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하미(哈密), 띠화(迪化), 지우췐(酒泉), 우웨이(武威), 장예(張掖), 란저우 등지에는 모두 교회가 있었다. 당시 이들은 모두 돈이나 여비가 없이 침낭 하나와 성경 가방을 들고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의 예비하심만을 바라던 사람들이었다. 당시 쟈오시먼(趙西門) 형제가 책임 편찬한 <서북영공(西北靈工)>이라는 간행물이 영공단원들의 사역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고 많은 시가들을 기록하고 있다.
1950, 51년 상황이 긴박해지기 시작했으나, 신장의 많은 지역에서 사역이 일어났고, 이외에 푸웬(孚遠), 투루판(吐魯潘), 카스(喀什), 아커쑤(阿克蘇), 쿠처(庫車), 옌치(焉耆), 샤처(莎車), 다청(搭城)등이 있었다. 당시 영공단 회원들은 신장에 이미 백 명이 넘었다. 그들은 우리는 영공단이라는 푯말을 세우는 것을 허치 않으며, 성경에 기초하여 교회를 세우며, 어떤 단체를 도모하거나 선전하지 않으며 남녀가 직접 노동하면서 자력으로 생활을 꾸려나간다. 는 뜻을 가지고 사역하였다.
1951년 4월부터 일부 영공단 회원들이 연속적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중 장꾸췐(張谷泉), 원무링(文沐靈), 리우더민(劉德民), 쑨신민(孫信民)은 감옥 안에서 순교하였고, 나머지 회원들은 1980년에 석방되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공단의 선교의 비전이 바로 1949년 그 성원이 카스에서 핍박을 당할 당시 공안처장에게 말한 바 우리들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전하고자 함이다.라는 것이다.
고증되지 않은 역사로부터 보자면 일찍이 1920년대 산둥의 예수 가정구성원들은 이미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전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후대의 영공단 회원 가운데에 예수 가정의 사람이 가입한 일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의의
1. 40년대에 받은 선교 비전이다.
당시 배후의 동기는 이미 많은 서방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 교회는 왜 단지 받기만 하고 대가를 치르려하지 않는가를 깊이 느껴, 이 때문에 많은 집회에서 많은 전도인들이 자신을 드려 주께서 선교사로 사용해주실 것을 기도하고 서방 선교사들의 선교 마인드들 받아들여 복음을 서쪽으로 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의이다.
이 비전은 중국인 교회 공통의 비전인데, 왜냐하면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각각의 전도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인 교회 또한 마땅히 적극적으로 가서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으로, 중국교회 또한 서방교회가 복음을 중국에 전해주고 중국 전도인들에게 많은 훈련의 기회를 준 것을 항상 감사한다. 다만, 이 커다란 사명은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마땅히 다른 민족의 교회와 서로 협력하며 복음의 동역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당시에 중국의 전도인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대해 어떤 심경을 품고 있었고, 아울러 중국인들의 피 속에는 비단길에 대한 동경이 충만했으므로 비전을 받은 이후에는 복음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전해야하고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음을 깊이 믿게 되었다.
21세기 상황을 볼 때, 중국교회는 선교사를 훈련할 수 있고 실크로드를 따라 복음의 서진을 꿈꿀 수 있다. 우리 눈앞에 놓인 문제는 우선 복음을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특히 10/40창 지역에 교회를 세운 후, 복음이 예루살렘으로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2. 온 세계의 선교운동이다.
복음을 서쪽으로 전하는데 있어서, 서쪽이나 비단길을 따라 중국의 서부지역인 신장, 닝샤, 칭하이 등에 도착하고 그 다음, 중앙아시아를 지나 페르시아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우리의 비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전해지고 유럽과 아메리카에 이르러 다시 중국, 아시아까지 전해져야하기 때문에 만약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르게 되면 이는 바로 복음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전 세계에 전해진다는 관점이다.
20세기 중국 전도인들은 심오한 신학적 연구는 없었으나 오직 믿음에 의지하여 이렇게 비전을 받게 된 것이다. 감정이 풍부한 중국인들은 성경을 읽으며,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감정이 더해져,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해 동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많은 이교도들, 그 당시 서북지역에 많은 회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복음의 필요를 보게 되면서,서쪽을 향해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예루살렘까지 이르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자.는 뜻을 정하게 되었다. 우리들 또한 당시 중국교회가 이미 신학원에서 이러한 비전을 전하고 선교사를 훈련시키며 파송기구를 세워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을 보았다. 선교사를 파송한 이후에는 많은 후원과 지원사역이 이어졌고 전방의 선교사들에게 보급되었다.
3. 중국에서 서북지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를 지나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것은 그 자체로 순전히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이지,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예루살렘까지 직행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오늘날 이 같은 파송기구가 있다면 당연히 처음의 방법을 유지하여 우선 중국 서북지역과 중앙아시아 국가에 교회를 세우고 이후 페르시아지역을 지나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워야한다. 당시의 선교사들 역시 현지의 교회와 자주 협력하여 일부 교회들이 간이역이 되었고 계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21세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중앙아시아에 많은 신도들을 상인으로, 선교사로 예비하셨고 교회를 준비하셨는데, 이들은 장차 많은 선교사들의 간이역이 될 것이다.
4. 믿음의 선교운동이다.
당시 중국의 전도인들은 서방교회로부터 많은 것들을 받았는데, 이 비전을 따라 믿음을 가지고 선교의 길에 올라 큰 사명을 감당할 것을 결심하였다. 여기에서는 서방의 선교사역을 대신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감히 대사명을 이어갈 최후의 바통, 예를 들면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바통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중국교회는 단지 다른 민족의 교회와 함께 21세기에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동역자로서 42억 비신도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 주께서 명하신 사명을 완성할 수 있기를 원한다.
현재 중국교회의 [백 투 예루살렘 운동]에 대한 반응
1. 링언파이(靈恩派) 교회의 열렬한 반응
여기에서는 과거 허난(河南)성 링언파이 가정교회의 지도자 두 명과 저장(浙江)성 중부지역 내의 링언파이 한 가정교회 지도자와 외국으로 도망가 자신이 고초 당한 일을 자주 간증하는 허난성의 링언파이 가정교회의 청년 전도인의 활동을 지칭하여 말하고자 한다. 현재 허난의 몇 개 지역과 안후이(安徽) 북부 및 남부의 일부 지역, 동북의 꽤 여러 곳과 베이징(北京)의 일부 가정교회, 네이멍구 중부와 산둥 동부, 그리고 윈난(雲南)의 한 두 지역, 광둥(廣東)성의 여러 지역, 저장성의 일부 지역에서는 분명한 링언파이 활동이 있는 교회가 있고, 기타지역에서는 그다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이러한 링언파이 교회가 많지는 않으나 그들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으며, 많은 가정교회들이 일찍이 링언파이와 접촉한 바가 있다.
이들 링언파이 교회들은 줄곧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고 과거에는 전도대를 자주 각기 다른 농촌이나 더욱 먼 지역까지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자주 일부 해외 링언파이 교회와 왕래를 한다. 쟈오시먼(趙西門)이 1981년 허난성 핑딩샨(平頂山)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부터 그들은 적극적으로 많은 집회를 열어백 투 예루살렘 운동 을 강연하였다. 해외의 대부분 링언파이 배경을 지닌 몇몇백 투 예루살렘 운동기구들은 일찍이 이곳에 온 바가 있으므로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미 전문적으로백 투 예루살렘 운동선교사들을 훈련하는 양성학원이 현재 허난, 시닝, 신장에 꽤 여러 곳 생겨났고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갈 기회를 기다렸다. 또한 한 성경학원은 필리핀에서 중국 전도인들이 나가도록 훈련하였다.
이들 교회들은 해외의 교회들과 자주 왕래하였고, 해외 여러 교회들의 지도자들 또한 그들이 강연한 백 투 예루살렘 운동비전을 해외의 각지로 가져갔다고 말할 수 있다. 해외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중의 여러 명(장(張), 쉬(徐), 리우(劉))을 해외로 데리고 갔고 많은 집회를 열어 그들로 하여금 가정교회의 상황과 수난 당한 경험을 나누도록 했다. 최근 몇 년 간 해외에서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 뜨거워진 것은 이들 기구가 추진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푸인파이(福音派) 교회의 관망태도
여기에서의 푸인파이 가정교회는 일부 비교적 개방적이고 대부분 젊은 전도인들이 이끌고 있으며 많은 교회사역에 참여하고 있는데, 문서사역, 신학훈련, 선교사역, 주일학교 사역, 청년사역, 봄 캠프 혹은 겨울 캠프 활동, 결혼과 가정을 위한 상담사역 등이다. 이 교회들은 대다수가 도시에 있거나 대학 근처에 있다. 그들은 복음 전파사역에 대해 열심인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그들 역시 일부 해외 푸인파이 기구들과 자주 왕래하며 이들 기구에서 파견한 전도인들이 지도를 받았었다.
이 교회들의 지도자들은 대다수가 중국교회는 아직까지 선교사를 파견할 충분한 자원이나 능력이 없다고 여기며, 또한 많은 지역에 여전히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마땅히 우선적으로 중국 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를 희망한다. 비록 그들이 이처럼 반응한다 하더라도, 일부 지도자들과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는 역시 문화를 뛰어넘는 선교사역은 국내의 복음 전도 사업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만약 문화를 뛰어넘는 사역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성공적으로 해야 하며 형제자매들의 지지를 져버려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일부 푸인파이 교회들은 이미 다문화 선교사를 전문적으로 훈련하는선교학원을 설립하는 일에 착수하였고, 선교 전문가를 초빙하여 커리큘럼과 실습을 계획하도록 요구한다. 그들은 여전히 푸인파이 교회 안에서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비전을 나누고, 전 세계 복음화 같은 부류의 서적을 인쇄하여 형제자매들이 이들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한다. 또한 국내의 일부 교회들과 연락하여 미래에 다문화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을 지지하는 교회를 찾는다. 동시에 또한 일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선교사나 교회와 연락하여 중간역이 되기도 하는데, 훌륭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장차 중국에서 파견될 선교사를 일정한 기간 동안 섬기도록 준비하며, 그들로 하여금 먼저 현지의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3. 바오쇼우파이(保守派) 및 지야오파이(基要派) 교회의 반대
중국의 가정교회는 대다수 바오쇼우 및 지야오파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백 퍼센트 중 칠십 내지는 팔십 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다. 주요한 원인은 그들이 과거 서방의 바오쇼우파이와 지야오파이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에 일찍이 핍박을 당하면서 크게 성장하였고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지킴으로써 많은 신도들을 이끌었다. 근 20여 년 동안 이들 교회들은 서로 격려하며 협력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 안에 많은 지도자들은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반대한다. 주요한 첫째 원인은, 마땅히 먼저 중국 본토의 선교 사역에 전념해야 하고 외지로 나가 선교하는 일은 교회의 여건이 더 좋아진 후에야 진행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둘째, 이 운동이 일부 사람들에 의해 돈을 조달하는 도구로 이용되거나 혹은 가정교회의 사역이 분수에 넘치게 과시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일부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렬히 반응하여 가정교회의 상황이 널리 알려져 위험을 초래할 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넷째,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 성경적인 기초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이 교회들 중 지명도가 매우 높은 몇몇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이 운동을 반대하였다. 그들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자면, 반대하는 원인이 링언파이의 지도자가 이 운동을 빌미로 외부로부터 돈을 조달하고 그 경비의 행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젊은 지도자들은 오히려 개인의 행위와 비전은 구분되어야 하며 또한 일부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 전체의 선교사업이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이러한 보수적인 가정교회들은 현재 많은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가 없는 부근의 농촌지역에 교회를 세우거나 도시의 여러 장소에 모임장소를 만들고 단과대학과 대학교 안에서 사람들이 주님을 믿도록 안내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수민족 지역으로 들어가 교회를 건립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들 보수적인 교회들은 과거에도 무수한 훈련사역을 감당했는데, 노동자 훈련반, 전도인의 신학반, 지도자를 위한 신학연수반, 주일학교 교사양성과정 등이다. 미래에 오직 하나님께서 이들 교회를 지속적으로 부흥시키셔야만 비로소 중국의 가장 주요한 선교 역량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 가운데 지도자가 일어나서 이들 교회 속에서 온 세계의 선교 사역이 계획적으로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4. 삼자교회의 냉담반응
삼자 혹은 정부 당국에 등록된 약 4만여 개의 교회는 백 투 예루살렘 운동에 대해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은 그들이 거의 알지 못하거나 혹은 대형의 선교 사역에 대해 참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국 국내에서 백 투 예루살렘 운동에 관한 자료가 공개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단지 가정교회 사이에서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대형의 선교사역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삼자교회 자체의 신학 사상과 정부 당국의 제한 때문이다.
삼자교회의 신학노선은 여기에서 많이 언급할 필요 없이 간단히 말하자면, 1995년에 시작되었고 가입자들은 대다수가 과거에 종파배경이 있는 일부 교회들, 현재로 말하자면 교회합일운동을 걸으면서 또한애국하는 교회이다. 띵광쉰(丁光訓) 주교는 최근 6년 동안 애국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에서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로 신학 사상을 대치하는 것을 제창하였고, 게다가 2003년 말의 건설신학이라는 연설에서 대부분의 삼자교회가 걷는 노선을 이미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물론 모든 삼자교회가 이 운동에 대해 냉담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젊은 사역자들은 백 투 예루살렘 운동에 대해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또한 비밀리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일군의 젊은 삼자교회 전도인들은 비교적 개방적이며 또한 항상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추진하면서 그 현지에서 섬기는 교회 부근의 지역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교회를 세운다. 과거 2~3년 사이에 그들은 자주 결성되어서 전도인을 훈련하거나 또한 서북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단기 선교 사역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후베이(湖北), 윈난, 지린(吉林)성에 모두 이러한 활동들이 있고 선교사 훈련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지린성 어떤 시의 한 젊은 삼자교회의 목자는 특별히 한 부류의 선교사 집단을 훈련하여 그들이 신장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파송하였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삼자교회 전도인들이 미래에 더욱 적극적으로 이 선교사역에 동참해주기를 희망한다.
미래는 무엇인가?
1. 중국 가정교회는 매우 조심스럽게 관찰할 것이다.
주요 가정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해외 교회가 이 운동을 위해 어떠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또한 누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주요한 문제는 누가 하고 있는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에 그 활동의 모델이 생겨날 것인데, 모두에게 존중과 인정받는 자가 세워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형의 연합적인 활동이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 중국 젊은 세대의 전도자들이 장차 이 사명을 이어 받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생존해 있는 세계의 많은 복음전도단과 서북영공단 회원들이 장차 우리를 떠날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젊은 세대 전도인들이 복음을 중국 밖으로 전하고 혹은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가정교회는 아직까지 이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미래에는 젊은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선교 사역을 이끌어 나가길 희망한다. 필자는 생명력 있는 중국교회의 젊은 세대의 많은 전도인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데, 그들은 장차 하나님께 붙들려 힘차게 일어나 중국교회가 다문화 선교사역을 진행하는 것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3. 해외 교회는 장차 지속적으로 많은 활동과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푸인파이의 교회든지 아니면 링언파이의 교회든지 그들 속에는 이미 이 운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주님의 비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크고 작은 백 투 예루살렘 운동회의는 장차 각기 다른 지역에 나타날 것이고, 또한 점차적으로 일부 신학원이나 선교학원이 생겨나서 훈련하고 파견하는 사역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파견해야 하는가? 파견한 이후의 선교 사역이 잘되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는 결국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중앙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 이 운동으로 파견된 중국인 선교사들을 곧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맺는 말
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21세기의 거대한 선교 사역이 될 것이다. 전 세계 교회의 지도자들, 특히 중국인과 중국계의 교회들이 이 비전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깊이 검토하여 정확한 방향과 방법을 찾고, 그 연후에 한마음 한뜻을 모아 주께서 맡기신 위대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신장 / 중국 현지 사역자
번역/ 장혜정․자원봉사자
출처/ 중국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