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詩를 쓰게되고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일 포스티노>는 여름의 햇살이 따가울 때 영화로부터 코발트빛 바다를 추억해 내며 아울러 그 바닷가를 따르릉 거리며 자전거 패달을 천천히 밟아보고 싶게하는 이탈리아 영화이며 詩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일포스티노'는 이태리어로 우편배달부란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요즘 집배원이라고도 하지 않고 뭐 다른 용어를 쓴다고 하던데 어쨋거나 우체부 또는 배달부 아저씨가 더 친숙한건 사실입니다
오래전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원제: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란 영화에서 제목만 그러하지 포스트맨은 엑스트라 한명 안나오는 것과는 달리(사실 이 야리쿠리한 불륜 영화에서 제목으로 쓴 포스트맨은 그런 뜻이 아니라 情夫란 의미지만) 이 영화에선 당당히 우편배달부가 그 주인공이지요
그리고 다른 한명의 주인공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인데 그들이 나누는 소박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잔잔한 삶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외딴섬 우체부는 시인을 통해 시를 배우고 진실한 마음이 담긴 그 시로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는 동화같은 이야기
영화의 소재는 파블로 네루다의 실제 삶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시간적 배경은 1952년이며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분)가 정치적 이유로 본국인 칠레에서 추방당하자 당시 사회주의 정권의 이탈리아 정부는 나폴리 아름다운 섬에 네루다의 망명처를 제공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네루다가 안주한 이후 작은 섬으로 엄청난 물량의 우편물이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듭니다. 우체국장은 우편물을 처리하기 위해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분)를 고용하는데 마리오는 네루다 시인과의 접촉을 기회로 마을 여자들의 환심을 사려하지요
네루다의 위대한 시 정신보다는 오직 시인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네루다 시인에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의 세계에는 문외한이었던 노총각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거듭된 만남을 통해 삶의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는 시적 은유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데, 무한한 언어의 세계와 만나게 될 때 세계는 얼마나 커다란 환희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인가를 그는 깨닫게 됩니다
결국 마리오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신이 다가갈 수 없을 것으로 알았던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송두리체 차지하기 위하여 네루다 시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마리오는 내면의 영혼 즉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또 다른 감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네루다의 권유로 마리오는 시를 쓰게 되지요. 아름다운 베아트리체에게 마리오는 시로 사랑을 고백하고 네루다는 새로 사귄 이 소박한 친구를 성심 성의껏 도와줍니다.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의 소유가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란 말과 함께
마리오는 네루다가 본국으로 떠난 후에도 열심히 시를 쓰며 시인의 심상을 가지려 애씁니다. 대시인 네루다와의 만남을 통해 영혼의 눈을 뜨고 자신의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는 마리오의 삶이 우리를 감동시키는데 그때 그의 독백 대사가 바로 "그를 만나는 순간 아름다운 세상이 보였다"입니다
대시인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 사이의 우정을 통해 삶의 또 다른 환희를 감동적으로 그리고있는 이 영화는 나폴리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해주러 가는 마리오의 모습 속에서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또 하나의 삶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주인공 마리오는 애석하게도 영화 촬영이 끝난 직후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네루다에 대한 칠레 정부의 추방령이 철회되어 시인 네루다는 고국 칠레로 돌아가게 되며 그로인해 임시 고용되었던 우체부 마리오는 우편배달이라는 직업을 잃게되고 다시 장판 디자인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상황은 전과 달랐습니다. 마리오는 날마다 자신의 고독 속에 둘러싸여 존경하는 시인이자 친구이며 인생의 선생님인 네루다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합니다
그 목마름은 시어로 다시 살아나 마리오는 마침내 이 세상에는 '아내의 사랑'도 '친구의 사랑'도 초월한 또 다른 사랑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순박한 마리오는 시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발견했고 시인은 처음 세속적 이기에 물든 마리오와의 우정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리오는 그가 살던 집에 들렀다가 녹음기를 발견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녹음되는 걸보고 무척이나 신기해했던 그는 문득 시인에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어집니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존경해 마지않는 우체국장과 함께 마을의 소리를 담기 시작하는데
하나.. '칼라 디소토'의 파도소리
둘.. 큰 파도소리
셋.. 절벽을 쓰다듬는 바람소리....
넷,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다섯,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여섯,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 종소리
일곱,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여덟, 임신한 아내의 배에서 들리는 아들 파블리토의 심장소리
영화는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네루다가 다시 이 섬을 찾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네루다가 우체부의 식당을 찾았을 때 한 아이가 공을 가지고 그의 앞으로 뛰어 나옵니다. 곧 이어 나타난 아이의 엄마는 네루다를 알아보고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모르던 마리오가 오직 네루다가 사회주의란 말 한마디만 듣고 사회주의 집회에 참석하여 그를 기리는 시를 낭송하다가 마침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간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미망인이 되어버린 베아트리체는 마리오가 남긴 것이라며 녹음기를 건내죠. 그가 시인에게 남긴 테이프에는 마을의 아름다운 소리들과 마리오의 싯구절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오가 자신의 불타는 열정과 순수한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둔 녹음기와 네루다 자신의 아름을 따서 지은 어린 아들을 본 네루다는 자신이 그토록 쉽게 잊었던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해 합니다.
진정한 '시의 언어'는 무지의 순수 속에 존재함을 깨달은 시인의 눈빛속에서 한 훌륭한 시인이자 친구를 잃어버린 허전함만 남게됩니다
네루다 시인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원작소설 '불타는 인내심'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을 일부 고쳐야만 했는데 원래 네루다 시인과 우정을 나눈 집배원 마리오는 17살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오역은 마시모 트로이시에 맞춰서 30대의 노총각으로 바꿨는데 마시모는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심장병으로 쓰러지고 말았죠. 마시모에게는 하루 2시간 이상의 촬영이 힘들었었고 나중에는 걷는것 조차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영화의 완성을 보기도 전에 그는 41세로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서정성 짙은 이 영화는 이탈리아 아트 무비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헐리우드 액션 오락물에 식상한 우리들의 가슴을 나폴리 섬의 바다 빛깔로 적셔주기에 충분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오 역의 '마시모 트로이시' 그는 갔지만 그의 삶의 흔적은 스크린 속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영화와 시와 바다가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일 포스티노>이며, 이 영화를 한번 보았던 사람은 문득 문득 이 영화가 그리워지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과 지나친 우월감으로 진정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때가 많습니다. 영화속의 네루다와 마리오는 서로를 이어주는 '詩'라는 매개체가 있었지만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매개물에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배려가 깊이 배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과 지식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유대되는 감정의 공유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 영화의 음악은 1996년 아카데미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는데 듣고있는 음악은 크로마틱(半音階)하모니카 연주의 세계 제1인자인 '지그문트 그로븐'에 의해 연주된 아름다운 하모니카 음악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오는 네루다의 시와 영화와 같은 제목의 황지우 시 한편 붙이면서 나도 마리오와 같은 순백의 시정신 세계로 한번 빠져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영화 일포스티노 중에서...>
내가 그 나이 였을때
詩가 날 찾아 왔다...
나는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 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메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불라 네루다-
<일 포스티노>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 황지우-
* 2007년 청소년 문예지 <글판놀판>에 게재된 글인데,
기고된 원고는 없어져버렸고, 원고를 쓰기 전에 썼던 구닥다리 영화 이야기를 붙입니다.
첫댓글 <영화 일포스티노 중에서> / 내가 그 나이 였을때 詩가 날 찾아 왔다...나는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강이었는지...언제 어떻게 였는지...나는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메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불라 네루다-
<일 포스티노> /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 황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