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분홍감자와 지석리 강한옥 할머니
토종 씨드림 대표 안 완 식
강화도로 토종 수집 출장을 떠난 건 1998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4박 5일간 이었다. 당시 농촌진흥청 유전자원 과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책임연구관으로 봉직하고 있을 때 였다. 같은 과에서 콩 연구를 담당하였던 윤문섭 연구사를 대동하였다. 농촌진흥청에서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보존과 평가를 하여야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부서였지만 사실은 지금 보다도 훨씬 유전자원에 때한 중요성을 강화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었기에 직원 수가 많지도 않았고 예산도 지금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 형편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3-4명이 한 조가 되어 수집 출장을 가야 정상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4박 5일 내에 강화도 전반에 걸친 수집을 완료해야 하는 일정은 짧기만 하였다.
강화도는 3개의 큰 섬과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넓이에 비하여 토종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인근 지역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고려 고종19년 몽고 침입 이후 39년간 강화도로 천도하였을 때 몽고에 오랫동안 저항하기 위하여서 모든 식량과 생활에 필요한 농산물을 섬 내에서 자급하여야 하였기 때문에 작물의 종류나 품종을 많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추론 된다.
당시 짧은 기간 이었지만 197점 수집이라는 큰 수확을 거둘 수가 있었다. 수집하였던 여러 가지 토종 중에서도 분홍감자에 대한 생각이 늘 잊혀 지지 않고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1998년 6월 22일부터 23일 이틀 동안에 강화군의 첫 동리인 강화읍에서 수집을 시작하여 선원면, 불은면, 송해면, 길상면, 화도면, 양도면, 내가면 등 본도에서 토종 104가지를 수집했다. 시골에서 기름을 먹기 위한 작물로 참깨와 들깨는 가장 선호하는 작물로서 그동안 새품종의 보급이 많지 않았기에 어디를 가나 흔하게 토종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토종들은 두류작물로는 녹두, 팥, 동부, 강낭콩류, 장콩과 나물콩이 많았다. 채소로는 시금치가 꽤 있었고, 드물게는 완두, 갓, 찰옥수수, 파, 순무, 상추, 고수, 호박, 박, 등이 있었다. 특용작물로는 강화 화문석의 재료로 쓰이는 왕골이 오래전부터 재배되어왔다. 땅콩과 홍화도 드물게 발견되었다.
6월 23일까지 강화 본도 수집을 거의 끝내고 24일에는 교동도를, 25일엔 석모도를 그리고 마지막 날엔 볼음도와 주문도를 공략 할 계획을 다시 확인 하였다. 내가면에 있는 보성장에서 11시 30분 취침하고 24일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여 7시 30분에 창후리 선창에서 교동도의 상룡리 선창으로 가는 작은 배를 서둘러 탔다. 승선료는 수집시 타고 다니는 소형 승용차가 12,000원 그리고 사람은 750원이다. 시간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언제부터인지 수집출장을 가면 의례히 아침에 기상해서 7시에 팀원들이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일과를 시작하면 저녁에는 주먹이 보이지 않아야 수집을 끝내고 식당으로 향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점심식사는 12시 이후에 만날 수 있는 식당이면 가리지 않고 들려야 한다. 시골에 마땅한 식당이 원하는 곳에 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지에 갔을 경우에는 2시 이후에나 간신히 점심을 하는 게 다반사이다. 메뉴를 시켜놓고 나서 다음 조사할 예정지에 대한 지도공부를 하고 식사가 끝나면 믹스커피 한잔씩을 들고 바로 차를 탄다. 잠시 쉴 틈도 없는 빡빡한 일정 이지만 이제는 수집단원 누구 하나 불만 없이 습관처럼 잘 따라주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교동면에는 11개리가 있다. 도로는 십자모양으로 섬의 동서와 남북으로 길게만 갈라져 있다. 북한의 연백군 해성면을 배로 20분 정도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저 멀리 북한 땅의 벌건 민둥산이 보이고 크게 외쳐 부르면 들릴 것만 같다. 오늘 하루에 교동면을 모두 끝내고 석모도로 떠나야 한다. 경비를 서는 군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집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교동면은 대흥리의 화개산(259m)을 제외하고 밭보다는 논이 많은 평야지대인 마련해서는 꽤 다양한 토종을 찾을 수가 있었다. 강낭콩, 순무, 호박, 녹두, 동부, 팥, 들깨, 느리참깨, 옥수수, 수수, 보리, 파랑나물콩, 오가피콩, 밤콩, 메주콩, 완두, 고수, 뿔시금치, 청갓, 호박참외, 땅콩, 청오이를 수집하였다. 교동면 상룡리의 한종순(68세)할머니는 고려 말엽부터 49대를 교동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오랫동안 재배해 내려온 콩 5종, 녹두, 팥, 참깨, 시금치, 호박 등 10여점의 토종종자를 분양하여 주었다. 그 중 오가피 콩은 검은 밥밑콩으로 밥을 하면 오가피 향이 나므로 오가피콩 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소엽이 5매이며 성숙기가 빨라서 8월 추석에 송편소로 넣어 먹는다고 한다. 양감리의 황순희 할머니(68세)는 순무, 호박참외, 검은 찰옥수수, 둥근호박, 녹두, 육모참깨, 붉은동부 등 많은 토종을 오랫동안 재배하여왔단다.
북한 땅이 지척에 보이는 교동면 지석리로 시집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강한옥 할머니(74세)는 자색강낭콩, 연분홍 얼룩강낭콩, 녹색나물콩과 표피가 연한 분홍색인 토종감자를 시어머니로부터 대물림하여 해마다 심고 있었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대부분의 시골 노인들이 그렇듯이 강한옥 할머니도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고 남편 한기봉(80세)할아버지와 두 분만이 농사지으며 살아온 터라 우리가 반가웠나보다. 강한옥 할머니는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이기도한 교회의 권사이셨다. 분홍감자는 껍질색이 연한 분홍색을 띠며 눈이 많고 감자모양이 갸름하다. 잘 찌면 분이 나서 약간 파삭파삭하고 반찬을 하면 쫀득해서 논밭일 할 때 간식으로 그만이란다. 감자를 심으면 줄기가 가늘고, 꽃 색처럼 자색이란다. 소출이 적어서 그만 심자는 영감의 만류에도 계속 심는 까닭은 16세에 시집와서 시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차마 없앨 수 없었거니와 맛이 좋다는 외지에 나가 사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봄이 돌아오면 의례히 텃밭에 분홍감자를 심는단다. 60여년을 한해도 빠치지 않고 심어온 끈질긴 성정이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흘러서 지금까지도 많은 토종종자를 지켜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할머니로부터 감자를 분양해왔고 대관령에 있는 고령지시험장에 보내서 보존토록 하였다.
2003년 10월 토종작물자원도감 집필을 위한 현지 자료 수집을 위하여 아내와 함께 김포 하성면의 자광벼와 교동면 지석리의 분홍감자를 보존해온 강한옥 할머니를 5년만에 다시 찾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가까이 지내온 일가처럼 전에 왔을 때보다 더 우리 내외를 반겨주셨다. 따끈하게 쩌 주신 감자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그 후 분홍감자를 찾는 몇 분 귀농한 사람들의 청을 받고 마침 2008년 11월 29일 내가 2002년 정년퇴직 후 농촌진흥청의 후원을 받아 우리나라의 가장 큰 도서인 제주도, 강화도 및 울릉도에서 토종을 수집할 기회가 있어서 3번째로 지석리의 강한옥 할머니를 찾았었다. 그러나 할머님 댁은 문이 잠겨있지도 않은 채로 텅 빈집이었다. 이웃에 수소문을 하여 보아도 아무도 가신 곳을 아는 이가 없었다. 서운함과 궁굼함을 뒤로하고 인근의 많은 농가를 들러 분홍감자를 찾았지만 모두 헛수고 였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덥혀 올 즈음 외진 농가 툇마루에 앉아 바구니를 앞에 놓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토종을 수집하러 가면 늘 그렇듯이 할머니를 보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종자는 자고로 여성들 그중에서도 60세에서 80세 미만의 할머니들이 대부분 씨를 받고 간수하기 때문이다. 자동적으로 발길이 그 집 쪽으로 갔고 나는 할머니를 보고 다짜고짜 “할머니 ! 분홍감자 좀 보여주세요!” 했더니 글쎄 “응 여기 있지”하시면서 뒤뜰 비닐하우스 속 종이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분홍감자를 가지고 나오셨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서 할머니를 덥석 껴않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분홍감자를 마지막으로 갖고 계시던 지석리의 조옥희 할머니(75세)는 먼저 분홍감자를 갖고 계시던 강한옥 할머니와는 사돈지간이라며 강한옥 할머니가 지금 중풍 치매로 입원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신다. 가슴이 철렁하고 눈이 젖어 옴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강한옥 할머니는 어떠하신지 또 조옥희 할머니는 어찌 지나시는지 궁굼하다.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저 연세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 우리의 토종들도 농촌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농업 연재 2014. 02-
강화분홍감자를 늦게 나무 그늘 아래에 심었더니 감자가 크게 앉지를 않았네요. 다행히 씨를 밑지지는 않을 것 같군요. 내년에는 이찌기 볕이 잘드는 곳에 심어야겠군요.
첫댓글 귀하고 귀한 분총 감자를 보니 감격스럽네요^^ 저도 3-4개라도 구입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정말로 귀한 감자이군요! 갖고 싶어라...,
몇포기 심지를 못해서 ... 그나마도 늦게 , 그늘아래 심겨서 감자가 아주작게 달렸네요. 그나마라도 나누어심도록 해야지요.
귀한 감자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분홍색이 수줍은 색시볼처럼 예쁨니다.
이름을 바꿔야지~~~ 음 "새색씨감자"
귀농인의날에 씨하라고 한알 밭았는데 그후 김천 울릉도 에서 더구하여 8월말경 심었다가 11월에 수확하면 씨감자 나눔이 되겠네요 현제 20알 정도있고요 싹이 나고있어요
내년 아니 올 가을에 종자좀 부탁해도 될까요.
강화분홍감자와 울릉감자는 전혀 다른 품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