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오현명이 부른 가곡에 ‘명태’가 있는 것으로 안다. 천하 음치인 내가 감히 노래를 논하면 모두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그 노랫말을 지은 양명문 시인을 잘 모르고 곡을 붙인 변훈은 더 모른다. 노래를 부른 백발성성한 그 분을 직접 뵌 적은 없다. 그 분이 살아있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살아있다면 여든이나 아흔을 바라볼 연세일 것이다.
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중학교 때 사회시간에 명태는 한류성 어족인 것으로 배웠다. 우리의 강릉 앞바다나 북쪽의 원산만에 그물을 쳐놓으면 걸려들지 싶다. 멀리 알래스카나 캄차카해역까지 나간 원양선단에서 이 명태를 더 많이 잡아오지 싶다. 그 생태를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북어나 황태가 나오고 작은 것은 노가리라 한다고 들었다. 내장은 명란젓이나 창난젓이 되어 밥상에 오른다.
언젠가 아이들과 수학여행 길에 외설악에서 내설악 갈 때 미시령을 넘은 적이 있다. 그 때 백담사 골짜기 멀리감치 앞두고 인제의 어느 산허리에 있던 황태 덕장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 산골 내륙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명태가 맨살을 드러내고 겨울 한철 얼렸다 녹였다 해서 황태가 나온다니 신기했다. 밀양 산외의 겨울 논에다 우뭇가사리를 한천으로 말려내는 것과 비슷했다.
어릴 적 이 명태를 장날이면 어머님은 큰 마음먹어야 두어 마리 사 오셨다. 물론 갈치나 고등어도 드물게 보긴 했다. 갈치나 고등어는 석쇠로 구워 밥상에 올랐고, 명태는 몇 도막내어 대가리까지 넣어 국으로 끓여 밥상에 올랐다. 무나 파도 넉넉히 썰어 넣어 국으로 끓여 대가족이 모두 먹었으니 명태가 훨씬 실용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명태국도 겨우내 몇 번 아니었다. 아, 그리운 그 맛이여.
그런 이 명태를 요즈음은 밥상 아닌 주탁에서나마 만날 수 다행이다. 물론 예전의 그 맛에야 비길 수 없다. 냉동 명태를 녹여 통째로 펴서 밀가루 반죽에 청량고추를 다져 넣어 전을 부친 것이다. 이름 붙이면 ‘명태전’이다. 퇴근 후나 하산 후에 가끔 들리는 막걸리집의 서민 안주로 제격이다. 물론 부추전이나 두부안주가 있어도, 나는 명태전을 더 선호한다.
대가리채로 놀놀하게 부쳐져 나온 이 전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따뜻할 때는 따뜻한 데로 좀 식으면 식은 데로 안주가 된다. 만원 미만의 이 안주 한 접시로 막걸리 서너 단지는 거뜬히 비울 안주가 된다. 잔이야 혼자도 좋고, 마주도 좋고, 그 이상도 관계없다. 이 막걸리를 비울 때 어둠이진 골목 창 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면 더 좋은 그림이다.
이 막걸리를 비우면 속이 참 편하다. 다른 술들은 들어가면 속이 요동치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도 많아진다. 명태전을 안주해서 드는 막걸리는 사람들을 조용한 침잠의 세계로 인도한다. 천천히 오는 포만감으로 나중에 저녁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때가 되면 채운만큼 비워야하는 인체의 속성에 따라 어디 살짝 다녀와서 다시 채우면 된다.
주변에 명태전이 안주로 나오는 막걸리 파는 집을 아는 사람은 운치 있는 사람이다. 인생을 음미하며 사는 멋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세상이면 얼굴 붉힐 일도 다툴 일도 없다.
첫댓글 북태평양 원양어선에서 온 동태부터 우리 식탁에 친숙한 먹거리 명태를 낱낱이 해부해 주셨네요*^^* 명태전 예찬 잘 읽었습니다^^*
주오돈님의 명태전 참 좋은 글입니다 황태 북어 생태. 명태의 눈알 그 푸르런 시절의 바다.... 16일 가락모임에서도 좋은 이야기 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