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천사(香泉寺)를 다녀오는 길에 이옥순, 《베란다가 있는 풍경》(책세상, 1999)을 읽다.
지난 여름 인도를 다녀온 우리 가족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인도로 갈 꿈을 꾸고 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인도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인도를 다녀온 힘으로 하루하루 활기차게 살고 있는 요즘이다. 겨울 방학에 다시 인도행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저마다 바쁘다. 아내도, 아들도. 내게는 무엇보다 영어와 일어회화가 시급하다. 요즘 전철내 나의 독서가 《신일본어회화》로 바뀐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은 여전히 '인도에 관한 책'이다. 어느날 아내가 책을 한 권 사왔다. 《베란다가 있는 풍경》.
"이옥순 선생이 책을 냈구나!"
그뿐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은 열심히 읽으면서 때때로 내게 중계방송이다. 캘커타에서의 "그렇다"와 "아니다"에 대해서(p.154), 영국인 관리의 '엉덩이 放火談'(p. )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책을 정말로 '여시아문(如是我聞)'한 셈이다. 읽기 전에 들었다.
"여보, 당신, 이 책 봐요. 곡 필요한 책이에요."
아내의 강권(强勸)에 나는 D-day를 "향천사 가는 날"로 잡았던 것이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왜 인도에 대해서 계속 떠들어대고 있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남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도 그럴 것같다. 인도, 인도, 인도 -----. 우리는 그렇게 인도체험을 반추, 되새김질한다. 그러면서 기억하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덧보탠다. 인도여행의 현재진행형이며, 확대재생산이다.[부처님 열반 이후, 경전의 합송(合誦)이나 결집(結集) 역시 이같은 해석학적 행위가 아니었을까. 즉 경전 속에 이미 해석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도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이 책은 도움을 준다. 바꿔 말하면, 저자는 "인도에 발을 딛지 못한 사람들"(p.286)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의 희망과는 달리, 이 책 아니 모든 여행기는 그 땅에 발을 딛고 온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들이 읽을 때 비로소 제맛을 낸다. 인도를 체험한 뒤에 여행기를 읽어야 한다. 갔다 왔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입력이 된다. 그러면서 나의 견문과 저자의 견문이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흔히 경전을 "여행기"에 "깨침"을 여행에 비유하는데, 이 점을 생각하면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정당하다.]
저자는 왜 인도에 가는지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거기 인도가 누워있으니까!" 나는 그렇지 않다.
"왜 인도에 가는가?"
"처음에는 더 이상 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였다."
"이제 갔다 왔지 않은가? 왜 또 간다는 말인가?"
"인도를 가보았기 때문에 간다."
인도는 이렇게 사람들을 부르는 나라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중, 내가 목격한 장면과 인물들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저자의 관점은 중도주의다. 포폄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역사의 인도를 밝히고 있다. 흔히 불교성지순례기들에서 만날 수 있는 감동의 과잉반응에서 벗어나 있는 여행기다. 이 책이 갖는 최고의 미덕이리라. 그러면서도 철학과 종교를 공부하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배운 것 몇가지 적어보자.
1) 불상은 금색이다. 32상의 하나로서 규정되어 있는데, 인도에는 금이 많이 난다는 사실. 또한 "금을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인도"(p.27)
2) "전통적인 힌두는 먹을 것을 돈 받고 파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pp.118-119) 그 이유는 "사랑의 손길로 만들지 않은 음식을 돈을 위해서 판매하는 행동은 일종의 죄악이라는 것이다."(p.119) 불교에서 걸식(乞食)이 가능한 문화적 배경이 이해된다.
3) 인도인의 "만만디"는 명상의 전통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명상의 전통에서 "만만디"가 나온 것인가? 알 수 없지만, 그 관계가 무관치는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