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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혼동
증산도와 대순진리회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증산도를 같은 道라고 해서 사이비라는 말도 생깁니다.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접근했던 대순진리회의 가장 큰 피해자가 증산도입니다.
증산도의 진리도용과 증산도 사칭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와 같은 반사회적인 사회암적존재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증산도의 피해는 무척 큽니다.
증산도와 대순진리회를 모르는 분들은 신앙의 대상과 진리체계 그리고 신앙의 건전성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보면 증산도와 대순진리회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대상이 전혀 다릅니다. 증산도는 증산도의 도조이신 증산상제님과 종통을 계승하신 태모고수부님을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는 얼핏 증산도와 같이 증산상제님을 신앙하는 것 같지만 증산상제님은 도가의 옥추문을 지키는 48장가운데 하나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에 상제라는 이름을 붙이며 비하시켜 부르고, 엉뚱한 조철제라는 인물을 상제님으로 왜곡하여 신앙합니다.
둘째 증산도는 증산상제님의 진리체계를 답사와 증언을 통하여 수많은 증언내용과 증거문서 5만건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증산상제님과 태모고수부님의 말씀을 증산도 도전으로 체계적으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증산도는 증산도도전, 새시대새진리, 이제는 개벽이다 등수많은 진리서적을 활발하게 세상에 내 놓으며 증산상제님의 진리문화를 올바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는 이러한 증산도를 사칭, 증산도 진리서적을 무단도용하고, 진리를 상품화하여 국민을 기만하며, 증산도에 엄청난 피해를 입혀왔습니다.
셋째 증산도 신앙의 건전성입니다. 대학동아리는 말할 것도 없고 기초교육기관인 중고등학교에서 CA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증산도가 그만큼 신앙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는 도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천륜파괴와 가정파괴등의 비리가 언론을 통하여 폭로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대표적인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증산도의 월간지인 월간개벽에서 대순진리회에 속았지만 진리를 찾고자하는 진심어린 마음을 통하여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증산도를 찾으신 분들의 증언과 대순진리회의 실상을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증산도 신앙을 만나기까지 상생에세이
월간개벽 2006년10월호
어린 시절, 내 눈 속에 비친 어른들은 꿈과 희망과 아름다움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다. 정말 내가 속한 별은 어디에 있을까?
그 별을 찾아내 그곳에 나의 왕국을 또한 천국을 건설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그 별에 천국을 세워,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천국 속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나는 신적인 존재, 완벽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벽이란 도대체 언제 올까?
저는 오스트리아에서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쓰나미 참사를 방송을 통해 목격하였습니다. 그 순간 ‘이 세상은 다 했구나, 지축이 곧 설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 Wien근교 Klosterneuburg에는 매일매일 무척 심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정원의 나무들과 주변 산의 온 나무들이 바람에 뒤흔들리며 머지않아 닥칠 불운에 대해, 거대한 파괴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공포에 떠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내일이라도 당장 개벽이 일어날 것만 같아 날마다 잠을 이루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정말로 이 땅에 태어난 본분을 잃고 유럽에서 이렇게 허송세월해도 좋을까, 개벽을 준비하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상제님을 등지고 있는 나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민망하고 두려웠지만 다시 도를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님들께서 저를 간절히 찾고 계신다는 것과 내가 다시 도를 닦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자꾸만 강렬하게 밀려들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6년 반 동안의 유학생활 동안 항상 도(道)라는 것이 제 생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지인들과 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개벽이란 것이 도대체 언제 올까 하는 의혹에, 때로는 크게 때로는 미미하게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제가 상제님과 개벽을 알게 된 것은, 그러니까 11년전의 일입니다.
하느님어머니를 찾아내고야 말겠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너무나 사랑했던 저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었고 우주 자체가 되고 싶었습니다. 바위을 보면 내가 아주 오랜 옛적에 바위였던 적이 있었다고 생각했고 공기나 구름이었던 적도 있었으며, 나비나 물이나 꽃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릴 때 여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언니는 나무 좋아해?”“구름 좋아해?”“연못 좋아해?”하면 저는 매번 좋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생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무, 구름, 연못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당이 될 가능성이 많대.”
나무, 구름, 연못을 좋아하는 사람이 무당이라면, 무당은 참 멋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말 내가 그토록 찾고 찾았던 그동안의 모든 궁금증과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우주의 주재자께서 삼계대권을 가지고 이땅에 오셔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목숨을 다해 도를 닦겠다고 또 천하창생을 살려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대순진리회 라고 불리던 그곳에선 진리에 대해 나날이 더해가는 저의 갈급증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그 궁극을 캐고 싶었고 진실을 더 깊이 알고 싶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제 눈에도 뭔가 정의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종통에 대해 저는 큰 이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분명 후천에는 도통하는 자 중에 여자가 많으리라 하셨고 후천이란 음시대이며 또 정음정양 시대인데, 남성과 여성의 가치가 동등하다면서 왜 대순진리회 에서는 종통이 남자-남자-남자로 이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등학교 때 성경을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과도 같았습니다.
하느님아버지는 여기저기 나오는데 왜 하느님어머니란 존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중성이라면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뭔가 다르게 불렀어야 하지만 분명히 신을 하나님아버지라 표현했습니다. 그럼 하느님어머니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어머니!
이 세상은 여성 없이는 돌아가지 않고 존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천의 종교와 문명 속에서는 여성이 너무 억압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하느님어머니 곧 여신이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했고 반드시 그 여신을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이상을 실현해줄 수 있는 완벽한 곳이 아니라는 허탈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얻고 저는 유학을 떠났습니다.
도를 완성해보고자 했던 꿈
저는 음악으로써 도를 완성해보고 싶었습니다. 전공이었던 바이올린 연주행위를 도를 통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연주소리를 통해 대우주와 하나되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연주를 하고 싶었습니다. 청중들의 의식과 나의 의식이 내 연주를 통해 하나로 통일되는 그런 경험도 가끔씩 했습니다. 그 속에서 나라는 작은 자아가 사라지고 수많은 청중들과, 우주 만유와, 대우주와, 하나로 통일되는 그 자리 그 경계가 있다는 걸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대연주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듯이 연주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연주는 신께 올려지는 기도였습니다. 또한 신께 올려지는 경건하고 신성한 제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연주행위를 통해 청중에게 신의 세계 및 메세지를 전하는, 또 그들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또한 우리들의 작은 자아가 사라지고 대자아를 찾게 하는, 대우주와 하나가 되게 하는, 대 제사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여동생이 저를 자극했듯이 큰 무당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도(道)의 경전이 있는가?
인도네시아 쓰나미 참사 직후 작년 2월말, 방학을 이용해서 한국에 왔습니다. 『충격대예언』이란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울 교보문고에 들렀어요.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비슷한 제목을 대도 그런 책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개벽에 관해 쓰여진 책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증산도에서 나온 『이것이 개벽이다』란 책이 있었으나 상권뿐이었고 하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 서적코너에서 『 대순진리회 의 비극』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또 『대순전경』이 있냐고 물으니 주문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의 경전이 있냐’고 물었는데 증산도에서 나온 『도전道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전道典』을 받아들었습니다. 정말 두꺼운 책이었고 그 안엔 사진과 주석들로 가득차 있었으며, 특히 제가 관심을 갖고 해석하고 싶었던 한시(漢詩)에 토와 해석이 자세히 달려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알고 싶었던 이마두(利瑪竇,Matteo Ricci) 대성사님에 대해 그림까지 곁들여 자세히 씌여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상제님으로부터 40여종의 종파가 뻗어나갔다고 들었는데 이런 책을 집대성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진리서적들이 있고 학문적 체계가 잡혀있는 ‘증산도라는 이곳이 정말 진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심연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온 것은, 상제님 어진(御眞) 뒤에 태모 고수부님의 진영(眞影)이었습니다. 이 여성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증산도에서 나온 『이것이 개벽이다』 책의 상권을 읽고 하권을 구하기 위해서 광화문도장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내일 오스트리아로 떠나야 하는데 하권을 꼭 구하고 싶다고 간절히 부탁하여 그 책을 구했고, 오스트리아에서 틈틈이 읽으면서 궁금한 점은 전화로 증산도 국제부나 독일 노이스 도장을 통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증산도의 이상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들과 너무나 일치하였으므로 저는 두달만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제가 아는 아홉 명에게 『Autumn Calling』이나 『The Dance of Dragon and Phenixs』(용봉龍鳳) 소책자와 독일어 도전 및 오디오 세트 등을 선물하며 개벽이 온다는 것에 대해 알렸고, 이어서 4월 22일 귀국하여 5월 5일 입문하고 5월 29일 입도를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제 삶은 증산도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증산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조상님들께서 단계적으로 저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지상선경낙원을 건설하는 곳, 유불선이 통일되고 하느님어머니를 모시는 이곳(얼마나 찾아왔던지!), 태사부님 사부님처럼 저의 영혼과 삶을 이끌어주실 분이 있는 곳(얼마나 필요했던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따를 수 있는 진정한 참스승을 모시는 이곳, 증산도를 만난 것은 제 인생의 기적입니다. 기적을 허락해 주시고 베풀어주신 저의 선영신들과 천지일월 부모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월간개벽 2006년 9월호
진리를 만나는 기쁨 _ 상제님이 일깨워주신 한민족 역사의 혼과 정신
‘나는 나를 믿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생활과는 무관하게 그냥 열심히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놀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깨달아 한 3개월 정도를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인터넷에서 여러 자료들을 읽다가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하느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서쪽지방 이스라엘의 민족신을 믿는 종교단체구나’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기독교를 믿는 것은 주체성을 상실한 종교 행위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후로는, 한때 열심히 믿었던 종교(기독교)가 남겨준 반민족성과 진리의 부재에 실망하여 한동안 신앙과는 멀어진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나를 믿는다’는 일념으로 군대 제대 후 또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뜻하지 않게 대순진리회 를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후배의 권유로 아는 누나를 소개받았는데 이를 통해 대순진리회 를 접했습니다. 물론 저는 소위 말하는 진리, 즉 음양오행, 우주, 영혼, 신적인 영역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그 누나가 자기 소속을 밝히지 않고 진리의 정보들을 얘기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의아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그곳을 다녀보고는 무언가 수상하고 기분이 깔끔하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 내가 이틀 동안 갔던 곳이 대순진리회 였구나!’하는 것을 깨달았고 또다시 종교가 남겨준 비신뢰성에 대해 더 깊은 좌절을 했습니다.
〈개벽 실제상황과 증산도〉라는 이름의 사이트
그러다가 종통을 이었다는 증산도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날 저는 밤새도록 증산도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개벽 실제상황과 증산도〉라는 이름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유종안 성도님의 격의없는 편안한 대화와 권유, 그리고 인도에 감화되어 증산도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한달간 증산도 입문과정을 공부하고 저 나름대로 인터넷과 몇몇 서적들을 읽어본 후 증산도는 그저 단순히 한 사람이 종교 가르침을 전수하려고 세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증산도는 저에게 우주에는 하늘과 땅의 이치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 사이에 인간이 있으며 하늘에는 대우주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이 계심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저의 조상님들도 신명계에 살아 계신다는 것과 그분들이 지금 하추개벽기를 맞이하여 자손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만나리라” “너희 조상이 하느님이니라” “조상 선령신을 잘 모셔라”하신 상제님 말씀이 마음속 깊이 다가왔으며, 이는 저의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물론 조상 선령신이 나의 하느님이되 그 위에는 상제님이 계십니다. 상제님은 모든 신명들의 통치자, 주재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앞으로 지축이 정립하는 대개벽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후천선경이 온다는 것을 우주변화의 원리(음양오행 천간지지)로써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이 전해주신 상생의 도를 깨닫고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파하’라는 태을주 수행을 통해서 이를 극복해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개벽기 때에 수없이 쓰러져갈 천하 창생들을 건져 살려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셨습니다.
개벽의 대의를 실천하는 증산도
개벽은 동서양 예언서나 옛 성인들이 이미 알려준 것이며 앞으로 일어나는 대개벽이 거짓말이 아님을 상기할 때, 삼신상제님이신 하느님을 믿어온 한민족으로서 당연히 개벽기 때 사람 살리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께서 전해주신 태을주 수행을 통해 개벽을 극복하고 후천 조화선경을 개창하는 일을 증산도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지도자로서 묵묵히 천명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저에게도 상제님이 일깨워주신 한민족 역사의 혼과 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민족 고유의 조상숭배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후천 대개벽기에 사람 살리는 일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증산도를 전해주신 태사부님 사부님께 진심어린 마음에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인도해 주신 유종안 성도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상제님의 도를 받아 사람 살리는 일에 일심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월간개벽 2006년 9월호
진리를 만나는 기쁨 _ 상제님 진리보다 더 완벽한 진리는 없다
삼덕교를 신앙하신 아버지
개벽!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단순히 종말이라든가 종교적인 단어로만 생각하고 지나간 시간들이 참으로 많이도 흘러갔습니다. 증산도, 대순진리회 , 삼덕교…. 낯설지는 않았지만 제가 갈 길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며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전라남도 보성에 사시다가 결혼하시면서 상제님 진리를 만나 상제님을 신앙하시기 위해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평사리의 삼덕교 본부가 있는 도촌으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 개념도 없는 저에게 진리는 설명해주지 않으시고, 곧 개벽이 온다고만 하시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똑같은 말씀만 반복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개벽과 상제님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리집은 상제님을 신앙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너무도 가난하고 못 배우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저의 팔자려니 하고 그저 제게 주어진 복이 그뿐이려니 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때로 제 인생이 정말 힘들 때면 그 탓을 조상님께 돌리곤 하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신’(조상신을 가리킴)은 자손에게 뭘 자꾸 해달라고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굿을 하는 것 등 신을 위한 행위는 해줄 필요가 전혀 없다고 극구 부인하려 노력했습니다.
상제님 진리의 종통맥이 증산도로 이어져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마저도 항상 뭔지 모를 허전함으로 채워지지 않는 삶을 살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제 입에서는 늘 한탄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왜 사니? 정말 왜 사니? 죽지 못해 살지.” 하면서 체념해버린 인생. 왠지 모를 허전함과 진리에 대한 갈급증이 있어 인간 삶의 참 목적을 찾기 위해 종교에 관심을 가져 보려 하였지만, 불교나 기독교는 이미 기도발이 다 끝난, 운이 다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의 문을 두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조상님들의 음덕과 아버지의 정성이었는지, 증산도와 대순진리회 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즈음 삼겹살 전문점을 열었는데, 하루는 오빠의 친구 부인인 김경임 성도님께서 식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풍기는 인상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일심을 다하면서 매우 행복하게 보여서 “참 복도 많게 생겼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런 김경임 성도님께 증산도와 대순진리회 의 차이점을 묻게 되었고, 그날 바로 《월간개벽》 5월호와 『 대순진리회 의 정체』라는 책을 받아서 읽었습니다. 증산도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벽 실제상황』을 구입하여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고대사와 우주변화의 원리 그리고 상제님께서 보신 천지공사로 인해 ‘세상이 이렇게 밖에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너무도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월간개벽》지에 소개된 『도전』을 빨리 구해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김경임 성도님께 구해달라고 부탁하여 그날 『도전』과 함께 『관통 증산도』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관통 증산도』를 읽으면서, 아버지가 신앙하셨던 삼덕교를 비롯한 상제님 진리의 종통맥이 증산도로 이어져 있음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태사부님 사부님의 어록을 읽으면서 개벽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내가 왜 이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살아오는 동안 그토록 궁금했던 종교에 관한 모든 궁금증들은 물론 진리에 대한 목마름까지, 이 증산도의 진리 안에서 명쾌하게 그리고 확연하게 해답을 찾게 되면서 가슴 저리도록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허구의 장막이 훤히 치워진 느낌
정말 우연히 안성의 책방에서 『개벽 실제상황』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 옆에는 『 대순진리회 의 비극』이 있더군요. 86년도에 제가 이미 『이것이 개벽이다』를 읽어본 일이 있었기에 거리감이 없더군요. 책을 사가지고 직장에서 잠시 일을 덮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정말 정신없이 책을 읽었습니다. 원시반본의 이치에 의해 인간으로 이 조선 땅에 오신 증산 상제님과 태모님이 일구어 놓은 천지공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가더군요. 또한 대순진리회 의 허구가 보였습니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허구의 장막이 훤히 치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증산도야말로 난법단체가 아닌 정통 종통맥을 이어온 곳이구나. 오히려 난법단체는 대순진리회 였구나!’하는 순간적인 깨달음이 왔습니다. 대순진리회 에 있을 때는 느껴 보지 못한 어떤 희열감이라고나 할까요.
책 뒤의 주요 도장 안내를 보고 안성에 있는 봉산도장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입문하여 오늘까지 포정님의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포정님을 통해 『개벽 실제상황』을 다시 한번 더 심도있게 교육받으니 더 깊은 깨달음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_男,40세 / 안성 봉산도장
종통의 핵심이 담긴 _『증산도 도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도(道)를 떠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지라 나름대로 초한지도 사서 보고 주역 공부도 착실하게 해 나가던 중에 정현미 포감님을 만나서 그동안 궁금해하던 종통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상제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역(易)의 이치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믿어 왔기에,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을 공부해 보고 싶었으나 포감님이 이치 공부에 앞서 『도전』(개정판)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도전을 구입하여 구절구절 읽어보니 정신이 번쩍 뜨였습니다. 수부님에 대한 기록과 상제님을 믿고 따랐던 종도들의 행적, 또 그 후손들의 증언 내용들을 읽고 있노라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과거에 대순진리회 에서는 수부님과 주역의 이치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없었는데, 증산도를 만나서 수부관이나 종통관을 바르게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께 바른 도인이 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소원할 때마다 마음이 찡하고 심금을 울립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도훈말씀을 들을 때마다 증산도에서는 종통관과 수부관이 명확할 뿐만 아니라 또 중요시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_男(서울 양재)
∽◈ 꼬박 하루동안 인터넷으로 『도전』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학졸업 후 증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다녀가신 걸 알고 “어딘가에 상제님의 참 진리를 바르게 공부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결혼 후 아빠가 된 다음에도 상제님의 참 진리를 찾겠다는 집념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PC방에 갔다가 우연히 증산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순진리회 에 다닐 때 형성된 선입관 때문에 태사부님 말씀을 읽으면서도 불경스런 생각만 가졌을 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도전』이라는 단어를 보고 궁금해서 1편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1시간만 머물다 가려고 들어온 PC방에서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밥도 안 먹고 화장실만 다녀오면서 도전을 읽었습니다! ‘상제님께서 여기에 계시는구나!!’‘상제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으셨구나!!!’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얼마나 눈물을 쏟으며 도전을 읽었던지 눈이 충혈되고 퉁퉁 부어서 꼭 개구리 같았습니다.
그동안 방황하며 가족에게 소홀했던 잘못을 반성하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상제님께서 내려주신 진리 안에서 후천 오만년을 함께하며 못다한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항상 살펴주시고 상제님의 진리를 일깨워주신 조상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_男, 부산 대연도장
| 도전을 읽고 태모님 편에 압도당하다
저를 대순진리회 로 이끌었던 인도자가 어느 날 문득 증산도 신앙을 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자료도 보내오고 끊임없이 저를 설득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가 척신에 놀아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신앙하던 또는 신앙을 접었던 동료들이 하나 둘 증산도를 선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신앙을 접었던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신앙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름 아닌 진리의 힘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고, 철옹성 같기만 하던 마음에 분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대순진리회 가 아닐 수 있다는 위기감과 과연 어디가 참신앙을 하는 곳일까 하는 의구심은 한 동안 제 자신을 괴롭혔고 힘들게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해서 상제님의 행적을 최초로 기록했다는 대순전경을 구해서 보았고, 증산도 도전도 구입해서 태모 고수부님 편을 읽으면서 어지러웠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 다시 원점에 섰습니다. _순천 장천도장 남(36세)
3. 교주사후 끝없이 분열되고 있는 대순진리회의 실상
1996년, 교주 박한경이 뚜렷한 후계자 지명없이 죽은 이후 대순진리회가 지속적인 분열과 붕괴의 길을 가고 있다.
모든 신도들의 성금을 하나로 취합하여 교단 운영을 하던 것은 과거지사가 되었고, 성금거출과 치성운영을 독자적으로 하는 방면과 세력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전 신도를 하나로 묶던 대순진리회라는 울타리는 허울만 남아있을 뿐 각 방면의 수임 선감을 사실상의 교주로 하는 여러 개의 종파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며, 다시 예전같이 하나로 합쳐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순진리회의 창립에서 분열까지
1969년
부산의 태극도에서 갈라져 나온 박한경이 서울에 올라와 중곡동에다 <태극진리회>를 창립, 후에 <대순진리회>로 개칭하면서 헛된 도통공부가 27년만에 막을 내리는 <27년 헛도수>가 열리기 시작.
1974년
이상호가 저술한 『대순전경』에서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태모 고수부님으로의 종통 계승을 나타내는 모든 성구를 삭제하고 대신 조철제를 종통 계승자로 꾸민 자체 경전 『전경』을 발간. 그 주모자는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인 장병길.
1970년대∼80년대
박희규 선감의 천안방면을 중심으로 세력을 신장하기 시작. 주로 부녀자 신도가 대부분이었던 천안방면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아내를 가출하게 하는 등 천륜파괴와 가정파괴의 만행을 다반사로 자행하였다. 또한 엄청난 액수의 성금을 갖은 방법을 다해 무제한적으로 뽑는 재물갈취 등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천륜파괴와 재물갈취는 90년대 들어 성주, 부전, 안동, 서울 방면 등 대순진리회 대부분 방면으로 번져 나가며 광적(狂的)인 세력확산을 이뤘다.
1984년
부녀자 가출과 가정파괴, 재물갈취 등이 끊임없이 사회 문제화되자 공영방송 KBS TV는 「추적 60분」에서 <아내의 가출>이란 제목으로 대순진리회의 비리를 사회에 고발.
1992년
세력이 커지자 서울 중곡동의 좁은 건물을 버리고 여주에 새 건물을 지어 본부를 옮김. 이를 전후하여 포천과 속초에 큰 수도장을 건립. 한편 종합대학인 대진대학교와 여러 개의 고등학교을 운영하고 분당과 동두천에 종합병원을 짓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1996년
그러나 도통을 준다고 믿어오던 교주 박한경이 뚜렷한 후계자 지목없이 교단 창립 27년 만인 1996년 1월 23일 80세의 나이로 사망. 이로써 대순진리회의 분열이 예상되었다. 당시 MBC TV 는 「PD수첩」에서 <대순진리회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아래 후계자 지목없이 교주가 죽은 대순진리회의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1999년
드디어 교주사후 잠복되어 오던 주도권 다툼이 현실화된다. 7월 16일 정대진의 부전방면 세력은 실력으로 여주에 있던 이유종의 천안방면 세력을 몰아내고 본부도장을 물리적으로 접수하였고, 이로써 대순진리회는 끝없는 핵분열과 붕괴의 내리막길을 가기 시작한다.
2000년 1월
서울 중곡동으로 쫓겨나갔던 천안방면은 1월 6일 새벽 4시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여주도장 탈환을 시도한다. 이날의 살인적인 집단 난투극 사태는 KBS, MBC, SBS 등의 TV 뉴스를 타고 하루 종일 방송됨으로써 전국민에게 대순진리회의 부도덕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 10월
여주도장을 차지하고 있던 연합세력들 사이에서 분열이 시작됨. 10월 중순경 경석규 종무원장을 적극 지지하는 일부세력들이 정대진의 부전방면 세력에 의해 쫓겨 나와 여주 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됨으로써 핵분열이 시작되었다.
2000년 12월
분열초기 여주도장에서 쫓겨나가 함께 행동했던 천안방면과 성주·성울 방면이 12월을 계기로 성금과 치성을 분리하면서 결별. 천안방면은 서울의 중곡동 도장을 근거지로, 성주·서울 방면은 포천 수도장을 근거지로 삼았다.
2001년
포천 수도장에 함께 있던 성주 방면과 서울 방면이 2001년 들어 성금운용과 치성을 분리하면서 또다시 분열하였다. 성주방면은 대구의 자체 회관을 도장이라 부르며 성금 거출과 운용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고, 서울 방면도 포천수도장을 중심으로 성금과 치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분열현황
<=현재 대순진리회는 말로만 대순진리회 일뿐 사실상 성금과 치성운영을 독자적으로 하는
여러 개의 세력으로 철저히 분열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겉으로 드러난 몇몇 세력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유종의 천안방면 세력-서울의 중곡동 도장이 근거지다. 그런데 천안방면 산하의 모든 방면이 이유종의 산하에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계 방면은 여주도장의 연합세력에 가세하고 있고 강남방면과 용두방면 등은 포천 수도장의 서울 방면 쪽에 합세하고 있다고 한다.
② 여주도장의 연합 세력-정대진의 부전방면이 중심이 되어 크고 작은 여러 방면들이 뭉쳐 있다. 그러나 자체 방면 신도 관리상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함께 있는 방면이 많다고 한다.
③ 안영일의 성주방면 세력-대구에 있는 자체 회관을 도장이라 부르고, 삼위상제를 봉안한 후 성금과 치성 운영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④ 포천도장의 연합 세력-전호덕의 서울방면과 목포방면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천안방면에서 떨어져 나온 손창식 선감 세력 및 강남방면과 용두방면 등이 가담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⑤ 청주의 용암방면 세력-청주 사직동에 있는 서부회관을 회관이 아니라 도장으로 부르며 성금과 치성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⑥ 포항 박성구의 상도방면 세력-이곳은 일찍이 박한경 도전 재세시에 독립한 방면이다. 박한경 도전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었음을 주장하는 박성구를 중심으로 대순진리회 분열이후 흔들리던 신도들을 흡수하여 또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⑦ 경석규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1999년 대순진리회 분열초기 경석규는 여주도장 연합세력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나 2000년 10월 경에 정대진의 부전방면 세력에 의해 쫓겨나갔으며 현재 경석규를 추종하는 일부세력이 성금과 치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강원도 모처에 자체적인 도장을 지으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대순진리회는 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가?
<=아직도 도통이 나온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며 잔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순진리회의 여러 분파들.
이들이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모두 사라져 버리고야 마는
필연적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대순진리회는 종통의 뿌리이신 태모 고수부님을 철저히 부정한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의 종통이 후천 음개벽 도수와 수부도수에 의하여 상제님의 반려자이신 고판례 수부님에게 계승되었음은 상제님의 성언과 성적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깨닫는 기초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는 이러한 명백한 진실을 은폐하고, 상제님의 말씀을 임의로 삭제, 조작, 날조하여 엉뚱하게도 조철제가 계시를 받아 종통을 계승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종통 조작의 주모자는 서울대 종교학과 주임교수를 지낸 장병길이다. 상제님은 수부도수를 부정하는 자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쪹 또 말씀하시기를 “수부(首婦)의 치마 그늘 벗어나면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6:32:4)
둘째, 증산 상제님에게만 적용되는 ‘옥황상제’라는 하느님의 공식 호칭을 조철제에게 적용하여 그를 조성 옥황상제라고 부름으로써 신앙의 대상을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은 살아생전 당신이 옥황상제이심을 천지공사에 수종들었던 여러 성도들과 종통 계승자인 고수부님에게 누누이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데 대순진리회는 증산 상제님을 48신장의 한 이름을 본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줄여서 ‘구천상제’)라는 전혀 맞지 않는 호칭으로 부르고 조철제를 옥황상제라고 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강증산 상제님을 신앙하는 단체가 아니라 상제님의 진리를 상품화하여 세상을 속이고 재물을 갈취하며 백성을 희롱하는 전형적인 난법 단체가 아닐수 없다.
쪹 만일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면 천지신명이 그 목을 베고 몸을 찢어 죽일 것이니라. (道典 6:59:6)
셋째, 대순진리회는 도사업을 한다는 명목아래 천륜 파괴의 대죄악을 너무도 많이 저질렀다는 점이다. 아내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가출하고, 자식이 부모의 통장을 들고 가출하는 등 천륜파괴, 가정파괴의 대죄악이 대순진리회의 성장을 이끈 모든 방면에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쪹 죄는 남의 천륜(天倫)을 끊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느니라. (道典 9:57:1)
넷째, 개벽기 인류구원의 핵심인 태을주를 왜곡하여 읽으며, 구원의 법방인 의통(醫統)을 엉뚱하게 자작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태을주의 첫 머리인 ‘훔치 훔치’를 처음에 한 번만 읽을 뿐 그 뒤로는 읽지 않음으로써 올바른 태을주 기운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순진리회는 실물로 존재하는 의통인패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정신적으로 통하는 도통의 한 종류로 알고 있다. 태을주 왜곡과 의통 왜곡이 대순진리회가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이다.
쪹 이에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으니 태을주를 쓰라.” 하시고 “훔치(팿?) 훔치(팿?)를 덧붙여 읽으라.” 하시며 술잎같이 ‘훔치’ 두 줄을 붙이시니 이러하니라. (道典 7:57:5∼6)
* 또 말씀하시기를 “‘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듯이 창생이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落盤四乳)는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는 말이니 ‘천주님을 떠나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니라. 약은 곧 태을주니라.” 하시니라. (道典 7:58:3∼6)
출처: 월간개벽 2002년5월호 http://www.greatopen.net
다른의견: 돈이 많다고 해서 대순진리회가 전통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 주장입니다. 대순진리회가 왜 돈이 많은지 아래를 보시기 바랍니다.
1996년 사망한 박한경이 신도들 가정을 유린하며 모은 돈의 일부가 2480억원입니다. 최근 뉴스기사로 알 수 있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박한경 사망 후 여러방면으로 분열했다고해서 대순진리회가 변화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아래 기사 뿐 아니라 90년대 PD수첩에서 방영한 도를 찾아 떠난 아내 2003년에는 PD수첩에서 대순진리회의 분파인 대순진리성도회의 시체를 유기한 생명수사건의 시사프로그램을 봐도 대순진리회가 사회에 대단히 큰 피해를 끼쳐 온 집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유종 여주본부도장 원장이 사실상 종무원장의 직무를 일부 수행하면서 대외적으로 종무원 장 행세를 해온 점은 인정되지만 법률적으로는 여전히 경석규 종무원장이 종단 대표자”라며 “은행측은 경씨측 대순진리회에 예금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순진리회는 96년 1월 종단을 이끌어 오던 박한경 도전이 사망한 뒤 경 종무원장과 이 여주본부도장원장 사이에 종단 후계자 자리를 놓고 내분이 생기자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국민은행측은 이 과정에서 양측이 99년 각각 예금지불정지를 요청하자 “대표자 가 누구인지 정해지지 않아 어느 쪽에 돈을 지급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출금을 유보해 왔다.
"대순진리회 예금 2480여억원 경석규 종무원장측에 지급" 동아일보 [사회] 2001.06.28 오후 18:55
"대순진리회 예금 2480여억원 경석규 종무원장측에 지급"
[동아일보 2001-06-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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