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어디 쯤일까?
카메라는 스케치북이다.
요즘 몇일간은 포토샵을 이용, 사진을 그림으로 변형시키는 작업 좀 해봤다. 또, 포토샵으로 수정구슬을 직접 만들고 그 속에 눈 내리는 장면 등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넣어보기도 했다. 어린이 미술시간처럼 우선 재미가 있다. 포토샵 소프트웨어나 스마트폰 앱 등에도 사진을 그림으로 바꾸는 프로그램들이 꽤 많은데 이는 사진작가들이 포토샵 작업과정을 압축하여 앱으로 만든 결과물들이다. 내가 직접 그 과정을 포토샵으로 작업해보면 공부도 되고 보람도 있다.
오늘은 구정이다. 카톡엔 새해 인사를 위한 이미지나 동영상 등이 차고 넘치게 올라온다. 카톡에 올라오는 이미지나 영상들 중에는 기발한 것들도 적지않다. 누군가가 고생스럽게 만든 것들일 테지만 비슷비슷한 영상들이 너무 많아 짜증날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것도 내로남불 현상일까? 내가 직접 만들면 작품이고 남이 만든 건 쓰레기라는 생각.
헤이즐 해리슨(Hazel Harrison)이라는 영국화가가 있다. 그는 주로 사진매체를 활용하여 작업하는 화가이다. 그가 지은 책 중 <사진에서 회화로>(Painting Great Pictures From Photographs)라는 책을 보면, 그림을 위해 사용될 가장 좋은 사진을 얻어내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책이지만 초반에는 미술을 위해 사용될 카메라의 종류, 렌즈유형, 필름노출의 성격 등에 관하여도 꽤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때는 2001년. 당시는 사진에서 포토샵이라는 기법이 발달되지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진을 포토샵으로 그림화하는 작업과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사진이 그림의 소재로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125쪽에 걸쳐 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의 영어표현은 Photography이다. 이는 Photo(빛) + Graphy(그림)의 합성어로,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인 것이다. 사진과 미술은 결국 맥이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네델란드 출생 화가인 렘브란트는 17세기 유럽 회화 사상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분인데, 그의 작품은 색이나 모양이 빛 자체이며, 빛(명암)은 그의 작품에서 곧 생명이다. 사진작가들이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고 배우는 것도 사진이나 그림에서 빛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예이다.
서울예술대 사진학과 명예교수이며, 우리나라 1세대 원로작가인 육명심 사진가는 그의 저서 <이것은 사진이다>에서 풍경사진을 찍을 때 안셀 애덤스(Ansel Adams)의 풍경사진도 많이 봐야 하지만 오히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더 유심히 많이 보기를 역설했다. 그리고 캔디드(Candid)사진을 찍는 학생들에게는 브레송(Bresson)사진도 많이 봐야 하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는 것이 더 큰 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캔디드 사진이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특별한 격식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스냅사진을 뜻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요컨데 사진에서도 포토샵기법이 발달함에 따라 사진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혹자는 포토샵으로 변형시킨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는 사진을 다큐적 측면, 즉 ‘기록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대 예술은 ‘창조적(Creative)’ 발상이 무엇보다 중시된다. 필자가 미술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림은 반드시 직접 캔버스에 붓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현대예술에서는 어쩌면 구시대적 사고일런지도 모른다. 근래 갤러리들을 돌아보면, 사진을 활용하여 포토샵으로 그린 그림이나, 조각작품 또는 설치미술같은 입체적 이미지가 그림의 일종으로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예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미술에서 캔버스에 실제로 붓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포토샵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붓(Brush) 터치가 사진을 그림화시키는 주요수단이다.
예술의 경계, 좁게는 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일까? 다시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글,사진/임윤식)
*수정구슬 속에 눈 내리는 장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