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의 유래:
연은 서양에서는 BC 400년경 플라톤의 친구인 ‘알투스’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고, 동양에서는 BC 200년경 중국의 ‘한신(韓信)’이라는 장군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권41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따르면, 647년 신라 진덕여왕을 반대하는 일부 대신이 반란을 일으켜 김유신(金庾信)이 토벌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성안에 별똥이 떨어져 군사들이 두려워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에 김유신이 꾀를 내어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하늘로 띄웠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어제 저녁에 떨어진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으니 진덕여왕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소문을 내어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권33 충선왕즉위전(忠宣王卽位傳)에 보면 1283년 왕궁 노비가 아이들이 노는 연을 빼앗아 왕자에게 갖다 바친 일이 있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 상원조(上元條)>에 보면 최영(崔瑩) 장군이 탐라(제주도)에 반란이 일어나 이를 징벌할 때 연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어 조선시대에는 보다 성황을 이루었는데 《명종실록(明宗實錄)》에 의하면, 1566년에 국왕이 나라의 정세가 어지러우니 연날리기를 일시 중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고,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계월향이 김응서 장군에게 연을 띄워 적전을 알려줘, 평양 성을 되찾았다는 일화가 있었다. 또 같은 시기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연을 날렸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보편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조선 말기의 기록에는 연의 종류, 연 만드는 법, 연 띄우기 풍속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사실은 이 시기 연날리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