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일 시 : 2020년 09월 30일(수) 07;00 (추석 연휴 첫날)
산행코스 : 생태주차장 ~ 송계삼거리 ~ 신륵사 삼거리 ~ 영봉(1,091M)
원점회귀 약 8.6KM
어 디 서 : 신길역 5호선 3번 출구
누 구 와 : 산 친구 1명과
추석 연휴 첫날 박 산행을 할까 했는데 친구의 제의로 월악산을 흔쾌히 응했다. 사실 월악산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인 90년대 초인 크리스마스 연휴 때 조령산에서 1박 후 귀경길에 눈을 만나서 다시 월악산에 들렀다가 어둠과 심한 눈보라에 중도에서 포기하고 하산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는데 우연히도 그 후에 한 번도 나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신길역에서 친구와 만나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국도를 달렸는데 의외로 분위기도 좋고 길도 잘 뚫려서 정체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10:00) 충주호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30여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듯 기억이 새롭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짐을 느낀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소를 지나서 한수면 행정복지센터 근처에 생태주차장이 있어서 주차하기에 편리하였다.
바로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마트에서 비상용 빵을 몇 개 산 후 마을 방향으로 표시된 등산로를 따라간다. 연휴를 맞아 자연을 찾은 가족들과 삼삼오오 동행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왼편 산으로 소로가 보인다.
산행 초기에는 평탄한 길로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입산 통제 시간을 알려주는 곳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이었다. 너덜지대가 이어지고 가파른 오르막이 마치 이곳에 아주 잘 왔다고 환영(?)을 하는 듯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한동안 자연과의 교감에 게으름을 피운 효과가 나타나 급격히 떨어진 체력으로 오르막에서의 호흡곤란과 근육의 피로도가 현저히 빠르게 쌓이는 것을 느끼며 이러다가는 종주 산행은 물론 장거리 산행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느낀다.
거의 포기란 것이 목구멍을 비집고 뛰쳐나올 때쯤에 첫 번째 쉼터인 조망데크가 나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 월악산의 정상은 마치 초록 바다에 조개껍데기 몇 개를 엎어놓은 듯 선명하다.
가쁜 숨을 핑계로 잠시의 휴식 후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맨다. 본격적인 너덜지대와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오르다 자꾸만 능선이 어디쯤인지를 가늠하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멈춰 섰다를 반복하며 겨우 첫 번째 안부에 올라선다.
힘듦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려는 듯 확 트인 마애봉 능선과 너머로 멀리에는 주흘산 자락이 아닌가 하는 산 그리 메가 시야를 틔운다.
잠시의 꿀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송계삼거리로 향한다. 하지만 얼마를 못 가서 다시금 허덕이며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핑계로 삼아 등산로 옆 숲에 자리를 폈다. 부실한 아침을 대신하여 막걸리와 마트에서 미리 준비한 빵으로 허기를 달랜다기보다는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두 번째의 긴 휴식을 취하고 얼마 남지 않은, 덕주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능선과의 합류점인, 송계삼거리에 도착하였다.(12:31) 특이한 것은 리본 게시대였다. 산악회의 홍보, 개인들의 다녀간 흔적 표시 및 과시용으로 남발되는 리본을 아예 한곳에 모으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시 신륵사 삼거리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의 휴식인 양 평탄한 능선길이다. 가을의 전령이자 계절을 대표하는 쑥부쟁이가 동행하듯이 나열해 있다. 쑥부쟁이의 전설을 뒤로하고 걷는다. 바위로 형성된 영봉은 진행 방향에서 오르지 못하고 우회하여 오르게 되어있다. 그 구간은 낙석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철망으로 터널처럼 연결되어 있다.
신륵사 삼거리에서부터 월악의 절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연신 눈길을 여기저기에 빼앗긴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는 30여 년 전의 기억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고사목을 주연 삼은 맑고 높은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다시 정상으로의 걸음을 줄이고자 나아간다. 마을 어귀를 지나서 올라 올 때부터 오르막에서 서로 앞뒤를 나눴던 분이 우리가 막걸리로 힘듦을 감추고 있을 때 먼저 올라오셨든지 마주 내려오시면서 인사를 건네신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동년배인데다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와 같은 월악산에 대한 아쉬운 추억이 있어서 이번 추석 연휴를 무척이나 벼르고 오셨다는 우연이 있었다.
철 사다리가 나오고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지나왔던 마애봉 능선과 주흘산 방향을 바라보고 추억 한 모금 삼키며 조금씩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마치 금방이라도 멀리 날아 가버릴 과거의 시간일 듯한 조바심에서다.
첫 번째의 철 사다리를 오르며 다시 한번 사방을 돌아보며 황홀경에 젖는다. 송계삼거리 전 휴식을 취할 때 스쳤던 삼 형제와 부부의 가족이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좀 나이 차이가 나는 두 형들은 벌써 앞서 도망치듯 올라가고 어린 막내마저 올려보내고 여유롭게 걷는 부부의 뒷모습이 나의 가슴을 덮인다.
잠시 주변 경관에 취해 잊고 있었던 오르막의 힘듦이 다시 몰아친다. 친구를 먼저 올려보내고 난간에 기대서 거친 숨을 헐떡이며 하릴없는 파란 하늘에 솜털 구름이 빠르게 지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13:25) 몇십여 년이 걸린 월악산 영봉의 알현은 나를 새로운 감회에 젖게 한다. 영봉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지만 나는 긴 시간과 많은 세월을 건너고 건너서 온 것이다.
신륵사 삼거리에서 만났던 젊은 일행들의 사진을 서로 찍어주며 덕담을 건네고 하봉으로 향하는 청춘이 아름다웠다. 중봉과 하봉을 너머 충주호가 배경이 되어 준다. 한순간의 희열과 회상이 지나고 건너편의 데크에서 영봉과 너머의 주변을 인테리어 삼아 맞진 커피 한잔으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다.(14:35~14:50)
오를 때의 치열한 전투로 잠시 잊었던 시장기를 느끼며 영봉과의 만남은 아쉬움으로 남겨둔 채 자리를 뜬다. 오르막인 송계삼거리를 향하며 휴식을 취했던 그곳에서 허기를 달래려고 남은 막걸리와 삶은 단호박을 안주로 점심을 대신하고 따사로운 가을 햇볕에 몸을 누였다.(14:25~15:30)
꿀맛 같은 낮잠을 끝내고 한적한 하산 길을 내려서서 바라보는 월악산 정상은 이미 서서히 몰려오는 일몰의 기운을 받아서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