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속초 산불피해 지역을 가다
전쟁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현장
처절하고 끔찍했던 강원도 속초, 고성 등의 산불이 진화된지도 한달이 다 돼 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강원 고성 속초 산불은 2019년 4월 4일 오후 7시 17분경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에서 시작돼 인근 야산으로 번져 고성, 속초 각 1명씩 2명(이중 1명은 강풍 원인)이 사망했고, 무려 700ha에 이르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주택 518채가 소실되고, 이재민은 고성 959명, 속초 173명 등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정부가 제공한 임시주거시설 20여 개 대피소에 나누어 머무르고 있다. 정부는 2019년 4월 6일, 고성, 속초, 동해, 강릉, 인제 등 5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2019년 4월 27일(토), 필자는 그 참혹한 현장을 기록으로 담고, 미력이나마 피해주민들을 위로하고싶어 늦었지만 강원도 속초, 고성지역을 찾아가 봤다.
처음에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입장에서 피해현장을 돌아본다는 것이 자칫 주민들의 거부감 및 분노 만 자극하지않을까 염려돼 무척 망설였다. 그런데 여러 언론이나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산불의 2차 피해로 여행객들이나 방문객들이 강원도를 찾지않아 숙박업소, 음식점 등이 개점휴업상태라 한다. 이런 때일수록 강원도를 많이 찾아주는 것이 피해지역을 돕는 일이라는 전언에 용기를 얻어 길을 나섰다.
필자는 취재목적으로 한국사진방송 및 외신기자 등과 동행했기 때문에 먼저 속초소방서를 방문해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소방서에서는 친절하게 산불피해지역에 대해 상세하게 안내해 주고 현지에서의 주의사항 등도 말해줬다.
필자 일행이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속초시 동해대로 4534번지에 위치한 진성폐차장. 폐차장 건물과 수백대의 폐차들이 폭격을 맞은 듯 참혹하게 망가져 있다. "상습방화범인 한전은 피해사실 인정하고 즉각 사죄하라"고 적힌 고성속초 산불피해 공동비상대책위원회 명의의 플래카드가 방문자들의 가슴을 싸늘하게 한다. 고성,속초지역에는 이런 류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한전 사장 구속하라"는 현수막도 보인다.
처음엔 이건 산불피해 때문이 아니라 폐차장이라서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했다. 그런데 폐차장 주변 소나무숲 일부가 검게 타버리고 모든 차량 내부가 뼈대 만 앙상하게 남은 게 이상하다. 폐차장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폐차장에는 차량 내 엔진오일이나 남은 유류, 타이어 등 인화성 물질이 많아 화재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고 들려준다. 폐차장 바로 옆에는 가스공사 건물이 보인다. 가스공사 쪽으로 불이 옮겨붙지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소방당국에서 가스공사 쪽으로 불이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해준다.
말을 잃었다. 불에 탄 폐차들만 일부러 모아놓은 듯 하다. 남아있는 거라곤 그을린 쇠붙이 뼈대 밖에 없다. 파란 하늘과 폐차장 뒤로 보이는 설악산능선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최근 영동지역에 때아닌 눈이 내려 산봉우리가 하얗게 보인다. 4월말의 설경이라니,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져 든다. 이곳 진성폐차장은 이번 산불피해와 관련,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철수 속초시장 등도 직접 방문했던 현장이다.
다음은 큰 피해지역 중 하나인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속초에서 이곳으로 오는 도중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숲들은 봄이 아니었다. 신록이 싱그러워야 할 이 계절에 소나무숲들은 불에 타 마치 가을단풍처럼 붉게 변해 있다. 다른 나무들 역시 삭막한 비탈에 처절할 정도로 앙상한 뼈대 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목격했다. 마을 집들 중 어느 집은 완전 전소된 반면 바로 옆집은 아무런 피해없이 멀쩡하다. 이런 현상이 한두집이 아니다. 일부러 한집 걸러 다른 한집 씩 불을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어마어마한 강풍이 몰아치면서 불똥이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 불똥이 떨어진 집은 타버리고, 운좋게 불똥을 맞지않은 집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인흥마을의 '별미여행'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이 식당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않고 멀쩡한 반면, 바로 두집 건너 집은 위 사진과 같이 전소된 상태였다.
점심식사후 고성군 최대 피해지역이라고 하는 장천마을을 찾아가 봤다. 장천마을은 이번 산불로 전체 42가구의 절반이 불에 타는 큰 피해를 본 곳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다행히 장천마을은 산불 피해의 흔적을 말끔히 치워 정말 이 동네가 큰 산불피해를 본 마을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깨끗하고 조용하다. 집이 들어서 있던 장소들은 불탄 건물흔적을 모두 치우고 땅을 마당처럼 깨끗하게 정리해 놨다. 좁은 마을길로 건물철거폐기물을 실어나르는 덤프트럭들만 여러대 오고 간다.
마을을 돌아나오는데 좌측으로 제법 큰 창고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건물 곳곳이 검게 탄 흔적이 역력하다. 건물 뒤 소나무숲 역시 완전 전소된 상태다.
전쟁 폭격을 맞은 것 같이 처참하다. 이 건물은 규모가 커 아직 철거를 못한 것 같다. 무너진 천정과 벽 사이로 햇살 만 밝게 드리우고 있다.
건물 안에는 주민 한 분이 화재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하다.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본다.
장천마을에서 얼마쯤 왔을까? 길옆 좌측으로 택지개발구역이 보이고 집 한 채 전소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집을 완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화재를 당한 것 같다. 2층 문짝들이 치맛자락처럼 펄럭이고 있고,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려 있다. 집 뒤 소나무숲 역시 가을단풍처럼 검붉게 타버렸다.
실내를 살짝 들여다 봤다. 부서진 가재도구 조각들이 처참하다. 창문 밖으로 역시 불에 탄 소나무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 다른 피해지역인 고성군 토성면 성천마을 가는 길. 도로변의 제법 큰 주택이 완전 전소된 상태다. 꽤 고급스럽게 지은 집 같은데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하다.
실내는 더욱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화마의 무서움이 실감난다.
바로 뒷 산 역시 숲 전체가 검게 타버렸다. 수묵화 한편을 보는 듯 하다.
뒷산 숲과 집이 완전히 타버렸는데도 불과 몇미터 앞 정원의 꽃들은 멀쩡하다. 튤립 꽃들이 불탄 집 주인을 위로하듯 예쁜 자태를 뽑내고 있다. 희망은 이렇게 살아 있다.
마지막 본 화재현장은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 산 85번지 (주) 금강레미콘 앞 소나무숲. 거의 50년 내외는 됨직한 수천그루의 소나무숲이 불에 타 검붉게 변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송림이 일거에 화마로 사라지게 됐다니 가슴이 미어질듯 아프다. 혹시라도 겉만 그을려 내년에 다시 새순을 피울 수는 없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본다.
초대형산불로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강원도 고성, 속초 등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글,사진/임윤식)
*이글은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현장을 취재했던 한국사진방송 기사를 일부 수정하여 재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