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성들이 도자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그릇이라고 하여 좋은 도자기 그릇은 그녀들의 자존심이자 살림 밑천이었기 때문이다. 며느리 4대의 이받이 단지를 모아보니 역사와 가세와 시대가 읽힌다. '도정일치 (陶政一致)라고 했던가.
윗 줄 왼쪽의 질그릇 단지는 안동 손씨댁에서 오신 시증조모님의 것으로 꿀단지로 추정되는데 조선 말기 혼란시기에 물자가 귀하던 시대 이받이 그릇으로 차용된 것으로 본다.
그 옆에 있는 녹색과 청색의 모란문 사기 항아리는 19세기 말에 태어나신 시조모님의 단지로 뚜껑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다. 연안 차씨댁에서 오셨는데 친가댁의 가세가 택택하여 혼수 잘해 온 새댁이라고 근동에서 구경을 올 정도로 한벽한 시골이었다는 뜻이다.
오른쪽 붉은 단지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단지로 바닥에 '날 일日'자가 찍혀 있는 일본제로 성산 이씨댁 (정미소집 막내딸)에서 오신 시어머님 것이다. 시어머님 돌아 가시고 시누이들이 유품정리 한다고 버릴려고
문 밖에 내놓은 것을 내가 다시 들여왔다.
없는 살림에 다독다독 살림 여물게 살며 반질반질 단지 닦으며 사람도리 하느라 힘드셨을 옛며느님들 생각하면 참 애련하다.
마지막으로 아랫줄에 있는 소나무와 학이 그려진 단지가 바로 39년 전 내가 혼인할 때 오방색의 밑밭찬을 담아 온 단지이다. 이받이 단지는 본래 다섯개로 주로 귀한 음식을 담았는데, 경상도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명태 보푸름'이었다. 물에 적신 베보자기에 명태를 감싸서 습기를 먹인 후 다듬이 방망이로 가볍게 오랫동안 두드린 후에 닳은 밥숫가락으로 살살 긁어낸 명태살은 마치 보드랍고 폭신폭신한 소캐(솜)같았다.참기름과 사탕가루,고운 소금으로 보품보품하게 무쳐서 실고추와 잣가루로 장식하는 고난도의 반가 음식이다. 그 외의 정성음식으로는 소고기 장조림과 명란젓, 송이 장아찌, 파래 무침 등으로 기억하는데 황.적.청.백.흑의 조화를 고려했을 것이다. 지방이나 계절에 따라서 내용이 달랐을 것 같다.
이받이 단지의 역사는 내 대에서 끝이 났다. 며느리가 올 때는 바로 살림을 났으므로 유리통에 장만해 온 음식을 구경도 못하고 바로 저희들 집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만약 단지에 담아 왔더라면 기꺼워하며 받아서 지금 단지 다섯개가 나란히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겠지만ᆢ어쩌랴~ 성인도 시속을 따르라 했거늘, 내가 고집하고 지킬 것이 무에 있겠는가 말이다.
*2016년의 베스트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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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물려받을지... .
이미 가보1호이군요?.
네 제겐 그렇지만 딸도 며눌도 반기지 않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