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전의 이틀 연속 3안타 행진에 이어 3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도 홈런 포함 2안타를 기록한 추신수. '9월의 사나이'라는 별명대로 9월에 좋은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오늘(3일,한국시간) 벌어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 경기는 이곳 시간으로 낮 1시에 벌어졌습니다. 전날 콜로라도 원정을 마치고 신시내티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 12시간 만에 다시 경기를 치르는 셈이네요.
콜로라도전에서 이틀 연속 홈런 포함, 3안타를 몰아치면서 이런 상승세가 세인트루이스전에서도 이어지길 바랐는데, 오늘 5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큰 기록이 세워졌습니다. 바로 100홈런-100도루 달성인데요, 미국 진출, 아니 빅리그 데뷔 후 7년 만에 이룬 의미있는 기록이었습니다. 2006년 7월 29일 클리블랜드로의 이적 후 친정팀이었던 시애틀의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통산 첫 홈런을 기록한 이후 7년 만에 100홈런-100도루로 이어진 셈입니다.
102개의 홈런을 달성했던 3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의 홈런 상황의 추신수.(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구단에서는 제 기록을 축하하는 의미로 100홈런을 때렸던 방망이와 공을 챙겨서 선물했고, 100도루를 달성했을 때는 2루 베이스를 기념으로 가지라며 안겨주더라고요.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은 100홈런 달성시의 라인업 카드를 전해줬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해달라면서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구단 관계자나 감독님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를 읽게 돼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시애틀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에 올라섰을 때만 해도, 제 인생에서 이런 순간을 만끽하게 되리라고는 쉽게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홈런 한 개도 소중했고, 그 홈런이 나오기 전까지 주전선수로 출전하는 지의 여부나 행여 작은 실수나 부상으로 인해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건 아닐 지 노심초사했던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빅리그에 올라섰다고 해도 매일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좌투수가 나올 때는 라인업에서 빠졌던 경험도 많았던 터라 100홈런-100도루는 저한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던 거죠.
추신수의 100홈런-100도루 기록 달성 영상 댓글에 '소원을 말해봐'란 댓글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추신수를 향한 다양한 소원 글들을 올렸는데, 정작 추신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주위의 귀띔으로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이 기록 달성 후에 일부 팬들이 저한테 ‘소원을 말해봐’ 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면서요? 메이저리그 사진을 전문으로 하시는 홍순국 기자님께서 저한테 기사를 보여주셨는데 제 기록 달성 뒤에 달린 리플이 ‘소원을 말해봐’였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정말 상상 그 이상의 소원들이 댓글에 적혀 있었습니다. ‘로또 1등되게 해주세요’ ‘수능 만점 받게 해주세요’ ‘울마눌 바가지 좀 줄게 해주세요’ ‘신수 형, 취업 좀 시켜주세요’ ‘부모님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가 늘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기를’ ‘아이 갖게 해주세요’ ‘여기다 글 남기면 소원이 이뤄지나요? 울 동생 대박나게 해주세요’ 등등 다다양한 내용의 소원 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아래 링크 클릭 참조)
http://m.sports.naver.com/video.nhn?id=55286
재밌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또 제가 뭐라고 이런 말씀을 하시나 싶기도 하고…. 선수의 성적에 같이 웃고 같이 울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제가 더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록과 좋은 성적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야구 선수한테 정규리그 마지막 달인 9월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치고 힘든 한 달입니다. 타자들도 방망이의 위력이 줄어들고, 투수들은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더욱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과 일찌감치 플레이오프를 포기하고 내년 시즌을 바라보는 팀들의 선수들은 경기를 대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시즌 초반의 분위기를 잊지 말고, 한 타석 한 타석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세가 중요할 것 같아요. 신시내티의 상황은 아마 정규리그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터라 매 경기를 치열하게 승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이 9월 들어 제 성적을 오르게 하는 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포기라는 단어는 승부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한테 존재할 수 없는 단어가 아닐까요.
1,2번 테이블 세터를 이루는 추신수, 브랜든 필립스에게 전달사항을 말하고 있는 더스티 베이커 감독. 신시내티의 가장 이상적인 라인업을 시즌 막판에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브랜든 필립스가 2번에 나서면서 추신수는 득점 기회를 더 많이 얻고 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얼마 전부터 신시내티의 타순이 조정됐습니다. 브랜든 필립스가 2번에 온 것이 가장 눈에 띈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의 라인업은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라인업입니다. 이 라인업으로 시즌 전체를 운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지만 시즌 막판에라도 가동될 수 있음에 감사함을 가져야겠죠.
아, 그리고 이번에는 류현진과의 맞대결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진이의 등판 스케줄이 조정됐다면서요? 현진이가 콜로라도전에서 안 던지고 한국시간으로 7일 신시내티와 다저스와의 1차전 때 현진이가 등판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현진이 오면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삼겹살이나 해주려 했는데, 이거 안 되겠는데요? 현진이가 삼겹살 먹고 힘을 내 더 잘 던지면 나만 손해잖아요^^. 아마 경기 전에는 만나기 힘들 것 같고, 현진이 등판한 이후에나 밖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투수가 훨씬 유리합니다. 타자는 매일 경기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반면에, 선발투수는 자기 등판만 소화하면 4,5일은 여유가 있으니까요.
신시내티는 1승이 중요한 상황입니다. 현진이 뿐만 아니라 다저스 투수들을 상대로 신시내티 타선이 더욱 집중해서 경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이전 LA 때와는 또 다른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진이의 13승은 신인으로선 엄청난 성적입니다. 더 욕심내면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만 커질 뿐입니다. 이럴 때 영화 ‘친구’의 명대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현진아,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현진이가 삼겹살 맛있게 먹으려면 뭐, 알아서 하겠죠 하하.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절친한 후배 류현진과 신시내티에서 다시 맞붙게 될 추신수. 최근 팀의 1승이 중요한 상황에서 추신수는 류현진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 우스갯소리일 뿐. 승부의 세계에서는 양보란 게 있을 수 없다는 걸 두 선수는 잘 알고 있다. 멋진 승부 뒤에 먹는 삼겹살은 어떤 맛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기 결과에 따라 한 사람은 쓴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