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甲申年으로 들어서서 많은 한국인 관중들의 주목을 끌고 최대의 화제거리이며 한국영화의 문제작으로 떠오른 것이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라는 두 편의 영화이다. 이 두 편의 화제작에 공통적인 특징을 추출해 본다면
첫째, 이 두 편이 공교롭게도 요즘 한국의 實勢(실세)라고 할 386세대의 젊은 감독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미도>를 제작한 강우석은 1960년 생이며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제작한 강재규는 1962년 생임으로 정도의 차는 있다고 해도 386세대에 공통된 좌경적인 이념성향과 세상에 대한 당돌한 挑戰(도전)姿勢(자세)를 보여준다.
둘쩨, 이 두 영화에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거대 물량과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실미도>는 총제 100여억원, 7개월간의 국내 최장거리 로케이션, 뉴질랜드 만년설 원정, 지중해 해양 전문 스튜이오 촬영......”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총제작비 147억과 10개월간의 촬영, 160여명의 현장 스탭과 2만여명의 엑스트라 동원, 제작진은 20여명의 국내최고 자문위원을 영입, 50년대 시대상황 및 한국전쟁에 대한 조사를 통해 수 만 종의 의상, 물품. 총기, 실제 크기의 탱크와 증기기관차, 장갑차등등....
셋째, 영화제작에 과거에는 想像(상상)도 할 수 없었던 巨額(거액)의 투자를 하면서도 외국영화, 특히 미국의 헐리우드 대작과 겨루어 보려는 경쟁심과 자기 작품에 대한 自信感(자신감)을 갖는다는 점이 놀라웁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의 만들이나 촬영기술면에서도 ‘헐리우드 대작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이 해덴다. 또 흥행 면에서도 國産(국산) 영화들이 외국영화들 보다도 훨씬 많은 관객들을 끌어드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태극기...>의 主演(주연) 배우였던 장동건도 말하기를 ‘... 이 영화는 나와 한국영화계에 더 나아가서 세계 영화계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것이다’라고 自信(자신)있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은 아마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최대 激戰(격전)이었던 한국전쟁이 이 영화에서 처럼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예가 없었다는 생각에 의해서 밑받침 되어 있을 성 싶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이처럼 자신들이 하는 일에 큰 포부와 自信(자신)을 갖는다는 노장세대로서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감이 보편적인 표준이나 객관적인 평가에 훨씬 못 미칠 때 북한 정권이 말하는 ‘조선민족 제일주의’에 버금하는 ‘우물안에 개고리’ 식인 과대망상과 自我陶醉(자아도취)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필자는 이 두 영화의 만들이, 제작기법이나 촬영술에서 헐리우드를 포함한 외국영화보다 뒤진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386세대 영화감독이 갖는 좌경성향의 이년성향과 반국가 의식 그리고 미숙한 역사인식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공명과 동조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왜냐하면 현대세계의 수준 급인 지식인들은 국가주의나 전투적인 민족주의에 동조함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좌파의 반 국가사상, 민중주의( 퍼퓰리즘) 자기중심적이며 배타적인 인 민족주의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넷째, 오늘의 386세대에게 퍼져있는 국가천시와 안보의식의 결여, 반 군부 정서, 반기득권⃘⃚․‧ 반정부감정이 이 두 편의 영화속에 짙으게 베어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그들의 반국가 사상은 국가소멸론을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 내지 네오 마르크시즘의 영향에 의한 것이며 혁명적인 저항주의는 크로포트킨 류의 무정부주의의 혁명전통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제작자나 연기자들은 이러한 사상적인 뿌리와 계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겠으나 북한의 공작에 영향을 받아 반공정신이나 국가안보의식을 냉전시대의 유물로 보아서 배격하며 그들 자신은 그런 舊時代的(구시대적)인 안보의식에서 벗어나 있음을 進步的(진보적)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誇示(과시)하려고 든다.
이러한 반국가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그들은 국토방위를 중요시하지 않음과 동시에 韓美간의 軍事同盟(군사동맹)도 所重하게 유지할 생각이 있을 리가 없다. 또 한국의 386世代가 갖는 또 한나의 특징은 국가 부정에 따르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사상은 없으면서도 반미 반일의 패쇄적인 민족주의와 친북용공의 민중주의(populism)노선에는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본격적인 영화라고 하면서 그 전쟁의 반 이상의 역할을 했던 미국을 비롯한 UN과 UN군에 대해서는 거의 묵살하려는 태도를 읽을 수가 있었다.
다섯째, 한국에서는 이러한 영화가 그래도 큰 반발 없이 다수의 관람객들에 의하여 관람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더란드, 벨지움, 스왜덴, 노르훼이, 이태리, 러시아, 폴렌드, 이일렌드, 아프리카제국, 오스트랄리아, 뉴질란드, 일본, 중국, 남미제국 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여 줄 것인가? 그 나라 국민들과 영화 전문가들이 한국 386세대의 영화감독들의 좌경성향의 이념성향과 미숙한 역사인식, 너무 설익은 현대사인식과 철학사상에서 큰 감동을 받으며 높이 평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위와 같은 총론에 기반하여 문제의 두 영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문제점들을 지적하겠다.
영화 <실미도>에서 눈에 거슬렸던 점
①실미도 사건은 공상적인 픽숀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럼으로 사건 서술자는 그 실제 있었던 내용을 왜곡하거나 회손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세인의 힐책이나 역사의 심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 그 사건의 배경을 말한다면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한 報復(보복) 조치로 한국공군 첩보부대였던 684 부대가 기획하고 추진하려다가 상황과 정세의 변화로 인하여 중단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이었다.
실미도에서 훈련받은 북파요원들은 북한으로 밀입북하여 북한의 요인들을 살해하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훈련을 받은 대원들임으로 그들의 성공과 귀환을 기약할 수가 없는 決死隊(결사대)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훈련과정이 매우 혹독했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가 있는 일이나 북파대원들의 훌련장면들이 너무나 비인간적이라 할 정도로 잔인 혹독하게 아마도 과정 촬영되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북파대원들을 훈련시킨 부대장병들이 국군의 장병이었다면 국군장병들은 정상인들이라고 볼 수 없는 정신병자들이나 야수들로 보아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영화가 21세기 초 국내외의 다수 관람객에게 보여줌은 인성파괴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국제적 이미지를 악화회손하는데 기여할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왜냐하면 그 영화가 보여주는 비인간성, 잔혹성, 도덕적인 야비성으로 말한다면 악명높은
본 군국주의, 공산독재 또 나치스의 유태인학살이나 아유슈비츠등 어느 야만 국민에 못지 않은 야만, 야수성, 비인간성의 과장 왜곡된 모습을 보여 준 것이 된다. 영화제작자들은 일반 학국인들이 아니라 군부권위주의, 보수 반동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결과적으로 한민족 전체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에 대한 자기 모멸행위가 됨을 면할 수가 없다.
② 그 영화는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통치층이나 상위자들을 지극히 야비하고 邪惡(사악)할 뿐만 아니라 일우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열한 인간들로 묘사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단치 않은 법죄자를 死刑(사형)판결하여 집행하는 척하다가 뒤로 빼돌려서 북파요원로 활용하는 것이나 공을 세우면 사면해 준다고 꼬셔서 실미도로 보내어 가진 록독한 고생을 다 시켜놓고는 남북 和解政策에 의해서 북파를 할 수가 없게 되자 그 부대의비밀 유지를 위하여 전부 사살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미도 북파요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조중사(헌준호가 대역)의 말에 의하면 사살해 죽이라는 상부지시가 있어서가 아니라 출동계획 중단후 육지로부터 보급이 끊어져서 대원들이 너무 배가 고프고 분했던 나머지 반란을 일으키고 항의차 인천에 상륙하였다가 교전후 사살되었다는 것이다. 교육대장 최재현준위도 자살한 것이 아니라 반란병들에 의하여 사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왜 이런 사실을 눈을 감거나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도덕성과 국군의 명예를 짓밟으려는 것인지 그 底意(저의)가 무엇인가?
③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북파요원들은 화김인지 “높이들어라 붉은 깃발을...”하는 赤旗歌(적기가)가 부르는데 처음은 한 사람이 3-4절 까지 부르는데 그것이 그 적기가가서 다른 대원들에게 까지 번진다는 스토리이다. 그러나 그 사건의 생존자는 적기가를 부른 적도 없고 그 대원들은 그 노래를 배운바도 연습한 바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여기서 이 이런 과장과 왜곡을 일삼았던 영화제작자들의 底意(저의)을 의심해 보는 수 밖에 없다.
④ 더욱이 이런 영화가 사방의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된지 근 4주일이 넘는 동안에 관객동원이 1,000만명을 넘어 서도록 이런 영화에대한 비판하거나 시비하는 영화평이나 항의하는 글은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것인가? 남한이 이 정도로 북한화되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색맹화되어 버린 것인지.
한국의 영화인들이 모두 이 정도로 저질이 아닐 것인데 그런 끔찍한 내용의영화가 나오게 된 원인은 영화제작에 반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 국가적, 특히 反韓적인 불순좌경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③ 그 영화는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통치층이나 상위자들을 지극히 야비하고 최고도로 邪惡(사악)하며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열한 인간들로 묘사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단치 않은 법죄자를 死刑(사형)판결하여 집행하는 척하다가 뒤로 빼돌려서 북파요원로 활용하는 것이나 공을 세우면 사면해 준다고 꼬셔서 실미도로 보내어 가진 고생을 다 시켜놓고는 남북 和解政策에 의해서 북파를 할 수가 없게 되자 그 비밀 유지를 위하여 전부 사살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악독 야만인가?.
④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북파요원들은 화김인지 “높이들어라 붉은 깃발을...”하는 赤旗歌(적기가)가 부르는데 그것이 가슴 속 깊이 감동을 일으켜서 다른 대원들에게도 번진다는 스토리이다. 이 사건의 생존자는 북파요운들이 赤旗歌(적기가)를 불렀다는 사실조차 완전 부인하는데 왜 이렇게 이런 사실을 왜곡하고 확대하려고 드는 것인지 그 底意(저의)가 매우 수상쩍 하다.
더욱이 이 영화가 전국의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된지 근 3주일이 넘었는데도 이런 영화에대한 비판하거나 시비하는 영화평이나 항의하는 글이 어느 무명의 주간지 빼놓고는 눈에 띠지 않았던 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남한이 이 정도로 북한화되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색맹화되어 버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보도과 관제되었기 때문인가?
이런 생각이나 판단이 잘못된 것인지 여러분이 직접 그 영화를 가서 보고 확인해주길 바란다. 여기서 두가지만 더 첨언하겠다. 안성기나 허준호 정도의 배우들이 어째서 이런 불순한 내용의 저질 영화에 출연하였는지? 앞으로는 작품내용을 미리 잘 검토하고 배역을 분환하거냐 출연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영화 <太極旗(태극기)를 휘날리며>가 노출했던 문제점
대충 보아도 강재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강우석 감독의 음산한 <실미도>에 비교하면 훨씬 더 밝고 웅장한 대하사극과 같은 大作(대작)이라는 印象(인상)을 주었다. 실제로 국 내외에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영화가 없었던 참에 그 전쟁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데 대한 好感(호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영화에 철학적인 깊이가 너무 빈약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에서 무슨 철학사상의 깊이와 사상성을 기대하느냐? 20세기 영화의 걸작이라는 것 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개선문’,‘ 애수’ ‘닥터 지바고’ ‘’代父(대부)‘, ’벤허‘등 에 무슨 대단한 철학적인 깊이나 사상성이 있었더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세기적인 名畵(명화)는 각기 시대적, 사상적인 배경을 깔고 있으면서 사상적문제에서 어떤 어색함이나 의아심이 느끼게 하는 구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라는 영화에는 다음과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노출하였는데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장동건은 입대하여 난동강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워서 전공을 세운 결과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는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인 이진태가 용감무쌍하게 싸워서 戰功(전공)을 세운 동기가 애국심이나 반공노선을 위해사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동생을 하루빨리 제대시켜서 후방으로 보내어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려는 兄弟愛(형제애)에 기인한 것이었다. 가족애가 소중한 것임은 사실이나 그것이 국가와 민족 또는 人類愛(인류애)위에 있다는 사상에 어느 누가 감영 받겠는가?
(2) 그러다가 대대장이 그 약속에 무성의하며 도리어 이진태 下士를 힐책하자 국군이 퇴각하는 틈에 그 上官(상관)을 돌로 쳐죽여서 군부대를 이탈하여 공산군으로 넘어 간다. 그리고 인민군 깃발 대장으로 임명되어 國軍(국군)에게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장열하게 戰死(전사)한다는 줄거리이다.
한국전쟁 중 국군병사로서 근 2년간 용맹스럽게 싸워서 큰 戰功(전공)을 세운 사람이 후방에서 그의 약혼녀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연행되다가 죽임을 당함을 목격하자 心境(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또 동생을 제대시켜준다는 약속에 무성의한 은답도 화나는 일이었음도 인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국군 대대장을 죽이고 敵軍(적군)쪽으로 투항 전향한다는 것이나 人民軍에 막바로 편입되어 전투에 차가하여 동생 이진석 一兵이 소속하는 국군부대와 白兵戰(백병전)을 벌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어질 수가 있겠는가?
보통 전투중에 국군이 인민군에게 투항하면 10중 8,9 직결처분되기가 십상이다. 運(운)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포로로 후송되거나 戰時(전시)勞役(노역)에 종사하는 것이지 막바로 인민군의 깃발대장으로 인명되어 인민군 장교의 少佐(소좌) 계급장을 달고 인민군 부대를 지휘한다고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드려지기가 어렵다. 아무리 전쟁중의 혼란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전에 國軍(국군)의 최고무공훈장을 탄 병사를 인민군이 그 본인의 한 마디를 신뢰하여 장교게급장을 달아주어 인민군을 지휘하게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있겠는가?
(3) 영화제목이 <태국기를 휘날리며>로 되어 있다. 태국기는 대한민국과 그 국가공동체를 상징하며 國軍의 忠誠(충성)과 국민전체의 자존심과 名譽(명예)의 깃발이다. 그런데 이진태 하사의 반국가적인 언행이나 무분별한 망언, 망동들이 당시 한국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태국기를 휘날리며’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못한 행동이었다. 하물며 인민군으로 투항 전향하여 총을 거꾸로 대면서 전투하는 李진태 下士= 인민군 少佐(소좌-국군의 소령에 해당))의 언동은 태극기 아닌 ‘人共旗(안공기)를 휘날리며'라는 제목이 더어울리는 행동이 아닌지?
(4) 이진태 하사의 동생인 이진석의 태도나 행위는 더 삐뚜러져서 볼쌍 사납다. 그는 서울에서 大邱(대구)까지 피난 나갔다가 그 형과 함께 국군에 의하여 강제징집 당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을 호송하는 국군 憲兵(헌병)들과 주먹 싸움을 벌여 싫건 얻어 맞고 국군에 편입된 다음 낙동강 戰線(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진석은 격렬한 전투는 하면서도 물불 안가리고 용감하게 싸우는 형의 행위를 보며 속상해 한다.
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도 안 아끼며 그토록 싸우는 것도 하루 빨리 무공훈장을 타서 자신을 除隊(제대)시키려고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형을 고맙게 생각하거나 존경하는 모습을 보니기 커녕 반대로 인간이 변했다고 경멸한다. 그 자신도 격렬한 전투속에서 단련되어 야수와 같이 사나워지면서도 愛國心(애국심)이나 護國(호국)을 위한 自己犧牲(자기희생)의 정신이나 생각이라고는 손틉만큼도 없다. 이것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국군장병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던가?
그러다가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서 인민군과 白兵戰(백병전)을 벌이다가 그는 자신이 싸우는 인민군장교가 자신의 형인 진태임을 알고 여러 모로 신호를 보내려고 하나 이미 理性(이성)을 잃어버린 형을 억제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는 궁국적으로 한국전쟁이 理性(이성)을 잃은 同族(동족)간의 骨肉相殘(골육상잔)이며 형제간의 싸움이였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일께워 주려는 것같다. 그레서 그런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영화속에 담았을 것이나 한국전쟁을 그런 식으로 인식시켜주려는 底意(저의)가 무엇일까?
2004년의 4.15총선거를 겨냥하여 남북이 和解(화해)하고 共助(공조)해야한다는 사상을 국민들 속에 주입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특히 4.15총선에 영향주려고 만들어졌으며 04년 2월초에 개봉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런 영화제작의 의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기념비적인 대작을 만들어낸 의도가 바로 이런 정치적인 목적이었던지 아니면 이런 것들이 모두 偶然(우연)의 一致(일치)였다고 보아야 하나?
(5) 이 외에 이 영화는 한국전쟁 중의 비인도적인 殘虐行爲(잔학행위)나 불합리한 처사들을 여러 모로 면에 담았다. 본의아니게 義勇軍(의용군)에 끌려나왔던 한 동네 청년이 끝내 살해되는 장면이자 자신도 모르게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된 진태의 약혼녀가 진태가 보는 앞에서 총탄을 맞아죽는다 던지 또 젊은이 들을 무리하게 강제징집하여 전선에 보내는 야만 행위등도 그 당시에 일어날 수가 있었던 현실이었음을 나도 인정한다. 또 전쟁이 아무리 서로 마구 죽이는 비이성적인 행위라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는데도 동의한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민족의 비극이었다는 말까지는 받아드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비인도적인 한국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일으킨 전쟁이다’라거나 남북한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죄악 내지 범죄행위이라는 인식, 그런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남북한이 적대하지 말고 화해하며 북측이 주장하듯이 민족이 공조하며 미국이 배제되는 가운데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聯邦制(연방제)통일을 조기 실현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總蹶起(총궐기)해야한다는 북측과 친북세력의 선전이나 선동은 不純(불순)한 術策(술책)이며 경계해야만 하는 친북행위이며 위험사상이다.
이 나라는 김일성의 비밀교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시쳇말로 ‘사랑을 아무나 하나’란 말이 있듯이 현대 주권국가를 창립하고 그 나라를 지켜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과업이다. 이런 반국가와 반안보적인 좌경영화를 보면서 나는 한국이 정말로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나라의 독립과 안정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의지를 가꾸어 왔던 국민인지 또 그럴 만한 정치적인 理性(이성), 知性(지성), 국가의식, 애국심 그리고 국민적인 합의 기반을 갖춘 국민인지 다시금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공산주의 운동의 전략전술 중의 한 항목이 되는 문학과 예술 이용의 원칙이 실감있게 마음에 와 닿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된 공산주의 전략을 명시한 김일성의 비빌교시가 남한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1978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에서 김일성이 말한 내용을 음미하라.
“남조선에서 들어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재외하고 절대 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이 없는 형편입니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표섭하여 직업적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합니다..... 그들이 창작한 작품이 천만 사람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혁명적 노래가 적의 심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요즘 남한의 전 국토를 강타하고 있닌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등이 바로 이런 비밀교시의 산물이 아니라 반박할 수가 있겠는가. 공곰히 검토해볼 일인 것 같다.
또 하나는 오늘의 헝클어진 정치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국민정치교육 내지 정신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남한의 殆不足(태부족)과 북한의 過剩熱氣(과잉열기)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음에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전쟁을 하면서도 왜 싸우는 줄도 모르는 남한 군인들과 북한측의 기만적인 정치선전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고도 그 뜻이 무엇인지,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판단할 줄 모르는 국민대중 들이 이런 친북 반한적인 영화들에 의하여 感銘(감명)받으며 크게 오도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런 현실이 오늘날 남한을 정치, 경제, 사회危機(위기)로 몰아가고 있는데 그 뿌리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런 영화제작에서 나타난 문화위기이다.
이러한 오늘의 한국 현실을 감안할 때 국민정신교육, 특히 정치교육을 이 나라의 지도층과 지성인들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과는 다른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와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공짜로 제절로되는 것이 아님을 재인식해야만 할 것 같다.
이전글 : "실미도" 영화를 본/볼 젊은이들...
다음글 : 북한 신년공동사설의 고팔과 분...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