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3)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본문 : 창1:1
성경은 하나님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신경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전능하심이 드러나는 것이 창조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증거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유지되고 있으며,
완성(새 하늘과 새 땅)될 것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는 그리스도인>
최근 <한국갤럽>의 통계 조사(2014년 4. 17-5. 2)에 따르면,.....
창조에 확신이 없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비율이 41%나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진화론이
진실이라는 교육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힘든 것입니다.
교회에서 듣는 창조신앙에 대한 몇 번의 가르침과
설교로는 이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창조신앙을 갖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창조신앙을 갖는 것에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창조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징검다리의 첫 번째 돌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조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시작점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바로 창조신앙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도미노 게임을 생각해 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도미노 블록을 세워놓습니다.
제일 앞의 도미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쓰러지면서 두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은 또 쓰러지면서 세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전체 도미노 블록을 다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신앙이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도미노입니다.
이것이 쓰러지면 하나씩 차례로 쓰러지게 되고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다 쓰러지게 됩니다.
즉 창조신앙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 심각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이 말씀은 마치 성경을 여는 열쇠와 같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면 모든 성경이 열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지 못하면 모든 성경이
닫히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 많은 인물과 역사와 표적과
기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면
아담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없는 것이고
다윗도 솔로몬도 예수님도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세계관 역사관도 바로
이 창조신앙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생겼다가 우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가
심판(재림)으로 끝나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역사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신앙’,.....
곧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는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가지 창조>
한글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단어가 한 가지로 쓰였지만 ....
원어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뜻의
다른 세 가지 단어가 쓰였습니다.
첫째, '바라'라는 단어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이 단어의 뜻은....
'없는데서 있게 하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천지,
곧 우주를 창조하실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즉 이 우주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있는 것입니다.
시계의 정교함.....
우주는 정교한 시게보다
더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계 속에 부속품들이 복잡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주에 비교해 본다면 시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체를 보십시오.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합니까?
그럼에도 질서 정연하게 이 우주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계보다 더 정확한 원리를 가지고
이 우주의 질서를 만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연을 통해
우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19:1(다윗)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롬1:19-20>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믿고 자연을 보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놀라움과 감동을 느끼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게 됩니다.
원어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뜻의
다른 세 가지 단어가 쓰였습니다.
첫째, '바라'라는 단어입니다.
둘째, '아사'라는 단어입니다(창1:21).
이것은 ‘개조한 창조’라는 뜻으로,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을 가리킵니다.
동식물이 이에 해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명체도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미노산이 단백질을 만들어내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이 수억 년 동안 움직이다가
10의 1,676,260 승 분의 1 확률로 생명체가 생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즉 생명체를 제공하는 자,
즉 창조자 없이는 생명이 생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해서
유명해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이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그를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와
그 공중에 모든 피조물을
각각 그 종류대로 지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지구 환경은 물론이고
동식물조차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동식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도 존중해야 합니다.
질서와 법칙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원어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뜻의
다른 세 가지 단어가 쓰였습니다.
첫째, '바라'라는 단어입니다.
둘째, '아사'라는 단어입니다(창1:21).
셋째, ‘야탈'이라는 단어입니다.
인간을 창조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Imago Dei)로 창조하셨습니다.
<창1:26~28>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창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아사'나 비슷하지만 특별한 목적에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플라톤은 자랑스럽게 인간을 정의하였습니다.
“인간이란 신체에 털이 없고,
두 다리로 걷는 동물이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닭의 털을 뜯고서
사람들 앞에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 여기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 있다.”
그렇습니다. 진화론이 주장하듯
인간은 어쩌다가 생긴 단백질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된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과정이 있어져야 합니다.
저 아프리카에 있는 원숭이도 .....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도 진화되어 가느라고.....
반은 원숭이로 .....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님들 ! 그런 원숭이를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
천하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영적인 존재(영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고,
재료를 이용하여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또한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창조하신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드신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의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노라'는 고백처럼....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
그것이 내 기쁨이고 만족이며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이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는 모르겠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도 아니요,....
모든 것이 다 우연히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믿는 창조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히11:3 “믿음으로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사도신경을 통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를 매주 고백하며,.....
창조 신앙을 가지고,
창조의 목적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