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국으로 갔다.
오늘은 그저께에 비해 조금 한산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업무가 늦은 건 매 일반이었다.
민원인들이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시간을 끌고...
때로는 내가 듣기에도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도 있었지만...???
(심지어 어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휴대폰에 입력된 사진을 지워달라고도 했다)
막상 내(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KT나 ,KTF의 정식직원이 아니라 용역회사 사람들 같았다.
휴대폰 담당 남자 직원을 빼고 창구의 여직원 세 명은
모두 최소 나이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틀림없이 인건비를 줄이고 노조 가입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용역내지는
옛날에 이미 퇴직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임시직으로 쓰고 있음이 뻔~했다.
그러니 갓 학교를 졸업한 젊은 아이들이 취직할 곳이 없지...쩝!
내 생각은 그렇다 나이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이든 사람이 하고...
젊은 사람들이 하여야 할 일은 젊은 사람에게 맡겨야만 한다.
그동안 내 사무실에서 사용해 왔던 한국통신 인터넷 부가 서비스인...
'비즈메카'를 컴퓨터 어디로 들어 가야만 '해지'를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정도라면...???
(기본요금 4,000원은 여태 전화요금에 포함해서 매달 꼬박꼬박 받아놓고)
그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지는 않을 것 같은(조금이라도 젊어 보일려고 얼굴에 뽀얗게 분칠을 한)
창구 여직원이 쩔쩔매는 것이 오히려 보기에 안쓰러워서...
근처에서 기다릴 테니까 뒷손님 먼저 해서 보내고 전산망을 찾거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하고는 일단 자리를 비켜 주었다.
본디 나는 가만히 웃지 않고 있으면 조금은 표정이 싸늘(?)하거나...
냉정(?)하게 보이기 때문에(예전에는 더러 그런 소리를 들었다)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눅이 들어서 마음이 더 급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당황이 되서 더욱 더 일이 안된다는 말을 우리 사무실 직원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생겨 먹었나 보다...쩝!)
그 때 전화가 왔다.
몇일 전 잠시(그래봤자 채 사흘도 아니게) 공장일이 바빠서 도와준 여친이었다.
초등카페에 올려진 글을 보고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 작지만 준혁이 통장으로 일당(?)을 보냈으니 보태 쓰라면서...
많이 못 보내서 미안하다고... 힘들고 어려우면 꼭 전화하라고...했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목이 잠길까 봐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마침 전화국 바로 앞에 농협이 있어서 돈도 좀 찾을 겸 통장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여친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본디 일당을 받을 욕심으로 갔던 게 아니었는데...
단지 사흘을 그것도 미처 몸이 따라주지 못해서 일찍 출근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돈을 넣어 놓았다고... 고맙게 잘 쓰겠다고...
그래서 마음을 바꾸고는 돈을 더 찾았다.
준혁이(막내) 휴대폰을 사려고......
전화국 앞에는 널린 게 이동통신 대리점들이다.
그래도 처음 물어 본 집의 젊은 남녀(나중에 알고보니 남매간이라고 했다)가
너무 착하고 성실하게 보여서 그 집에서 사기로 생각을 굳혔다.
(나는 본디도 똑 같은 물건으로 여기저기 물어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대충 가격대를 알아보고는 준혁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꼭 필요할 때... 가끔 그렇게 연락을 한다)
준혁이를 바꿔달래서 내가 본 모델을 이야기했더니
아무래도 느낌이 썩 달가워하진 않는 눈치였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제품='큐리텔'이었기에)
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신용불량자다.
신용불량자는 카드도 사용 못하고... 휴대폰 할부도 안된다.
그래서 일시불로 주고 사야만 하는데 지금 우리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그러니 아빠가 말하는 속칭'쵸코랫폰'이나'(송)혜교폰'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그렇게 해서 그래도 슬림형이고 만 원이 더 비싼 '쵸코랫폰'으로 낙찰을 봤다.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남매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아빠세요... 그렇게 아들을 다루시다니...*^^*"
다시 전화국에 들러서...
아까 못한 '비즈메카'와 함께 그동안 별 쓸모도 없이 기본요금만 축내던
'애물단지' 집 전화도 없애 버렸다.
버스를 타고 온다니...
굳이 여동생(휴대폰 대리점 사장의)더러 나를 태워다 드리고 오란다.
차가 작다(티코)고 종내 미안해하는 그 젊은 여성에게
나는 무척 훌륭한 남매라고 말해 주었다.(진심이었다)
둘 다 얼굴도 예쁘장했지만 정말 착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집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단위농협에 다녔는데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르자 하도 눈치를 줘서...
그만두고 오빠랑 이제 막 시작(장사를)을 하는 참이라고 했다.
내가 농협장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미안했다... 젠장~~~
그리고 알뜰하고 열심히만 하면 분명히 봉급장이보다는 나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솔직히 나는 그 말에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커녕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착하고 여린 마음으로 우째 이 어렵고 힘든 현실을 헤쳐 나갈꼬...???"
집에 다다를 무렵...
저녁약속을 했던 초등학교동기회장과 재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숨 쉴틈도 없이 '연속상영(?)'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 올라가 손에 들었던 물건들을 내려 놓고는...
초등학교 동기회 자료를 가지고 내려 왔다.
두 친구가 탄 차는 벌써 우리 빌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기회와는 달리...
초등학교 동기회 친구들에겐 온통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결국 나는 가슴 속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거의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숨길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그 이야기 가운데는... 누워서 침뱉는 얘기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그 친구들 앞에서는 쓸데없는 자존심도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헐~헐~ 짐짓 웃음을 흘리는 뒤로 눈물만 감추면 되었다.
안 그래도 내 친구들 마음은 아플 테니까... 말이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나에게 건네진 하얀봉투는...
결국 식당을 나서면서 나로 하여금 밤하늘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식당 건너편에 있는 골프연습장의 대낮처럼 휘황찬란하게 밝은 불빛이
조금 전 식당에 들어 갈 때와는 달리...
희뿌옇게 번져 보였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이 친구들에게로 돌아 올 것이었다.
어떤 모습으로라도......"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멀어져 가는 친구의 검은 색 승용차를
손을 흔들며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또 잠시 눈을 껌뻑거려야만 했다.
모처럼 철진이와 통화를 했다.
그냥 잠자코 듣고만 있던 녀석이 나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가라고 했다.
나는 반겨 그러마고 했었고......
막내만 신이 났다.
저녁내 새로 산 휴대폰을 들고 분주하게 뭘 하고 있다.
내 휴대폰으로 제 전화기에 걸어서는 마음에 드는 '벨'소리와...
'칼라링'을 입력시킨다고 바쁘더니 급기(?)야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문 밖으로 콧노래 소리가 흘러 나온다.
"참... 저런 철딱서니 없는 넘을 어떻게 혼자 알아서 하라고...???"
문득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챙겨주지도 못 했는데...
우리 막내가 저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준...
친구들에게... 그 우정에... 그 가슴 따뜻한 사랑에...
"나는 감사할 것이다... 아주 오래...오래... 나 산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