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로인해 노부부 병 수발로 3년만에 무너진 가정을 보고 우리는 이런 일들을 사전에 대비할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침해지는지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그런 일을 당한 분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영락원"에서 해야될 막중한 책임이구나! 하고, 현실에서 저 자신을 다시 한번 추스려보고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부모님의 일이 될 것이며 우리부부의 일이며 내 자신의 일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치매부모 병 수발 3년만에 무너진 가정
3년 수발… 끝내 무료요양소로 "못 모시는 자식마음 미어집니다"
10년전 모친·3년전 부친 발병… 홍성대씨 가정
▲ “어머니, 미안해요” 치매에 걸린 부모를 무료요양원에 맡긴 홍성대씨가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꾸벅꾸벅 졸고만 있다.
최순호기자 (블로그)choish.chosun.com
홍성대(40·경기도 김포시 하성면)씨는 아버지(77)의 작은 알몸을 품에 안아 욕조로 옮겼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따뜻한 물로 거품을 씻어낸 뒤 수건으로 닦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카키색 파카를 입힌 홍씨. 이번엔 어머니(68)를 품에 안고 욕실로 향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부모님 목욕.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되풀이한 일이었지만, 이날은 눈물을 훔치느라 쉽지 않았다. 목욕을 마친 아버지,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얌전했다. 병원에서 목발을 집고 퇴원한 아내(39)는 시부모의 손발톱을 깎으면서 “꼭 다시 모시러 갈 테니까, 꼭 갈 테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보였다.
1월 31일. 이날은 홍씨가 3년간 모셔온 치매 부모들과 ‘이별’을 하는 날이었다. 이제 치매 부모들은 홍씨 부부와 두 자녀 등 3대 일가족 6명이 거주하던 하성면 야산 중턱의 25평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떠나야 한다. 치매 부모들의 새 거주지는 컨테이너 집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치매·중풍 노인 무료 전문요양원 ‘수산나의 집’(김포시 대곶면). 40년 동안 함께 산 부모님을 휠체어로 요양원에 인계하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아버지·어머니의 병력과 특성,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신경안정제를 건넨 뒤, 2층 병실에서 부모님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홍씨의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제대로 적응하셔야 할 텐데….” 홍씨 부부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홍씨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치매 노인 공공요양원에서 숱한 퇴짜를 맞으면서, 오늘 같은 이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2월 9일 설날. 홍씨 가족은 이불 4채를 싸들고 요양원의 부모를 찾았다. 함께 온 누이는 입원한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목놓아 울었다.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버지는 “아주머니, 나~ 안 죽어! 왜 울어?”라고 말했다.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2002년 5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치매에 걸린 뒤 3년. 그동안 치매 부모를 뒷바라지하느라 홍씨는 직장을 잃었다. 김포시에 있던 22평형 서민아파트를 팔아 1억여원을 부모 병수발, 이사 비용, 생활비 등으로 쓰는 사이 살림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치매 부모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날로 심해져만 갈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지난 8월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치료를 미루다 최근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컨테이너 집에서 입에 풀칠만 하는 ‘바닥생활’을 해왔는데도 치매부모 봉양 3년에 홍씨는 3500만원의 빚까지 져야 했다. 미끄러지듯 추락해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전락한 뒤, 정부는 비로소 홍씨 가족에게 치매부모의 공공요양원 입소를 허락했다. 홍씨는 “우리는 인간의 도리로 차마 그러지 못했지만 치매 부모를 버리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 털어놓았다. 홍씨 부모가 입원한 공공요양원 수용자 69명 중 절반 정도가 자식이 버린 노인들이었다.
[치매] <1> "치매 부모 버리는 심정 이제 알겠다"
폭행·폭언·가출… 山으로 이사…
간병에 풍비박산 빚더미
치매 부모를 모신 홍성대(40)씨 가족이 3년 만에 몰락해가는 과정은 정부의 방관자적 치매 대책에서 비롯됐다. 버려진 노인이나 극빈자에게만 개방하는 공공 요양시설은 수많은 치매 노인을 거리로 내몰고 치매 가족을 극빈자로 전락시키는 ‘정책의 역설’을 초래하고 있다. 2002년 5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치매 판정을 받은 뒤 3년 만에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급전직하한 홍씨 가족의 경험은 이런 모순을 압축적으로 반영한다.
실제로 홍씨 아내 윤성숙(39)씨는 일기장에 “우리 사회에서 치매 가족은 부모를 버리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만, 현대판 고려장을 해야만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푸념을 적어 놓았다. 겉 표지에 ‘단풍 같은 치매, 아름다운 치매’라고 쓰인 일기장이었다.
▲ 다리 다친 며느리가 발톱 깍아 주고… ◇홍성대(사진 오른쪽)씨가 부모를 요양원으로 떠나 보내기 앞서 어머니에게 양말을 신기고 있다. 병원에서 잠시 나온 아내 윤성숙(왼쪽 두 번째)씨도 시아버지의 발톱을 깎으며 눈물을 삼켰다.
#2002년 5월 6일
“직장을 마친 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플라스틱 통으로 아내를 때리고 있었어요.” 홍씨는 이날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인 어머니. 어머니 대신 자신을 희생하고 1남4녀를 길러준 아버지마저 이날 ‘치매 중기(中期)’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폭행·폭언·배회’ 증상이었다. “처음 시아버님 방에 들어갈 때는 똥오줌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졌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 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어느 날 웃음으로 대하면 화를 안 내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억지로라도 웃음을 연습하고 방에 들어가 수발을 시작했지요.” 아내 윤씨는 말했다.
무료 공공 요양원은 “버림받은 노인이나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만 자격이 있다”며 홍씨 부모에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시 현대자동차 서비스공장에서 정비사로 일하던 홍씨 연봉(3200만원)으론 한 달에 몇 백만원씩 하는 유료 요양원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홍씨는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분양받은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22평 서민 아파트를 팔고, 그해 7월 인가(人家)가 없는 김포시 하성면 야산 중턱으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사람들 있는 자리에서 용변을 보시고, 어버지는 견사(犬舍)를 열어 이웃을 위험에 빠뜨렸어요.” 홍씨 가족의 이사는 일종의 ‘유배’였다.
#2004년 6~8월
‘마이너스 살림’이 시작됐다. 부모 약값, 생활비,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작년 1월 임야를 담보로 2000만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뒤 빚이 3500만원으로 늘었다. 궁여지책으로 애견(愛犬)을 키워 생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2004년 6월 치매 아버지가 침대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어 8월 시부모를 간병하다 다리가 부러진 아내는 살이 어그러질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병원에서는 철심을 박는 수술을 권했지만 생계가 막막해 깁스만 한 채 집에서 시부모를 모셨다.
2004년 11월 4일 아내 윤씨의 일기는 처량했다. “기름도 없어, 보일러를 돌릴 수도 없어 집안이 꽁꽁 얼어붙었다. 발도 시리고 온몸이 춥고 잠도 안 오고… 딸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춥다고 한다. ‘옷을 잔뜩 껴입고 잠을 청하라’고 했지만 잠은 자지 않고 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2005년 1월
5일 홍씨는 반나절만 다니던 인근 정비소 일까지 그만뒀다. 4개월간 방치한 아내의 다리골절이 악화돼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내를 간병하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은 홍씨밖에 없었다. 작년 8월 부상 이후 끙끙 앓던 아내는 12일 골반뼈를 떼내 다리에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15일 면사무소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부모가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됐다는 소식이었다. 비로소 무료 치매 요양시설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면사무소를 들락거리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해온 홍씨였다. 3년을 기다려온 소식이었지만, 기쁜 일은 아니었다. 홍씨는 “내 부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치매] <2> 당장 치료해야할 환자 반이상 갈곳 없어
무료요양 병상 전국 2만개밖에 안돼
月100만원 넘는 일반시설 그림의 떡
“전 잠시 놀러온 사람이에요. 며칠 있다 집에 가요.” 정말 잠시 다니러 온 것처럼 송미숙(가명·75) 할머니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송 할머니는 벌써 2년 전부터 ‘잠시 놀러 와’ 있다. 할머니의 기억은 2년 전 딸의 손을 잡고 이곳에 나들이하듯 온 그날에 멈춰져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산속에 자리한 노인치매요양원인 ‘베들레헴 사랑의 집’. 이곳에는 송 할머니를 포함해 치매 노인 24명이 살고 있다.
창가에 힘없이 기대어 앉아 있는 오은옥(가명·91) 할머니는 지난 밤을 꼬박 새웠다. 벌써 이틀째다. 누군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3일에 한 번씩 겨우 잠을 청하고 있다. 사랑의 집 관계자는 “항상 3~4명은 밤에 잠을 안 자고 요양원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이곳은 20여년간 노인 목회 활동을 해온 이현정(65) 목사가 1인당 월 30만~50만원의 실비를 받고 치매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는 곳이다. 월 이용료가 100만원이 넘는 일반 민간 요양시설에 비하면 무척 싼 편이다. 하지만 국내 치매환자 대부분에게 이런 시설은 ‘그림의 떡’이다.
작년 말 현재 국내 치매노인 환자수는 34만6000명. 1990년 17만명에서 2배 이상 늘었다. 해마다 급증해 2010년엔 45만6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의 치매요양병원은 537개에 불과하고 병상수는 공공·민간을 통틀어 4만개가 채 안 된다. 보건복지부에서 병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분류한 중증 치매노인 8만3000여명(복지부 통계)의 절반도 수용할 수 없다.
또 월 100만~250만원에 달하는 과다한 시설 이용료는 치매환자 가족들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벅찬 금액이다. 무료 이용혜택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제한돼 있고, 무료요양병상은 2만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가 월 12만원 안팎을 받고 출·퇴근 식으로 운영하는 노인종합복지관은 대기자들이 수두룩하다. 서울 성동구청의 사회복지사는 “치매가족들은 저렴한 노인복지관을 선호하고 있지만 재정부담 때문에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노인종합복지관에는 윷놀이가 벌어졌다.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붙인 치매노인들이 ‘꼬꼬팀’과 ‘까치팀’으로 나뉘어 자원봉사자의 지도로 윷을 던진다. 개가 나오니 한 쪽에 있는 한 할머니가 “개가 나오니 멍멍 짖어야지”라며 멍멍 소리를 흉내낸다. 옆에서 장구치며 응원하던 할아버지에게 “장구 깨진다”고 던진 다른 할아버지의 핀잔 소리에도 흥겨움이 넘친다. 이긴 까치팀은 만세삼창을
하며 얼싸안는다.
한 사회복지사는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고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는 병이기 때문에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라며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으면 방치된 치매환자와 고통받는 환자 가족들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치매 막으려면
1. 끊임없이 머리 쓰기
2. 항상 밝게 웃고 적극적으로 살기
3. 금연·금주, 규칙적 운동
4.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을 관리
5. 많이 씹기
6. 등 푸른 생선, 비타민E, 비타민B 복합체 엽산(葉酸) 등을 많이 섭취
7. 정기적으로 신체검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얻으시려면 !
증상있을 땐 보건소 상담센터로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노망(老妄)으로 단정해 방치하기 쉽다. 하지만 인근 보건소나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병세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원봉사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먼저 가까운 보건소(전국 264개)의 치매상담센터를 찾는 게 좋다. 이곳에서는 치매에 대한 간이 테스트를 해주고 결과에 따라 병원을 소개해 주거나 보건소 입소를 알선해준다. 대부분의 보건소에서 치매환자에게 주소 등 환자 연락처를 綏逑?치매 팔찌를 보급하고 있다.
경미한 치매환자는 보건소에서 관리해 주는데 성인용 기저귀 등 간단한 치매노인용품을 무료로 지급한다. 서울 지역은 1588-0678에 연락하면 가까운 보건소를 안내해준다.
또 동사무소 등에 연락하면 구청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노인종합복지관을 안내해준다.
민간단체로는 한국치매협회와 한국치매가족협회, 노인복지시설협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등이 치매노인의 상태에 따라 관내 복지관이나 전문요양시설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또 치매노인이 가출해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을 통해 찾는 방법이 있다. 노인복지시설협회 인터넷 사이트(www.elder.or.kr)에 들어가 ‘찾는 노인’과 ‘보호 중인 노인’ 코너를 클릭하면 된다. 치매로 집을 찾지 못해 배회하다 경찰서나 노인복지시설에 신고되거나 보호 중인 노인이 발생하면 인적사항을 ‘보호 중인 노인’ 코너에 띄워 놓는다. 반대로 가출한 치매노인은 ‘찾는 노인’ 코너에 사진과 특징을 올려 놓을 수 있다.
치매란?
치매(癡 )는 정상적으로 성숙한 뇌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손상됨으로써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대인관계가 힘들어지는 질병을 일컫는다. 치매를 뜻하는 영어단어 ‘dementia’는 ‘제정신이 없어졌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원인별로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알츠하이머형’ 환자가 6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중풍 등 뇌혈관 질환에서 비롯되는 ‘혈관성’ 환자가 35% 정도, 나머지는 각종 사고 또는 질병에 기인한 ‘2차성 치매’ 환자다.
홈 > 뉴스 > 사설ㆍ칼럼 > 사설
[사설1] 가정이 망해야 치매환자 받아줘서야
설 연휴에 가족이 모여 어울리면서도 갈수록 기력이 쇠해지는 집안 어르신들을 뵈며 내심 분위기가 무거웠던 집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노환, 특히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무사한 집도 치매의 공포로부터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집안에 치매 환자를 어른으로 모시고 있는 가족이 이미 10가구에 한 가구 꼴이고 15년 뒤엔 5가구 중 한 가구에 이를 것으로 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오늘 본지에 실린 어느 40대 가장의 사연은 겉보기엔 멀쩡한 가정이라도 치매를 만나는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린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연봉 3200만원을 받으며 자동차회사 직영 정비공장에 다니던 이 가장이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치매에 걸린 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전락하는 데는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2평 아파트는 부모 병 수발에 녹아들어 야산의 컨테이너집으로 찌부러졌고 빚만 3500만원이 남았다. 부모 병 수발에 아내만으로는 힘에 부쳐 자신도 매달리다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된 끝에야 그는 부모를 무료 공공요양원에 맡길 수 있었다. 버림받은 노인이나 생활보호 대상자만 받아들인다는 공공요양원의 입원 자격은 다름 아닌 ‘철저히 망해야 받아준다는 것’이었던 셈이다.
이 가장의 수난은 치매가 개별 가족 차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병이라는 점과 함께 우리 치매정책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준다. 월 몇백만원씩 하는 사설 요양소에 부모를 맡길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겠는가. 공식 통계에 잡힌 치매 환자만 35만명인 나라에 정부 보조를 받는 노인요양시설의 수용규모는 1만7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35만명과 1만7000명의 격차는 결국 환자 가정의 파탄으로 메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가족이 살려면 치매 부모를 버리라’고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2018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이면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런 노령화의 진행 속에서 치매 환자도 2020년엔 57만명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정부는 치매 대책이 국민의 행복지수(指數)를 가늠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대책과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 출처: 조선일보 기사 00년 0월0일)